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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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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거진 가격 9,000

기사리스트

[에디토리얼] 한결같이
낭만의 가을을 앗아간 청와대 발 황당 뉴스가 겨울의 평화마저 집어삼키고 있다. 덕분에 올 한해의 소중한 기억이 다 날아갔다. 명색이 편집주간인데 바로 지난 호의 내용조차 생각나지 않는 지경이다. 애써 과월호 열한 권을 다시 꺼내 읽으며 금년의 흔적 몇 곳에 ‘오방색’ 포스트잇을 붙여 본다. 2016년 1월호,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용산공원 설계의 쟁점을 다룬 ‘용산공원의 현재를 묻다’를 특집으로 올렸다. 비생산적인 정치적 논쟁을 넘어 설계 자체에 대한 토론을 이끌고자 한 기획이었다. 여름을 거치며 용산공원이 모처럼 사회적 이슈로 일간지 지면을 타기 시작했는데, 그 중심에 놓인 것은 엉뚱하게도 서울시와 국토교통부 간의 철 지난 기 싸움이었다. 다섯 개의 다리를 모아 특집으로 꾸린 2월호의 ‘다리, 연결 그 이상’에는 기대 이상의 피드백이 있었다. 특히 보행자와 자전거의 천국 코펜하겐에 새로 들어선 시르켈브로엔Cirkelbroen에 여러 독자들이 관심을 보였는데, 마침 이 다리를 디자인한 아이슬란드 태생 아티스트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의 전시회 ‘세상의 모든 가능성’이 지금 리움에서 열리고 있다. 사회학자, 지리학자, 건축가, 아티스트 등이 참여한 3월호의 기획물 ‘젠트리피케이션, 몇 가지 시선’에는 표피적 도시재생의 이면을 진단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았다. 같은 호에 실은 최근작 굿즈 라인Goods Line은 19세기에 들어선 철로를 재사용해 시드니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프로젝트인데, 올해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여러 디자인 어워드를 휩쓸기도 했다. 4월호에는 오방색 포스트잇을 아티스트 문경원 인터뷰와 그의 ‘프라미스 파크’ 작업에 붙이고 싶다. 그의 미래 공원에 대한 실험은 공원이라는 소우주의 향(냄새) 탐구로 이어지기도 했다(7월호 ‘뷰’). 개인적으로는 4월호 에디토리얼 지면을 빌려‘조경은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보았고, 그 연장선상에서 6월호에는 ‘조경이라는 이름’에 문제를 제기해 보았다. 많은 독자들로부터 피드백이 돌아와 내심 놀랐는데, 조금 더 공식적인 방향으로 이 주제를 이어나가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올해 독자들의 시선을 가장 많이 사로잡은 특집은 아마 5월호의 ‘설계사무소를 시작한다는 것’이 아닐까. 편집부는 이 기획을 창업 특집이라 부르며 꽤 오랫동안 공을 들였는데, 경기 탓, 제도 탓에 지친 독자들은 이 지면에서 다룬 신생 사무소들, 젊은 조경가들의 도전기에 큰 호응을 보내주셨다. 계약, 공모, 자격, 설계비 등 설계 현장의 쟁점을 다룬 6월호의 ‘설계환경을 진단하다’에도 적지 않은 반향이 돌아왔다. 6월호의 근작 바랑가루Barangaroo Reserve는 아마 올해 선택한 작품 중 아이디어, 규모, 작업 방식 모든 면에서 가장 주목할 만하지 않을까. 7월호에는 2016년 세계 조경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퍼싱 스퀘어Pershing Square 설계공모를 담았다. 1866년 이후 150년 동안 무려 일곱 차례나 옷을갈아입은 기구한 광장, 아장스 테르Agence Ter의 당선작이 이곳의 운명을 어떻게 돌려놓을지 주목된다. 마침 이 즈음에 11월호의 아장스 테르 특집 기획을 시작했던 터라, 편집부는 일면식도 없는 그들의 당선에 환호를 터뜨리기도 했다. 8월호에는 경의선숲길 3단계 구간을 실었다. 서울의 대표적인 선형 공원으로 진화해가고 있는 경의선숲길에서 우리는 도시와 공원의 역동적 만남을 목격하고 있는 중이다. 유례없는 무더위를 견디며 만들었던 9월호에는 모처럼 국내 조경가의 작품만을 담을 수 있었다. 지난 10년간 특유의 설계 문법을 실험하고 구축해 온 오피스박김과 이화원의 근작들에 독자들의 시선이 오래 머물렀으리라. 10월호는 지자체가 주도한 신도시이자 공원과 호수로 도시의 골격을 짠 녹색 도시인 광교에 주목했다. 특집 ‘광교신도시의 교훈’을 통해 광교의 조성 과정을 되짚어보고 신도시 개발의 새로운 모델로서 의의를 살펴보고자 했다. 10월호를 편집하던 기간은 『환경과조경』이 주관한 제2회 서울정원박람회 준비와 겹쳐 전쟁 상황을 방불케 했다. 11월호는 조경가 특집에 할애됐는데, 올해의주인공은 파리 기반의 조경설계사무소 아장스 테르였다. 이번 12월호에는 여러 연재물의 마지막 원고가 실린다. 3년 전의 리뉴얼 이후 36회를 완주한 ‘공간 공감’이 이번 호로 막을 내린다. 이 연재를 위해 김아연, 김용택, 박승진, 이홍선, 정욱주, 다섯 명의 조경가는 한 달도 거르지 않고 답사와 토론을 진행했다. 고정희 박사의 ‘100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도 3년의 긴 항해를 마친다. 동시대의 생생한 장면에서 시작해 고대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다시 현재로 되돌아온 긴 여정, 말 그대로 조경사의 재구성이었다. 2015년 3월호부터 많은 실무 조경가들의 공감을 얻으며 연재된 이대영 소장의 ‘재료와 디테일’도 아쉬운 끝맺음을 한다. 전진형 교수의 ‘리질리언스 읽기’는 지난 11월호로 6개월간의 연재를 맺었다. 오랜만에 ‘고향 조경 땅’을 여행한 민성훈 교수, 그의 ‘조경의 경제학’도 이번 원고가 12회의 마지막 순서다. 많은 수의 독자를 지녔던 심소미 선생의 ‘떠도는 시선들, 큐레이터 뷰’는 내년 첫 호에 문을 닫는다. 리뉴얼 이후 세 달 마다 바통을 넘겨온 ‘그들이 설계하는 법’은 올해의 서예례 교수, 안세헌 소장, 진양교 교수, 박준서 소장 편에 이어 2017년에도 계속될 예정이며, 서영애 소장의 ‘시네마 스케이프’ 역시 내년에도 독자들을 만난다. 길고 어두운 동굴에 갇힌 것 못지않은 고통을 감내하며 원고를 보내주신 여러 연재 필자들의 인내와 노고에 고개 숙여 깊이 감사드린다. 짐작하시겠지만, 많은 꼭지의 문을 닫는 만큼 2017년의 『환경과조경』에는 적지 않은 변화가 있을 예정이다. 신년호에서 자세히 소개해 드리기로 한다. 『환경과조경』의 자매지로 2003년 3월에 창간된 『에코스케이프』(『조경시공』, 『조경생태시공』이란 이름을 거쳐 왔다)가 통권 100호인 이번 12월호를 끝으로 휴간에 들어간다는 아쉬운 소식을 무거운 마음으로 알려드린다. 매체 환경의 변화에 대한 대응이자 지난 10월 문을 연 ‘e-환경과조경www.lak.co.kr’에 보다 힘을 기울이기 위한 선택임을 깊이 헤아려주시길 부탁드린다. 한결같이 반겨주시는 독자 여러분에게 깊이 감사드리며, 『환경과조경』은 2017년에도 한결같은 ‘조경문화 발전소’로 독자 여러분 곁에 다가갈 것을 약속 드린다. 이렇게 2016년을 마감한다. 아니 통과한다.
[칼럼] 데자뷰
30년 전, 내가 대학 2학년이 된 1987년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박종철 열사가 남영동 치안본부의 차디찬 대공분실에서 갖은 폭행과 전기고문, 물고문을 당해 숨졌다는 비보가 날아들었다. 당시는 서슬 퍼런 전두환 군사 정권의 말기로 캠퍼스에 사복 경찰들이 잠복하며 학생들을 감시하고 억압했지만, 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수업 거부, 시험 거부를 해가며 ‘독재 타도’를 소리 높이 외치며 싸웠다. 6월에는 민주화의 열망과 군부 독재의 종식을 바라는 민중의 함성이 들불처럼 일어났고, 노태우의 6.29 항복 선언으로 비로소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할 수 있었다. 이후 문민정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성장의 길로 접어들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나도 가을 낙엽 구르는 소리에 가슴 한 구석이 시려오는 반백의 중년이 되었다. 하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권으로 넘어 오면서 시계는 30년 전으로 거꾸로 돌아갔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민주주의는 퇴보했고, 급기야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는 국민들을 차가운 겨울 광장으로 불러내고야 말았다. 살길을 찾아 제각각 생업의 전선에서 열심히 일해오던 친구들도 다시 광장의 동지가 되어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고 만났다. 일종의 채무감이랄까. 우리세대에서 완성하지 못한 민주화, 해소하지 못한 불평등한 세상과 권위주의적 사회를 내 자식, 내 손자에게 대물림해서는 안 되겠다는 신념 때문일 것이다. 광장에서 외치는 함성 소리에서 30년 전 그날의 기억이 생생히 되살아난다. 대학 3학년, 학생회장이 된 나는 당시 전국의 조경학과 학생들을 하나로 모아 구심체를 만들고자 전국조경학과학생연합회를 조직했다. 그해 겨울, 국회에 입법 예고된 ‘산림조합법 개정안’ 철회 투쟁을 위해 전국의 조경학도들과 함께 분연히 들고 일어섰다. 산림조합법 개정안은 ‘건설업법’에 명시된 조경공사업의 전문성을 무시하고 산림조합이 동등한 자격으로 독점적 특혜를 받으며 조경 공사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으로, 기존 조경 업체의 몰락을 초래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학생과 교수 그리고 조경회사 임직원들이 모두 하나로 뭉쳐 개정안 철회 운동을 펼쳐 나갔다. 연일 국회와 관련 국회의원의 지구당사에서 시위를 하며 우리의 생존권 사수를 위해 싸웠고 마침내 개정안은 보류되었다. 조경인들은 승리를 쟁취했다. 그로부터 30년, 광화문광장에는 함성이 다시 울려 퍼지고 있다. 얄궂게도 우리 조경업은 여전히 산림청을 비롯한 여러 인근 분야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산림청이 추진하고 있는 ‘정원전문가 교육기관 지정기준 및 지정표시안’은 조경전문가와 시민정원사 등을 배제해 논란이 되고 있다. 모든 산림 현장에 산림기술자 1명 이상을 배치하도록 해 산림기술자의 영역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산림기술 진흥에 관한 법률안’은 조경계와 상생을약속하며 우호적으로 개선되어가던 산림청과의 밀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두 차례 발의했다가 회기 만료로 폐기됐던 ‘도시숲법안’도 언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지 모르는 상황이다. 우리가 그래도 친정이라고 믿고 있었던 국토교통부는 규제 개혁의 일환으로 ‘건설기술진흥법’상 조경의 직무 범위를 조경기술자를 포함해 산림기술자, 원예 및 종자기술자 등으로 확대했다. 산림기술자도 조경 공사에서 조경기술사와 똑같이 기술 경력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조경학과 학생들이 조경기사를 아예 포기하고 산림기사나 식물보호 기사시험을 보게 만든 것이다. 통계청의 한국표준교육분류 영역 부문 제정 조정안은 조경을 원예의 한 직업군으로 종속되도록 했다. 한국연구재단의 학문평가분야에서도 조경학이 산림과 통폐합되면서 조경이 산림에 종속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렇게 가다가는 과연 조경이라는 학문과 전문 분야가 독자성을 가지고 지속될 수 있을지 심히 걱정된다. 조경인들이 승리를 쟁취했던 30년 전, 조경학과 교수, 학생, 조경회사 임직원 모두가 일치단결해 국회의사당 앞으로 달려 나가 우리의 주장을 목 놓아 외치며 싸웠다. 지금은 훨씬 많은 수의 조경학과 교수와 학생, 조경 관련 단체와 학회가 있지만, 제각기 흩어져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새해에는 저마다의 이해관계에 얽매어 사분오열 갈라지지 말고 조경의 앞날을 위해 하나가 되어야 한다. 조경의 미래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함께 목청 높여 외치는 함성은 한겨울 광장의 차디찬 삭풍을 녹인다.
