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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urenscape] 싼야 맹그로브 공원 Sanya Mangrove Park
    싼야(Sanya)시는 중국 하이난(Hainan)섬 해안가에 위치한 관광 도시다. 싼야 시의 자연은 지난 30년간 일어난 무분별한 개발로 심각하게 훼손됐다. 대부분의 수로는 쓰레기로 가득 차 오염됐고, 수변에 콘크리트 제방이 세워지면서 맹그로브 나무 서식지와 강 생태계는 파괴되고 도시는 홍수에 더욱 취약해졌다. 한편 싼야시를 찾는 관광객과 이주민이 늘어나 수변 경관을 즐길만한 공간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으나 강으로의 접근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대상지는 싼야 강의 동쪽,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곳에 조성된 매립지다. 해양 및 내륙 생태계가 공존해 생태적으로 중요하지만 수질 오염이 심각했다. 게다가 공원 조성이 결정되면서 개발이 중단된 현장에는 건설 폐기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강과 인접한 도로와 대상지 간의 고도차는 9m에 달해 이 또한 극복해야 할 문제였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형태 맹그로브 숲을 복원해 도시재생과 생태계 회복을 동시에 꾀하고자 했다. 강한 열대성 계절풍이나 홍수, 도시 오염 물질 등에 의해 어린 맹그로브 나무가 잘 생장하지 못할 가능성을 고려했다. 바람과 물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라 지형을 조작해, 강한 바람과 폭풍우에 대응하는 환경을 조성했다. 이를 통해 맹그로브 숲의 복원을 촉진했으며, 담수 및 해양 생태계가 살아나고 수질이 정화됐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9호(2019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Design Turenscape Official Entrant Yu Kongjian Lead Designer Yu Kongjian Design Team Lin Guoxiong, Zhang Yu, Zhang Jianqiao, Baizhen, Song Jia, Yu Wenyu, Zheng Junyan, Wu Fan, Wang Yufei, Li Fei, Wang Fang Client Sanya City Government, China Location Sanya City, Hainan Province, China Area 10ha Design 2015. 8. Completion 2016. 11. Photographs Turenscape
    • Turenscape / 2019년11월 / 379
  • [Turenscape] 이우 워터프런트 공원 Yiwu Waterfront Park
    대규모 공원을 위한 생태 설계 ‘이우 워터프런트 공원(Yiwu Waterfront Park)’은 홍수로 인한 범람의 위험, 수질 오염, 대상지에 남아 있는 쓰레기와 건축 공사의 잔해 등 여러 문제점을 해결해야 하는 프로젝트였다. 뿐만 아니라 저예산과 낮은 유지·관리 비용을 고려해야 했다. 지역의 농업 방식에서 영감을 얻어 대상지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으며 유지·관리 작업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생태계를 구축했다. 이 생태계는 홍수에 회복탄력성을 가지며, 수질을 개선하고, 자생 생물종의 다양성을 향상한다. 동시에 주민에게 필요한 작물을 생산하고, 풍요롭고 탐험적인 여가 생활을 선사한다. 도전 과제와 목표 이우 워터프런트 공원은 이우(Yiwu)강을 따라 들어서는 대규모 녹지 조성에 앞선 시범 프로젝트다. 대상지는 도시의 중심지가 될 지역에 위치하며 여러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는 홍수다. 몬순 기후의 영향을 받는 이우 강은 우기가 되면 주기적으로 범람한다. 수문학에 입각한 일반적 해결책은 콘크리트 제방을 쌓고 하천을 직선화하는 것으로, 이우 강 일부분 역시 이미 직선화되고 가파른 콘크리트 제방이 설치된 상태였다. 조경가의 시선에서 새로운 대안을 마련해야 했다. 둘째는 강물의 오염이다. 이우 강은 부영양화로 인해 심각하게 오염됐는데, 중국에서 가장 낮은 수질로 분류되는 5등급보다 나쁜 수준이었다. 이는 중국 전역, 특히 산업 발전이 활발히 일어나는 곳에서 쉽게 발견되는 문제다. 셋째는 대상지에 방치된 토사다. 대상지 상당 부분은 건너편의 고층 건물 공사에서 비롯된 흙더미와 건축물 잔해로 뒤덮여 있었다. 넷째는 유지·관리 비용이 적게 소요되는 공간을 조성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우 강을 따라 들어서는 대규모 녹지를 고려해, 적은 비용으로도 지속 가능하고 유지·관리될 수 있는 공간이 요구됐다. 여러 도전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시를 위한 생태 기반 시설을 만들고자 했다. 