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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성국제비엔날레] 플로팅 스테이지 수성못 수상공연장 설계공모 3등작
    수성못은 시민들을 위한 아름다운 자연의 피난처 역할을 하는 도심의 오아시스다. 깨끗한 물과 수변의 우거진 수목들은 교향곡의 고요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을 시도할 수 있는 자연의 도화지와 같았다. 이 도화지에 그리는 새로운 수상공연장을 통해 문화적 활동의 활성화를 꾀하고자 했다. 예술과 자연을 결합해 음악이 호수의 잔잔함과 조화를 이루고, 시민들이 야외 문화 활동을 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을 계획했다. 절제된 개입 새로운 공연장을 수성못 북동쪽에 배치해 시각적 인지도를 높이고, 인근 공공 공간은 수상공연장 지원 시설이나 주차장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또한 이곳은 주변 산과 수성못 경관을 조망하기 좋은 자리이기도 하다. 기존 요소를 보존하되 녹지를 통해 도심에서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자 했다. 시민들의 일상적인 이용과 호수의 중요성을 고려해 기존의 산책로를 변경하지 않고 보완하는 등 절제된 방식의 디자인을 시도했다. 기존 산책로를 확장해 새로운 수상공연장과 연결하고 수상 활동을 위한 도크, 카페 등 기존 공간의 리노베이션을 진행했다. 주변 경관과 조화를 꾀하며 수상공연장 인근에 호수를 정화하는 자생종으로 구성한 부유하는 수중 식물섬을 계획했다. 세 개의 객체 거북선과 중세 유럽의 극장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목재 바닥을 통해 부력을 얻고 날카로운 철재 덮개로 침입자를 완벽히 방어했던 거북선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철과 적층 대나무를 활용해 90도로 세운 거북선을 연상시키는 세 개의 구조물을 만들었다. 또한 중정 무대를 3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스페인의 코미디 극장인 코랄레스 데 코메디아스(corrales de comedias)에서 영감을 얻어 세 개의 구조물을 활용한 객석과 무대를 마련했다. 객석과 무대가 배치된 세 개의 구조물은 독립된 객체로서 존재한다. 그리드 패턴 구조의 발코니는 각 구조물에 독특한 개성을 불어넣는다. 발코니는 구조적 안정성과 함께 무대를 향해 열려 있어 관객들에게 최적의 전망을 선사한다. 외벽으로 사용한 허니콤 패널은 은은한 불빛으로 사물을 밝히는 한국의 등불에서 영감을 얻었다. 구릿빛이 감도는 벌집 구조의 이중 허니콤 패널은 빛을 반사하고, 외부로 전달되는 음향을 줄이며 시설물을 보호한다. 해가 지면 공연장은 은은한 빛을 내는 등불을 연상시키며 호수와 조화를 이룬다. *환경과조경439호(2024년 11월호)수록본 일부
    • 페르난도 메니스
  • [수성국제비엔날레] 새로운 들안로 수성못 수성브리지 설계공모 당선작
    브리지의 기능을 뛰어넘어 도시 구조의 일부로 자리매김할 공공시설을 계획하고자 한다. 수성브리지가 놓인 수성못은 도시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게 될 것이다. 수성구를 관통하는 들안로와 수성못을 통해 도시에서의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안한다. 수성브리지를 수성구의 간결하고 아름다운 상징으로 만들고자 들안로의 끝부분을 확장한다. 이는 들안로의 연장선에서 보이는 산의 경관을 가리지 않고 부각해, 이 도로 자체의 가치와 위상을 높일 것이다. 수성구의 비전 수성구민들은 새로운 문화, 예술, 관광 시설과 수성못의 랜드마크화를 원하고 있다. 이러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 수성구는 ‘행복한 삶이 있는 미래도시’라는 비전을 세워 실천해 나가고 있다. 이에 부응해 다양한 기능을 수용할 수 있는 브리지를 설계했다. 교육, 음악-예술, 강연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브리지는 무학로 양측을 연결할 뿐 아니라 경관을 초월해 도시와 수성못을 잇는다. 다리를 넘어 하나의 건축물로 설계된 수성브리지는 장소를 연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마을과 수성못, 사람과 도시를 잇는 상징적 다리가 될 것이다. 계획 차량이 브리지에서 조금 떨어진 지점에서 5% 경사로를 따라 내려간 뒤 들안길 삼거리를 따라 올라오도록 설계했다. 이로써 보행자는 지상 1층 레벨에서 편히 수성브리지로 들어설 수 있게 된다. 완만한 계단식 공원으로 수성못과 무학로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경관을 연출한다. 브리지의 기능을 특별하게 고정하지 않고, 건물 전체 옥상에서 큰 규모의 이벤트를 개최하는 등 필요에 따라 평면이 달라지도록 계획했다. 옥상의 경우 도심항공교통(UAM)이 착륙할 수 있는 공간도 고려했다.브리지 양쪽에 설치한 엘리베이터를 통해 교차로에서 브리지 내부와 옥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다리를 따라 걸어가면 수성못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다리의 끝에는 들안로로 이어지는 출입구를 마련했다. 호수까지 도로를 확장해 브리지를 문화 도시의 중심 거점으로 만들고 수성구의 구조를 새롭게 정의하고자 했다. 6차선인 들안로를 7차선으로 늘리되 무학로 위의 브리지는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도로 혼잡을 방지하고 보행자는 더 넓은 도로를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유연한 사용 들안로에서 브리지를 따라 오르면 안내소에 도착한다. 이어 다양한 책을 공유함으로써 사람들의 소통을 도모하는 책 공유 공간과 다양한 주제의 강의가 이루어지는 강연장이 나타난다. 무학로 바로 위 도시정보센터에서 출발해 걸어가면 대구와 수성못의 기념품을 파는 마켓이 있다. 마지막 도착지는 보트 선착장으로, 아름다운 수성못의 풍경이 펼쳐진다. 브리지 지붕은 음식을 먹으며 도시 풍경과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파노라마처럼 감상하는 푸드 페스티벌에 활용할 수 있다. 예술 전시회를 열 경우, 브리지를 넘어 도시로 전시 영역을 확장해 색다른 방식으로 다리와 도시를 연결한다. 브리지 끝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면 호수에서 보트를 타고 영화를 볼 수 있다. 이는 브리지와 호수를 연결하는 효과를 낼 것이다. 구조 최대한 긴 스팬을 구축하고 대규모 구조물을 저렴한 비용으로 계획하기 위해 I형 단면 구조물을 제안한다. 50m에 이르는 브리지의 구조 프레임은 철근 콘크리트로 만든다. 브리지 중앙을 관통해 연속되는 아치를 따라 이어지는 하부 슬래브와 상부 슬래브는 I형강 플랜지로 구성되며, 층고는 6m다. 브리지의 상하부 바닥면을 구성하는 슬래브는 발포폴리스티렌으로 충전된 보이드 슬래브다. 7m의 캔틸레버 슬래브는 경량 철근 콘크리트로 제작할 수 있다. 기둥은 원통형으로 만들어 각 스팬마다 하나씩 배치해 시공성을 높이고 지진 저항력을 갖추게 한다. 브리지 본체는 거대한 I형강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일반적인 브리지는 빔의 윗부분만 사람이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제안하는 브리지는 거대한 I형강 가운데 공간의 높이를 충분히 확보해 사람이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이를 위해 양쪽에 유리를 삽입해 브리지 내부 공간을 조성했다. 이는 수성브리지를 단순한 다리를 넘어 수성구의 새로운 시민 시설로 만들 것이다.