제13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심사 총평 올해로 열세 번째를 맞이한‘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은 예년처럼‘작은 규모의 대상지,큰 생각’과‘대규모 대상지,미시적 접근’의 두 개 부문으로 열렸습니다. ‘기후변화에 대응한 조경의 역할’을 고민케 한 주제의 성격을 감안할 때,개인적으로는‘대규모’에 작품이 편중되지 않을까 우려도 했었지만,두 부문의 출품 수가 비교적 균등하여 안도했습니다.그러나 막상 작품들을 살펴보니,작품의 성격과 표현 형식으로 볼 때 출품 분야를 달리해 제출되는 것이 옳아 보이는 작품들도 다수 발견되었으며,많은 심사위원들 역시 공감하였습니다.물론 대상지와 이를 대하는 생각에서의 크고 작음과 거시적·미시적 관점이라는 것이 상대적이고도 주관적으로 해석될 수 있어 그 적실성을 객관화하기는 어려우나,심사 당시 아쉬움이 컸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추후에는 최종 제출에 앞서 보다 심도 있는 고민과 확인이 있었으면 합니다. 심사는 전 세계적으로도,그러면서도 국지적으로도 보편화된‘기후변화 현상에 조경 분야가 어떠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며,해야 하는가’의 측면에서 이루어졌습니다.전체적으로 볼 때,새롭고 참신한 제안들이 부분적으로 발견되면서도,다른 쪽으로는 이미 학계나 실무에서 보편화된 제안들이 대상지들을 달리해가며 반복되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느낀 딜레마는 전자의 참신한 제안들은 효과성을 검증하기 어려웠으며,후자의 작품 유형들은 기성 안들의 답습처럼 비추어져 큰 반향을 주지 못했다는 점입니다.여기에서 모든 공모전에서 예외 없이 제기되는‘창의성과 실현가능성’이라는 상반될 수 있는 준거 사이에서의 고민이 본 심사에서도 반복되었음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이 경우 개인적 기준은 조경은 본질적으로 실천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현실적 적용 가능성에 좀 더 큰 방점을 두고자 했습니다. 이번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의 주제는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한 공모전의 주제로서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작품들이 충실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논리를 전개한 점이 돋보였으나,많은 작품들이 기후변화를 단편적 관점에서 접근했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이러한 점은 두 부문에서 나란히 조경학회장상을 받은‘후포리 물들이다’와‘바이-패스’가 각각‘녹색 방파제의 구축’과‘사행 하천으로의 복원’이라 는 단순 명쾌한 설계 전략을 부각하는 것에서도 발견되었습니다.이는 문제 인식에 대한 강력한 해법을 전달하는 힘으로도 작용하나,다른 한편으로는 환경의 일부 측면만을 주목하고 있는 약점을 노정시키게도 했습니다.반면, ‘작은 규모의 대상지,큰 생각’부문에서 국토교통부장관상을 받은‘소막사마을,하모니카에 바람 불어넣기’는 애정 어린 눈으로 쪽방촌을 조사 분석한 결과로서,빈집을 제거 또는 활용하고 이를 통한 바람길의 숨통을 제공하고,다양한 휴게·편의·문화 공간을 복합적으로 고려하였습니다.다만 리사이클을 강조하기 위해 빈집 제거에서 발생되는 잔재를 개비온의 골재로 활용하는 전략은 공해와 비산 문제 등을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어려운 해법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적 문제 인식만을 넘어 문화와 경제·사회적 측면과 같은 중층적 측면에서 대상지에 접근한 태도는‘대규모’부문에서 국토교통부장관상을 받은‘백 투 더 퓨처’에서도 발견되었습니다.부산 다대동의 공단 일대를 단지 계획의 차원에서 접근한 이 계획은 환경적 문제 해결과 더불어 포구를 활용한 문화 코어의 확보 전략이 특히 돋보였습니다.그러나 이 작품에 있어서도 용지 및 재원 확보 가능성 등을 감안한다면 현 단계에서의 실현가능성은 다소 도전받을 수 있어 보입니다. 한편,계획안과 내용 표현에 있어 기성 제도권의 표현형식이 다소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모방 또는 답습되는 경향도 발견되어,대학생 공모전의 참신함을 오히려 저감시킨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이러한 점은 각 계획안이 주장하고자하는‘본질’을 충실히 드러낼 수 있는 표현 기법을 더욱 고민하는 방향에서 보완될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공모전을 운영하는 주관 기관에서는 예년보다 다소 열기가 식어가는 듯한 본 공모전에 새로운 활력을 부여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가까운 장래에 우리 조경계를 이끌어 갈 출품자 여러분의 노고를 위로하고 감사드리며,소망하시는 분야에서의 큰 발전을 기원합니다. 홍윤순 심사위원장 Small Scale, Big Idea or Big Issue 작은 규모의 대상지, 큰 생각 국토교통부장관상 소막사마을, 하모니카에 바람 불어넣기 이민근·김병걸·손영탁·이민호 동아대학교 조경학과 한국조경학회장상 후포리, 물들이다 이윤경·백규리 경희대학교 환경조경디자인학과 한국조경사회장상 葦갈대 위, 흐르되 머물게 주이슬·오혜민 순천대학교 조경학과 늘푸른재단상 서스테이너블 커뮤니티Sustainable Community 김영민·신혜수·박지수·김희성 한경대학교 조경학과 환경과조경상 정지뜰, 강물이 머무는 자리 허지선 영남대학교 조경학과 환경과조경상 워터-7000% 시스템Water-7000% System 문엽·이승현 경북대학교 조경학과 환경과조경상 랜드필스케이프Landfillscape 손하람 경북대학교 조경학과 Big Scale, Micro View or Micro Analysis 대규모 대상지, 미시적 접근 국토교통부장관상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 정민수·김혜령·이광재·이무진·최은호 동아대학교 조경학과 한국조경학회장상 바이-패스By-Pass 정봉균·박의빈 순천대학교 조경학과 한국조경사회장상 김포공항 담장 넘어 안재란·김규성·김준일 영남대학교 조경학과 늘푸른재단상 스며드는 경계 김민우·강현이·김진희·김관수 동아대학교 조경학과 환경과조경상 힘내力川 김지한·김혜수·이지현 강원대학교 생태조경디자인학과 환경과조경상 시드필Seedfill 이민선·박현아·최선경 한경대학교 조경학과 환경과조경상 숨: 숲을 틔우다 김혜인·권은송·정윤조·이연지 한경대학교 조경학과
한국은행 앞 분수광장 리뉴얼 아이디어 공모
설계공모 경과와 심사평 구시대의 가치를 반영하는 노후 공간으로 인식되던 한국은행 앞 분수광장을 시민의 사랑을 받는 새로운 공간으로 제안하는 ‘한국은행 앞 분수광장 리뉴얼 아이디어 공모’의 결과가 지난 10월 10일 발표됐다. 한국은행 앞 분수광장은 지역 주민과 인근 상권 이용객, 관광객이 유동하는 서울의 핵심적인 거점이다. 대상지는 조선시대 말부터 광장의 기능을 하기 시작했다. 일제식민지기에는 근대적 번화가로 발전하며 3.1운동 시위대와 일제 관헌의 격돌지가 되었고, 해방 후에는 뉴스의 거리, 유통과 상업의 중심지로 활기를 띠며 6월 민주항쟁의 대표적 장소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광장의 상당 부분은(38%) 1978년 이일영 작가에 의해 조성된 분수대가 차지하고 있으며 시설이 노후화되고 주 지역을 오가는 보행 동선이 단절되어 접근성이 떨어지는 교통섬으로 전락한 상태다. 서양의 역사주의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주변 건물들로 인해 대상지는 근대 건축의 풍경을 간직하고 있지만 광장 동쪽에는 10차선 도로(소공로)가, 북쪽에는 8차선 도로(남대문로)가 위치해 출퇴근 시간 외에도 교통량이 많다. 이뿐만 아니라 차량 소음과 매연으로 존재감을 잃은 공간이 되었다. 중구청과 신세계그룹은 이러한 문제에 공감하고 명동과 남대문을 잇는 새로운 관광 벨트를 만들고 인근 상권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분수광장 리뉴얼 사업을 합의했다. 2015년 6월 업무 협약을 맺어 신세계그룹이 개발하고 중구청에 기부하는 형태로 사업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중구청장 주관 하에 세 번의 전문가 자문위원회를 열어 사업의 전반적인 방향을 설정했으며 시민의 기대를 모으고 신선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자는 취지에서 ‘한국은행 앞 분수광장 리뉴얼 아이디어 공모’를 개최했다. 공모전에는 총 322팀이 작품을 접수해 경합을 벌였다. 이중 심사를 통해 최우수상 2팀, 우수상 2팀, 장려상 10팀을 선정했으며 공모전 홈페이지에서 시민들의 추천을 받아 우수상 1팀을 ‘시민추천상’으로 선정했다. 당초 대상과 최우수상을 각 1팀씩 선정할 계획이었으나 대상을 선정하지 않고 최우수상에 2팀을 선정하고 각 팀에 6천5백만 원의 상금을 수여했다. 이번 공모전에 출품된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향후 선정될 설계자의 전권 하에 분수광장 설계안이 도출될 예정이며, 2017년 하반기 완공을 목표로 리뉴얼 사업이 진행될 계획이다. 다음은 심사위원장 조경진의 심사평 전문이다. 한국은행 앞 분수광장 리뉴얼 아이디어 공모는 건축, 조경, 미술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와 일반인이 참여해 수준 높은 디자인을 제시했다. 한국은행 앞 분수광장에 대한 새롭고 흥미로운 상상을 공유했다는 점에서 이번 공모전은 깊은 의미를 가진다. 심사위원회는 논의를 거쳐 몇 가지 심사 기준을 도출했다. 첫째, 도시적 맥락과 장소성을 존중해야 한다. 둘째, 주변에 문화재가 있는 만큼 과도한 수직 요소를 지양하고 유연한 공간을 확보한다. 셋째, 공간에 물, 지형, 테크놀로지, 자연 등의 매력 요소를 도입하고, 넷째, 지상과 지하 공간을 연계한다. 그리고 아이디어 공모전 정신에 부합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참신한 디자인을 선정하고자 했다. 수상작 모두 실현 가능하고 특색 있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어, 향후 실제 설계에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총 322작품 가운데 최우수상 2점과 우수상 2점, 장려상 10점의 작품을 선정했다. 심사위원회는 대상을 수여하지 않는 대신, 최우수상 2점을 선정했다. 두 작품 모두 심사위원이 설정한 네 가지 심사 기준에 잘 부합하는 우수한 작품이었고, 우열을 판단하기보다 두 안의 장점을 존중하고자 했다. 