이는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홍수에 대응하고, 오염된 강을 정화하고, 자생 생물 서식지를 복원하고, 도시 거주민을 위한 여가 공간을 제공할 것이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9호(2019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Design Turenscape Design Principal Yu Kongjian Design Team Yu Hongqian, Yu Song, Fang Yuan, Chen Hao, Zhou Shuiming, Liu Yunqian, Zhang Bingyue, Xu Ying, Yao Banzhu, Zuo Jun, Li Qing, Zhou Peng, Ban Minghui, Tong Hui, Cheng Yongping, Jia Jianmin, Jiao Yazhou, Li Wei, Wang Dezhou, Wang Rui, Zhang Houlin, Wu Dongmei, Gao Bo, Zhang Kaiyuan, Liu Binyi, Ma Huiyang, Hu Zewei, Xu Tianyu, Bai Lu, Chen Dou, Sun Lejiali, Ren Lei Client Yiwu City Government, China Location Yiwu City, Zhejiang Province, China Area 28ha Design 2009. 7. ~ 2013. 9. Completion 2017. 5. Photographs Turenscape
    • Turenscape / 2019년11월 / 379
  • [Turenscape] 메이서 강과 펑샹 공원 Meishe River & Fengxiang Park
    자연에 기반한 디자인적 해결책 중국 하이커우(Haikou)시의 메이서(Meishe)강은 23킬로미터 길이의 거대한 물줄기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도시 및 교외의 유출수에 실려 온 오물과 비점 오염 물질로 인해 계속해서 오염되었다. 이 회색 콘크리트로 뒤덮인 강을 자연에 기반한 해결책을 통해 회복탄력성을 지닌 생태 기반 시설로 탈바꿈하는 계획을 제안했다. 또한 하수 처리 과정을 생태 시스템과 통합해 깨끗한 물, 풍부한 생태계, 아름다운 경관, 사회적 활기가 넘치는 공간을 되찾고자 했다. 대상지와 과제 하이커우는 중국 남쪽 지역에 있는 관광 도시로 아열대 몬순 기후대에 속한다. 지난 40여 년 동안 인구가 약 25만 명에서 230만 명으로, 10배 가까이 성장한 도시이기도 하다. 도시 성장에 따라 곳곳에 고층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했으나 몬순 기후대의 도시에 필요한 수순환 체계와 기반 시설에 대한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메이서 강은 문자 그대로 ‘아름다운 어머니의 강美舍河’을 의미하지만, 수십 년간 하수 오염물이 흐르는 채 방치되었다. 획일적 형태의 홍수 방벽은 강을 생명력이 없는 콘크리트 수로로 만들었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졌다. 이를 해결하고자 홍수 및 조수 통제 벽 건설, 강바닥 준설, 제방에 초화 및 잔디 식재, 오염된 지류 봉쇄 등을 시도했지만, 단편적인 해결책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켰다. 2016년 하이커우 시는 전체적이며 체계적인 해결책을 통해 메이서 강을 변화시키고자 했다. 대상지는 약 80헥타르 규모의 펑샹 공원(Fengxiang Park)과 건물이 밀집된 지역을 관통하는 13킬로미터의 강변 길로 구성된 생태 기반 시설의 핵심 구간이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9호(2019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Design Turenscape Official Entrant Yu Kongjian Lead Designer Yu Kongjian Landscape Architect Lin Guoxiong, Zhang Yu, Zhang Jianqiao,Yu Wenyu, Baizhen, Zheng Junyan, Song Jia, Wufan, Wang Yufei,Li Fei, Wang Fang, Wang Jiao, Dong Tianyi, Bian Yaguang , ZhouZhou Architect Cui Kai, Native Design Environment Engineer Sangde Construction Oriental Landscape Client/Owner Haikou City Government, China Location Haikou, China Area Fengxiang Park: 80ha River Corridor: 13km Design 2016. 12. Completion 2019 Photographs Turenscape
    • Turenscape / 2019년11월 / 379
  • [Turenscape] 중국의 도시들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1996년, 미국 연방준비은행의 의장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은 닷컴 버블(dot-com bubble)이 잠재적 가산 가치를 과도하게 부풀린 광란 상태로 인해 일어난 ‘이상 과열 현상’이 아닌지 의구심을 표한 바 있다. 이 같은 우려가 현재 중국에서도 제기되고 있으며, 중국의 불안정한 경제 성장률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불투명하게 가려진 각종 수치는 신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검증하기도 어렵고, ‘비공식적’ 거래와 현금 은닉 등은 중국의 고질적 병폐다. 거대한 사회 기반 시설, 번쩍이는 스카이라인, 어반 빌리지(urban village), 디즈니를 연상시키는 교외, 경제특구에서 아이폰을 찍어내는 계약직 노동자가 머무는 공장 기숙사, 지평선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아파트의 행렬, 쉽게 잊혀지지 않는 데다가 설명하기도 어려운 유령 도시의 모습 등이 모여 어지러운 중국의 현실과 세계로 퍼져나가는 중국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15개의 메가시티(megacity)를 비롯한 중국의 도시들은 일종의 전조이자 경고다. 