    • 준야 이시가미+어소시에이츠
  • [수성국제비엔날레] 지붕이 춤추는 다리 수성못 수성브리지 설계공모 2등작
    호수와 사람을 연결하다 대구 중심에 위치한 수성못은 앞산, 범이산, 동막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매년 9월 수성못 페스티벌이 열려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수성못으로 오려면 들안로와 무학로를 지나야 하는데, 수성못에 도착해 처음 마주하게 되는 풍경은 교차하는 두 도로와 그 뒤로 펼쳐진 녹지다. 호수의 풍경을 바로 발견하기 어렵다. 도시에서 호수로 급작스럽게 변환되는 풍경은 이곳에 처음 방문하는 관광객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종합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계획을 통해 수성못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자 한다. 무학로를 가로지르는 다리는 수성못 주변의 녹지 공간을 연결함으로써 도착 경험을 풍성하게 하고, 대구를 대표하는 관광지이자 지역 문화와 주변 자연을 통합하는 새로운 자연 환경으로 만들 것이다. 지붕이 춤추는 다리 천연 목재로 만든 A형 프레임 트러스가 반복적으로 맞물리는 다리는 보행자와 자전거를 탄 사람에게 색다른 이동 경험을 제공한다. 비틀어진 듯한 느낌을 주는 구불구불한 다리 모양은 수성못으로 향하는 여정에 재미를 더한다. 다리 지붕 위에 도착하면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소음이 줄어들고 트러스 구조물 틈 사이로 산과 호수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다양한 교통수단을 수용할 수 있는 다리는 여러 가지 동선을 제공한다. 이 중 가장 넓은 길은 자전거 전용 도로며, 나머지 두 보행로는 방문객들이 원하는 코스로 다닐 수 있게 한다. 보행로에서는 자연에 둘러싸인 수성못과 대구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다양한 동선은 수성못 페스티벌과 수상공연장에서 공연이 진행될 때도 많은 사람을 수용하며, 사람이 많이 몰리더라도 방문객에게 친밀하고 몰입감 있는 경험을 선사한다. 다리 사이 작은 계단에서는 사람들이 만나거나 주변 산의 전망을 즐길 수 있다. *환경과조경439호(2024년 11월호)수록본 일부
    • West 8
  • [수성국제비엔날레] 수성수로 수성못 수성브리지 설계공모 3등작
    세종실록 경상도지리지에 수성못의 원형이었던 자연 호수 둔동제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현재 수성못의 형태는 1927년 일본인 미즈사키 린타로에 의해 완성됐고 그의 묘지가 수성못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안장되어 있다. 역설적이지만 일제강점기 대표 저항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배경이 수성들이다. 하지만 역사의 아이러니와는 무관하게 수성못과 수성들의 관계는 공생적이었다. 수성못으로부터 물을 공급받은 수성들은 항상 비옥했기에 수성들(들안로 주변)이 현재까지 번성할 수 있었다. 우리는 수성수로(壽城水路)를 통한 수성못과 수성들의 관계 복원을 제안한다. 물을 매개로 문화와 휴식 공간을 조성하고 도시와 자연을 다시 연결하고자 한다. 이질적인 구성 도시와 자연으로 대비되는 들안로와 수성못의 흐름은 내부와 외부가 서로 다른 성격과 모양을 가진 이질적인 구성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실핏줄처럼 퍼져 대지에 물을 공급하던 옛 수로는 수성못과 연결된 수성수로를 통해 도시까지 확장시킨다. 다리의 장스팬을 지지하는 높이 4.2m의 외벽(구조보)은 단순하지만 색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이 벽을 따라 위아래로 파도치듯 움직이는 바닥은 새로운 실내 공간을 만든다. 이 공간은 아이들의 놀이 공간이자 도시를 내려다보는 전망대가 된다. 보행교 중앙을 가로지르는 얕고 좁은 수로는 도시와 수성못이 만나는 끝에서 넓은 물길로 바뀌면서 시민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푸른 하늘과 푸른 물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숲길을 따라 수성수로에 만들어진 내부와 외부 공간은 들안로와 수성못의 단절된 흐름을 연결한다. 외부 공간에서는 단순한 수평선으로 만들어낸 새로운 도시 풍경을 볼 수 있다. 높이 3m 구조 벽으로 상업가의 풍경을 가리고 교통 소음을 차단했다. 내부 공간에서 수성못과 법이산으로 이어지는 자연을 조용히 바라볼 수 있다. 저항 시인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의 구절처럼, “푸른 하늘과 푸른 물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숲길을 따라” 걸으며 들안로 공방에서 제작된 다양한 전시물을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도시에서 자연으로 변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환경과조경439호(2024년 11월호)수록본 일부
    • 디림건축사사무소
  • [수성국제비엔날레] 공존의 풍경 망월지 생태교육관 건립 및 생태축 복원사업 공모 당선작
