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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프리즘오브
  • 환경과조경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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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오브 편집부 | 프리즘오브프레스 | 2018

 

 

겨울부터 봄을 살고 있었다. 늘 다음 달을 준비하는 잡지사 기자는 남들보다 먼저 새 계절을 맞이한다. 그러다 보니 종종 지금이 몇 월인지 헷갈리곤 하는데, 그럴 때면 친구들에게 유난이라는 장난 섞인 비난을 받기도 한다. 이과 출신 친구들에게 기자라는 내 직업은 아직도 낯선 영역인가 보다. 

“잡지사 기자로 산다는 것은 ‘시간’과의 불편한 동거다. 늘 무언가를 좇아야 하는 직업의식과 뭔가에 좇기는 강박관념” 우리에겐 “반복되는 약속의 시간이 있다. 그 시간의 질량이 남들과 같을지라도 속도성이나 밀도, 구성은 전혀 다르다”1 한 달 단위로 사는 월간지 기자에게 월초와 월말은 기획과 마감 업무로 채워진 밀도 높은 시간이다. 특히 특집을 기획하는 달의 월초와 월말은 그 어느 때보다 빽빽하고 무거운 날들이 된다. 여러 콘텐츠를 하나의 주제로 엮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특집 주제에 맞게 프로젝트와 필진을 구성하고, 경우에 따라 좌담을 계획하기도 한다. 구성이 모나거나 빗겨난 구석은 없는지 몇 번이나 살피고 청탁에 들어갔는데, 몇 분이 고사하는 경우도 있다. 기우뚱, 공들여 짜놓은 기획이 한 쪽으로 기울어진다. 한번 더 설득해보지만 실패할 경우 새로운 필자를 찾는 여정이 다시 시작된다.

청탁이 끝난 후에도, 편집을 통해 각 콘텐츠가 하나의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도록 다듬는 작업이 진행된다. 각 필자가 의미하는 바는 같은 데 다른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는지, 그럴 경우 어떤 단어로 통일할 것인지, 또 흐름이 어색하진 않은지 순서를 바꾸어 보는 작업이 마감 직전까지 계속된다. 갖은 공을 들인 만큼 특집을 꾸린 달에는 잡지 나오는 날이 (내용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유독 기다려진다. 일종의 보상이다. 페이스북에 공유된 잡지 기사에 댓글이라도 달리면 그간의 피로가 녹아내리는 것 같다. 아쉽게도 대부분의 수줍은 독자들이 좋아요나 공유하기를 통해 마음을 대신하고 있는 것 같지만.

 

최근 두터운 여성 구독층을 가지고 있던 『여성중앙』이 기약 없는 휴간에 들어갔고, 영국의 음악 잡지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New Musical Express』가 폐간됐다. 손쉽게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미디어 시대, 잡지는 차근차근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독자의 호응을 얻고 있는 잡지가 있다. 2015년 12월 창간되어 비정기 발행, 격월 발행을 거쳐 올해 계간지로 자리 잡은 『프리즘오브PRISMOf』다. 사실 『PRISMOf』는 2017년 ‘다크 나이트’를 주제로 한 7호를 끝으로 휴간에 들어간 상황이었다. 그런데 영화 ‘불한당’ 팬들이 계속해서 『PRISMOf』에서 ‘불한당’을 다뤄 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2017년 11월 13일 『PRISMOf』는 ‘텀블벅’에서 ‘불한당’ 특별호 제작을 위한 모금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단 10분 만에 목표 금액 1,100만 원이 모였고, 이는 『PRISMOf』가 다시 발간되는 계기가 되었다.

『PRISMOf』가 다시 살아날 수 있던 힘은 특정 대상이 흥미를 느낄만한 요소를 깊게 파고드는 데서 기인했다. ‘잡지 한 권에 영화 한 편’을 소개하는 『PRISMOf』는 150쪽을 오로지 하나의 영화를 위해 사용한다. 매호가 특집이다. 감독, 배우의 필모그래피, 줄거리 등 기본적인 영화 소개에서 시작해 칼럼, 에세이, 비평, 가상 인터뷰, 가로세로 퍼즐, 각종 일러스트와 사진에 이르기까지 30여 개의 콘텐츠로 “영화를 여러 각도에서 재조망하여 관객의 영화적 경험을 확장”시킨다. 영화 속의 소품이나 장소, 배경, 음악을 소개하기도 하고 매호 예술가를 초대해 영화에서 받은 영감을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표현하게 하는 ‘프리즘피스PRISM-piece’를 통해 독자에게 더 넓은 예술 분야를 경험하게 하기도 한다.

게다가 이 콘텐츠 중 몇몇은 고정된 코너가 아니며 각호에서 다루는 영화의 특성에 따라 새롭게 만들어지기도 과감히 생략되기도 한다. 인터뷰이나 필진의 범위도 넓다. ‘다크 나이트’를 다룬 6호에서는 범죄심리학자를 만나 조커의 심리에 대해 분석했고, 포스터가 화제가 되었던 ‘아가씨’를 다룬 5호에서는 ‘엠파이어 디자인 에이전시’를 찾아가 디자인 과정의 에피소드를 공유했다. 전문가가 아닐지라도 한 영화가 너무 좋아 80번을 본 사람이라면 인터뷰이가 될 수 있으며(『PRISMOf』 5호 “그 많던 80회는 누가 다 보았을까”), 배트맨을 다룰 땐 그래픽노블의 양대산맥 DC와 마블 팬의 대담을 공개하기도 한다(『PRISMOf』 6호 “매니아 인터뷰”). 매호가 역동적이다.

감각적인 디자인과 일러스트 역시 『PRISMOf』의 매력 요소다. 『PRISMOf』는 일반적인 영화 잡지와 다르게 스틸컷을 사용하지 않는다. 저작권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고 영화를 굳이 지면에 이미지로 재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이는 이제 『PRISMOf』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다. 스틸컷 대신 각종 일러스트와 인포그래픽을 적절히 배치해 보기 좋게 꾸려 놓은 책장을 넘길 때면 잘 포장된 선물 상자를 열어보는 기분이 든다.

창간 5년만에 전 세계 비즈니스맨이 즐겨 읽는 잡지가 된 『모노클MONOCLE』의 대표 타일러 브륄레는 “생동감 있게 콘텐츠를 전달하는 디지털”에 대항하기 위해 “넘겨 읽는 손맛이 느껴지고, 재미있고, 수집할 만한 가치가 있는 매체”를 만들고자 했다고 한다.2 영화 ‘불한당’의 팬들에게 『PRISMOf』가 영화를 다양하게 조명하는 방식은 만오천 원을 기꺼이 지출하게 만드는 수집할 만한 가치였을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좀 더 자세히 알고자 하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 사람은 아직 많다. 잘 꾸린 특집이 우리 잡지의 돌파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다음 작가 특집호에서는 조경설계사무소를 조명할 뿐 아니라, 설계사무소의 주 무대가 되는 장소에 관심이 있는 사람, 그곳을 여행하고 싶은 사람에게 독특한 안내서가 될 수 있는 특집을 꾸리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1. 박성진 외, “천국과 지옥의 교란”, 『페이퍼』 2005년 4월호.

2. 김유영, “年35% 성장하는 英잡지 ‘모노클’ 대표 타일러 브륄레, 『DBR』 2011월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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