이 도시들은 놀라운 속도로 빠르게 성장하며 경제 및 물류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역사상 가장 압축된 근대화 과정을 드러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이 이미 경험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급격한 도시화와 견줄 수 있다. 단순히 도시화의 정도와 범위뿐만 아니라 포괄성, 획일성, 라이프스타일의 구체적 지향성, 맞춤식으로 구성된 법률 및 경제적 토대 등에서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미국의 교외는 자가 주택과 잘 정돈된 잔디밭으로 대표되는 목가적 삶을 상징한다. 또한 원자화된 평등주의에 대한 환상, 매우 희미한 토지 구분 방식, 자동차에 의존하는 삶뿐 아니라 급진적 계급 체계와 인종적 분리를 구현했다. 그리고 중앙 정부는 전역한 백인 참전 용사에게 제공하는 저금리 대출, 고속 도로 등 기반 시설에 대한 대규모 투자, 세제 혜택 및 금전적 유인책 등의 정책을 통해 경제 성장을 이끌었다. 지난 수십 년간 새로운 형태와 유형의 중산층이 형성됐고, 미국의 세속적이고 문화적인 양상 또한 변화했다. 교외 지역은 핵가족을 위한 삶의 터전이자 오메가 포인트(omega point)였고, 핵가족에게는 특정 역할이 주어졌다. 그들에게 주어진 의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억압적 양태를 띄고 사회의 불안정을 촉진했다. 특히 교외에 거주지가 만들어지며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는 동안 노동력의 일부를 담당했던 다수의 여성은 전업 주부의 역할에 갇히게 되었고, 자녀 양육과 가정 환경 관리를 중점적으로 책임지게 되었다. 반면 대부분이 남성인 교외 지역의 가장들은 통근 생활을 하게 됐고, 이들이 낳은 아이들은 토지의 부동성을 체감하고 결국 미국의 도시로 몰려들었다. 교외 지역으로 인해 초래된 해악은 물리적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집밖에서 벌어지는 활동에 항상 필요한 이동 수단으로서 차량이 가진 압도적 헤게모니는 수십만 평방마일에 달하는 비투수성 지면, 화학 오염, 대규모 사고를 야기했고 통근과 집안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각종 이동 수단과 거리를 기준으로 하는 부동산 가격 책정은 사회를 더욱 계층화했고,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며 계층 간 격차가 점차 심화됐다. 교외 지역 모델이 은연 중에 퍼뜨린 도시 생활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융통성이 없는 공간-시간 루틴(routine), 극도로 비효율적인 토지 이용, 저밀도 지역에 적합한 값비싸고 낙후된 기반 시설의 조성을 초래했다. 의미심장하게도, 미국의 교외 지역은 소비자 시장이 발전하며 나타난 그럴싸한 개인주의를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모델로 제시했다. 이에 따라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상품이 각기 다른 상표와 약간의 변화를 품고 시장에 등장했다. 교외 지역의 주민들은 약 100평방미터의 부지에 놓인 조지왕조풍, 튜더왕조풍, 목장풍, 현대풍, 통나무집, 루이 14세풍, 바바리안풍(Barvarian), 푸에블로풍(Pueblo), 캘리포니아풍 등 여러 스타일의 주택에 거주하게 됐고, 두 대의 차량을 차고 또는 잔디밭에 세워두었다. 집 안에는 전후 시대에 사회적, 기술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 텔레비전이 있었다. 텔레비전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전자 난로이자 온종일 소비에 관한 메시지를 투사하는 매체인 동시에 모두가 추구해야 할 것만 같은 라이프스타일을 설파하는 일종의 안내서였다. 우리는 이제서야 비로소 텔레비전 앞에서 넋을 잃고 보내는 시간이 지닌 문화적, 정치적 가치를 인식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양상이 우주와 같은 소셜 미디어의 광대한 영역으로 뻗어 나가는 모습을 목도하고 있다. 중국 역시 이러한 변화를 세계 어떤 나라에도 뒤지지 않고 체감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구분조차 어려운 수백만 채의 주택에서 무언가에 마취된 것처럼 기계적으로 살아가고 도시는 엄청난 규모의 도시 파편화의 영향을 받고 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9호(2019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마이클 소킨(Michael Sorkin)은 마이클 소킨 스튜디오(Michael Sorkin Studio)의 대표이자 설립자다. 2000년부터 뉴욕시립대학에서 건축 석좌교수이자 도시설계 프로그램 디렉터로 일하고 있으며, 비영리 도시 연구소인 테레폼(Terreform)의 대표이기도 하다. 디자인, 비평, 교육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 글은 유쿵졘의 다음 책 서문을 번역한 것이다. Michael Sorkin, “Can China’s Cities Survive?”, Letters to the Leaders of China: Kongjian Yu and the Future of the Chinese City, Terreform ed., Terreform, 2018, pp.6~15.