    산란기에 접어든 두꺼비는 피부가 마르지 않도록 밤이나 비를 기다리며 산의 골짜기를 따라 움직인다. 본능적으로 골짜기의 촉촉함을 따라가면 물이 많이 모이는 저수지나 습지로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국내 최대 두꺼비 산란지인 망월지는 수심 5m, 길이 약 170m로 담수량이 적지 않지만, 두꺼비가 산란하기에 적합한 얕은 습지와 촉촉한 땅은 거의 없다. 이러한 망월지의 태생적 한계를 보완하고 두꺼비를 비롯한 다양한 곤충과 새가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대체 서식지를 만들고자 한다. 자연 습지의 생태 원리를 담은 소택지, 습지림, 초지, 숲정원 등을 조성해 두꺼비 산란지와 더불어 생물 다양성이 높은 서식지를 조성하고자 한다. 공존의 풍경 최소한의 개입: 두꺼비를 위한 유도 펜스와 생태 통로를 야생풀과 나무, 자갈 등으로 조성해 자연이 살아 있는 곳으로 조성한다. 산책로를 적게 만들어 사람의 이용을 조절하고 지면보다 높게 띄워 두꺼비를 비롯한 양서류의 이동을 방해하지 않는다. 풍경 조망: 망월지는 서쪽의 옥수산을 비롯해 주변의 높고 낮은 산들과 어울려 있다. 짙은 어둠을 품은 산을 배경으로 밝아지는 수면 위로 일렁이는 윤슬을 조망하는 통로를 만든다. 인공과 자연, 수평과 수직, 명료함과 흐릿함이 대비되는 경관에 신비로움을 더하고자 한다. 자연주의 습지 정원: 자연주의 정원은 살아 있는 생태계의 일부로 작동하는 정원으로, 정원 자체로 야생 생물 서식지와 두꺼비 대체 서식처로 기능하게 한다. 자연주의 습지 정원은 소택지의 연못, 숲의 나무, 자연습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생태적 다양성이 높다. 이를 바탕으로 최적의 두꺼비 산란장을 만들고 나아가 습지 야생 생물의 건강한 서식처로 기능하게 해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풍경을 조성하고자 한다. 공간 구성 북쪽, 생태습지: 망월지보다 약 6m 낮은 곳으로 저수지 제방과 고속도로 사면이 만든 움푹 패인 듯한 지형을 그대로 활용한다. 자연 습지를 기반으로 한 생태습지를 조성해 자연스럽게 두꺼비의 대체 서식지가 되게 한다. 사유지인 제방 사면은 그대로 보존하고 사유지 주변에 낙엽활엽수로 이루어진 숲정원을 조성한다. 숲 정원 앞 소택지에 크고 작은 물웅덩이를 파내 두꺼비가 서식하는 비오톱을 만든다. 옥수산 일부와 고속도로 사면에 맞닿아 있는 구역은 습지림으로 조성한다. 생태교육관 주변에 땅을 들어 올려 초지와 그라스, 숙근초로 구성된 자연주의 정원을 만든다. 남쪽, 이음습지: 망월지 남쪽에는 저수지 경계의 일부를 허물어 대상지 안까지 저수지 물을 끌어들인다. 경계 둑 일부를 남겨 망월지 수위가 낮아지더라도 이음습지에 물이 줄어들지 않도록 해 두꺼비 서식지가 유지되도록 한다. 지형을 완만하게 만들어 수심이 깊지 않고 다양한 수생 식물이 자라도록 해 두꺼비 산란지가 넓어지도록 한다. 이는 북쪽 생태습지와 더불어 두꺼비의 안정된 대체 서식지를 만드는 효과가 있다. 공존의 건축 지속가능한 생태 연구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야생 생물 보존, 수장, 연구를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생태교육관 1층에는 생물 자원 보존 시설과 수장 시설을 배치했다. 2층에는 망월지와 보완 서식지를 연결하는 연결 통로와 트리톱을 조성해 물리적으로 단절된 영역을 이어준다. 매개적 연결 동선은 생태교육관의 램프 복도로 이어진다. 램프 복도는 관람객을 위한 안전하고 편리한 생태교육관 체험과 관람 동선이 된다. 램프 복도를 따라 이동하면 다양한 프로그램과 이벤트를 체험할 수 있고, 망월지와 보완 서식지를 조망할 수 있다.
    • 김봉찬(더가든) + 김건철(스마트건축사사무소)
  • [수성국제비엔날레] 수성국제비엔날레 둘러보기
    대구 수성구가 주최하고 수성문화재단이 주관한 ‘2024 수성국제비엔날레’(이하 수성비엔날레)가 10월 15일에 개최됐다. 수성비엔날레는 핵심 전시가 열리는 수성아트피아를 비롯해 수성구 전역을 무대로 삼았다. 개념이나 주제를 막연히 전달하는 비엔날레보다 수성구를 도시라는 큰 관점에서 바꾸어나갈 실제 조경, 건축 프로젝트를 통해 온몸으로 경험할 수 있는 장소 만들기를 지향한 결과다. 하지만 조경, 건축 프로젝트들이 몇 달 만에 완성될 리 만무하다. 수성비엔날레가 추진 중인 장소 만들기 프로젝트 중 준공된 건 세 개의 수성 파빌리온이 전부다. 수성비엔날레의 가치를 제대로 알려면 완공 프로젝트뿐 아니라 현재 조성 중인 프로젝트와 아카이브와 같은 무형의 콘텐츠도 들여다봐야 한다. 이번 비엔날레의 조직위원장을 맡은 권종욱 교수(영남대학교 건축학부)는 “비엔날레는 2년에 한 번 개최되는 행사를 이르는 말이다. 그만큼 수성비엔날레의 지속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고민이 많았다. 무엇보다 이러한 행사의 효용성이 국민과 시민에게 충분히 전달된다면 수성비엔날레의 필요성도 인정될 것이라 생각했다. 이러한 전제 하에 공공 건축과 조경의 중요성, 이러한 프로젝트를 향한 시민들의 지속적인 수요를 인지해 비엔날레를 기획했다. 하지만 대형 프로젝트를 완성하려면 길게는 5년까지의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주축이 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소규모 프로젝트를 동시에 발굴해 균형을 맞춰나갈 예정이다. 또 하나 중점을 둔 건 아카이브다. 지금 진행 중인 수성비엔날레의 프로젝트는 물론 수성구의 다양한 공공 건축 및 조경 프로젝트를 아카이빙해 나갈 예정이다. 시간이 흐르며 계속 축적된 자료는 수성비엔날레를 일반적인 비엔날레와 다른 결의 비엔날레로 부상시킬 것”이라고 전했다. 2년 뒤 새로운 소식이 들려오기를 기대하며, 수성비엔날레가 스케치한 다양한 유무형의 프로젝트를 간략히 소개한다. 수성못 수상공연장와 수성브리지, 망월지 생태교육관 & 야생초화원 공모는 앞선 지면으로 갈음한다. *환경과조경439호(2024년 11월호)수록본 일부
  • [수성국제비엔날레] 관계성의 들판에 서서