두 작품의 광장은 변화하는 도시의 활동을 수용할 수 있도록, 공간을 비워 다양한 프로그램이 이루어지는 유연한 공간을 제안했다. ‘서울담경’은 미세한 물 높이 변화와 반사를 통해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는 여백의 광장을 제안했다. 시간과 계절에 따라 풍경과 용도가 변화하는 광장이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소리-광장’은 기존의 분수광장을 소리와 하늘을 품은 새로운 공간으로 재구성했다. 오목한 지형을 형성하면서 특별한 분위기의 위요된 공간을 연출했다. 다만 대지가 인근 지역의 지상과 지하 보행 네트워크가 수직적으로 만나는 지점임에도 이에 대한 고려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우수상 2점은 기존의 분수대의 높이를 조정하거나 반전해 새로운 외부 공간을 재구성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새로운 과거, 오래된 미래’는 분수광장을 외부 수공간과 선큰 광장으로 나누고, 지상과 지하를 연계하여 새로운 동선을 유도했고, ‘리버스드Reversed’는 과거의 분수대를 뒤집어 흔적을 이미지화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다. 이번 한국은행 앞 분수광장 리뉴얼 프로젝트는 민간과 공공이 협력하는 행사로 다른 사업과 차별성을 가지며 좋은 모델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과정에서 공모전은 시민들의 다양한 생각을 모으는 계기가 되었고, 천편일률적인 생각이 아니라 여러 관점에서 활용 방안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추후 실제 분수광장이 재조성 되었을 때 기존에 있던 근대 건축물과 잘 조화된 공간이 되길 기대해본다. 최우수상 서울담경 건축사사무소 제이비디 소리-광장 설종환, 고정석 우수상 리버스드Reversed 김영민, 송민원 새로운 과거, 오래된 미래 이여빈, 김종현, 심기화 우수상(시민추천상) 그 이상의 것 안에 송은아, 황지은, 장요한 장려상 광장거울 손주희 그때, 이곳 우지효, 차윤지, 최윤미 기억의 언덕이용훈, 백두산, 이승연, 최동인, 이채영 다원광장 AbCT, OURStudio 분수대-길이범희, Mario Vicente 시 더 올드 뱅크See The Old Bank 건축사사무소 공유 크로니클러Chronicler 김유재, 이철규 클라우드Cloud 신동하, 최상혁 튜브 시티Tube City 서영애, 김아연 하나의 길, 두 개의 광장배정한, 손은신, 이형관, 권영란, 신명진, 유지민
최우수상: 서울담경
한국은행 앞 분수광장은 지역 주민과 인근의 상권 이용객, 주변의 역사와 문화를 즐기려는 국내·외 관광객이 유동하는 서울의 핵심적 거점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은행 앞 분수광장은 그 이름과 장소적 의미에 걸맞은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넓게 비워져야 할 광장의 대부분을 분수대가 차지했지만, 교통 및 동선 체계의 변화에 따른 공간의 단절로 인해 이용자의 접근이 제한되어 광장에 분수대가 있는지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존재감이 희미해졌기 때문이다. 본 계획은 이미 광장 주변을 한국은행 화폐박물관(구 조선은행), SC 제일은행(구 제일은행 본점), 신세계백화점 본점 본관(구 미츠코시백화점) 등 문화재급 건축물들이 둘러싸고 있는 점에 주목했다. 광장을 본래의 모습으로 돌려놓아 비우고, 물은 그 장소가 지닌 의미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보조 수단이 되도록 설계했다. 이 광장은 때때로 하늘을 반사하고 우리의 모습을 비추며 살아온 역사를 보여줄 것이다. ...(중략)... *환경과조경344호(2016년12월호)수록본 일부
최우수상: 소리-광장
1919년 3월 1일, 조선은행(현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앞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던 시위대와 이를 가로막는 일제 관헌이 격돌한다. 10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행 앞 소리-광장은 한국 근대사 순간의 소리가 영원한 빛으로 드러나는 장소가 된다. 계획의 주안점 현재 한국은행 앞 사거리는 언제나 버스와 차들이 벽처럼 줄지어 서 있다. 광장은 시끄럽고 광장과 연계될 만한 시설은 적다. 한편 시선을 위로 올리면 서울의 주요 건축물들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우리는 과거의 소리와 현재의 소리에 주목했다. 대한 독립을 외쳤던 과거의 소리가 있었기에 오늘날 활기찬 서울의 소리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소리-광장은 서울 도심 속 교통 소음, 아이들의 웃음소리, 군중의 소리 등 모든 소리를 매개체로 과거의 소리를 빛으로 재현한다. 한국은행에서 본 소리-광장은 하나의 그릇과 같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형태를 좇아 횡단보도를 건너 벌어진 틈으로 광장 내부로 접근한다. 신세계백화점 방향으로 광장이 최대한 열려 있어 백화점과 광장이 하나의 공간을 만든다. 또한 지하 상권에서 연계되는 진입로는 공간에 활력을 더한다. 소리-광장은 과거 원형 극장과 같이 객석이 깊게 배치된 형태를 통해 음향 효과를 만들어 낸다. ...(중략)... *환경과조경344호(2016년12월호)수록본 일부
우수상: 리버스드
도시적 풍경 19세기 말 20세기 초, 근대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세상이 열리던 무렵, 그 변화의 증거는 도시적 풍경이었다. 그리고 경험해보지 못한 속도의 감각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도래하지 않은 지점들을 도시에 곳곳에 만들어냈다. 한국은행 앞 분수광장이 바로 그러한 지점이다. 이 지점의 도시적 풍경은 너무나 명백했지만 역설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규정되지 않은 회색의 공간은 오로지 속도를 위한 회색의 공간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광장은 단지 지나가는 장소였고 움직임을 분절하기 위한 도구였다. 사람에게 돌아갔지만 단 한 번도 사람을 위한 장소가 되지 못했던 이곳은 여전히 움츠린 회색의 닫힌 섬이다. 그 두터운 껍질을 깨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단 하나, 반전反轉이다. 남근적 상징에서 내재된 상징으로 반전은 전복顚覆과는 다르다. 반전은 파괴를 수반하지 않으며 오히려 기성旣成을 간직한다. 거울의 뒤집힌 상을 통해서 실상이 파악되듯 반전은 다른 면을 드러냄으로써 그 본질을 열어준다. 새로운 광장을 위해 세 개의 반전을 계획했다. 먼저 광장에 군림하는 유일한 기호인 분수대를 반전시킨다. 시각화된 남근으로서 기념비, 그것이 광장의 전부가 되었다. 1970년대의 가치를 긍정하더라도 유신의 표상에서 섬뜩한 망령을 목도한다. 유효한 과거의 가치는 내재되어야 한다. 그래서 상징은 뒤집어져 자궁과도 같은 공간으로 내화되고 그 자리를 모두에게 내어준다. 숨겨진 역동적 지하의 세계에 마련된 신전은 과거를 새로운 상징으로 치환하고, 지상은 살아있는 잠재성을 위한 표면이 된다. ...(중략)... *환경과조경344호(2016년12월호)수록본 일부
우수상: 새로운 과거, 오래된 미래
서울은 개항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약 140년 동안 유례없는 변화를 겪은 도시다. 서울에서도 번영의 중심에 있던 중구에 위치한 공모 대상지는 개항기와 일제 시대, 한국 전쟁으로 이어지는 한국 근현대사의 사건들을 직격으로 마주한 곳이다. 이런 역사의 흐름에 따라 이 대지에는 자연스럽게 많은 변화가 있었고 역사의 켜가 쌓여 왔다. 한국은행 앞 분수광장은 시간이 흐르며 필연적으로 물리적, 기능적 변화를 모두 수용해야 했기 때문에 그만큼 존재감을 잃은 공간이 되었다. 대상지를 분석하면서 ‘변하지 않는 가치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찾은 답은 바로 ‘사람’에 있었다. 광장을 지나며 시대를 생각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 자체가 변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을 비추어 사람들이 생각에 잠길 수 있게 하는 수변 공간을 제안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44호(2016년12월호)수록본 일부
우수상(시민추천상): 그 이상의 것 안에
광장은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 본 대상지 역시 예로부터 사람의 왕래가 많고 주변으로부터 접근이 집중되는 교통의 중심지이자 느림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발전하고 산업이 고도화되는 과정을 겪으면서 어느새 사람보다는 차량 중심의 공간이 되었으며 홀로 갇힌 외로운 교통섬이 되어버렸다. 한국은행, 명동, 남대문시장으로부터의 동선이 집중되는 공간으로서 잠재력이 큰 공간이나 소극적인 지하 연결 통로에 의해 접근이 단절되고 시너지가 제한적인 상황이다. 게다가 현재는 광장의 절반에 가까운 면적을 분수대가 차지하고 있다. 휴먼 스케일을 고려하지 않은 거대한 분수대는 보행 공간을 위축시키고 보행자와 관광객의 안전마저 위협할 지경에 이르렀다. 역사적 가치가 높은 건축물과 시설들로 둘러싸인 독특한 삼각형의 광장은 분수대에 의해 가려져 온전한 입면을 인식할 수 없으며 서울의 상징 중의 하나인 남산타워도 가리고 있다. 이에 기존에 있는 분수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가려져 있던 경관축을 되살려 광장 본연의 의미를 재정의한 계획을 제안한다. ...(중략)... *환경과조경344호(2016년12월호)수록본 일부
인도 허왕후 기념공원 설계공모전