    • 마이클 소킨 / 2019년11월 / 379
  • [Turenscape] 유쿵졘 인터뷰
    인터뷰어 리중웨이Lab D+H 공동대표 지난 6월,『환경과조경』은 다국적 문화를 바탕으로 다채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해 온 조경설계사무소 랩디에이치Lab D+H를 소개했다. 랩디에이치의 상하이 오피스를 이끄는 리중웨이Li (Zhongwei)는 다양한 규모의 오픈스페이스와 상업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도시 본래의 색채를 보존하면서도 지속 가능한 변화를 일으키는 도시재생에 관심이 많은 그에게 문화유산과 생태를 존중하며 친환경적 프로젝트를 실천해 온 유쿵졘(Yu Kongjian)은 흥미로운 인터뷰이가 아닐 수 없었다. 10월 중순, 리중웨이는 유쿵졘의 강연이 열리는 베이징을 방문했다. 강연 전 두 시간, 강연이 끝난 뒤에도 두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야 인터뷰가 마무리됐다. 유쿵졘의 유년 시절부터 스펀지 시티(sponge city)에 이르기까지, 몇십 년의 세월을 종횡무진한 그날의 대화를 지면에 옮긴다. _ 편집자 주 땅을 이해하는 방법,땅을 존중하는 철학 리중웨이(이하 리)어릴 적의 경험은 디자이너의 철학을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어떤 곳에서 어떤 유년 시절을 보냈는지 궁금하다. 유쿵졘(이하 유) 저장(Zhejiang)성의 한 농촌에서 자랐다. 굉장한 산골이라 시내에 나가는 일이 쉽지 않던 곳이었다. 어릴 적 그곳에서 7년 정도 소를 몰았다. 덕분에 논밭 하나하나를 자세히 살피게 되었고 어디에 수초가 많은지, 어디에서 물고기가 헤엄치는지, 어디에 큰 나무가 있는지를 다 꿰고 있었다. 오래된 이야기에도 훤했다. 예를 들면 태평천국太平天國(1851~1864, 중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농민 봉기) 때 사람들이 몸을 숨겼던 동굴, 중국 전설 속 백사白蛇가 스쳐간 녹나무에 대해 알고 있었다. 한 번은 홍수로 갑작스럽게 불어난 물에 떠내려 갈 뻔한 적이 있다. 강변의 갈대를 부여잡아 겨우 살아남았는데, 그때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자연과 더불어 산다면 홍수와 같은 재난도 그렇게 무서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당시 강변에 콘크리트 제방이 세워져 있었다면 나는 범람한 강물에 휩쓸려 갔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의 삶터는 하늘과 땅, 사람, 신이 공존하는 곳이라 믿어왔다. 아버지가 부지런히 일하던 모습도 선명하다. 기억 속 아버지는 평지, 경사지, 척박한 토양 등 어떤 땅에서도 작물을 재배해냈다. 자연과 어울리던 아버지의 방식이 내게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리 도시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독특한 유년을 보낸 것 같다. 이러한 경험이 당신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고 믿는다. 당신은 중국 조경 분야의 첫 번째 유학 세대이며, 많은 조경가의 롤모델이다. 무엇이 당신을 해외로 향하게 했으며, 무엇이 다시 중국으로 돌아오게 만들었는가. 유 베이징 임업대학교(Beijing Forestry University)에서 석사를 마치고 학교에 남아 교수로 일했다. 상무인서관商務印書館에서 출판된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책들, 경관과 생태에 관련된 각종 원서와 이안 맥하그의 『디자인 위드 네이처(Design with Nature)』 등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리처드 포먼(Richard T. T. Forman)의 『경관 및 지역 생태학(The Ecology of Landscapes and Regions)』을 중국어로 번역해 강좌를 열기도 했다. 운이 따라주어 여러 조경가뿐 아니라 천촨캉陳傳康 등 지리학의 대가와도 교류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해외에서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스웨덴 스톡홀름을 거쳐 미국으로 갔고, 마지막으로 하버드 GSD에서 공부했다. 유학을 마치고 중국을 살펴보니 바뀌어야 할 것들이 아주 많아 보였다. 그중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있었다. 천하흥망天下興亡 필부유책匹夫有責이라는 말처럼 나라의 흥망성쇠는 한 명의 백성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고, 중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9호(2019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 리중웨이 / 2019년11월 / 379
  • [그리는, 조경] 모형 만들기
    모형은 현실 세계 혹은 설계가의 머릿속에 있는 세계를 축소하거나 확대해 만든 하나의 세계다. 스케치처럼 2차원의 종이에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3차원의 입체로 구축한다는 점에서 공간을 지각하고 이해하기에 유리한 수단이다. 무엇보다 회화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간단한 모형은 쉽게 만들 수 있다. 물론 정확한 스케일로 정교한 모형을 제작하는 것은 그림만큼 어렵지만 말이다.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캐드, 스케치업, 라이노, 3ds 맥스 등 여러 3D 모델링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모형 만들기가 이루어지고 있다. 손과 컴퓨터는 모형을 만드는 서로 다른 테크놀로지일 뿐, 중요한 건 모형 만들기가 디자인 과정에서 담당하는 역할이다. 하나, 모형으로 디자인 결과물을 표현할 수 있다. 설계가의 머릿속에 있는 경관을 그대로 본떠 모형으로 옮기는 것이다. 머릿속에 있는 경관이 아닌 이미 조성된 정원이나 공원을 모형으로 만들 수도 있다. 둘, 디자인 아이디어를 테스트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 다이어그램과 스케치만으로 입체를 설명하기 힘들 땐 모형을 만들어 시뮬레이션을 해볼 수 있다. 결과 모형과 과정 모형은 다른 누군가에게 생각을 전달하는 훌륭한 의사소통 수단이 된다. 지형 형태 테스트 프린터 인쇄 설정에서 가로로 긴 포맷을 랜드스케이프 모드(landscape mode)라고 하듯, 랜드스케이프는 넓게 펼쳐진 땅을 의미한다. 조경가가 디자인하는 대상이 바로 그러한 땅이다. 캐서린 구스타프슨(Kathryn Gustafson)과 조지 하그리브스(George Hargreaves)는 아름다운 지형을 디자인하는 대표적인 조경가다. 