    대구 수성구가 새로운 비엔날레를 기획하는 데 도와달라는 연락이 왔다. 건축가에게서 연락이 왔으니 건축비엔날레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건축가는 건축과 조경을 동등한 주제로 다루는 비엔날레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 도시건축비엔날레나 광주폴리 같은 성격의 기획에 조경가가 작가로 참여한 적이 있고 조경 관련 작품이나 주제를 다루기도 했다. 그래서 건축비엔날레나 건축·조경비엔날레나 이름만 다를 뿐 차이가 없어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 둘은 전혀 다른 비엔날레였다. 최근 건축비엔날레에서 자연의 주제가 인기다. 작년 서울 도시건축비엔날레의 주제도 ‘땅의 도시, 땅의 건축’이었고 부제는 ‘산길, 물길, 바람길의 도시’였다. 그런데 이때 자연은 어디까지나 건축화된 자연을 이야기한다. 조경가가 건축비엔날레의 작가로 종종 참여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건축에 포함된 조경을, 건축의 보조자로서 조경을 의미한다. 한편 조경에서는 최근 정원박람회와 플라워쇼가 유행이고 예술 전시에서도 조경이 인기 소재지만 정작 조경을 주제로 한 예술 기획으로서 비엔날레를 본 적은 없다. 그래서 건축의 부분으로서 조경이 아닌 건축과 조경의 비엔날레는 어떤 형식일지, 건축과 조경은 어떤 시선으로 조경과 자연을 담아야 하는지 건축가와 조경가가 함께 고민해보기로 했다. 우선 기존 비엔날레가 중요시하던 담론에 얽매이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담론의 장에서 벗어나 실무 현장에 초점을 맞춘 비엔날레를 구상하기로 했다. 수성국제비엔날레의 가장 중요한 기획 방향은 단순히 보여지고 소비되는 전시 행사로서의 비엔날레가 아니라 실제로 도시에서 만들어지는 공공 건축과 공공 공간의 조경을 아카이빙하고 재규정해 미래를 축적해나갈 기회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관계성의 들판’이라는 주제와 제목은 이러한 기획 의도를 반영한 결과였다. 관계성은 건축과 조경, 도시와 자연과 같은 대상 자체보다는 대상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기 위한 키워드였다. 인간의 관점을 넘어 새, 나무, 돌과 같은 비인간의 관점을 포섭하려면 먼저 주체의 자리를 지워야 했다. 건축의 자리를 조경이 대신해봤자 관계는 똑같다. 자연이 소외된다고 인간을 자연이 대체한다면 인간이 소외된다. 그래서 주체를 지우고 관계를 더 탐색하는 데 의견을 모았다. 들판은 영어 필드(field)의 번역어다. 필드는 들판이라는 자연의 풍경이면서 여러 요소가 관계를 맺는 장(場)의 뜻도 있었고, 담론과 이론과 대비되는 현장이나 실무를 의미하기도 하는 중의적 단어였다. 사실 들판, 장, 현장, 어느 단어를 사용해도 영어의 중의적 의미는 사라질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들판’이 비엔날레를 찾는 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상상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계와 들판을 이번 비엔날레의 성격을 규정하는 두 키워드로 정했다. *환경과조경439호(2024년 11월호)수록본 일부 김영민은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다.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이고, 설계를 하는 조경가이며, 글을쓰는 사람이다. 서울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에서 조경과 건축을 함께 공부했다. 미국에서 도시설계와 조경설계 실무를 하고 여러 나라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론적 담론을 생산할 수 있는 설계를 추구하며, 설계를 각성시킬 수 있는 이론과 비평 작업을 해나가고자 한다. 현재 조경기술사사무소 바이런과 함께 설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 정영선을 읽는 시선들 Reading Jung Young Sun and Her Landscape Works
    지난 7월 3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다원공간에서 ‘정영선이 만든 땅을 읽다’가 개최됐다.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전시 연계 학술행사로 마련된 이 심포지엄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하고 한국조경가협회와 본지가 협력해 진행했다. 행사는 ‘조경가 정영선을 읽다’, ‘정영선의 작업을 읽다’, ‘정영선과의 대화’의 세 개 세션으로 구성됐다. 첫 번째 세션 ‘조경가 정영선을 읽다’에서는 배정한 교수(서울대학교)와 김아연 교수(서울시립대학교)가 정영선에 대한 학술적 비평의 텍스트 두 편을 발제했다. 두 번째 세션 ‘정영선의 작업을 읽다’에는 협업 파트너, 사제지간 등 정영선과 다양하게 관계 맺은 6인의 발제자를 초대했다. 이들은 정영선이 설계한 장소를 조명하며 그의 설계 태도, 철학, 작업에 대해 이야기했다. 마지막 세션 ‘정영선과의 대화’에서는 정영선이 조경진 교수(서울대학교), 배형민 교수(서울시립대학교)와 함께 대담을 나누고, 관객의 질문에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의 발제와 대담을 지면에 글의 형태로 기록한다. 교차하고 비껴가는 여러 시선이 오늘날 조경설계에서 정영선이 갖는 가치를 새롭게 그려주기를 기대하며, 지면에 옮기는 과정에서 세션의 구분을 없앴다. 이번 학술행사를 촉발한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오는 9월 22일까지 진행된다. 진행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디자인 팽선민 태도가 경관이 될 때: 정영선의 조경_배정한 유산의 창조, 정영선이 만든 한국 조경설계의 변곡점_김아연 맥시멈과 미니멈_박승진 협업의 유산을 읽다_전은정 땅을 읽는 법을 배우다_이호영 선유도공원이 건네는 위로_조용준 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과 디올 성수, 미래 세대의 수용_김선미 한국 조경 가치의 시각화, 아모레퍼시픽 본사_백규리 정영선과의 대화: 식물과 땅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_정영선, 조경진, 배형민 정영선을 읽는 시간_글 최영준 2024년 여름, 우리는 정영선의 조경이 일반인에게 하나의 문화적 코드가 된 계절을 통과하고 있다. 일 평균 1,300명의 관람자가 조경이 무엇인지를 알아가고 있고, 공중파 미디어 콘텐츠는 물론 아이들의 채널에서도 땅에 시를 쓰는 할머니가 인기다. 그 인기와 인지의 바탕이 1세대 여성 조경가 정영선이라는 커리어의 특수성과 소탈한 성품에서 기인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대중이 가장 크게 놀란 순간은 아마 그가 설계하거나 기획을 이끈 일의 목록을 마주쳤을 때일 것이다. 