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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설계하는 법] 자연과 도시 라이프스타일의 새로운 균형 3
  • 환경과조경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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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 중인 공유 정원 1호. 2017년 오픈 예정이며, 겨울에는 테스트 겸 청보리를 식재했다.

 

모듈 시스템

셀로CELL · O를 설명하는 세 가지 키워드는 안개 관수, 모듈 시스템, IoT사물인터넷 기술이다. 첫째, 셀로는 수경 재배의 가장 진보된 방법 중 하나인 에어로포닉스(aeroponics)―수경 재배에서 발생하기 쉬운 뿌리의 산소 부족과 배양액의 변질을 방지하기 위해 개발된 재배법― 중에서도 물 입자를 가장 작게 만들어 그 효과를 극대화하는 안개 관수 방식을 사용해 식물의 생장을 돕는다. 이러한 안개를 이용한 관수 방식은 단순 녹화뿐 아니라 수직 농장 등 농업 분야에서 활용이 기대되는 기술이며, 식물과 함께 미세 먼지 등 공기를 정화하는 바이오 필터의 효과 또한 기대되는 기술이다. 둘째, 직관적인 조립식 모듈형 시스템인 셀로는 무한한 이용의 확장이 가능한 동시에 식물을 조립하는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창출한다. 셋째, 제품, 센서, 무선 통신, 데이터 처리 기술이 접목된 IoT 기술은 1차적으로 무선 원격 제어와 식물 환경 모니터링을 가능하게 하며 유지 관리 자동화와 관리 비용 최소화를 실현할 수 있게 한다. 게다가 2차적으로 식물 재배와 관련한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함으로써 도시 녹화, 도시 농업 등과 연계한 지식 정보 산업으로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셀로라는 제품을 설명하는 세 가지 키워드, 즉 안개 관수, 모듈 시스템, IoT 기술이 각각의 확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연재에서 소개한 셀라CELLA와 셀로는 그 형태와 기능은 다르지만 단위 모듈로 이루어진 모듈 시스템이라는 공통적 성격을 지닌다(자세한 내용은 『환경과조경』 2017년 4월호 “자연과 도시 라이프스타일의 새로운 균형”, 5월호 “자연과 도시 라이프스타일의 새로운 균형 2” 참고). 직관적 조립과 해체가 가능하고 다양한 적용이 가능한 모듈 시스템은 최근 국내외 여러 분야에서 활발히 연구·개발되고 있으며 건물과 그 입면, 가구와 인테리어 시스템 등에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다. 앞으로 모듈 시스템은 최소 단위 (모듈)를 이용해 점점 더 다양한 형태와 기능을 구현하는 동시에 사용자의 요구를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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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로를 설명하는 세 가지 키워드

 

모듈 시스템이 꾸준히 등장하는 데에는 몇 가지 배경과 이유가 있다. 첫째, 변화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며 우리 삶의 형태 또한 점점 다양해진다. 다양함과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큰 것보다 작은 것이 유리하다. 둘째, 재사용과 재활용에 대한 요구가 높아진다. 자본주의 도시에서 발생하는 각종 폐기물 문제에 대한 하나의 대안은 사용-해체-재사용이 용이한 것들을 점차 늘리는 것이다. 셋째, 범용적인 동시에 맞춤형(customized) 성격을 가진 물건에 대한 소비가 증가한다. 자신의 욕망과 요구에 맞게 사용하다 상황이 바뀌거나 싫증날 때 여차하면 되팔거나 다른 용도로 쓸 수 있는 탄력적 물건, 즉 일종의 플랫폼적 제품과 시스템에 대한 요구가 앞으로 더욱 많아질 것이다. 또한 모듈 시스템은 생산 비용 절감과 품질 확보 등 산업적 측면에서도 의의가 있다. 이러한 모듈 시스템에 있어 아이디어와 기획, 디자인과 설계, 제작과 생산 전 과정에 디자이너 혹은 설계가가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 지금보다 더 놀라운 제품과 공간이 만들어지고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 확신한다.

2016년 여름, 필자가 튜터로 참여한 조경디자인캠프에서 김지학, 박선영, 이지은 학생은 ‘클럽 아일랜드(Club Island)’라는 작품을 통해 한강의 인공 섬을 타입별로 모듈화하고 그 조합으로 다양한 경관과 프로그램을 생성해냈다. 2017년 가을, 서울시립대학교에서 강의한 ‘멀티미디어와 조경’ 수업에서는 외부 공간에 설치할 수 있는 ‘무엇’을 주제로 모듈 시스템을 적용한 디자인을 실험적으로 진행했다. 학생들은 몇 가지 최소 모듈로 스트리트 퍼니처, 파빌리온 등을 구현했는데, ‘실제로 만들어도 충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듈 시스템은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더 진화하고 발전해나갈 것이다. 도시의 다양한 공간에, 그리고 우리의 일상에 앞으로 또 어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모듈이 등장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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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로를 이용한 벽면 녹화와 그린 인테리어