이들의 작품―특히 초기 작품―은 독특하고 유려한 모양의 땅이 인상적이다. 구스타프슨의 작업은 “대지를 조각하고 형상화하는 것”으로, 하그리브스 작업은 큰 규모의 “랜드폼(landform)을 만드는 대지 예술 작업(earthwork)”으로 설명되는 이유다.1 인공적 지형을 만드는 과정에서 두 조경가는 모형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구스타프슨은 점토 모형으로 매끄러운 지형을 스터디하고 석고로 떠냈다(그림 1과 2). 미세하게 조율된 경사 지형은 2차원 드로잉보다 3차원 모형으로 만드는 게 유용했다. 점토 모형은 바로바로 쉽게 모양을 변형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모형은 디자이너의 창작 활동에도, 클라이언트나 동료와의 의사소통에도 효과적이었다.2 하그리브스는 모래를 활용하기도 했다(그림 3). 모래 모형의 안식각은 실제 시공 현장의 자연 안식각과 거의 유사해 ‘정직한’ 스터디 도구로 기능했다. 점토는 유연하고 다루기 쉬우며 가소성이 뛰어나 경사와 교차점 스터디에 활용됐다(그림 4).3 두 조경가 모두 모형을 디자인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창의적 수단으로 활용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9호(2019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 [공간의 탄생, 1968~2018] 대한민국 공간은 과연 지속 가능한가
    한국 도시화, 차이와 반복의 역사 지난 10개월간 한국 도시화 50년의 거시적·미시적 현황과 메커니즘, 이에 따른 구체적 공간 사례를 살펴보았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치기 시작하는 지금, 연재의 첫 번째 글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2019년 새해가 시작된다. 나는 이제 만으로 마흔 살이 된다. 대학을 가기 전까지 20년이었고, 대학 입학 후 20년이 지났다. 40여 년의 시간을 살면서 언제부턴가 나의 개인적인 삶이 사회와 역사의 도도한 흐름과 함께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 이 연재는 우리 사회와 역사가 가졌던 거대한 힘과 이것이 초래한 여러 단절적 전환이 어떻게 오늘날의 물리적 세계에 영향을 주었는가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나아가 이 연재는 시간적으로 지난 50여 년을, 공간적으로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물리적 세계의 변화를 ‘한국의 도시화 50년’으로 규정하고, 이를 통해 일어난 대한민국 공간의 탄생과 변화를 비평적으로 논하고자 한다. 한국의 도시화는 일견 사회적 현상이자 역사의 기록으로만 여겨질 수 있지만, 사실은 내 부모 세대의 이야기이자 내 세대의 이야기이며 내 자식 세대의 이야기다.”1 연재의 여정이 처음에 제기했던 물음들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탐구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이번에는 그동안의 논의를 요약, 정리하며 한국 도시화의 부산물인 대한민국 공간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본질적 물음을 던지고자 한다. 대한민국의 공간은, 아니 대한민국 사회는 과연 지속 가능한가. 이 연재는 공간의 지속 가능성과 사회의 지속 가능성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한국 도시화 50년이 공간과 사회의 지속 가능성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했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이에 따라 한국 도시화의 물리적 변화와 사회·생태적 영향을 추적했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주장한 바와 같이, 정부 주도의 도시화와 대규모 물리적 개발은 대한민국 공간의 탄생과 변화의 가장 중요한 인자로 작용했다. 구체적으로, 한국 도시화 50년의 공간 사례를 표1과 같이 시대별로 탐구해 왔다. 한국의 도시화 과정은 전반적으로 너무나 야심 차고 열정적인 시기로 볼 수 있지만, 시대별로 살펴보면 너무나 단절적이며 전환적이다. 이에 따라 한국의 도시화를 차이와 반복의 역사로 규정할 수 있다. 시대마다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하고 새로운 도시화 목표를 향해 새로운 대상에 대한 도시화가 이루어졌지만, 50년에 걸쳐 놀랍게도 중앙 정부 주도의 새로운 도시만들기가 진행됐다. 다시 말해 한국의 도시화는 도시화 내용의 차이와 도시화 메커니즘의 반복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새로운 도시만들기의 공과를 논의하고 과연 이것이 앞으로도 지속 가능한지 비평하고자 한다. 한국 도시화의 차이와 반복을 리질리언스 관점에서 보면, 체제 변환(regime shift)이 끊임없이 일관되게 일어났다고 해석할 수 있다. 체제 변환은 “시스템의 구조와 기능의 측면에서 대규모의 갑작스럽고 지속적인 전환”2을 말한다. 다시 말해 체제 변환은 시스템이 기존과는 전혀 다른 생태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로 인해 기존의 상태로 쉽게 돌아가지 않는 불가역적 특징을 보인다. 결국 한국의 도시화는 시스템적 변화의 시기로 불가역적 방향성을 견지했다고 할 수 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한국의 도시화가 사회의 요구와 여건의 변화에 따라 그때그때 시스템적 변화를 모색했다고 할 수 있다. 반대로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한국의 도시화는 과거와의 깊은 단절 속에서 현재와 미래의 변화를 향한 불가역적 전환만을 지속했다고 할 수 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9호(2019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김충호는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 도시설계 전공 교수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워싱턴 대학교 도시설계·계획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우설계와 해안건축에서 실무 건축가로 일했으며, 미국의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와 워싱턴 대학교, 중국의 쓰촨 대학교, 한국의 건축도시공간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분야의 교육과 연구를 했다. 인간, 사회, 자연에 대한 건축, 도시, 디자인의 새로운 해석과 현실적 대안을 꿈꾸고 있다.
