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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데자뷰
  • 환경과조경 2016년 12월

30년 전, 내가 대학 2학년이 된 1987년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박종철 열사가 남영동 치안본부의 차디찬 대공분실에서 갖은 폭행과 전기고문, 물고문을 당해 숨졌다는 비보가 날아들었다. 당시는 서슬 퍼런 전두환 군사 정권의 말기로 캠퍼스에 사복 경찰들이 잠복하며 학생들을 감시하고 억압했지만, 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수업 거부, 시험 거부를 해가며 독재 타도를 소리 높이 외치며 싸웠다. 6월에는 민주화의 열망과 군부 독재의 종식을 바라는 민중의 함성이 들불처럼 일어났고, 노태우의 6.29 항복 선언으로 비로소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할 수 있었다.

 

이후 문민정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성장의 길로 접어들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나도 가을 낙엽 구르는 소리에 가슴 한 구석이 시려오는 반백의 중년이 되었다.

 

하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권으로 넘어 오면서 시계는 30년 전으로 거꾸로 돌아갔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민주주의는 퇴보했고, 급기야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는 국민들을 차가운 겨울 광장으로 불러내고야 말았다.

 

살길을 찾아 제각각 생업의 전선에서 열심히 일해오던 친구들도 다시 광장의 동지가 되어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고 만났다. 일종의 채무감이랄까. 우리 세대에서 완성하지 못한 민주화, 해소하지 못한 불평등한 세상과 권위주의적 사회를 내 자식, 내 손자에게 대물림해서는 안 되겠다는 신념 때문일 것이다. 광장에서 외치는 함성 소리에서 30년 전 그날의 기억이 생생히 되살아난다.

 

대학 3학년, 학생회장이 된 나는 당시 전국의 조경학과 학생들을 하나로 모아 구심체를 만들고자 전국조경학과학생연합회를 조직했다.

 

그해 겨울, 국회에 입법 예고된 산림조합법 개정안철회 투쟁을 위해 전국의 조경학도들과 함께 분연히 들고 일어섰다. 산림조합법 개정안은 건설업법에 명시된 조경공사업의 전문성을 무시하고 산림조합이 동등한 자격으로 독점적 특혜를 받으며 조경 공사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으로, 기존 조경 업체의 몰락을 초래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학생과 교수 그리고 조경회사 임직원들이 모두 하나로 뭉쳐 개정안 철회 운동을 펼쳐 나갔다. 연일 국회와 관련 국회의원의 지구당사에서 시위를 하며 우리의 생존권 사수를 위해 싸웠고 마침내 개정안은 보류되었다. 조경인들은 승리를 쟁취했다.

 

그로부터 30, 광화문광장에는 함성이 다시 울려 퍼지고 있다. 얄궂게도 우리 조경업은 여전히 산림청을 비롯한 여러 인근 분야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 산림청이 추진하고 있는 정원전문가 교육기관 지정기준 및 지정표시안은 조경전문가와 시민정원사 등을 배제해 논란이 되고 있다.

 

모든 산림 현장에 산림기술자 1명 이상을 배치하도록 해 산림기술자의 영역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산림기술 진흥에 관한 법률안은 조경계와 상생을 약속하며 우호적으로 개선되어가던 산림청과의 밀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두 차례 발의했다가 회기 만료로 폐기됐던 도시숲법안도 언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지 모르는 상황이다.

 

우리가 그래도 친정이라고 믿고 있었던 국토교통부는 규제 개혁의 일환으로 건설기술진흥법상 조경의 직무 범위를 조경기술자를 포함해 산림기술자, 원예 및 종자기술자 등으로 확대했다. 산림기술자도 조경 공사에서 조경기술사와 똑같이 기술 경력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조경학과 학생들이 조경기사를 아예 포기하고 산림기사나 식물보호 기사시험을 보게 만든 것이다.

 

통계청의 한국표준교육분류 영역 부문 제정 조정안은 조경을 원예의 한 직업군으로 종속되도록 했다. 한국연구재단의 학문평가분야에서도 조경학이 산림과 통폐합되면서 조경이 산림에 종속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렇게 가다가는 과연 조경이라는 학문과 전문 분야가 독자성을 가지고 지속될 수 있을지 심히 걱정된다.

 

조경인들이 승리를 쟁취했던 30년 전, 조경학과 교수, 학생, 조경회사 임직원 모두가 일치단결해 국회의사당 앞으로 달려 나가 우리의 주장을 목 놓아 외치며 싸웠다. 지금은 훨씬 많은 수의 조경학과 교수와 학생, 조경 관련 단체와 학회가 있지만, 제각기 흩어져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새해에는 저마다의 이해관계에 얽매어 사분오열 갈라지지 말고 조경의 앞날을 위해 하나가 되어야 한다. 조경의 미래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함께 목청 높여 외치는 함성은 한겨울 광장의 차디찬 삭풍을 녹인다.

 

이달의 이미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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