 

자연 가치

내가 일하는 회사이자 현재 셀로의 최종 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세계수프로젝트는 2016년 한국에서 창업한 ‘스타트업’이다. 비교적 적은 자본으로 새로 시작하는 회사를 모두 스타트업이라 할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스타트업은 혁신적 기술과 아이디어를 보유한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창업 기업을 뜻하며 자체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는 작은 그룹이나 프로젝트성 회사를 의미하기도 한다. 즉 스타트업을 정의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거나 새로운 시장을 찾아 나서는 데 주력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스타트업은 이미 존재하는 구조와 틀을 깨고 새로운 변화를 만들고 싶어 한다.

세계수프로젝트는 셀로를 개발하면서 창업 공모전, 창업 지원 사업, 데모데이(demoday)에 참가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하는 동시에 스타트업으로서 가능성을 검증 받았다. 그 과정에서 참으로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을 만나게 되었는데, 분야를 막론하고 그들이 공통적으로 고민하는 한 가지가 있음을 발견했다. 비전 또는 미션이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하는 그것은 바로 가치(value)다. ‘우리는 어떠한 가치를 창출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들은 치열하게 고민하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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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로를 이용한 그린 오브젝트와 스툴

 

 

그 가치는 첫 번째 연재에서 언급한 ‘선택의 기준이 되는 중요성’, 두 번째 연재에서 언급한 상상의 질서 속의 ‘실재하는 것과 같은 가치 기준과 체계’와 같은 것이다. 즉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 또는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믿고 따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가치를 설명한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나와 우리가 하는 일은 그 중요함과 얼마나 가까운가.

셀라와 셀로의 개발, 그리고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운영하는 과정은 그러한 핵심 가치에 대한 질문과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의 관심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과 그들이 관계하는 자연으로 구체화되었으며 동시에 우리 일상에 한층 가까워진 ‘자연 가치’에 기반한 혁신에 주목하게 되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자연 가치(value based on nature)’는 자연이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우리에게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더 중요해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고 구현하기 위한 일련의 기준과 체계를 말한다. 자연 가치에서 ‘자연’은 추상적이자 확장적인 개념으로 특정한 사물이나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예컨대 자연-인간의 ‘관계’와 그 관계에서 발생하는 ‘현상’ 또는

‘물질’ 등을 포함하는 광의의 자연이다.

현재 세계 곳곳에서 IoT 기술을 장착한 가정용 식물 재배기, 자동 관수 시스템을 갖춘 에어로포닉스 농업 모듈과 같은 새로운 제품을 통해 보다 쉽고 편리하게, 그리고 더욱 밀접하게 자연을 경험하게 하는 기회를 만들고 있다. 수직 농장이 있는 마트, 식물로 뒤덮인 건물, 자연으로 채워진 호텔과 레스토랑, 지하 공원 등과 같은 혁신적 공간을 통해 일상에서 자연을 보다 가깝게 그리고 자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고 있다. 즉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극복하며 누구나 쉽고 편리하게

경험할 수 있는 자연, 공급자 중심이 아닌 공유하고 연결되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수요자 중심의 자연이 새로운 제품, 공간, 서비스를 통해 등장하고 있다. 자연 가치는 이러한 일련의 현상을 관통하는 핵심 가치다.

이와 같은 자연 가치 기반의 혁신을 추구하는 세계수프로젝트는 자연과 도시 라이프스타일의 새로운 균형을 비전으로 자연과 도시의 일상이 놀랍게 연결되는 제품, 공간, 서비스를 만드는 회사다. 우리는 자연이 도시의 일상에서 ‘있으면 좋은 것(good to have)’이 아닌 ‘꼭 필요한 것(must have)’이 되기를 바란다. 자연이 우리 삶을 구성하는 하나의 중요한 기준이 되며, 모두가 자연을 즐겁고 건강하게 향유하는 변화를 꿈꾸고 상상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연 가치에 기반한 사고 체계는 셀라와 셀로라는 제품과 시스템을 넘어 자연스럽게 공간과 서비스로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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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학, 박선영, 이지은 학생의 작품 ‘클럽 아일랜드(Club Island)’

 

공유 정원

공유 정원(social garden, 가제)은 현재 세계수프로젝트가 기획, 실험 중인 아이디어로 ‘누구나 집이나 직장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자연으로 둘러싸인 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이 보다 풍부해지지 않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해외 사례 조사를 통해 공간이 부족한 도시에서 자연 환경을 늘리는 다양하고 창의적인 접근이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하고, 도시에서 자연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과 그 공간을 이용하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가능성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서울을 대상지로 진행한 아이디어 구체화 단계에서 우리가 주목한 공간은 도시에서 이용되지 않고 방치된 대표적 공간, 바로 옥상이다.