많은 이가 일상적으로 방문하던 장소들이 그녀가 살아 숨 쉬는 많은 것을 담아낸 땅들이란 걸 알았을 때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고, 그 장소들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궁금해할 것이라는 생각이 학술행사 ‘정영선이 만든 땅을 읽다’ 기획의 시작점이었다. 그가 만든 여러 땅들의 작업은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넓은 스펙트럼에 걸쳐 있다. 전통과 동시대성을 모두 품는 광폭의 시대정신, 국토를 다루는 공공과 기업 및 개인을 포괄하는 클라이언트의 다채로움, 작은 뜰에서 초대형 공원까지 다채로운 규모. 다양한 관련 분야와 협업해 온 두꺼운 포트폴리오는 다채로운 독자의 목소리로 들어볼 가치가 있는 현대 조경의 역사이자 흥미로운 독해의 대상이다. 정영선이 만든 땅을 읽는 첫 순서인 ‘조경가 정영선을 읽다’는 지난 50년 동안 조경가의 길을 걸어오며 땅과 관계 맺어 온 그녀의 인생과 지사地史를 관통해 줄 이야기로 시작되는 것이 마땅했다. 전시 도록에도 수록된 배정한 교수(서울대학교)의 글은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이야기와 변곡점이 된 주요 작업 세 작품에 대한 이야기로 정영선을 조망한다. 경관을 대하는 태도가 그의 손으로 만들어 낸 경관이 되었다는 해석은 정영선을 아는 데서 이해하는 단계로 이끌어 준다. 김아연 교수(서울시립대학교)는 직접 조경 작업을 하는 현역 동료로서의 시선과 정영선이 한국 조경 분야에 드리우는 명과 암을 동시에 들려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한국 조경의 여러 변곡점을 짚으며 이어간 그의 발제는 정영선의 조경이 왜 가장 평범한 혁명일 수 있는지 피부에 와 닿도록 설명해준다. 두 번째 세션 ‘정영선의 작업을 읽다’에는 정영선이 만든 땅의 너른 스펙트럼을 담아줄 다채로운 성격의 발제자를 초대하고, 각자 한 장소에 대한 감상과 비평을 담아줄 것을 부탁했다. 다각도의 시선으로 작업을 읽기 위해, 정영선의 작업과 서로 다른 관계성을 갖는 세 그룹을 설정했다. 첫 그룹으로 조경설계 서안(이하 서안)이란 조경 작업의 울타리에서 정영선과 함께 협업하고 사제 및 조력 관계를 맺었던 박승진 소장(디자인 스튜디오 loci), 전은정 소장(조경포레)을 초청했다. 서안의 굵직한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와 근거리에서 정영선과 직접 상호 작용하며 배우고 호흡했던 조경 유산에 대해 들려준다. 다음으론 1세대 조경가인 정영선의 작업을 관찰하고 경험하며 성장했고 현재 자신의 작업을 가장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는 동시대 조경가 이호영 소장(HLD)과 조용준 소장(CA조경기술사사무소)을 섭외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정영선의 조경이 그들에게 끼친 영향력과 자극,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시도한 경험을 듣고 싶었다. 이호영 소장은 서안에서 실무를 시작했으나, 정영선과 직접적인 협업의 기회가 적었기에 ‘어깨너머 스스로 배운’ 정영선 조경에 대한 연구 기록과 그것이 본인의 작업에 어떻게 투영되었는지를 들려준다. 직접적 접점이 없었던 조용준 소장은 ‘원거리에서 관찰한’ 정영선의 조경을 선유도공원 평면의 모사를 통해 탐독한다. 세 번째 그룹에는 다음 세대라 할 수 있는 상대적으로 최근에 조경에 입문한 이들이자 조경계에서 각자의 미디어를 통해 대중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김선미 부장(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과 백규리 매니저(현대엔지니어링 건축조경팀)를 초대했다. ‘다음 세대의 해석과 수용’이라 이름 붙인 이 그룹이 정영선이 만든 땅의 공동 생산자나 후속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로서 어떻게 정영선의 조경을 받아들이고, 어떠한 태도와 호흡으로 청자에게 전달하는지를 담는 것도 의미있다고 보았다. 정영선이 작업을 통해 제시한 지속가능성과 한국성에 대한 정신과 그 해석을두 사람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다. 마지막 순서는 이번 전시의 작가인 정영선과의 직접 대화를 나누는 ‘정영선과의 대화’로 구성했다. 대화의 시작을 열고, 작가에게 주요한 질문을 던질 대담자로서 정영선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조경진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와 대학원에서 사제관계이기도 했던 배형민 교수(서울시립대학교)를 섭외했다. 최종 순서로 객석에서 질문을 받고 대답을 듣는 시간은 필자가 진행하며 마무리했다. 정영선의 작업과 다양한 접점을 갖는 여러 세대의 후배 조경가와 이론가의 생각을 하나로 엮는 이 기획은 정영선의 조경이 텍스트로서 얼마나 다양한 독해가 가능한지에 대한 기획이었다. 모두가 그의 작업과 삶으로부터 선한 영향력을 받았고, 그에 대한 유의미한 반추와 정리, 해석과 기록을 들려주었다. 학술행사가 끝나고 며칠 뒤,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많은 조경인에게 텍스트가 된 정영선의 조경이 있었는데, 과연 조경가 정영선에게 텍스트는 무엇이었을까. 교과 과정도 미완이었을 1세대에게는 무엇이 기초가 되는 텍스트이자 레퍼런스였을까. 아마도 그것은 ‘우리 산천의 자연, (그녀가 정원이라 칭하는) 국토 경관’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할아버지의 과수원이 펼쳐져 있던 들판과 뒷산, 국토의 원형이 남아있던 개발 시대 이전 한국 땅의 본 모양새는 그가 땅에 작업을 하는 영감의 원천이자 근간이 되는 텍스트가 되어주었을 것이다. 참고할 정보와 이미지가 홍수인 시대, 원 경관의 흔적이 자본의 지우개로 소실되는 시대를 사는 우리 세대에게 조경가 정영선이 만든 땅의 고유성은 우리의 시각과 태도를 돌아보게 한다.