설계공모 경과와 심사평 인도 아요디아 시에 조성된 허왕후 기념공원이 새롭게 단장한다. 현재 아요디아 시에 있는 허왕후 기념공원은 가락중앙종친회가 약 2,000년 전 김수로왕과 혼인하며 가락국의 왕비가 된 허왕후를 기리기 위해 1억 원을 들여 조성한 것이다. 매년 가락중앙종친회와 한국의 전통 예술 문화를 알리는 공연 예술단이 참여해 한국 전통 제례 형식의 추모제를 기념공원에서 열고 있다. 하지만 행사가 없는 대부분의 기간에는 공원이 폐쇄되어 주민들의 이용이 제한되고 담으로 둘러싸여 주변 지역과 소통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또한 공원 인근에는 버스 터미널, 문화·상업 시설, 소규모 신전들이 있어 주민, 순례자, 관광객들이 유동하는 중심지로 거듭날 잠재력을 지니고 있지만 1990년대 이후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 사이에 유혈 분쟁이 끊이지 않아 종교 분쟁지로 인식되고 있다. 지난 2015년 박근혜 대통령의 초청으로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 총리가 방한하면서 성사된 한-인 정상회담 이후, 문화·인적 교류를 강화하기 위해 허왕후 기념공원을 새롭게 조성하는 사업이 한국과 인도 공동으로 추진되었다. 한국과 인도의 역사적 교류를 재조명할 수 있도록 기존의 허왕후 기념공원을 재정비하고 인근의 도시 조직, 상업·문화 시설과 연계해 지역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이번 공모전의 목표다. 9월 26일부터 28일까지 3일간 진행된 심사를 통해 당선작 1점, 2등작 1점, 3등작 1점, 가작 2점이 선정되었다. 당선작 ‘시간과 공간을 잇는 풍경’을 설계한 동심원 조경기술사사무소와 건축사사무소 모나드는 10월부터 기본·실시설계를 시행해 내년 6월 인도 현지에서 착공할 예정이다. 다음은 심사위원장 배병길의 심사평 전문이다. 인도 허왕후 기념공원 조성사업은 2015년 한-인 정상회담 결과 양국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프로젝트로 허왕후를 기념함과 동시에 양국의 문화·인적 교류를 활성화하고 대상지가 위치한 인도의 아요디아 지역 발전의 마중물이 될 수 있는 한국과 인도 양국에 의미 있는 사업이다. 심사위원은 공모전의 설계 지침을 기본으로 기존 도시 구조와의 맥락적 관계, 땅의 장소적 의미, 형상과 공간성, 기념 공원으로서의 상징성, 인도 문화와 장소에 관련된 특성, 문화의 전이와 한국사적 의의, 새로운 가능성을 담은 디자인, 그리고 인간(이용자, 방문자)의 행위와 동선의 흐름 등을 전반적으로 검토·분석하여 심사를 진행했다. 토론과 투표로 구성된 3단계의 심사를 거친 후 1등작과 2, 3등작을 우선 확정했으며, 투표 결과를 바탕으로 토론을 통해 가작을 선정했다. 본 공모전 심사에는 인도 우타르 프라데시 주 정부의 차관인 나브넷 세갈Navneet Sehgal이 참관인으로 참석했으며, 당선작을 선정한 후 심사위원들과 함께 본 사업을 차질 없이 진행하기 위해 당선작에서 보완되어야 할 사항을 당선안의 설계 의도와 인도 현지의 여러 가지 여건을고려하여 토론했다. 당선작은 한국과 인도 문화의 조화를 위한 노력이 돋보이는 안이었다. 기존 가트ghat를 강변 방향으로 이동하여 기존 기념 공간과 연계된 새로운 공공 공간을 확보했으며, 인도의 전통적인 공간 요소를 도입하여 기존 허왕후 기념비와 공존하면서도 대비되는 넓은 기념 광장을 형성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또한 시설 계획을 절제하여 최소한의 개입으로 허왕후 기념공원 대상지인 사라유 강변의 자연 경관을 유지했다는 점이 특징이었다. 그리고 대상지 내의 토속적인 기존 건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새로운 시설 계획은 지역성을 고려하면서도 새로운 디자인으로 대비를 꾀하여 한국인도 문화의 병존을 미래지향적으로 고려한 적절한 해법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새로운 물길은 공원 조성 효과에 비해 토목 비용이 과도하게 발생할 수 있으므로 면밀한 예산 검토가 선행되어야 하며, 김수로왕과 허황옥 공주가 도착했던 망산도를 정자와 돌담으로 이미지화 한 것 역시 보완이 필요할 것으로 평가했다. 허왕후 기념공원을 위한 다양한 접근 방법과 전략을 보여준 모든 참가자의 노력과 수고에 감사하며, 한국과 인도의 모든 관계자가 힘을 합쳐 프로젝트를 잘 진행하여 좋은 선례를 남겨줄 것을 당부한다. 1등작 시간과 공간을 잇는 풍경 Timeless Story, Borderless Scenery, Priceless Memory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 건축사사무소 모나드 2등작 2,000년의 여행, 4,500킬로미터의 만남 Journey of 2,000 Years, Reunion of 4,500 Kilometers 빌딩워크샵건축사사무소, 우물우물, 엑토종합건축사사무소, factory L 3등작 그녀의 뜰 Her(Hur) Yard 풍경이엔지, MW'D.lab, 서인룡 가작 하늘이 맺어준 인연 Made in Heaven 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 도시재생연구소_더 플레이스 가작 오작교 Ojakgyo-Eternal Friendship Bridge 예쓸디자인건축사사무소, 하명종
1등작: 시간과 공간을 잇는 풍경
허왕후 기념공원은 상징 또는 재현을 통해 기념성을 구현할 뿐만 아니라, 현대 도시에 필요한 공원의 순기능을 발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대상지는 아요디아Ayodhya 시의 중심가에서 조금은 벗어난 곳에 있지만 사라유Sarayu 강에 인접하여 많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2015년 한-인도 정상회담 결과, 양국의 문화·인적 교류를 강화하기 위해 공동으로 추진한 본 프로젝트는 대상지가 가진 가능성을 활용해 허왕후를 기리고 도시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한다. 이 공원을 통해 한국과 인도 양국의 외교 관계가 더욱 긴밀하게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설계 과정에서 다음의 세 가지 개념에 주안점을 두었다. ...(중략)... *환경과조경344호(2016년12월호)수록본 일부
2등작: 2,000년의 여행, 4,500킬로미터의 만남
2,000년 전 인도 아유타국의 허왕후가 4,500km의 바닷길을 건너 성사시킨 가야와의 교류는 오랫동안 이어진 한국-인도 교류의 시원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이를 기억하기 위해 아요디아Ayodhya 북쪽의 사라유Sarayu 강변에 자리한 대상지에서 아요디아의 역사 경관을 돌아보며 김해로 향하는 길을 만든다. 아요디아는 고대 코살라 왕국의 수도이자 힌두교의 라마 왕이 탄생한 곳이다. 종교·문화적으로 상징적인 지역일 뿐만 아니라 빼어난 역사 경관을 지니고 있어 매년 많은 순례자가 방문하고 있다. 단순한 교역이 아니라 문화를 주고받았던 역사를 담을 수 있도록 기념비적 건축물 대신 현지인의 삶 속에 녹아들어 역사와 현재를 연결하고 안식처가 되는 공원을 조성한다. ...(중략)... *환경과조경344호(2016년12월호)수록본 일부
3등작: 그녀의 뜰
허왕후는 고향의 자연을 그리워했고, 가야의 자연과 더불어 살았다. 사라유Sarayu 강변의 공원에 가야와 인도의 자연을 담은 ‘그녀의 뜰’을 만든다. 뜰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은 허왕후를 기억하게 한다. 이로써 뜰은 허왕후를 기억하고 두 시대의 자연을 체험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공간이 된다. 대상지는 아요디야Ayodhya의 사라유 강변 퇴적토가 쌓여 만들어진 삼각형의 부지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종교 의식, 농업, 어업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는 모든 활동이 강의 경계와 가트ghat에서 이루어지는 점에 주목했다. 사람들이 땅을 좀 더 편리하고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강변에 시민을 위한 수변 공원의 축을 형성한다.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기존의 허왕후 기념 공간에서는 누구도 그녀를 기억하지 않았다. 허왕후를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는 연속된 시퀀스가 필요하다. 강으로 다가가게 만드는 것, 가야의 자연을 즐기게 하는 것이 그녀를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44호(2016년12월호)수록본 일부
[공간 공감] 두 가지 물음
‘당신이 좋아하는 공간은 어디인가’라는 물음을 던지며 시작된 ‘공간 공감’이 총 36회에 걸친 연재를 마무리하는 좌담회를 가졌다. 이미 작년 겨울에 ‘좋은 공간감은 무엇인가’란 주제로 한 차례 좌담회를 개최(본지 2015년 12월호 수록)했기에, 이번 좌담회는 의도적으로 묵직한 주제에서 좀 벗어나 보고자 했다. 그래서 선택한 방식은 두 가지 질문 던지기. 지난 11월 11일, 본지 사무실에 모인 필자들은 테이블 위에 놓인 지금까지의 연재물을 살펴보며 편집진이 준비한 두 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지난 답사를 반추하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과정에서 첫 회의 프롤로그 이후 필자들이 함께 둘러 본 ‘이태원(상업 시설 건축물 외부 공간), 무교공원, 성곡미술관, 대학로, 서울시립대학교 캠퍼스, 연남교 교차로, 메리츠타워, 책테마파크, 백남준아트센터, 지앤아트스페이스, 웅진싱크빅 옥상정원, 파주 환경과조경 사옥(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서초동 삼성출판사 공개공지, 합천영상테마파크, 서울대학교 미술관, 양재동 꽃시장, 석파정, 알토사옥 옥상정원, 창덕궁 후원, 박수근미술관, 명동성당, 홍익대학교 중앙광장, 알뜨르비행장, 제주 주택, 제주도립미술관, 부르델 정원, 국회의사당 사랑재, 커먼그라운드, 아파트 외부 공간, 정독도서관, 서석지, 연남동 골목길, 화담숲’ 등 서른 세 곳의 답사지가 때로는 주연으로, 때론 조연으로 등장했다. 프롤로그와 작년 겨울의 좌담회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총 서른 세 곳을 둘러보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과 마무리하는 소회를 들려준다면? 정욱주:서른 세 곳을 답사하며 3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 모임은 ‘작은 공간 연구회’라는 이름으로 시작됐다. 도시를 빛내주는 보석 같은 공간을 답사하고 다섯 명의 조경가가 토론을 벌여 발전의 기회로 삼자는 구상이었다. 절묘한 시점에 『환경과조경』에 꼭지가 만들어져서 ‘공간 공감’이라는 이름으로 공식적인 활동을 펼칠 수 있었다. 매번 답사 장소를 정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우리 도시에 보석 같은 공간이 넘칠 정도로 많지 않다는 방증일 수 있고, 무엇이 좋은 장소인가에 대한 물음에 쉽게 대답하지 못한 이유일 수도 있겠다. 합의를 통해 선정한 장소들은 소위 대중이 ‘조경이 잘 되었다’라고 인식하는 공간과 일치하지는 않았다. 연남교 교차로나 양재동 꽃시장은 조경이라는 단어와 연결 짓기 힘든, 다른 룰에 의해 발생한 곳이었고, 홍익대학교, 서울시립대학교, 창덕궁은 시간의 힘을 빌려 자연이 연출을 맡은 공간이었다. 