  • [이달의 질문] 당신의 아이가 조경학과에 가고 싶어 한다면?
    전공이 평생의 업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내 아이는 잘 맞는 전공을 선택해 즐거운 일을 하며 살게 하고 싶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본다. 3년마다 (조경 일을 하다 보면 3년마다 관두고 싶은 마음이 올라온다) 찾아오는 힘겨운 방황의 시기를 버틸 인내심이 있는지? 발주처의 박해와 자존심을 짓누르는 말에도 웃음으로 화답할 수 있는 넓은 아량을 가졌는지? 삼 일 밤을 새우고 나서도 두 눈을 부릅뜨고 키보드와 마우스를 현란하게 놀려 캐드 일을 할 체력이 있는지? 마지막으로 조경이라는 학문을 통해 실현하고 싶은 나만의 목표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여기며 살아갈 신념이 있는지. 학문적 자질은 중요하지 않다. 천천히 배우면 된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하지만 네 가지 질문 중 하나라도 그렇다고 답할 자신이 없다면 다시생각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윤영주 디자인필드 대표 막연한 기대를 하고 조경 현장직에 지원한 학생이 취업 후 진로를 바꾸는 경우를 많이 봤다. 설계, 식재, 관리 중 어떤 분야가 맞는지 고민하게 하고, 적합한 대학의 조경학과를 추천해줄 것이다. 김건유 강릉원주대학교 농장조경팀 조경 미학 수업 과제로 제출했던 에세이를 다시 꺼냈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사회에서 조경이 얼마나 좋은 대우를 받는지, 조경을 하면 얼마나 버는지, 조경가가 어떠한 사회적 지위를 갖는지 말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신한다. 나는 조경을 하면 행복하다.” 부모로서 어찌 자신의 말을 뒤집겠는가. 아이가 행복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 전공 서적 몇 권 사는 돈은 굳었으니 딸한테 치맥이나 사달라고 해야겠다. 엄호정 현대엔지니어링 건축조경팀 지지한다. 하지만 조경이라는 분야가 생각보다 많이 세분화되어 있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다. 설계, 시공, 연구, 소재 개발, 생태, 환경, 기후 변화 대응 등 파생 분야가 생각보다 다양하다. 내 아이가 대학에 가기까지 10여 년이 남았으니, 미래에는 지금보다 더 세분화되지 않을까. 따라서 조경 분야에서 일하는 것이 목표라면 꼭 조경학과를 선택하진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강한민 한국그린인프라연구소 꽃과 나무를 아이에게 선물하고, 푸른 언덕에 함께 심고 물을 줄 것이다. 노민욱 충북대학교 시설과 토목조경팀 다양한 자연 환경을 만나게 해줄 것이다. 산, 들, 강으로 데려가 같은 식물이라도 생육 환경에 따라 형태가 달라짐을 가르쳐줄 것이다. 또 조경의 어떤 면을 보고 조경학과에 진학하려고 마음먹었는지 물어볼 것이다. 건축에 가까운 조경인지, 생태에 가까운 조경인지를 묻고 조언해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모임에 참여하도록 권유하겠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 사람마다 생각이 다름을 알게 된다. 차이를 이해함으로써 어떤 문제에 대한 답은 하나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하고 싶다. 김연희 천리포수목원 1년 배워보고 아니다 싶으면 전과를 추천한다. 복수 전공이라는 든든한 보험도 있다. 졸업하고 나서야 조경이 내 길이 아님을 알게 되는 순간,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정말 늦었다는 말의 의미를 몸소 깨닫게 될 것이다. 더불어 설계사무소에서 일할 생각이 없다면 설계에 목숨 걸지 말자. 설계 과제하느라 다른 수업 (특히 교양 수업) 성적 포기하지 말고, 패널에 손톱만 하게 들어갈 다이어그램을 만들면서 밤을 새우는 짓은 되도록 하지 말자. 강민정 부산시 영도구 조경학과를 졸업한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조경을 배우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더 넓어졌다. 인간과 뗄 수 없는 식물이라는 존재에 대해 배우고, 자연을 도시로 가져오는 일의 가치를 알게 됐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 조경의 현실이 마냥 밝지 않다는 것은 잘 안다. 그럴수록 조경의 필요성과 중요함을 더욱더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경 공간 속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다양한 행복과 웃음을 아이와 함께 나누고 싶다. 이런 의미에서 미래 내 아이에게는 조경학과를 적극적으로 추천해볼 생각이다. 강혜빈 소양고등학교 교사 조경은 진로 선택의 폭이 넓은 특별한 분야다. 직접 공간을 디자인하고 시공, 관리하는 일뿐만 아니라 조경수를 육종하는 원예 산업에도 종사할 수도 있다. 정원 일은 힘들기도 하지만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생활에 활력을 주기도 한다. 조경은 자연과 함께하는 일이기에 미래에 더 각광받을 분야라 생각된다. 전문직이라 정년 후에도 충분히 계속할 수 있다. 이미 첫째 아들이 조경학과에 다니고 있다. 김봉찬 더가든 대표