우리는 지금껏 진행되어 온 정부, 공공, 대형 건축물 중심의 옥상 녹화 방식의 한계를 인식하고 새로운 접근 방식을 모색했다. 공유 정원, 즉 공유 경제를 활용한 도시 정원 모델의 개발이 그것이다. 공유 정원은 ‘중소형 옥상 녹화·옥상 정원’의 ‘보편적 확산’을 위한 환경적, 경제적, 사회적 해결책을 제시한다. 공유 정원 조성의 모듈화 기술을 통해 옥상 공간의 설계와 조성 자체를 모듈화, 표준화, 재사용함으로써 설계와 조성 방식의 변화를 추구한다. 또한 옥상 맞춤형 콘텐츠의 개

발과 함께 옥상 공간을 건물주와 임차인의 폐쇄적 공간이 아닌, 모두를 위한 오픈형 다목적 공유 공간이자 수익성 높은 사업 공간으로 변모시킴으로써 소유와 사용 방식의 혁신을 추구하는 것이다.

현재 공유 정원 1호이자 첫 번째 테스트베드가 세계수프로젝트 기획, 조경설계사무소 HLD 설계, 지오가든 차용준 소장의 시공으로 조성 중에 있다. 약 700여 개의 박스 모듈로 만들어지는 정원과 그 정원을 이용하는 다양한 사람의 다양한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서울의 공원·녹지 면적은 167.65k㎡(행정 구역 605.21km2 대비 27.7%)이나 그중 대부분(75%)이 도시 외곽에 편중되어 집이나 직장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공원·녹지, 즉 생활권 공원·녹지가 상당히 부족한 실정이다.1인당 생활권 공원 면적을 미국과 비교해 볼 때 서울 5.24㎡, 뉴욕 14.12m㎡로 시민 1인당 생활권 공원은 세계식량농업기구FAO의 권고 최저 기준 9.0m2에 크게 미달한다.”(서울통계정보시스템, 2014) 

반면 “서울시의 전체 옥상 면적은 166k㎡로 이 중 민간 주도로 보급형 옥상 공유 정원이 가능한 면적은 55k㎡(총 옥상 면적 대비 33%)로 추정된다. 만약 이 모든 옥상 공간이 녹화, 정원화된다면 서울시의 생활권 공원의 총면적 54k㎡와 동일한 규모의 생활 녹지가 새롭게 생겨나는 것이다”(서울정책아카이브, 2015). 공유 정원이 이와 같은 가능성을 열어 주는 하나의 의미 있는 시도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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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시공 중인 공유 정원 1호(시공: 차용준)

 

자연 감각

자연은 나에게 늘 새로운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삶이 다르게 느껴지는 그 어떤 순간에 자연이 있었다. 자연은 어제와 다른 나를 발견하는 중요한 매개체다. 그러한 기분을, 감각을 나누고 싶다. 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느끼고 싶다. 자연을 매개로 하는 새로운 제품, 새로운 공간, 새로운 서비스, 새로운 브랜드와 가치를 계속 고민할 것이다. 새로운 상상을 계속 하고 싶다. 자연과 도시의 일상이 만나는 곳에서.

지금까지 셀라와 셀로, 공유 정원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3회에 걸쳐 소개했다. 지면을 열어준 『환경과조경』, 이 글을 읽은 독자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떠오르는 많은 조경인들에게 감사드린다. 개인적으로 궁금한 부분이 있거나 더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분은 꼭 연락 주시길 바란다. 함께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이 글과 관계하는 ‘그들’과 공유하고 싶은

질문으로 ‘그들이 설계하는 법’ 연재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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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 정원 1호(설계: HLD)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연과 조경가가 생각하는 자연의 차이는 무엇인가?

자연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필수재인가?

조경 설계의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조경 스타트업이 있다면 어떠한 가치를 기반으로 하는가?

조경 회사의 혁신은 어디에서 발생할까?

딱 한 가지 자연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조경가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은 무엇인가?

조경가로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무엇인가?

조경가로서 상상의 끝은 어디인가? (연재 끝)

 

 

백종현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 미국 하버드 대학교 GSD에서 조경 설계와 도시설계를 공부했다. 다목적 조경 모듈 셀라(CELLA)를 개발하여 2014년 레드닷 디자인에 선정됐고, 한국인 최초로 캐나다 국제정원박람회(The International Garden Festival, 2013)에 초청됐다. 2016년 조경 스타트업 세계수프로젝트를 창업하여 자연과 도시 라이프스타일의 새로운 균형점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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