  • [정영선을 읽는 시선들] 태도가 경관이 될 때: 정영선의 조경
    조경가 정영선과 한국 조경 50년 1941년생 정영선은 1973년 신설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조경학과에 1기로 입학하면서 조경과 연을 맺는다. 1인당 국민소득 320불에 불과하던 시절, 근대화와 국토 개발의 급류 속에서 한국가 통치자의 강력한 주도로 서구의 전문 직능이자 학문 분과인 조경(landscape architecture)이 전격 수입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청와대 경제비서실 내에 조경비서관까지 임명했고(1972년), 제도권 조경은 불과 3년 만에 학제(1973년 학과 신설), 공공기관(1974년 한국조경공사 설립), 자격제도(1975년 조경기술사 시행)를 갖추게 된다.(각주 1) 이 이례적인 상황 속에서 시작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정영선의 조경 인생은 한국 조경 50년사의 궤적과 그대로 일치한다. 그 자신의 회고처럼, 그의 조경은 “오늘 우리 조경계가 안고 있는 고뇌”였고 “현실과 이상 사이의 끝없는 갈등을 헤쳐 나온 우리 조경인들의 삶 그 자체”(각주 2)였다. 조경가 정영선을 통해 우리는 한국 조경의 50년 성장사와 그 명암을 다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영선의 조경은 곧 한국 현대 조경이라는 등식이 반드시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여러 지점에서 구별된다. 그는 주로 공공 발주 물량과 건설 시장 여건에 의존해 온 한국 조경계 전반의 불안정한 조건을 독자적 조경론과 경관 미학, 창의적 조경 실천을 통해 돌파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해 왔다. 2023년 세계조경가협회(IFLA)는 정영선에게 제15대 제프리 젤리코상(Sir Geoffrey Jellicoe Award)을 수여하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정영선은 한국에서 조경설계를 개척하고 선도했을 뿐 아니라 서양에서 유래한 조경 개념을 한국의 대지와 경관에 맞게 ‘번역’해냈다. 그는 청계천 복원, 선유도공원 등 다수의 독보적 프로젝트를 통해 자연과 도시를 화해시키고 자연의 과정과 건조 환경을 통합하며 과거의 산업 흔적을 존중해 설계의 한 부분으로 포섭하는 최근의 세계적 경향을 예견하고 실천했다. 동시대 조경의 핵심인 회복탄력성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사명이 이미 오래전부터 그의 작업에 내재해 있었다.”(각주 3) 이처럼 여러 걸음 앞서가며 새 지평을 연 정영선의 이론과 실천은 그 개인의 작품과 문화적 역량에 대한 조명과 인정으로 이어졌을 뿐 아니라 전문 직능으로서 조경의 사회적 역할과 위상을 정립하는 데 기여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영선의 조경은 한국 조경 50년사에 대한 예리한 비평이기도 하다. 진화와 세 개의 변곡점 정영선의 손을 거친 조경 작품은 정확한 목록을 작성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개인과 기업의 정원, 도시 가로와 광장, 근린공원, 기념공원, 생태공원, 산업시설 재활용 공원, 선형 공원, 묘역, 병원, 오피스, 상업시설, 복합문화공간, 공동주택 단지, 공장, 캠퍼스, 종교 시설과 단지, 테마파크, 리조트 등 그가 다룬 프로젝트의 유형은 조경 업역의 다양성과 복합성 그 자체를 예시한다. 작업의 양과 유형 못지않게 주목해야 할 것은 그의 조경 이론과 실천이 계속 진화해 왔다는 점이다. 그 진화의 함수에서 변곡점이 된 세 가지 작업에 논의의 초점을 맞추기로 한다. *환경과조경436호(2024년 8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1970년대의 정치 지형과 사회 상황과 결부된 한국 조경 태동기의 사정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조할 것. 배정한, “근대의 굴레, 녹색의 이면: 한국 조경의 근대성과 박정희의 조경관”, 『건축·도시·조경의 지식 지형』, 나무도시, 2011, pp.152~181. 2. 정영선, “조경과의 조우, 그리고 나를 있게 한 소중한 것들”, 『환경과조경』 1998년 6월호, p.30. 3. International Federation of Landscape Architects, “Landscape Architect Youngsun Jung from South Korea is the 2023 Recipient of the Sir Geoffrey Jellocoe Award”, www.iflaworld.com/sgja-2023-winner, 2023. 배정한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 교수이며, 본지 편집주간을 맡고 있다. 조경 이론과 설계, 조경 미학과 비평의 접면을 확장해왔다. 대표 저서로 『공원의 위로』, 『조경의 시대, 조경을 넘어』, 『현대 조경설계의 이론과 쟁점』이 있으며, 『경관이 만드는 도시』와 『라지 파크』를 번역했다. 『한국 조경 50년을 읽는 열다섯 가지 시선』, 『용산공원』, 『건축·도시·조경의 지식 지형』, 『공원을 읽다』, 『서울도시계획사』 등 이십여 권의 책을 기획하고 동학들과 함께 썼으며, ‘용산공원’ 종합기본계획 등 다수의 대형 공원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 [정영선을 읽는 시선들] 유산의 창조, 정영선이 만든 한국 조경설계의 변곡점
    유산은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혹은 현 세대가 앞 세대로부터 물려받는 물적·문화적 자산이다. 자산(asset)이 유산(heritage)이 되기 위해서는 세대를 초월하는 전승(pass on)이 필요하다. 조경가 정영선의 작업이 국토 근대화를 보정해 온 푸른 유산으로 남을 것인가 혹은 대한민국 조경 1세대의 예외적 사례로 기억될 것인가는 다음 세대의 실천에 달려 있다. 그의 작업이 현재를 성찰하는 준거가 될 때, 그리고 내일을 상상하는 영감의 샘으로 작동할 때, 세대와 세대 사이에서 유산은 창조된다. 이 전승의 과정에서 우리의 설계 현실을 반성하며 질적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여덟 가지 쟁점을 제시한다. 조경 디자인의 특수성 “샛강에서 디자인한 곳이 어디예요?”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를 보고 나오면서 어느 도시 전문가가 전화를 걸어왔다. 여의도샛강생태공원(이하 샛강)에 가본 적이 있는데 너무 자연스럽다며 디자인한 곳이 어디인지 궁금해했다. 인간적 쓸모를 만드는 근대적 의미의 디자인 관점에서 보면 샛강은 잘 보존된 하천 풍경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주차장과 관리사무소를 만들려는 서울시의 계획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정영선의 회고가 떠오른다. 그는 개발이라는 도시적 욕망과 인간적 질서의 외삽을 거부하고 하천에 내재된 자연 형성 과정의 조건을 만드는 일을 디자인의 이름으로 관철했다. 새로운 것, 인공적인 것, 수직적인 것, 눈에 띄는 것을 만드는 개발 시대의 디자인 관행 속에서, 원래의 것을 지키고 폭력적 개입에 저항하는 일 자체가 디자인의 과업이 될 수 있음을 샛강은 증명하고 있다. 자기완결성을 포기하고 ‘연결’과 ‘관계’를 통해 총체성을 만들고 자신을 낮춰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는 역설을 통해 디자인으로서 조경설계의 고유성과 특수성을 보여주었다.