    • / 2019년11월 / 379
  • [편집자의 서재] 어느 언어학자의 문맹 체류기
    대학교에서 외국인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언어학을 연구하는 백승주 교수는 문맹이 되기로 결심한다. 1년간 상하이 푸단 대학교의 한국어 교환교수로 파견되자 중국에 가기 전까지 어떤 중국어도 익히지 않기로 한 것이다. 지금껏 그가 가르친 학생들은 한국어를 말할 줄도 읽을 줄도 모르는 이들이었다. 백지 상태에서 낯선 땅에 발을 내디딘 학생들의 마음을 헤아려보기 위해, 무無의 상태에서 다른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을 탐구하고자 실험 대상이 되기를 자처한다. 외국 생활은 긴장의 연속이다. 식당에서 음식을 시키는 것뿐인데 몸은 잔뜩 움츠러든다. 한국에서는 자연스럽게 “사장님”을 외치면 그만이지만 낯선 나라에서는 말도 안 통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이뤄내야 하기 때문이다. “워 야오…이베…워 야오…어…아이씨.” 상하이 도착 이틀째, 백 교수는 방에서 “워 야오 이베이 빙더 메이스카페이”(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 주세요)를 연신 연습한다. 다음 날 찾은 스타벅스에서 연습한 문장을 말하는 데 성공하지만 돌아오는 건 예상치 못한 질문이다.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그에게 점원은 계산대 옆에 나란히 서있는 컵들을 가리킨다. 톨, 그란데, 벤티, 컵 사이즈를 묻는 거였다. 더 준비된 말이 없던 백 교수는 ‘가리키기’를 시전해 그란데사이즈를 주문한다. 그는 음료를 기다리며 가리키는 행위에 담긴 복잡한(?) 소통의 과정을 분석하기 시작한다. 가리키기는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일, 곧 “‘나와 상대방이 모두 공동으로 한 사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동시에 ‘다른 이의 관점에서 그 사물을 보는’ 과정”이므로, 일종의 ‘초능력’을 발휘한 셈이다(과장된 표현 같지만, 인간과 DNA가 98퍼센트 일치하는 침팬지는 가리키기에 담긴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어느 언어학자의 문맹 체류기』 속 이야기들의 흐름은 이런 식이다. 읽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마주한 낯선 문화와 도시 풍경은 산만하면서도 복합적인 ‘의식의 흐름’을 따라 재편된다. 현지인에게 당연한 음식 문화나 거리 풍경은 이방인의 온갖 잡다한 지식,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나 유년 시절의 희미한 경험 등을 소환한다. 명나라의 반윤단이 자신이 죽인 정적이 강시로 나타날까 두려워 만든 구곡교를 거닐며 좀비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고, 중국 식당에서는 냉수를 주지 않는 게 기본이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물 좀 주소’를 부른 가수 한대수를 호출한다. 다소 뜬금없어 보이지만 나름의 알고리즘을 따라 전개되는 이야기는 공공장소에서 본의 아니게 듣는 남 얘기 같다. 하필 그게 엄청 흥미진진하거나 솔깃한 정보여서, 나도 모르게 귀를 더 쫑긋하게 되는 것이다. 북쪽으로 공산주의 (혹은 그러한 체제에 속했던) 국가를 세 개나 둔 자본주의 국가(하지만 같은 한자 문화권에 속하며, 일제 식민지기와 제국주의, 독재 체제를 경험한 나라)에서 나고 자란 덕분일까, 백 교수는 현대 중국 이면에 놓인 모순을 도시 곳곳에서 면밀히 포착해낸다. 자본주의의 결정체인 상하이 세계금융센터의 외벽에 중국의 오성기가 떡하니 붙어 있고, 사람들을 검열하는 경비원들이 즐비한 상하이의 거리에는 집마다 적나라하게 널어놓은 빨래가 휘날리며, 난닝구와 사각 팬티만을 걸친 자유분방한 차림의 아저씨들이 거리를 활보한다. 고급 백화점에 난 큰 창을 통해 보게 되는 것은 마오쩌둥의 생가다. “과거의 마오가 고급 백화점으로 둘러싸인 자신의 옛집을 바라본다면 어떨까? 마오가 받는 충격은 원숭이 혹성에서 겨우 탈출하여 지구로 돌아왔는데, 그 지구가 유인원이 지배하는 세상이 된 것을 발견하는 영화 ‘혹성탈출’의 주인공이 느끼는 충격과도 유사하지 않을까.”2 상하이의 풍경은 낯선 이방인의 몸을 통과하면서 지극히 주관적이고 예상치 못하게 깊은 방식으로 그려져,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토록 사적이고 편향된 기행문이라니. 웬만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보다 상하이에 대한 뚜렷한 인상을 각인시킨다.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친구가 들려준 모로코의 밤, 그가 거닐던 사막이 어떤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사막보다 더 깊게 남았던 건 같은 이유 때문일까? 각주 정리 1. 백승주, 『어느 언어학자의 문맹 체류기』, 은행나무, 2019 2. 같은 책, p.203.
