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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의 경제학] 경관의 수요: 자본에 의한 발생과 소멸의 메커니즘
  • 환경과조경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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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화가 베르나르도 벨로토(Bernardo Bellotto)가 1740년대에 그린 베네치아의 풍경. 영국 내셔널 갤러리 소장.

 

경관 수요와 경관 효용

경관의 수요는 경관을 체험하고 싶어 하는 것 이상이다. 단순히 무언가를 원하는 욕망 또는 욕구의 차원을 넘어, 대가를 지급하고 그것을 충족하고자 하는 의사를 경제학에서는 수요demand’라고 한다. 경관의 수요자는 대가를 지급하고 경관을 소비한다. 이때 그 대가가 조망점의 공급자에게만 귀속되고 조망 대상의 공급자에게는 이전되지 않기 때문에 경관의 적정한 공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은 지난 호에서 말한 바 있다.

 

우리는 경관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우리가 경관을 체험할 때 무엇을 얻는가? 경제학자는 이러한 질문을 경관이 우리에게 주는 효용은 무엇인가?’로 정리할 것이다. 경제학에서 효용은 어떤 재화나 서비스가 우리의 욕망이나 욕구를 충족하는 능력또는 어떤 재화나 서비스를 소비함으로써 우리가 얻는 만족을 말한다. 효용은 수요의 원천이다. 사람들은 효용을 얻기 위해 소비하고, 기업들은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골몰한다.

 

이 글에서 경관의 효용을 이야기할 때 생태적으로 건강한 경관이 대기를 정화하고 종 다양성을 높여주는 것과 같은 효과는 고려하지 않는다. 경관이라는 단어는 인지된 심상뿐만 아니라 (인식 밖에 존재하는) 인지의 대상을 칭하기도 하므로, 위와 같은 효과가 경관의 효용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역, 자연, 생태계 등의 단어와 차별화된 경관이 가지는 고유의 효용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시각을 중심으로 한 오관을 통해 인지되는 심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경관을 체험한다고 할 때 무엇에 집중하는가를 생각하면 그 이유는 더욱 명확해진다. 위에서 언급한 효과는 생태적으로 건강한 경관이 발산하는 긍정적 외부효과 정도로 생각하자.

 

경관의 효용을 인식의 영역에서 찾는다면 경관 체험의 중심에는 미적 체험이 자리하게 된다. 우리가 경관의 체험을 통해 얻는 쾌pleasure에 미적인 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대 미학에서 다루는 미적인 것the aesthetic의 범주가 매우 넓다는 것을 생각하면 미학적 방법으로 경관의 효용을 다루는 것이 그리 편협해 보이지는 않는다.

 

이 글에서는 경관을 체험하는 과정을 파헤치거나, 미적 체험을 유발하는 경관을 선별하거나, 보다 근본적으로 경관미가 무엇인지 밝히는 등의 미학적 설명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경제학적 관심으로 경관에 대한 수요의 발생과 소멸에 자본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살펴볼 것이다. 그 과정에서 미학자들이 이루어놓은 성과를 몇 가지 참고한다.

 

 

자본에 의한 경관 체험의 조작

자본은 능동적이고 지능적이다. 자본은 자신의 목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토대와 상부 구조를 능동적으로 바꾸어놓는다. 그 변화의 대상에 경관도 포함됨은 물론이다. 하지만 자본이 강압적이지는 않다. 자본은 변화에 대한 사람들의 선호를 조작함으로써 목적 달성의 효율성을 지능적으로 추구한다. 경관의 변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자본이 특정한 경관에 대한 우리의 미적 체험을 바꾸는 기제는 18세기 영국의 미학 이론인 취미론에서 단서를 찾을수 있다. 취미론은 독일의 바움가르텐Alexander Gottlieb Baumgarten(1714~1762)에 의해 자리 잡은 미학이라는 단어가 영국에서 널리 쓰이기 전에 벌어졌던 철학 논쟁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중세 기독교 사회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사상가들 사이에는 beauty’라는 것이 객관적인 대상에 내재한 성질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것이 비례와 같은 특징이건, 이데아와 같은 추상적 실재건, 신으로부터 기인한 무엇이건, 시대에 따라 설명은 달랐으나 미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중세의 몰락과 함께 낭만주의가 등장했고 미적 체험에 대해서도 주관의 역할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취미론은 이러한 과정에서 미의 존재론에 대한 객관론과 주관론의 거리를 세련되게 탐구한 이론이다. 샤프츠베리Third Earl of Shaftesbury(1671~1713)는 무관심성disinterestedness에 대한 이론으로 취미론의 문을 열었다. 무관심성이란 자신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그는 진정한 미적 체험을 무관심의 상태에서만 도달 가능한 어떤 것으로 정의함으로써 미의 철학을 성립시켰다. 경험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은 허치슨Francis Hutcheson(1694~1746)은 내적 감관internal sense이라는 개념을 통해 취미론을 발전시켰다. 그는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는 오관과 별도로 미를 감지하는 내적 감관으로서 미의 감관sense of beauty이 존재하며, 이 감관을 통해 느끼는 쾌가 바로 미의 관념idea of beauty이라고 보았다. 취미taste란 이러한 감관의 능력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에게 미적 감관은 오관과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것이었다. 따라서 동일한 자극에 대해 미적 감관은 동일한 반응을 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은 동일하게 느끼지 않는다. 그는 그 이유가 미적 감관에 있지 않고, 관념 연합association of ideas에 있다고 보았다. 관념 연합은 우리의 인식 속에서 일어나는 연상과 같은 것이며, 그것이 형성되는 대표적인 이유는 반복된 경험을 통해 형성된 습관이다. 관념 연합이 미적 체험의 과정에 작용해서 동일한 대상을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도록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중략)...

 

* 환경과조경 343(201611월호) 수록본 일부

 

민성훈1994년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조경설계 서안에서 2년간 일했다. 그 후 경영학(석사)과 부동산학(박사)을 공부하고 개발, 금융, 투자 등 부동산 분야에서 일했다. 2012년 수원대학교로 직장을 옮기기 전까지 가장 오래 가졌던 직업은 부동산 펀드매니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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