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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분야의 사회참여
  • 환경과조경 2013년 4월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사회참여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개인이나 집단, 기업적인 차원 등 다양하다. 조경은 지금까지 사회참여가 그리 활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가공간을 맡고 있는 조경은 그 특성상 일반인들과의 접점이 적지 않다. 따라서 생각하기에 따라 여러 가지의 사회참여를 할 수 있다. 늦은 만큼 앞선 사례를 교훈삼아 시행착오를 줄이면 오히려 짧은 기간 내 활성화 시킬 수 있는 여지도 있다.

조경가의 사회참여는 참여 주체가 조경전문가들이란 점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와 동일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자본제가 앞선 서구에서 기부나 기증문화의 보편화는 불평등 분배가 생기는 자본주의 체계의 속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에서 성과를 이루고 기회를 잡은 뒷면에는 그 기회를 놓친 누군가가 있었기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책임감과 공동체에 대한 사명감이 요구된다. 이렇게 본다면 전문가의 사회참여는 선택이 아니라 권리이자 의무이다.

전문가 사회참여가 개인적인 차원이라면 기업의 사회참여는 조직적 차원이다. 개인적인 차원과는 또 다른 영역이다. 그리고 개인적인 차원으로는 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가능하다. 하나의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는 윤리소비를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시대적인 추세는 갈수록 기업의 사회참여를 더 많이 요구한다. 기업의 영향이 점점 커지면서 사회에 대한 책임의 상당 부분이 국가에서 기업으로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쉽게도 조경분야에서 체계적인 사회참여를 지속하는 기업은 많지 않다. ‘아직은 규모가 작으니 좀 더 회사가 성장하면 하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회참여를 ‘자기 희생’으로만 보는 시각이 강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사회참여는 사회적 약자나 공동체를 대상으로 한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물’이다. 따라서 원칙적으로는 증여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얼핏 기브 앤 테이크가 익숙한 현대 자본제적 체계에서 다소 이례적일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행동의 역사적 뿌리는 매우 깊다. 인류학자 모스M. Mauss는 그 기원을 찾아 원시공동체사회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당시에는 누구나 아무런 대가 없이 주고받는 것이 일상이었고, 공동체 생활의 중요한 기초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주고 받고 되돌려주는 행위들을 사회를 유지하고 결속시키는 중요한 장치로 해석했다. 또 다른 인류학자인 고들리에M. Godelie는 이 때 주고받는 것은 사실 어떤 결과물이 아니라 그것의 효력이라고 보았다. 즉 사회를 결속하고 재생산하는 힘은 이렇게 주고 받으면서 순환하는 행위의 효력에서 비롯됨을 강조했다.

칼라하리 사막의 부시족은 선물을 받으면, ‘왜 이리 형편없는 것을 주었지?’라고 한다. 감사할 줄 몰라서가 아니다. 선물을 준 상대방이 오만한 마음을 갖지 않도록 관행화된 문화이다. 자기과시나 목적성이 없다면 주고 나서 잊어버리는 것이 진짜 선물이리라. 왜 잊어버려야 할까? 앞서 소개한 모스가 그에 대해 답을 주고 있다. 그는 남태평양의 원주민에 대한 연구를 통해 증여에는 ‘하우hau, 영적인 힘’가 머물고 있어 후속적인 선순환을 만들어낸다고 보았다. 즉 증여에는 힘이 존재하며, 이 힘이 스스로를 유통시키게 만들기 때문에, 결국 돌고 돌아 최초의 증여자에게 다시 간다는 것이다. 사회참여가 활발한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이미 국내외의 많은 통계에서 확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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