  • [CODA] 이름
    고작 석 자, 길지도 않은 내 이름은 사람들의 머리를 곧잘 어지럽힌다. 이름을 말하면 되묻는 사람도 여럿이고, 때때로 사물함이나 명단에 김무아, 김보아 등 낯선 글자가 적히기도 했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초등학교 시절에는 성 하나만 바꾸면 온갖 별명이 완성됐다. 그래도 이름은 나를 구성하는 것 중 단연 마음에 드는 요소다. 지극히 평범한 나를 흔하지 않은, 오롯이 유일한 사람처럼 느껴지게 한다. 엄마에게 이름에 얽힌 일화 하나를 듣고 난 후에는 그 애정이 더 각별해졌다. 하마터면 내가 김일심, 김진심으로 살아갈 뻔했다는 것. 당시에도 촌스럽게 느껴졌다는 그 석 자는 무려 작명소에서 비싸게 모셔 온 글자들이었다. 다행히 할아버지의 불같은 호통(제정신이냐는)에 마음을 하나로 모은다는 의미는 같지만, 그 어감은 확연히 다른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됐다. 아쉬움은 없지만 가끔 김일심, 김진심이 된 나를 상상해본다. 분명 그 또한 똑같은 알맹이를 가진 나일 텐데,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을 거라 자신하게 된다. 말과 글이 그렇듯 이름에도 분명한 힘이 있다. 이름을 부르면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던 누군가가 꽃이 되기도 하고(김춘수, ‘꽃’), 엑스트라에 지나지 않던 캐릭터가 자신의 존재를 자각해 시나리오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기를 소망하게 만든다(MBC, ‘어쩌다 발견한 하루’). 세상의 온갖 사물에 이름이 있지만, 서로의 존재를 이름으로 불러 확인하는 사람에게는 그 의미가 유독 크다. 시인 오은은 『나는 이름이 있었다』(2018)에 수록된 서른두 편의 연작시를 통해 ‘불리는 이름’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무인 공장에 내가 있었다. 무인 공장인데 내가 있었다. 무인 공장인데 내가 있는 것이 유일하게 습득한 기술이었다. 어느 날에는 스위치를 켜는 심정으로 불쑥 내 이름을 발음해보았다. 무인 공장과는 달리, 나는 이름이 있었다. 무인 공장과는 달리, 나는 사람이었다.”1 그만큼 제대로 부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이번 특집을 통해 우리에게 익숙해진 이름에 작별을 고한다. 오랜 시간 영어권 표기를 따라 불려온 콩지안 유(Kongjian Yu), 투렌스케이프(Turenscape)를 유쿵졘(Yu Kongjian)과 투런스케이프로 바로잡는다. 당장은 낯설겠지만 영영 가까워질 수 없을 것 같던 비니 마스(Winy Maas)(오랜 기간 위니 마스라 불렸다)에 친숙해졌듯, 유쿵졘과 투런스케이프가 금세 당연해질 것이라 기대한다. 중국어를 배운 이는 투런이 땅土(tu)과 사람人(ren)의 합성어라는 사실을 눈치 채고, 그들의 설계 철학을 남들보다 빨리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름에 대해 생각하며 특집을 살피다보면 발을 거는 문단이 하나 있다. “젊은 세대는 조경학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기성 조경가와 일반 대중 대부분은 조경학을 간단한 원예, 즉 정원을 꾸미는 일로 여긴다. … 이는 학과에 대한 정의에서 비롯된 일이기도 하다”(“조경, 세상을 움직이는 힘”, p.100) 유쿵졘의 말에 따르면 중국에서 조경학과는 흔히 환경예술 또는 원림설계학과로 일컬어진다. 그는 “원예가 개인이 만든 정원이라면, 원림은 사람과 땅 사이의 갈등, 사람들의 이용 행태를 고려해 자연 네트워크를 추구하는 일”이라며 교육에 앞서 원예와 원림 설계가 무엇인지 정확히 정의내리고, 이에 따라 낡은 학과 체계를 개혁해야 한다고 말한다. 몇 차례 한국 조경계에 제기된 조경이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landscape architecture)의 번역어로 적당한지에 대한 논의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조경에 대한 인식이 전보다 넓어졌다지만 여전히 내 주변 사람들은 식물과 나무를 다루고 정원을 꾸미는 일 정도로 생각한다. 현재의 명칭은 조경이 다루는 범주를 직관적으로 보여주지 못한다. 조경은 과연 그알맹이를 보여주기에 적합한 이름인가. 사실 이 물음은 다음달 ‘이달의 질문’에 관한 예고이기도 하다. 2019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지면에 많은 독자의 생각이 담기기 바라며 놓는 덫이다. 회색 코끼리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면 회색 코끼리가 더 생각나듯, 당신은 이제 싫어도 이 질문을 계속 떠올리게 될 것이다. 올가미에 걸린 이들이 다채롭고 새로운 의견으로『 환경과조경』의 문을 두드리기를 기다린다. 각주 1.오은, ‘무인공장’, 『나는 이름이 있었다』, 아침달, 2018,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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