[옥상녹화] 일본 옥상녹화 단상
1.카미야紙屋 목재소의옥상정원
메이지 시대의 개인 주택 옥상정원
여러 문헌 자료에 따르면 철근 콘크리트 건축이 보급되지 않았던 메이지 시대에도 개인적으로 옥상정원을 만들고 즐기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 사진도 그러한 ‘부자의 도락道樂’과 같은 옥상정원의 하나로 추정된다. 오래된 그림엽서인데, 사용되지 않아서 어느 시대의 것인지는 정확히 추정하기가 어렵다.
이 사진은 카미야 목재소를 찍은 그림엽서집 중 한장이다. 메이지明治(1868 ~1911) 시대부터 타 이쇼大正(1912~1925) 시대에 걸쳐 무엇인가 중대한 행사가 있을 때면, 자기 제품을 그림엽서로 인쇄해 관계자들에게 나눠주는 관습이 있었던 것 같다. 이처럼 극히 사적인문물을 찍은 그림엽서 사진 세트가 골동품으로 상당히 많이 남겨져 있다.
카미야 목재소도 집 현관을 찍은 것과 실내에 관계자가 잠시 멈춰서 있는 모습 등 여러 가지 앵글의 사진들이 엽서로 남아 있다. 찍힌 사람들의 복장, 머리 모양, 거기에다 그림엽서의 양식 등을 종합해 보면, 이 그림 엽서는 1900년부터 1907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도 같은 시기에 촬영됐음에 틀림없다. 일본에서 전면 철근 콘크리트 건축물이 지어진 것은 1897년 후반부터이므로, 당연히 후쿠시마켄福島県 코오리야마郡山에는 아직 철근 콘크리트가 보급되지 않았을 것이다. 사진에서도 건물 측면으로 벽돌쌓기 구조가 찍혀 있다. 옥상은 평지붕이기 때문에 콘크리트판이 사용됐을 가능성이 높지만, 이른바 철
근 콘크리트는 아닐 것으로 생각한다.
메이지 시대 시골에서는 대나무 골조 콘크리트의 진묘한 건축 양식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콘크리트 골조의 역학적 기능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 하는 목수들이 많았다. 따라서 어떠한 구조재를 봉입해 만든 콘크리트판일 가능성은 높지만, 현대 건축 기술에서 볼 때 이론에 맞춰서 지은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야마다 히로유키는 치바대학교 환경녹지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원예학연구과와 자연과학연구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도시녹화기술개발기구 연구원, 와카야마대학교 시스템공학부 부교수를 거쳐 현재 오사카부립대학교 대학원 생명환경과학연구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토교통성의 선도적 도시 형성 촉진 사업과 관련한 자문위원, 효고현 켄민마을 경관 수준 녹화사업 검토위원회 위원장, 사카이시 건설국 지정 관리자 후보자 선정위원을 역임했다. 일본조경학회 학회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도시 녹화의 최신 기술과 동향』, 『도시환경과 녹지-도시 녹화 연구 노트 2012』 등을 비롯해 다수의 공저가 있다.
한규희는 1967년생으로, 치바대학교 대학원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94년부터 일본의 에디(EDY)조경설계사무소, 그락크(CLAC) 등에서 실무 경험을 익혔고, 일본 국토교통성 관할 연구기관인 도시녹화 기구의 연구원으로서 정책 업무 등에 참여해 10여 년간 근무해 오고 있다. 특히 도시의 공원녹지 5개년 계획의 3차, 4차를 담당했다. 일본 도쿄도 코토구 ‘장기계획 책정회’ 위원, 서울시 10만 녹색지붕 추진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연구 논문과 업무 경험을 쌓았다. 현재 한국에서는 어번닉스 공동대표를 맡고 있으며,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 중이다. 여러 권의 단행본을 함께 감수하고 집필하면서 기술 보급에도 힘쓰고 있다.
번역 한규희 _ 어번닉스 대표, 일본 도시녹화기구 연구부 연구원
[디자인 유랑 인 호주] 항구도시 시드니(3)
숨겨진 보물로의 초대, 산업유산의 재조명
탈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과거 산업유산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그리고 국가의 경쟁력만큼이나 도시의 경쟁력이 중요해진 오늘날 산업유산을 통한 도시재생은 도시의 활력을 불어넣는 요소이자 현대 도시의 중요한 화두다. 하지만 도시재생의 기반이 되는 산업시설들은 국가 경제의 성장 동력이자 사회적 편익에 오랜 시간 조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 구조의 변화에 따라 점차 본연의 기능을 잃고 방치돼 왔다.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인식을 주고 점차 도시 미관을 저해시키는 흉물이 됐다.
번성했던 지역 산업과 맥을 함께하는 산업시설 가운데서도 시드니 하버를 마주하는 반도peninsula와 곶point에 위치한 정유 산업은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50~1960년대에 급속한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내수 수요량에도 불구하고 협소한 규모의 정유시설들은 대규모 공장에서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아시아 국가에 비해 제품 경쟁력이 떨어졌으며, 높은 유지비와 기술자의 인건비, 까다로운 현지 규정과 맞물리며 쇠퇴의 길을 걷게 됐다.
과거 지역민의 생산 구조 및 생활양식과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는 산업시설들은 물질적 산업 생산을 토대로 하는 양적 성장을 뒤로하고, 근대의 기억과 현대적 삶의 공존을 담는 문화 요소로 재탄생했다. 또한 산업시설의 거친 인공미와 현대적 디자인의 결합은 도시의 숨겨진 보물처럼 지역 커뮤니티 활성화에 기여하며 급변하는 현대사회와 과거로부터 남겨진 요소들을 연결해주는 매개체가 된다.
시드니 산책 다섯, Former BP 퍼블릭 파크랜드
지난 2005년 3월 12일, 공식 개장한 Former BP 퍼블릭 파크랜드는 18세기 말, 유럽인들의 정착과 함께 시드니 북부의 사암지대인 웨버턴 반도Weverton Peninsula에 저탄장과 증류주 공장이 들어서면서 그 역사가 시작된다. 하지만 산업 구조의 변화와 함께 원유가 새로운 대체연료로 주목받으면서 석탄 수급 조절을 위한 기반시설의 기능을 상실했고,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던 원유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영국국영석유회사British Petroleum의 유류저장고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서른한 개에 달하는 오일 탱크에서 그 물리적 체적을 가늠할 수 있듯, 웨버턴 지역의 정유 산업은 공장 가동이 중단된 1993년까지 버치글러브 반도Birchgrove Peninsula에 자리한 칼텍스 정유회사The Caltex와 당대 최고의 번영을 구가했다. 그러나 도시 외곽으로 산업시설 이전이 결정되면서 방치된 석유 공장 부지는 경제 논리에 따른 거주지 개발이 추진됐으나, 뉴사우스 웨일즈 주정부가 ‘공공을 위한 공간’으로 새롭게 조성하면서 외면해왔던 시민들의 발걸음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
윤호준은 1982년생으로 경원대학교(현 가천대학교)에서 조경학을 전공했다.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를 거쳐 서호엔지니어링 팀장으로 재직하면서 조경 계획 및 설계에 관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현재 북경공업대학교 성시건축대학원에 재학 중이며 서호엔지니어링 북경지사에서 실무를 병행하고 있다. 『환경과조경』과 『스테이플(STAPLE)』의 해외리포터(중국)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지난 2012년에 출간한 『디자인 유랑 인 유럽』이 있으며, 현재 『디자인 유랑 인 아시아』편을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