때로는 커먼그라운드나 합천영상테마파크처럼 비일상적인 장소도 선정되었다. 공간은 다양한 방식으로 기억에 남는다. 그중 다양한 생각을 일으키는 차원에서는 제주의 알뜨르비행장을 꼽을 수 있다. 경관의 독특함, 거칠지만 매력 있는 질감, 다음 세대가 다듬어 활용할 수 있는 잠재력 등 장소와 설계자가 교감할 수 있는 것들이 풍부한 공간이라 생각됐다. 박승진:무엇인가를 정확히 기억하는 것은 때때로 힘든 일이다. 시간도 흐르고 나도 흐르고. 그래서인지 세월의 속도를 체감하는 것은 정작 어떤 시점이 한참 지나서야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토론의 질문이 무엇이었던가. 개인 사정으로 답사를 함께 하지 못한 몇몇 곳들을 제외하더라도 대략 서른 곳쯤? 그중에서 어느 한둘을 골라 무언가를 반추하는 것도 쉽지 않다. 개별 장소에 대한 공동 필자들의 리뷰는 그간의 글에서 충분히 피력되었을 터. 다만 연재를 종료하면서 아쉬운 점을 들자면, 독자들의 리뷰를 답사 현장에서 함께 토론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는 점이다. 먼 곳에 있거나 특별한 허락을 받아야 방문이 가능한 소수의 장소는 빼더라도 홍익대학교와 서울시립대학교, 서울대학교 같은 대학 캠퍼스를 비롯해 명동성당, 연남동 골목길 같은 곳들 말이다. 나중에라도 특별 이벤트로 기획을 추진해 볼 것을 제안한다. ...(중략)... *환경과조경344호(2016년12월호)수록본 일부 이 연재를 위해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 김용택 소장,디자인 스튜디오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대학교 정욱주 교수와 서울시립대학교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하여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이들은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며, 2014년1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유쾌한 답사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재료와 디테일] 실천이다
상징 방배역을 조금 지나 서쪽으로 걸으면 작은 건물들이 나온다. 그중에서도 별 특징이 없는 건물이 하나 있다. 기억에 오래 남지 않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몹시 평범한 건물이다. 어느 날 무심코 그 곁을 지나다 생경한 경험을 했다. 튜브형 알약처럼 생긴 볼라드형 조명 때문이었다. 왜 저렇게 만들었을까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건물 안을 들여다봤다. 제약 회사 건물이다. ‘아!’ 하는 작은 탄식과 함께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 잠시 멍하게 서 있었다.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공간의 정수가 잘 표현된 곳을 보면 가끔 질투와 무력감에 작은 충격을 받곤 한다. 알약처럼 생긴 작은 조명은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함은 물론이고 기능적인 부분도 간결하게 처리하고 있다. 합목적적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장치라고 생각했다. 합목적적, 늘 염두에 두고 있지만 실천하기란 얼마나 힘든 단어인가. 실천하기 전에 먼저 고안되어야 하는데 그 디자인 과정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 일인가 말이다. 최근 아파트 설계 의뢰를 받았다. 아주 재수 좋게도(?).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첫 번째 일은 답사를 가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 정도 질의 공간을 원하니 비슷한 곳에 가서 보고 그처럼 해달라는 것이다. 강남 요충지의 어마어마한 땅값을 자랑하는 몇 곳을 다녀왔다. 대단히 놀라고 또 놀랐다. 아파트라곤 동네 뒤편에 있는 단지 몇 곳밖에 가보지 않은 내게 그곳은 가히 천국의 모습 같았다. 큰 나무들로 이루어져 숲처럼 보이는 녹지, 고급스러운 시설물, 놀랍도록 정리되어 배치된 공간 등 하나같이 멋진 모습에 두 눈이 너무 바삐 움직여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그런데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석가산처럼 생긴 폭포였다. 현무암을 얼기설기 쌓아 언덕을 만든 다음 사이사이에 작은 나무와 초화를 심어 놓았다. 꼭대기에서는 물이 떨어져 개울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마치 고미술관에서 본 산수화를 연출한 것 같았다. 불편했다. 이렇게 멋진 시설물이 왜 굳이 이곳에 놓여야 할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재현의 방식이나 구조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 언급할 수 없지만, 위치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다. 이곳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답사지에서 이런 시설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치 퍼걸러나 벤치 같은 시설물의 한 종류인 것처럼 답사지의 중심부에 놓여 있었다. 유행처럼 번진 것일 거다. 특화라는 방식이 만들어낸 공식 중 하나에 속하는 듯했고, 과하게 느껴졌다. 단출한 상징으로 해결할 순 없었을까. 진정 산수를 옮겨오고 싶었다면 말이다. 나는 장소에는 그에 가장 적합한 상징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중략)... *환경과조경344호(2016년12월호)수록본 일부 이대영은 여기저기 살피고 유심히 바라보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으며, 작고 검소하며 평범한 조경설계를 추구하고 있다. 영남대학교에서 공부했고 우대기술단과 씨토포스(CTOPOS)에서 조경의 기초를 배웠다. 조경설계사무소 스튜디오엘(STUDIO L)을 시작하고 작은 작업들을 하고 있다.www.studio89.co.kr
제19회 올해의 조경인
본지는 한 해 동안 조경 분야의 발전에 크게 공헌한 분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난 1998년부터 본지 독자들의 추천을 바탕으로 매년 연말 ‘올해의 조경인’을 발굴·선정하고 있다. 올해로 19회를 맞이한 ‘올해의 조경인’은 본지 홈페이지를 통해 공고 후 이메일, 팩스, 우편 등을 통해 독자와 관련단체, 업체로부터 후보 추천을 받는다. 수상자는 별도의 ‘올해의 조경인 선정위원회(조경 관련 단체장+역대 올해의 조경인 수상자+본지 자문위원)’에서 주요 공적을 토대로 선정한다. 제19회 ‘올해의 조경인’은 지난 10월 13일부터 11월 7일까지 후보 추천을 받았으며, 11월 8일 ‘올해의 조경인 선정위원회’를 개최하여, 최종 수상자로 학술분야에 김한배 교수(서울시립대학교), 산업분야에 김요섭 대표(디자인파크개발), 정책분야에 이재준 교수(아주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특별상에 정주현 이사장(환경조경발전재단)을 선정했다. ‘올해의 조경인 선정위원회’에는 김남춘 교수(단국대학교, 한국조경학회 수석부회장, 15회 특별상), 김재준 회장(대한전문건설협회 조경식재공사업협의회, 방림이엘씨 대표), 신경준 대표(장원조경, 전 한국환경계획ㆍ조성협회 회장, 18회 산업분야), 양덕석 처장(K-water 공간환경처, 공공기관조경협의회 회장), 이창환 교수(상지영서대학교, 한국전통조경학회 회장, 12회 특별상), 임승빈 원장(환경조경나눔연구원, 7회 학술분야), 조세환 교수(한양대학교, 13회 학술분야), 황용득 회장(한국조경사회, 동인조경 마당 대표)이 참여했다. 송년호 특집으로 수상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간의 주요 공적과 수상 소감을 들어보았다. 학술분야 김한배 _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산업분야 김요섭 _ 디자인파크개발 대표 정책분야 이재준 _ 아주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초빙교수 특 별 상 정주현 _ 환경조경발전재단 이사장
제19회 올해의 조경인상 학술부문 _ 김한배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과일이 익어서 떨어지는 단계에 회장이 되었을 뿐이다. 기쁘고 영광스럽다.” 지난 2014년 한국조경학회장으로서 조경 분야 육성과 발전의 토대가 될 ‘조경진흥법’ 제정을 확정 지은 김한배 교수의 말이다. 그는 한국조경학회가 2007년부터 추진해온 조경진흥법 제정에 힘을 보태고자 조경의 정체성을 천명하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한국조경헌장’을 제정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현재는 한국경관학회장으로 일하며 한국 고유의 국토 경관을 만들기 위한 경관 관리의 원칙을 담은 ‘대한민국 국토경관헌장’의 제정을 추진 중이다. 또한 한국농어촌공사와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해양수산부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조경 분야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중략)... *환경과조경344호(2016년12월호)수록본 일부
제19회 올해의조경인상 산업부문 _김요섭 디자인파크개발 대표
김요섭 대표는 2000년대 초 야외운동기구를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한 장본인이다. 이후에도 자가발전형 체육 시설, 물놀이형 놀이 시설, 캠핑하우스, 맞춤형 복합운동기구 등을 차례로 출시하며 시설물 유행을 선도하는 트렌드 세터로 입지를 굳혔다. 10년간 문을 두드린 해외 시장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다. 올해 1월 제52회 무역의 날 행사에서 ‘백만불 수출의 탑’을 받으며 신시장 개척의 노력을 인정받았다. 놀이시설·조경자재협회의 회장으로서 그는 지난해 공동 브랜드 ‘알론Allon’을 조달청 ‘우수조달 공동조달상표 물품’에 등록시키며, 중소 놀이 시설 업체의 판로를 넓히는 데 공을 세웠다. 김 대표는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이 받았던 상을 받게 되어 영광이지만 어깨는 더 무거워졌다”며 ‘올해의 조경인’ 산업분야 수상 소감을 전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44호(2016년12월호)수록본 일부
