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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설계하는 법] 성장이야기
  • 환경과조경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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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서

 

지난달에는 감히 우리에겐 정원이라는 문화가 없었으며 그래서 조경이 참 힘든 일이 되었음을, 그러나 이제 필요성이 절실하니 조경가가 이를 해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조경을 업으로 삼고 있는 동료 조경가 중 어느 누구도 이 일이 중요함을 인식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누구라도 이 일을 접하면 본능적으로 좋은 일이라는 것을 안다. 여기서 좋은 일이란 단순히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 결과로 보다 많은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제대로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른다. 사실 나도 잘 모른다. 큰 회사에 다니다가, 그리고 어느 설계사무소에 다니다 그만두고 스스로 사무실을 시작하면서 가졌던 생각은 설계란 그림만 그리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돌이켜 생각해봐도 ‘지어지지 않고 그림으로만 남는 설계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무실을 시작할 때도 돈이 되는 일 앞에 지어지는 일을 놓고자 했다. 이 같은 실천을 통해서 설계의 역할을 제대로 세워보리라는 작은 소망을 품었다. 그 후 10년이 지났지만 설계의 역할을 제대로 세웠는지는 모르겠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것 같아 힘들구나’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스스로 설계가로서 단단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렇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이번 편에서는 그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으려한다. 보잘것없지만 오로지 순수하게 설계를 잘하고 싶은 조경가 박준서의 성장 이야기. 부디 이 글을 많은 사람이 읽지 않기를 바란다. 왜? 부끄러우니까.

  

습관에 대한 도전

건설사의 현장 사무소. 나는 현장의 공사 담당 소장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며칠 동안 우리가 설계한 플랜터의 상세도를 자꾸만 문제 삼기에 오늘은 기필코 결판을 보리라 다짐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니까 며칠 전 갑자기 전화가 왔다. 한참 시공 중인 현장에 느닷없이 시공사의 임원이 순시를 나왔는데 플랜터의 상세도를 두고 혹평을 하고 갔다는 것이다. 이런 디테일을 본 적이 없고, 자신의 시공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이건 안 된다는 거였다. ‘어쩌라고요?’ 나의 외침은 목구멍을 넘어오진 못했다. 대신,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죠. 네…. 하지만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설계한 만큼 이대로 시공해주셨으면 합니다.” “아니 박 소장, 이거 이렇게 진행했다간 당장 내가 인사에서 불이익을 당할지도 몰라.” “예? 아니 왜요?” “그 임원이 자기 말대로 안하면 가만 안 두겠다고 큰소리치고 갔다고.” “…….”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얘기람. 하지만 이곳은 한국,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상황이다. 나는 다시 한 번 왜 그런 디테일을 선택했는지, 그것이 생각처럼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 등을 구구절절 설명했다. 그리고 그 디테일을 꼭 지켰으면 좋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로부터 이삼일이 지나고 현장에서 미팅을 하자는 연락이 왔다. 만약 내가 디자인한 디테일로 시공하기로 결정되지 않으면 어떻게 할지, 왜 이따위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고민하고 있는지, 나 참 힘들어서 못 해먹겠네. 아무리 회의를 해도 내가 고집을 꺾지 않으니 하는 수 없다는 듯 마지막에 이렇게 물어왔다. “박 소장, 만일 현장에서 저 디테일을 바꾸면 어떻게 할 건가?” “글쎄요…” 순간 머릿속에 이걸 어떻게 하지,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수많은 생각들이 오갔다. 그러나 이 땅에는 설계자의 손을 들어줄 수단도 시스템도 없었다. 건축에는 감리가 있으니 그를 통해서라도 설계에 힘을 실을 수 있겠지만, 조경은 그런 것도 없고 감독은 뭘 하든 문제만 만들지 말라 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은 없었다. “뭐 제가 어떻게 할 방법은 없겠네요. 그냥 집에 가서 이불 뒤집어쓰고 울겠죠?” 정말 내 심정은 그랬다.

다음날 다행히 시공사에서 본래 디테일대로 시공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10여 년이 지났지만 시공사에서 걱정한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 디테일을 그 후로도 자주 써먹었고, 그럴 때마다 시공자는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나는 발주자나 의뢰인을 설득하는 일보다 현장의 작업반장을 설득하기가 더 힘든 상황을 수도 없이 겪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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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가 과도해 공간을 담아내지 못했다. 어떤 것들은 실제 공간으로 구현됐지만, 대부분은 구상 단계에서 폐기되었다. 다행일까? 구현되었다면 어땠을까? 이 설계안들에 공간도 담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어지는 설계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마주한 난감한 상황. 설계가 구현되는 과정에서 심심찮게 마주하는 상황이다. 상황의 경중을 떠나서 시공자가 설계자에게 설계의 의지를 꺾으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것도 자기의 시공 경험에 반한다는 이유로. 설계의 권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설계의 역할이 이 땅에 존재하는가 의문이 들었다. 이 땅에서는 설계의 역할 따위는 필요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니 서글퍼졌다.