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자. 폭력적인 개발 드라이브와 발주처의 명령에 디자이너 개인이 맞서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진다. 우리가 용역자이기에 앞서 전문가라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 디자인적 완성도는 어디에서 올까. 자신만의 매니페스토와 화려한 컴퓨터 조형에 취한 설계에 몰입하고 있진 않은지. 디자이너들의 자아도취적 발언과 시각적 포장의 재생산 관행, 인스타그래머블 풍경 만들기와 포토 스폿의 난무 역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샛강은 우리에게 조경 디자인의 고유한, 그래서 동시대에 더더욱 생경한 역할과 방향을 제시한다. 조경이라는 이름 “나는 조경이라는 말이 싫다.” “조경은 땅에 쓰는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고, 깊은 울림을 줄 수 있습니다.” 모두 정영선의 말이다. 사석에서 그는 경치를 ‘만든다’라는 조경造景이라는 이름을 애초에 잘못 붙였다고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공적으로 그는 조경의 가치와 역할을 ‘한편의 시’에 비유하며 울림을 준다. 그에게 조경은 애증이 서려 있는 단어다. TV 속 유재석의 입에서 ‘조경가’라는 단어가 발음될 때 조경은 새로운 뉘앙스를 갖는다. 정영선의 업적은 모두 조경가라는 직능명을 붙이고 이뤄낸 성과다. 그는 “후배 세대가 조경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활동하고 있다며 늘 우리 분야의 가치와 조경설계의 역할을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격려한다. 그는 조경가의 사회적 위상을 새로운 레벨로 올려놓았고 우리가 하는 일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게 만들어준, 조경의 살아 있는 정의가 되었다. 그렇다면 조경가는 누구인가. 누가 조경가의 자격을 정하는가. 건축사와 같은 전문 설계 자격 제도를 법적으로 가지지 못한 우리 분야에서 조경가는 오랫동안 자격 여부에 상관없이 스스로 자부심을 부여할 수 있는 열린 단어였다. 단 한번의 공모전 당선으로 작가의 호칭을 획득하는 시대에 20~30년 넘게 설계 일을 해도 여전히 업자인 수많은 전문가에게는 어떤 새로운 이름을 부여할 수 있을까. 한국 조경 50년에도 조경이라는 이름에 대한 부끄러움과 불편함이 스며 있다. 대학 학과 명칭에서 조경이 사라지기도 하고, 대학마다 경쟁력 강화와 입시 경쟁률 제고를 이유로 조경학과의 명칭을 없애거나 변경하기도 한다. 일련의 논의 과정을 통해 우리 사이에도 찬반의 입장이 선명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각주 1)이름에 앞서 우리는 조경의 이름으로 행한 일들에 대한 성찰에 게을렀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한국성과 지역성 “나 옛날 살던 동네 같아요.” 학생들과의 토론 과정에서 영화 ‘땅에 쓰는 시’에 나오는 정영선의 양평 정원을 두고 나온 얘기다. 부모님이 살던 시골집도 양평 정원처럼 집으로 들어가는 어귀에개집과 심드렁한 흙 마당이 있었다. 그 주변으로 어린 눈에는 대단할 것 하나 없는 들풀이 나부꼈 다. 왜 많은 사람이 영화 속 풍경을 보고 자신만의 고향과 어린 시절을 떠올릴까. 정영선 작품의한국성을 희원과 같은 전통 정원에만 한정하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영선은 원 경관을번역하고 재창조한다. 그의 창조 안에는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기억으로서 자연이 내재되어 있다. 늘 보던 아름다움을 재발견해 재구성하는 정영선의 설계 방법은 그렇기 때문에 지역적이며, 많은 사람이 공감하기 때문에 한국적이다. 그의 작품은 기억과 장소 애착 환기 장치trigger로서 풍경의 힘을 보여준다. 그가 구현하는 한국성은 조형 요소가 아닌 경험과 기억의 원형이며, 그가 다루는 과거는 현재성과 미래성을 모두 내포하는, 옛것의 창의성과 창발성을 실현하는 시제다. 우리가 전통을 다루는 관행을 돌아보자. 전통은 형식적으로 재생산되고 많은 경우 공간 작명에 그치는 예스러운 것 그 이상이 아니다. 레트로 감성이라는 표제어로 과거는 상품 가치를 갖게 되고, 아이러니하게도 옛것은 새롭지 않으면 가차 없이 폐기된다. 새롭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무한 브랜드 경쟁 시대에 느린 시간성으로 채울 수밖에 없는 조경이, 지속적으로 폐기되고 갱신되는 패스트 디자인의 하나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새삼 물어본다. 시그니처 식재 “어? 여기 정 선생님이 하셨나?” 십수 년 전, 김해 클레이아크미술관으로 가는 길에 잠시 봉하마을을 거닐다가 나의 동료가 무심코 뱉은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 생가가 있는 마을 길가에 병아리꽃나무가 있는 걸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지금이야 정원 열풍으로 이름 외우기도 벅찬 식물이 각종 매체를 통해 쏟아져 나오니 병아리꽃나무가 무슨 대수냐 싶지만, 그때만 해도 흔히 쓰는 조경수의 종류는 손에 꼽을 만큼 빈약했다. 정영선의 손이 닿은 곳에는 일반적으로 쓰지 않은 한국 자생종이 어김없이 심겼다. 이름도 아름다운 것이 많았다. 이스라지, 미나리아재비, 노루오줌, 노루귀, 팥꽃나무, 꼬리풀 등. 식물 하나하나가 시의 언어다. 그의 위대한 업적 중 하나는 자생 식물을 조경설계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는 측면과 더불어 비싼 소나무와 몇몇 수종에 의지하던 관행적 식재 설계를 거부해 몸값에 따른 식물의 위계를 당당하게 해체했다는 점이다.(각주 2)그의 식재 디자인 어휘는 자연을 공부해서 얻은 그만의 사전에서 비롯된다. 어느 시인은 사전을 통틀어 여기에 쓸 수 있는 단어는 꼭 하나라고 얘기했다. 정영선의 사전에는 바로 그 장소에 필요한 우리 식물이라는 단어들이 채곡채곡 쟁여져 있다. 아름다움의 근원 “눈물겹게 아름다워요.” 정영선의 손을 거친 장소는 특유의 미적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서식처에 기반을 둔 건강한 생태계의 내재적 아름다움은 시각적 즐거움을 넘어서는 또 다른 미적 경험을 선사한다. 정영선의 작업은 대상의 물리적 속성을 다루는 형식 미학에서 생태 미학으로의 전환을 요구한다. 그의 작품은 기후 위기 시대 우리 주변에 창궐하는 예쁘기만 한 자연의 모사품들 이면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에 질문을 던진다. 과연 이들은 지속가능한가. 정영선의 작품은 예쁘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다. 대경관이 주는 숭고미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적 체험은 경관에 몰입하는 주관적 체험을 전제로 한다. 그는 풍경을 중첩시켜 단위 공간의 제한된 경계를 확장하고 깊이감을 형성한다. 경계의 디자인으로 철저하게 주변을 차단하거나 열고 중첩시켜 경관의 깊이와 몰입감을 준다. 그 아름다움은 시각적·표면적 아름다움을 넘어선 경험적·윤리적인 미적 태도를 형성한다. 윤리와 미학이 결합하고 의미와 아름다움이 합쳐진다. 최근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국가정원과 정원박람회 현상에서 대경관은 실종됐다. 