제19회 올해의조경인상 정책부문 _이재준 아주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초빙교수
“말에 책임을 지고 싶었다.” 대한주택공사 주택연구소와 협성대학교 도시공학과에서 20여 년간 연구자로, 또 경실련 도시개혁센터에서 10년 넘게 시민운동가로 활동했던 이재준 교수가 수원시 제2부시장을 맡으며 행정가로 변신한 이유에 대한 답변이다. 연구하며 주장했던 내용을 몸소 구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는 지난 해 5년간의 부시장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올해는 국회의원 후보 경선에 참가해 정치에도 도전장을 낸 바 있다. 현재는 아주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초빙교수를 역임하며 그가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실천해 왔던 ‘시민 참여’와 ‘거버넌스’에 대해 글을 쓰며 강의하고 여러 지자체에 자문하고 있다. 이재준 교수는 “조경인의 한 사람으로서 정책적인 노력에 좀 더 매진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겠다”며 ‘올해의 조경인’ 정책분야 수상 소감을 밝혔다....(중략)... *환경과조경344호(2016년12월호)수록본 일부
제19회 올해의 조경인 특별상 _ 정주현 환경조경발전재단 이사장
조경계에서 정주현 이사장은 업계, 학계, 관계에 두루 발이 넓은 행동파로 유명하다. 동명기술공단에서 20여 년간 근무하며 청계천 복원 사업, 서울대공원 재조성 계획 등에 참여해 커리어를 쌓았으며 2012년, 개인 설계사무소인 경관제작소 외연을 열고 현재까지 꾸려나가고 있다. 특히 최근 4년간은 그의 조경 인생에서 가장 바쁜 시기였다. 2013년, 한국조경사회 17대 회장에 취임해 2년의 재임 기간 동안 조경 업계의 권익을 보장하고 분야를 홍보하는 데 힘썼으며, 2015년부터는 환경조경발전재단 7대 이사장으로서 조경진흥센터 설립과 이를 위한 모금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정주현 이사장은 수상 소식에 “그동안 일복만 많고 상복이 없었는데 올해의 조경인 상을 받게 되어 굉장한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앞으로 이 상의 명예에 걸맞게 긍지를 갖고 더 활발한 활동을 펼쳐나가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중략)... *환경과조경344호(2016년12월호)수록본 일부
[그들이 설계하는 법] 행복한 설계가
첫 회의 글을 쓰기 시작할 땐 뜨거운 한여름의 끄트머리를 지나고 있었는데 어느새 겨울의 문턱에 접어들었다. 집 앞의 숲도 이미 잎을 다 떨어뜨리고 마당엔 낙엽이 쌓여 간다. 해 뜰 무렵 창밖에 드리운 옅은 붉은 빛으로 변한 나뭇잎들은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계속 반복되는 풍경, 당연한 듯 스치는 풍경들이 너무나 소중한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내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작은 마당은 이전에 살던 아파트에서는 겪을 수 없는 경험을 하게 한다. 꽃이 피고 낙엽이 지는 풍경을 온몸으로 감각하게 하고 이는 내가 살아있음을, 살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그것도 아주 행복하게. 첫 번째 글을 쓸 때 골랐던 풍경화가 생각난다. 풍경에 감탄하며 그 모습을 스케치북에 옮기던 때에는 그 풍경이 왜 나를 끌어당겼는지 잘 몰랐다. 그저 너무나 인상적이라는 생각만 했을 뿐. 결국 그런 풍경이 우리가 늘 가까이하고 싶고 더불어 살고 싶어 하는 것임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내가 하는 일이 이해됐다. 이어진 두 번째 글에서는 내가 하는 일을 통해 조금씩 설계가로서 성장하는 이야기를 했다. 그저 멋진 공간을 만들기 바라는 설계가에서 조금씩 공간에 투영된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볼 줄 아는, 아직은 설익은 애송이 조경가로 성장한 나의 모습. 아직 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 바로 설계 작업의 일차적 환경인 디자인엘과 나와 함께 작업하는 설계가들에 대한 이야기다. 공감, 색깔 찾기 작년 새해에 2015년이 사무소를 시작한 지 십 년째 되는 해임을 깨닫고 무척 놀랐다. 벌써 십 년이라니. 급히 뭔가 해야 한다는 중압감으로 사무소의 설계가들과 함께 무엇을 할지를 의논해봤다. 다양하지는 않지만 연말에 십 주년 기념행사를 하자, 해외 답사를 하자, 책을 하나 내보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가 오갔다. 책은 다음 기회로 미뤘고, 조촐하게 직원들과 지난 십 년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고, 희망에 따라 두 팀으로 나눠 싱가포르와 뉴욕을 답사했다. 연말에 워크숍을 하며 나눈 마지막 다짐은 우리의 색깔을 찾자는 것이었다. 누구나 말하는 자기만의 색깔 찾기. 어쩌면 지금까지는 우리의 색깔을 드러내는 시간이라기보다 제자리를 찾고 사무소의 틀을 세우는 기간이 아니었을까. 이 생각 안에는 우리의 색깔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무언가를 해내지 못했다는 반성 또한 숨어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십 년은 우리의 색깔을 찾고 드러내는 시간으로 삼자는 이야기를 했다. 그 색깔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십 년 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설계에 임했다면 우리 나름의 색깔이 옅게라도 있었을 텐데, 왜 없다고 생각했을까. 혹 다른 것을 찾고 있지 않았을까? 설계가가 스스로 자신의 작품이 독특하지 않다고 인식한다는 것은 설계가가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중략)... 박준서는 ‘Link Landscape with Life’라는 모토로 디자인엘을 설립해운영하고 있는 조경 설계가다. 조경이란 근원적 삶의 터전으로서의 자연을 문화적으로 해석해 일상에 녹여 내는 행위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에서 조경 설계의 사회적 역할을 바로 세우기를 바라고, 지어지는 설계를 실천하고자 한다.
[조경의 경제학] 경관 시장의 오픈을 위한 조건
우리에게 경관을 향유할 권리가 있는가? 경관을 향유하는 모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기차를 타고 가다 창밖을 내다보거나 등산을 하다 산 아래를 굽어보는 것과 같은 일회적인 향유다. 둘째는 주택의 거실이나 카페의 창가 자리에서 경치를 즐기는 것과 같은 지속적인 향유다. 전자의 경우 사실상 향유 행위를 방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굳이 권리를 따질 실익이 크지 않다. 그에 비해 후자의 경우는 우리가 소유하거나 점유한 조망점과 관계되고, 타인에 의해 방해받기 쉽고, 그 대부분이 비가역적이라는 점에서 권리의 문제가 첨예하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해 보자. 자신이 소유하거나 점유한 조망점에서 경관을 지속적으로 향유하는 것은 법적 권리로서 보호받고 있는가? 멀리 아름다운 산이 내다보이는 당신의 집 앞에 고층 아파트가 건설 중이라고 상상해 보자. 이 집은 당신의 직장에서 가깝지도 않고, 주변에 극장이나 할인점도 없고, 걸어서 갈 수 있는 전철역도 없다. 당신은 그 모든 불편을 산이라는 경관으로 보상받으며 행복하게 살아왔다. 그런데 그 행복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당신은 행복을 지킬 수 있을까? 당신의 ‘내다봄’은 ‘권리’로서 보호받을 수 있을까? 개발 밀도가 높은 도시의 경우, 새 건물이 옛 건물을 가려서 발생하는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그중 일부는 새 건물의 권리가 인정되는 방향으로, 또 일부는 옛 건물의 권리가 인정되는 방향으로 결말이 나고 있다. 새 건물의 건축주가 갖는 권리는 개발권이다. 도시계획으로 정해진 범위 내에서 자신의 땅을 원하는 대로 개발할 수 있는 권리는 법에 의해 보호받는다. 반면 옛 건물의 소유자가 갖는 권리는 다소 애매하다. 무엇이 보호되는지 명확하지 않고, 그것을 다루는 법이 무엇인지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건물의 건축주가 원하는 높이만큼 건축하지 못하게 하거나 옛 건물의 소유자에게 금전적인 보상을 하게 하는 판결이 간혹 내려지는 것을 보면, ‘내다봄’에 대해서도 권리가 인정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법원의 판례를 보면 ‘조망권’이라는 말이 분명히 등장한다. ‘조망’이라는 행위 또는 상태 뒤에 ‘권權’이라는 글자가 붙은 이 단어는 마치 우리에게 ‘원하는 경관을 내다볼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나 실제로 조망권이 인정되어 옛 건물의 소유자가 조망을 지키거나 그것을 잃는 대가로 금전적 보상을 받은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한 판결의 대부분은 조망권이 아닌 ‘일조권’을 인정한 결과다. 조망권과 일조권은 모두 헌법에서 보장한 ‘환경권’에 근거한 권리다. 조망권은 안에서 밖으로 내다보는 권리고, 일조권은 (태양 광선을) 밖에서 안으로 받아들이는 권리다.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나라의 경우 일조권은 인정하는 반면 조망권에 대해서는 매우 인색하다. 아마도 일조권이 침해당했는지 여부는 (비교적)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반면, 조망권의 침해 여부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결국 조망권은 아직 법학자들 사이에서 이야기되는 개념적인 단어에 가깝다. ...(중략)... *환경과조경344호(2016년12월호)수록본 일부 민성훈은1994년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조경설계 서안에서2년간 일했다.그 후 경영학(석사)과 부동산학(박사)을 공부하고 개발,금융,투자 등 부동산 분야에서 일했다. 2012년 수원대학교로 직장을 옮기기 전까지 가장 오래 가졌던 직업은 부동산 펀드매니저다.