내가 마주한 것은 거대한 습관의 벽이었다. 그런 습관을 시공자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클라이언트 그룹도, 설계가인 나 자신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수십 년간 버릇처럼 해왔기 때문에 이미 굳어진 믿음을 어디서 굴러먹다 온 새파란 설계가 놈 하나가 바꾸려 한다는 식의 태도를 본 것이다. 습관이 곧 고정관념이 되고, 그 고정관념을 너무 신봉하다 보니 신념이 되었고, 그것을 바꾸려는 노력은 도전이라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설계는 역설적으로 그런 습관을 깨는 작업이어야 한다. 힘들지만 습관을 이해하고 분명히 그 습관을 극복할 수 있는 이유와 당위성도 함께 제시하면서 말이다. 클라이언트를 설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장의 작업반장까지도 이해할 수 있는 설계. 그것이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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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 말고 공간

설계공모를 진행하고 있다. 건축 설계공모. 나는 건축가와의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우리가 만든 공간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이 생활하고 일하고 노는 곳이고, 그런 공간은 조경 작업이나 건축 작업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축가와 설계공모 작업을 많이 하는 편이다. 

커다란 대상지의 도면을 앞에다 두고 건축가와 마스터플랜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다. “박 소장님, 저희가 원하는 건 이런 그림이 아닌데요.” “네? 그럼 어떤 걸 원하시는데요?” “아니 그러니까 뭔가 좀 더 그로테스크하고 힘차면서도 기능적인 그런 그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건물과 잘 어울릴 거 같아요.” “아…네…. 그게 어떤 건데요?” “아니, 왜 그러세요. 그동안 잘 해주시더니. 왜 있잖아요. … 그래야 이 평면이 살죠. 건물도 살고. 밑바탕이 근사해야 건물이 더 도드라

지지요. 조경은 그런 거잖아요.” 이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 금기어는 뱉지 말았어야지. 내가 삽화가인가? 이럴 거면 차라리 만화가를 섭외하지.

얼마 전 우리가 설계한 지방 모 기업의 사옥을 다녀왔다. 설계는 벌써 몇 년 전에 했고, 제법 많이 참견할 수 있어서 설계안에 꽤 근접하게 시공이 되었다. 의뢰인 측도 매우 만족했고,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좋은 공간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곳을 답사하면서 한 가지 느낀 것은 공간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 설계는 평면 중심의 설계가 진행된 대표적인 예였다. 기업의 독보적인 상징성을 드러내기 위해 도드라진 형태와 디테일로 설계된 곳인데. 막상 가보니 편안하게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퍼걸러는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놓여있고 숲은 얕았으며 그늘 밑에는 앉을 곳이 없고 벤치가 놓인 곳엔 볼 게 없었다. 운동 삼아 산책로를 걸을 수는 있겠지만, 머물고 싶은 곳이 없어 서둘러 사무실로 돌아가야 하는 그런 곳이 된 것이다. 내심 충격이었다. 입으로는 열심히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떠들고는 정작 기회가 왔을 때 그러지 못하다니.

보여주는 것에 너무 집착하고 있었나? 내가 그린 그림이 지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누구에게? 그게 누군지는 몰라도 분명히 사용자는 아닌 듯하다. 나는 내가 대단한 설계가라고 말하고 싶어 하고 있었다. 형태를 과하게 조작하고, 입체적 조형을 도입하고, 강렬한 대비 효과를 쓰고, 이를 사람들이 못 알아먹을 이상한 말로 포장하려 했다. 어쩌면 우리가 공모나 설계 설명서에 써넣던 강렬한 기능, 즉 축제니 문화 행사니 캠핑따위의 뭔가 있어 보이는 것을 먼저 생각하다 보니 그랬던 것은 아닐까. 우리가 만든 공간은 과시하기 위함이 아니라 일상에서 이런저런 용도나 잠시 앉아 마음을 달래는 공간으로 더 많이 쓰일 텐데, 정작 그런 용도로는 만들지 못하고 있다니.

피터 워커의 테너 파운틴(Tanner Fountain)이라는 작품을 너무나 좋아했다. 그가 평소 이야기하듯이 테너 파운틴은 하나의 디자인적 제스처가 매우 다양한 역할을 일궈내는, 그리고 분명하게 보이는 설계의 표본이라 생각했다. 2000년에 그와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 그가 설계는 반드시 눈에 띄는 것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는 군중 속의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여인을 예로 들며 그처럼 눈을 사로잡는 대상을 설계해야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고, 관심을 갖고 접근해야 그 공간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지당하며 공감 가는 이야기다. 단, 우리가 다루는 이 공간들이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을 만한 대상이 되도록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어려운 것이라 그게 문제지. 테너 파운틴은 그의 작품 중에서도 그의 설계 태도와 원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설계가로서 평범함을 지향하는 것은 무덤과도 같은 일이다. 독특하고 유일하며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설계를 하고 싶다. 하지만 그보다 사람들이 마음 편히 다가와 아무렇지 않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적 틀을 갖추는 노력이 더 우선 되어야 한다. 테너 파운틴처럼 말이다. 그러고 보니 당시 그와의 인터뷰에서 요즘 조경 설계가 너무 튀려고만 하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적 세팅을 하는 데 게으르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잊고 있었다. 아니 이제야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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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너머의 사람을 보다