국가정원과 정원박람회 후보지는 대체로 하천 부지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남은 큰 빈 땅이 그곳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각종 정원 행정이 하천의 하천다움, 강의 원 풍경을 얼마나 숙고해 추진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예쁜 것만 살아남는 시대, 소비재로서 자연은 찰나적 풍경 이미지로 끊임없이(재)생산된다. 기후 위기 시대, 자연에 대한 위기의식이 결여된 자연의 상품화가 엄청난 예산으로 행해지고 있는 이 현실 앞에 우리는 침묵할 수 있는가. 공공 프로젝트의 도전 “공공이 해도 이럴 수 있다니.” 선유도공원은 대한민국 공원 디자인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당시 서울시 행정가의 전폭적 지지와 현장 설계와 감리가 가능했던 예외적 상황이 크게 기여한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선유도공원을 공공 발주 프로젝트의 대표 사례로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대표성은 동일한 범주의 다른 사례와의 유사성을 가져야 하는데 선유도공원은 일반적인 공원 만들기 관행에서 이질성이 훨씬 크다. 오히려 발주부터 시공까지의 공공 프로젝트 전 과정에 있어 프로세스의 변칙에 가까운 예외적 사례다. 우리는 왜 좋은 작품을 탄생시키는 절차를 만드는 일에 인색하고, 예외적인 스타의 도래만 기다리는가. 한국 조경은 국가 주도의 공공 프로젝트를 통해 성장하고 정착해왔다. 그 가운데 정영선은조경을 통한 사회적·지구적 책무를 자임해왔으며, 제도의 공백을 메운 설계가의 헌신과 재능기부로 만들어진 것이 많다. 이는 전문적 설계자 자격, 공정한 발주 방식, 현장 감리 제도가 없는 현실에서 여전히 진행형이다. 국가 주도의 사업이 넘쳐나던 풍요의 시대는 품질에 대한 치열함과내부 성찰 능력을 빈곤하게 만들었다. 설계의 기획-발주-심의-시공-감리 전반의 제도적 기반의 취약성은 또 다른 정영선의 탄생으로 메꿀 수 없는 근본적 한계다. 또한 개인의 능력에만 의존하는 작품 만들기에 대한 비판적·비평적 담론과 실천이 희박한 현실 역시 우리가 서있는 취약한지반이다. 작가로서 조경가 “조경가가 꼭 호미를 들어야 되나요?” 학생들과 토론하다 보면 꼭 등장하는 질문이다. 호미는 정원 가꾸기 전통이 훨씬 오래된 서구권에 역수출될 정도로 가드닝의 핵심 도구다. 이 시대 호미는 무엇을의미하는가. 누구나 소유하고 사용할 수 있는 호미라는 도구의 보편성은 조경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인식을 강화한다. 아이러니하게 정영선의 호미는 현장 감독 권력을 가진 자의 도구이며, 완성도에 대한 전문가적 집착을 보여주는 징표다. 그에게 호미가 상징하는 것은 땅과의 교감, 관찰의 방식, 직업 윤리와 책임감이다. 박승진은 이를 “작가적 태도로서 직접하기”라고 불렀다..(각주 3)직접하기는 경험적 지식을 축적한다. 실천적 학문으로서 조경은 이론과 개념을 구현하면서 겪는 시행착오를 통해 진화한다. 데이터에 기반을 둔 의사결정과 연구 성과는 합리성과 첨단성을 보장하지만, 직접하기를 통한 검증은 나 몰라라 한다. 대중에게 호미는 조경의 강력한 아이콘이자 상징으로 작동한다. 많은 후배 디자이너 역시 호미를 들지 않으면 작가 반열에 오르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을 가지고 산다. 반면 강력한 호미의 대중적 상징성은 조경의 정의와 조경가의 역할에 대한 인식을 꽃 심는 상징적 행위에 제한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내포한다. 치열한 첨단 경쟁 사회에서 조경의 지향성이 아날로그 감성에 고착되는 것을 경계한다면, 우리의 직접하기와 현장성은 어떻게 진화해야 할 것인가. 이 또한 중요한 개인적, 나아가 시대적 고민거리다. 국토의 총체성과 정원 “국토는 하나의 정원입니다.” 정영선이 즐겨 하는 이야기다. 나는 이 아름다운 문장이 수많은 행정가들에게 왜곡된 영감을 줄 수 있음을 걱정한다. 정영선의 개별 프로젝트에는 국토 경관의 아름다움과 총체성이 관통하고 있다. 그는 성종상과의 대화.(각주 4)에서 “정원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쓰레기를 치우고 땅을 다듬어야” 함을 강조하며, 꽃을 심기 전 땅에 대한 밑 작업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그에게 정원은 “잠시 빌려 쓰는 땅에 대한 헌사”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정원 사업에는 정원의 본질, 지구적 위기 의식, 국토 가꾸기의 철학이 상실되어 있다. 정원도시는 장식과 행사 중심으로 추진되는 지자체장의 정치 매니페스토가 되어가고 있고, 행정으으로서가드닝은 어마어마한 예산을 투자하며 초기 효과에 골몰하고 있다. 흙이 보이지 않도록 빡빡하게 심으라는 어느 지자체의 지침은, 식물이 성장하며 고유의 형상과 건강한 생육을 위해 밀도를 낮춰 심는 자연주의 정원과는 정면으로 대치된다. “국토는 하나의 정원”이라는 말이 국토의 정원 테마파크화로 변질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야 할 때다. 자산에서 유산으로 영화 ‘땅에 쓰는 시’에서 정영선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번 경관을 잘못 건드려놓으면 되돌리는 데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요. 국토의 바다는 바다대로, 숲은 숲대로, 도심은 도심대로, 마을은 마을대로 어느 나라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 …… 샛강은 샛강답고, 한강은 한강답고, 큰 강은 큰 강답고, 동네 산은 동네 산답고, 시골은 시골답고, 아파트는 아파트답게…….” 정영선의 작업은 대한민국 조경 50년의 중요한 질적 전환을 가져오는 변곡점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지점 이후의 경로는 그의 몫이 아니다. 변곡점 그 자체는 상승도 하강도 아니다. 그가 만든 풍부한 자산과 변화를 우리 시대의 살아 있는 유산으로 만드는 일은 우리 세대의 실천에 달려 있다. 조경가 정영선의 작업이 현재를 성찰하는 준거가 될 때, 그리고 내일을 상상하는 영감의 샘으로 작동할 때, 세대와 세대 사이에서, 우리 안에서 유산은 창조된다. **각주 정리 1. 2022년 한국조경학회가 주최한 월간 웨비나 ‘조경, 왓츠 유어 네임?’의 논의와 이를 발전시켜 게재한 『환경과조경』 2022년 7월호 특집 ‘조경, 그 이름을 묻다’를 참고. 2. 박승진은 정원학 심포지엄 기고문 “열 개의 시선으로 바라본 정영선의 정원미학”(2014)에서 정영선은 “정원 식물의 서열화”를 깨고 그의 작업 속 모든 정원 식물은 “동등한 지위를 획득”한다고 해석했다. 3. 박승진, “열 개의 시선으로 바라본 정영선의 정원미학”, 제2회 정원학 심포지엄 기고문, 2014. 4. 정영선, 성종상, “정원 대담: 우리 시대 한국인의 삶과 정원”, 『한국 조경의 새로운 지평』, 도서출판 한숲, 2021. 김아연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와 동대학원, 미국 버지니아대학교 건축대학원 조경학과를 졸업했다. 조경설계 실무와 설계 교육을 넘나드는 중간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제주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 경관 개선사업 설계팀의 디자인 감독을 맡았다. 자연과 문화의 접합 방식과 자연의 변화가 드러내는 시학을 표현하고 사회적으로 실천하는 일을 중요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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