[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멀티 코딩
#99 라 빌레트 설계공모 2015년 1월 14일 파리의 필하모니가 화려하게 오픈했다. 스타 건축가 장 누벨이 디자인한 것으로 마치 은빛 비늘의 용이 꿈틀거리는 것 같은 환상적인 건물이다. 그런데 필하모니답게 샹젤리제 거리에 근사하게 자리 잡은 것이 아니라 도시 북서쪽 외곽의 라 빌레트 공원 가장자리에 건설되었다. 공원 남동쪽에는 ‘음악 도시Cité de la musique’가 한 구간을 모두 차지하고 있다. 1995년에 콘서트홀, 야외 음악당, 악기 박물관, 전시관, 아틀리에, 문서 보관소 등이 포함된 복합 건축을 세운 후 그 옆에 필하모니를 덧붙임으로써 음악 도시가 완성되었고 이와 더불어 라 빌레트 공원도 완성을 보았다.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30년이 넘어 일단락 지어진 것이다. 무슨 뜻일까. 어째서 음악 도시의 완성이 공원의 완성일까. 그건 라 빌레트 공원이 처음부터 ‘공원 도시urban park’로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urban park’를 ‘도시 공원’이 아니라 ‘공원 도시’라 말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일반적으로 도시 공원이라고 하면 도시 속에 조성된 시민 공원 등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21세기를 위한 도시 공원’임을 표방하는 라 빌레트의 콘셉트와 그간의 발전 양상을 찬찬히 살펴보면 기존의 도시 공원이라는 개념을 라 빌레트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보다는 공원 도시가 어울린다. 공원이자 동시에 도시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공원인지 도시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 라 빌레트 공원이 들어선 부지는 19세기 말부터 오랫동안 도축 산업지로 사용했던 곳이었다. 1974년 폐쇄된 뒤 파리 시는 50헥타르가 넘는 넓은 땅에 대형 가축 경매장, 도축 시설, 가축병원, 관리 건물 등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이 부지를 공원으로 전환시킬 것을 결정했다. 녹색으로만 이루어진 공원이 아니라 기존의 건축물을 최대한 활용하여 여러 문화 시설을 공존하게 하자는 생각이었다. 1982년 5월 국제 설계공모가 시작되어 1983년 3월 스위스 출신의 뉴욕 건축가 베르나르 추미Bernard Tschumi의 출품작이 최종 선발되었다. 그리고 일이 터졌다. 당선작이 발표되자 조경계가 공황 상태에 빠져버린 것이다. 40여 개국에서 800여 점의 작품이 제출되었으며 그중에는 내로라하는 조경가들도 대거 섞여 있었다. 그럼에도 건축가의 작품이 선발되었다는 사실에 조경가들이 받은 충격이 작지 않았다. 물론 이 충격이 약이 되기는 했다. 그동안 잔디밭 양지쪽에 앉아서 끄덕끄덕 졸고 있던 조경계가 화들짝 깨어난 것이다. ...(중략)... *환경과조경344호(2016년12월호)수록본 일부 고정희는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유년의 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식물,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비롯 총 네 권의 정원·식물 책을 펴냈고,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네마 스케이프] 다가오는 것들
영화 ‘다가오는 것들’을 보고 난 후 한동안 ‘사라지는 것들’로 제목을 기억했다. 사라지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극장 옆 서점에 들러 제목이 가장 그럴 듯해 보이는 『이별한다는 것에 대하여』(채정호, 생각속의집, 2014)라는 책까지 샀다. 우리는 시련에 대처하는 여자 주인공의 패턴에 익숙하다. 지리멸렬한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을 떠나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거나, 더 깊은 우울의 늪에 빠지기도 한다. 한국 드라마가 가장 사랑하는 공식은 젊고 능력 있고 게다가 잘생긴 실땅님(발음에 주의)을 만나 성공하는 것이다. 이 영화의 아름다운 포스터만 본다면 아침 드라마의 익숙한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 기차역 플랫폼에서 중년 여자가 여행 가방을 든 채 잘생긴 남자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기차란 일상에서 떠남을 의미하는 대표적인 기표가 아닌가. 아! 젊은 남자와 새 출발하는 이야기구나. 그러나 영화의 해법은 예상을 벗어난다. 영화는 나탈리(이자벨 위페르 분)의 삶에서 중요한 존재나 의미들이 사라져 가는 상황을 그린다. 어머니는 죽고 남편은 떠나며 명예와 열정은 옅어진다. 종종걸음으로 바삐 걸어 다니는 그녀를 따라다니다 보면 사라져가는 것들만 보인다. 영화의 반어적 제목은 결국 무엇이 다가오는지를 관객 스스로 생각해보라는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나탈리는 어딘가 떠나긴 하지만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며, 옛 제자 파비앵(로만 코린카 분)을 만나긴 하지만 관객이 상상하는 ‘그런 사랑’은 아니다. 나탈리는 파리의 한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교사다. 같은 직업을 가진 남편과 두 자녀를 두었다. 우울증을 앓는 그녀의 어머니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하루에도 수없이 전화한다. 수업하던 중에도 자살 소동을 벌이고 있는 어머니에게 뛰어가야 한다. 남편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고백한 후 그녀를 떠난다. 출판사로부터는 오랫동안 참여해 온 철학 교과서 공동 필자에서 배제된다는 통보를 받는다. 이와 같은 상황에 대처하는 그녀의 방식은 책임감과 솔직함으로 요약할 수 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 어머니를 돌보며, 남편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선을 긋고 정리한다. 출판사의 통보를 듣고도 제자의 책이 누락되었는지부터 챙긴다. 해마다 휴가를 보낸 남편의 여름 별장 정원을 손질하다 어머니가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요양원으로 허겁지겁 달려간다. 그 와중에도 꽃 몇 송이를 챙기며 추억이 쌓인 바다 풍경을 바라보면서 조용히 눈물짓는다. 인간이 힘든 상황에서도 얼마나 존엄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우아한 장면이다 ...(중략)... *환경과조경344호(2016년12월호)수록본 일부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홍상수의 신작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을 보면서 등장인물보다 연남동과 경의선숲길에 더 눈길이 갔다. 오래된 골목과 새로운 공원, 그리고 그 사이를 메우는 사람들의이야기가 돋보이는 영화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어떻게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가.
미술 속 도시, 도시 속 미술
꿈틀거리는 용의 허리처럼 거칠지만 역동적으로 솟은 북한산 자락 아래 비늘처럼 낮게 흐르는 수많은 한옥 지붕을 보면서 ‘도시를 도시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작자 미상의 ‘한양 전경’에 묘사된 19세기 한양은 현대인들이 ‘도시’하면 떠올릴 그 흔한 고층 빌딩이나 번쩍이는 야경 불빛 없이도 건강한 ‘도시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다닥다닥 붙은 낮은 지붕 아래 펼쳐질 한양 시민들의 활기찬 삶을 거칠게 솟은 푸른 산등성이가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지난 10월 5일부터 11월 23일까지 개최한 특별전 ‘미술 속 도시, 도시 속 미술’은 조선시대 후기(18세기)부터 1930년대까지 우리 미술을 도시 문화의 맥락에서 살펴본 전시다. 국립중앙박물관이 2년간 공을 들여 준비한 전시로 총 204건 373점의 국내·외 작품을 소개했다. 전시는 총 4부(‘성문을 열다’, ‘사람들 도시에 매혹되다’, ‘미술, 도시의 감성을 펼치다’, ‘도시, 근대를 만나다’)로 구성되어 조선 후기부터 근대로 이어지는 도시민의 초상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중략)... *환경과조경344호(2016년12월호)수록본 일부
원생감각
모란, 새로운 아트 플랫폼 1990년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에 문을 연 모란미술관은 조각 전문 미술관으로, 한국 현대 조각의 향방을 모색하는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기획전을 열어왔다. 2015년 창립 25주년을 맞이한 모란미술관은 ‘모란, 아트 플랫폼Moran, the New Art Platform’이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내걸고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앞으로 모란미술관은 인근의 모란 묘원 공원으로 전시 공간을 넓히고, 조각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술 분야로의 확장을 모색할 예정이다. 그 첫 번째 프로젝트로 시행된 ‘모란 폴리 2015Moran Folly 2015’는 건축, 설치 미술, 조각의 결정체인 폴리를 다룬 국제 공모전이다. 홍선관 부관장의 말에 따르면 공모전은 폴리가 지닌 고유의 특성에 주목해 기획됐다. 그는 소품 하나에도 다양한 맥락이 혼재되어 있는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명확한 목적과 용도를 부정하는 폴리는 임시성, 탈목적성, 가변성이라는 고유한 특성으로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아무런 기능도 의미도 철학도 없어 보이는 폴리는 건축가에게 실험적인 도전을 가능케 하는 플랫폼이며 건축의 본질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보게 할 것이라며 공모전의 취지를 밝혔다....(중략)... *환경과조경344호(2016년12월호)수록본 일부
[편집자의 서재] 살인자, 화가, 그리고 후원자
2006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최후의 만찬’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영화가 개봉했다. 론 하워드 감독의 ‘다빈치 코드’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발생한 의문의 살인 사건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예술 작품 속의 비밀, 시체 주변에 남겨진 다잉 메시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비밀 단체, 전설 속에서나 볼 수 있던 성배 등 각종 흥미로운 요소로 흥행에 성공했다. 암호를 풀면 열리는 신비한 장치들은 현란한 액션 없이도 ‘인디아나 존스’나 ‘툼 레이더’를 떠올리게 했다. 게다가 허무맹랑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를 각종 자료로 뒷받침해 관객들을 실재와 허구를 넘나들며 영화에 몰입하게 했고, 이는 다빈치 코드의 원작 소설가 댄 브라운을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기까지 했다. 다빈치 코드의 중심에는 명화 최후의 만찬이 있다. 사실 다빈치 코드뿐만 아니라 여러 영화나 드라마가 명화를 재해석해왔다. 북구의 모나리자라 불리는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작품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속 소녀의 삶을 그린 동명의 영화나 조선의 풍속화가 신윤복이 사실 ‘미인도’ 속 여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을 담은 드라마 ‘바람의 화원’ 등. 그림은 화가에 의해 포착되어 멈춰진 장면이다. 앞뒤 맥락을 알 수 없어 자유로운 해석이 가능하고, 이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래서인지 유독 명화를 소재로 한 책에는 의외의 전개로 재미를 주는 작품이 많았고, ‘르네상스 명화에 숨겨진 살인사건’이라는 문구를 표지에 내건 『살인자, 화가, 그리고 후원자』 역시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스토리로 나를 이끌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반대였다. 