몇 해 전, 어느 마을의 작은 공간을 조성하는 사업에 참여해 봉사하는 마음으로 설계와 시공을 하게 됐다. 몇 차례 대상지를 답사하면서 설계 아이디어는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었다. 시공도 그리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우린 그곳에 자그마한 쉼터를 만들어 가파른 길을 오르내리는 주민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곳을 만들어 주고자 했다. 내심 기뻤다. 이 공간을 이용하며 즐거워할 주민의 웃음 띤 얼굴을 벌써 마주하는 것 같아 너무 기쁘고 기대됐다.

어느 날 답사를 간 우리는 한 가지 해프닝을 목격했다. 우리가 휴게 공간으로 조성하려 한 버려진 녹지를 둘러싸고 주민 사이에 다툼이 있었던 것이다. 녹지 바로 옆에 거주하는 할머니 한 분이 평소 이 녹지에 꽃을 심어 가꾸고 있었는데, 이웃 주민이 그걸 보고 야단을 친 것이었다. 왜 공공의 땅에 개인적으로 뭔가를 심고 가꾸는가가 논쟁의 핵심이었다. 우리는 의아했다. 왜 그게 문제가 되지? 그 땅을 그 할머니가 소유하겠다고 나선 것도 아니고, 그 땅을 일궈 밭으로 쓰려 한 것도 아닌데. 그 할머니도 우리처럼 그냥 그곳에 꽃이 피고 낙엽이 지기를 바랄 뿐이었는데 말이다.

이 문제는 비단 한 사람이 공공의 땅에 꽃을 심을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라기보다 설계가가 너무 당연히 여기는 공공의 선을 위한다는 명분이 항상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이 마을은 그렇지 않아도 마을에 그려진 벽화 때문에 여러 문제가 발생해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예술가의 순수한 마음이 마을 사람들에게 상처가 되다니.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하고 예상한 것들이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소름 돋는 경험이었다.

이런 예뿐만 아니라, 우리가 설계하면서 만나는 공간들은 대상물로서의 물리적 구성체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공간에는 어마어마하게 깊고 복잡한 인간관계가 투영되어 있고, 그 안에는 온갖 욕망과 사욕이 얽혀있다. 어쩌면 설계란 그런 욕망의 교통정리 행위거나 욕망의 분출구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몇 년 뒤 다시 찾은 작은 녹지엔 그때 만들어 놓은 벤치들이 있었다. 길을 오르내리던 주민들이 그곳에 잠시 앉아 가쁜 숨을 돌리고 있었지만, 주변에는 그 당시 심긴 초화들이 사라졌다. 꽃피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쉼터에서 그냥 평범한 쉼터로 변해 있었다. 아마 그 할머니는 더 이상 이곳의 꽃을 돌볼 수 없게 된 것 같았다. 그 작은 쉼터가 주민의 마음에 따듯한 마음을 깃들게 하는 자리이기를 바랐지만 상처만 남긴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애송이 설계가

어느덧 설계 경력이 20년을 훌쩍 넘어가고 있다. 매 순간 이제야 설계를 좀 알게 됐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지나고 보니 그땐 뭘 몰랐지 싶다. 

지금까지 참 많은 프로젝트를 다루며 늘 좋은 공간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믿어왔다. 당시에는 하나하나 최선을 다해 완성해 내려 했지만, 돌이켜 보니 허점들이 다시 보이기도 한다.그 프로젝트들을 통해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10년 전 이 사무실을 시작하며 수행한 프로젝트에는 결기 넘치는 젊은 열정이 보이지만, 또 다른 10년을 바라보는 지금은결기보다는 무난한 안정감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것 같다. 이제야 도면에 쓰여 있는 산책이, 휴식이, 삶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 건지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몇 해 전 나이 50을 바라보는 설계 선배가 자신은 아직도 애송이라고 하는 말에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다. 난 아직도 많은 성장을 해야 하는, 아직은 덜 익은 설계가일 수도 있겠다. 이제야 설계가 무엇을 하는 일인지 조금 깨달은, 이제야 설계 대상지에서 그곳에 묻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금 읽어 낼 수 있는, 그래서 이제야 그곳에 맞는 아이디어를 낼 수 있게 된, 더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설계가라고 말하고 싶다.

 

박준서는 ‘Link Landscape with Life’라는 모토로 디자인엘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는 조경 설계가다. 조경이란 근원적 삶의 터전으로서의 자연을 문화적으로 해석해 일상에 녹여 내는 행위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에서 조경 설계의 사회적 역할을 바로 세우기를 바라고, 지어지는 설계를 실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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