『살인자, 화가, 그리고 후원자』는 오히려 설득력 있는 역사적 자료를 제시해 명화에 숨겨진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책이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다빈치 코드의 로버트 랭던 교수는 없지만 숨겨진 사건을 풀 힌트를 제공하며 나를 따라다니는 해설가가 있다. 초반에는 지면을 가득 메운 사진과 예시들이 버겁게 느껴졌지만, 어느새 책장의 앞뒤를 넘겨가며 자료를 살피고 사건의 추적에 동참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살인자, 화가, 그리고 후원자』가 다룬 명화 ‘채찍질’은 회화의 군주라 칭송받던 삐에로 델라 프란체스까의 작품이다. 그림은 크게 좌우로 나뉜다. 왼편에서는 세 명의 남자가 기둥에 묶인 예수를 채찍질하고 있다. 그러나 채찍질이라는 잔인한 단어와는 거리가 먼 낮은 채도의 색이 그림의 전반을 차지하고 있어 평화롭게 느껴진다. 고문당하고 있는 예수의 몸에는 피는 물론이고 작은 생채기 하나 없다. 게다가 고통스럽지 않은지 담담한 표정으로 먼 곳을 응시하는 모습이 현실을 뛰어넘은 초인 같아 보인다. 이 공간에는 괴로운 신음도 채찍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도 없다. 이 고요함은 오른편에 서 있는 세 남자에 의해 더욱 커진다. 왼편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일을 전혀 모르는 듯 평온한 표정의 남자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 남자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서로를 보지 않고 있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더라도 머릿속엔 다른 생각이 가득해 보인다. 베른트 뢰크는 이처럼 고요한 그림 속에 살인의 키워드가 숨어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그림 오른편의 세 명의 남자 중 왜 가운데 남자만 맨발일까?’라는 트집 같은 호기심에서 시작됐는데, 무려 맨발의 남자가 ‘오단또니오 다 몬데펠뜨로(이하 오단또니오)’ 백작이라는 결론에까지 이른다. 오단또니오는 사치스러운 생활과 각종 범죄를 일삼은 이탈리아 우르비노의 고문관으로 1444년 7월 시민 봉기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알려져 있다. 한밤중 문 두드리는 소리에 일어난 그는 십자가 앞으로 끌려갔다. 봉기군에게 살려 달라 애원했지만 살해당했고 죽은 후에도 이리저리 끌려다녀 사지가 찢겼다고 한다. 작가는 오단또니오와 맨발의 남자를 ‘붉은 튜닉’이라는 매개로 엮는다. 맨발의 남자가 입고 있는 붉은 튜닉이 오단또니오 백작이 살해당할 당시 입고 있던 잠옷이며, 붉은색은 순교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맨발은 오단또니오의 결백함을 상징한다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그는 이 그림 자체가 오단또니오를 그의 이복동생 페데리꼬 다 몬떼펠뜨로(이하 페데리꼬)가 죽였다며 고소하는 기소장이라 주장한다. 고작 행색이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림 안에 권력을 둘러싼 정치적 암투와 살인사건이 숨어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베른트 뢰크는 삐에로 델라 쁘란체스까의 다양한 작품에 나타난 “적절한 증거”와 “어둠 속에 파묻혀 있던 이야기의 파편들”을 제시하며 자신의 주장을 공고히 다져나가고, 이는 충분히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페데리꼬가 오단또니오의 작위를 물려받은 해가 오단또니오가 죽은 지 30년 되는 해이며, 로마의 살인 공소 시효가 끝나는 시점이라는 대목에서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책을 덮고 나니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읽은 기분이 들었다. 작가가 분명 “나는 엄정한 사료 분석에 따라 채찍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을 것이다”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내겐 몬떼펠뜨로 가문의 형제 살인 사건이 역사적 사실처럼 느껴진다. 너무 많은 자료와 그 사이를 연결하는 ‘~한 것이 아닐까’라는 그럴듯한 추측을 반복적으로 접한 탓이다. 만약 베른트 뢰크의 가설을 무너뜨릴 만한 정보를 접하게 된다면 난 엄청난 혼란에 빠질 것이다. 우리는 흔히 말하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A는 B다’라는 뉴스와 ‘A는 B가 아니다’라는 뉴스가 동시에 올라오는 시대다. 수많은 정보 속에서 거짓과 진실을 판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결국 답은 하나뿐이다. 끊임없이 의심하는 것. 언론인이 갖춰야 할 소양 중 하나일 텐데, 인내심이 없는 내겐 항상 힘든 일이다. *환경과조경344호(2016년12월호)수록본 일부
[CODA] 기성세대
시작과 끝이 교차하는 12월이다. 한 해를 마감하는 12월호를 준비하다보니 조금 일찍 송년의 기분에 젖어든다. 특히 연재를 마감하는 필자들의 마지막 원고를 보고 있자니 여러 소회가 엇갈린다. 한껏 지적인 글의 필자도 마지막 순간에는 독자와 자신의 거리를 좁힌다. 마치 연극이 끝난 후 무대 인사를 하듯이 본연의 모습을 살짝 드러내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이다. 짧게는 3개월, 길게는 3년의 연재를 마무리하며 내비치는 필자들의 속내를 보니 할 일을 끝냈다는(이젠 마감을 안 해도 된다는) 홀가분함보다는 아쉬움이 묻어난다고 느끼는 것은 멜랑콜리한 연말 기분 탓일까. 가끔 필자와 편집자의 관계는 연애하는 사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마감을 두고 벌이는 밀고 당기기와 그로 인해 쌓이는 일종의 애증(!) 때문이다. 10년 전쯤 만난 한 필자는 매달 빚쟁이처럼 원고를 받아가는 나를 힘겨워했다(당시 나는 필자가 마감 날짜를 잘 지키도록 유도하는 편집자가 좋은 편집자라고 생각하고 원고 독촉 전화를 즐겨하곤 했다). 연재를 마무리하고, 연재 원고를 묶어 단행본을 출간하는 지난한 과정까지 모두 마치고 난 후 하루는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혹시 내가 더 할 일이 없냐”고 묻는 전화였다. 매달 당연하게 쓰던 원고를 쓰지 않으니(매달 받던 독촉 전화를 받지 않으니) 갑자기 주말에 뭘 해야 할지 당혹스럽단 이야기였다. 그는 얼마 뒤 취미로 밴드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알려 왔다. 지금도 가끔 그가 생각난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나의 연애 방식도 다변화되었다. 심소미 씨와는 그녀가 기획한 전시회에서 만났다. 첫눈에 반했다고 할까. 도시와 예술, 조경과 건축의 영토를 넘나드는 듯한 그녀의 관심사에 호기심을 느낀 난 “우리 앞으로 자주 만날 것 같지 않나요?”라는 말을 남기고 전시장을 떠났다. 결국 올해 ‘떠도는 시선들, 큐레이터 뷰’에서 좋은 글과 사진으로 매달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바쁜 가운데 필요한 말만 주고받아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필자다. 굳이 필자 유형을 구분해 본다면 이심전심형 필자랄까. 아쉽게 내년 1월호면 연재가 마무리될 예정이지만 앞으로도 계속 지면으로 만나고 싶다. 다른 이들의 연애를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매달 독일에서 원고를 보내온 고정희 박사의 ‘100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는 조한결 기자가 맡았다. “처음에는 형식적인 관계였어요. 사실 박사님과 전 일면식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요즘에는 펜팔하는 기분이에요.” 조 기자는 20세기부터 고대 이집트까지 5천 년 조경사를 종횡무진 늘어놓는 필자의 박식함과 원고를 뒷받침하는 사료의 방대함에 늘 감탄하는 애정을 보인다. 그녀에게 필자는 흠모의 대상처럼 보인다. 조 기자 역시 만만치 않은 꼼꼼함으로 질문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이어갔다. 몇 시간씩 구글링을 하며 원고를 확인하다 질문을 보낸 후 원하는 답변을 얻어내곤 다시 필자에게 탄사를 내뱉는 식이다(내가 보기엔 너님도 대단하다). 지난 해 이맘때, 그러니까 2015년 12월호 에디토리얼에 배정한 편집주간은 ‘마감에 임하는 필자들의 태도’를 유형화한 적이 있다. “별다른 이야기가 없다가 마감이 한참 지나 독촉 문자, 메일, 전화를 하면 그제야 아직 못 쓴 사연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읍소형”과 “갑자기 연락을 끊어버리는 잠수형”을 오고가는 필자 덕택에 매달 애를 태우는 기자도 있다. 하지만 인쇄소로 넘어가기 직전 주옥같은 원고를 토해(?)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기쁘고 반가운 것이 또 편집자의 마음이랄까. 매달 반복되는 두 사람의 줄다리기는 싸움과 화해를 반복하는 연애를 보는 듯하다. 이번 호에 여러 필자들이 덧붙인 ‘연재를 마치며’를 살펴보니 그들과 함께 연재를 기획했던 시간이 떠오른다. 지금은 내년 연재를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연재를 마감하는 필자가 여럿 있는 만큼 2017년 새로운 꼭지로 독자들을 만날 준비를 하는 필자도 여럿이다. 새로운 연재 꼭지의 기획 의도와 방향, 호별 주제 목록 등이 담긴 기획서를 보면서 마감 유형을 가늠해 보는 것도 이즈음의 즐거움이다. 누군가는 “마감을 칼같이 지키는 모범생형”이지만 까다로울 것 같고, 어떤 이는 기획서부터 기한을 지키지 못해 애를 태우지만 결국 편집부가 예상치 못했던 흥미로운 기획으로 새로운 연애에 대한 설렘을 유발한다. 개인적으로 2016년이 어떤 의미였는지 되돌아본다면, 올해는 내가 마흔 살이 된 해다. 얼마 전 마흔 살이 되니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냐는 질문을 받았다. 웃으며 얼버무린 그 자리에서 삼켰던 말은 이러했다. 항상 젊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아닌 것 같다고. 사실 마흔 살이 되면서 내가 ‘기성세대旣成世代’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 단어가 떠올랐을까. 사전을 찾아보니, “현재 사회를 이끌어 가는 나이가 든 세대”를 뜻하는 말이다. 예전에는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지금의 사회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느낀다. 그래서 올해는 나도 어디엔가 후원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단체를 물색했다. 그러다 언론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한 시민 단체가 재정적 어려움으로 어렵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잡지사에 몸담은 내 첫 번째 후원 대상으로 언론을 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단체는 좋은 선택처럼 보였다. 온라인 가입 신청서의 최소 금액 버튼을 누르고도 내심 뿌듯했다. 이후 그 시민 단체로부터 매달 소식지가날라 왔다. 포장지도 뜯지 않은 채 책상 한구석에 쌓여가는 소식지를 보면서 그 시민단체의 살림살이를 걱정했다. 나처럼 적은 회비를 내는 사람에게까지 소식지를 보내면 과연 운영이 될까 싶었다. 그러다 우연히 포장지를 뜯고 소식지를 넘겨보았다. 소식지는 흑백의 소박한 편집이었지만, 한 달간의 활동 내용과 여러 필자와 회원들의 글이 실려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후원자가 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뜻에 동의하고 관심을 기울이며 참여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일원이 되었구나. 늘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전문지에서 보낸 시간을 떠올려 보면, 어려움이 닥치면 습관처럼 환경을 탓하곤 했다. “문화가 성숙해야” 혹은 “저변이 확대되어야” 하는 말들을 되뇌기도 했다. 세상은 남이 바꿔주는 것이 아님을 이제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