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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스케이프] 트립 투 잉글랜드
여행의 일기
  • 환경과조경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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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0일

영국 여행을 며칠 앞두고 작년에 개봉했던 ‘트립 투 잉글랜드’를 다시 봤다. 두 남자가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며 여행하는 영화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같은 감독의 이전 개봉작인 ‘트립 투 이탈리아’에 비해 덜 재미있다고 느꼈다. 영화는 고층 아파트의 통유리로 보이는 런던 시내를 스케치하며 시작한다. 배우인 스티브(스티브 쿠건 분)가 창가에서 친구 롭(롭 브라이든 분)에게 전화한다. 잡지사 청탁으로 가게 된 유명 레스토랑 탐방 여행에 함께 갈 수 있냐고 묻는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그들의 여정을 따라가는 단순한 형식의 영화다. 사륜 자동차로 이동하고 음식을 먹고 잠을 잔다. 그리고 수다를 떤다. 유명 셰프의 음식이 등장하지만 정작 그들은 음식에 대해서는 별로 대화하지 않는다. 누가 더 성대모사를 실감나게 하는지 티격태격하면서 가족, 죽음, 미래와 같은 무거운 주제를 농담처럼 주고받는다. 스티브는 워즈워드의 고향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폭풍의 언덕』의 배경인 거친 들판에서도 풍경을 감상하기보다는 아들이나 여자친구, 에이전트와 통화하는 데 더 주력한다. 전처와 아들이 잘 지내는지, 당분간 시간을 갖자는 여자 친구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그가 원하는 예술 영화에 출연하게 될 건지, 현실적인 문제들이 더 절실하다. 다시 보니 처음 볼 때 보이지 않던 영국 북부의 겨울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그들의 시시한 대화 속에 숨겨진 속마음이 들린다. 긴 여행에 대한 우려가 조금씩 기대로 바뀐다.

 

6월 26일

1866년에 지은 브라이튼 해변의 웨스트 피어는 2003년에 화재로 손실되어 앙상한 철골만 남아 있다. 10년 넘도록 뼈다귀만 남은 잔재를 그대로 둔 것과 138m 높이의 얇은 기둥과 원형 전망대를 새로운 랜드마크로 건설 중인 모습이 인상적이다. 쥬빌리 공원의 모티브가 된 순백의 절벽, 세븐 시스터즈. 과연 영화 ‘나우 이즈 굿’에서 남자 친구가 시한부 여자 친구를 위해 선사할 만한 풍경이다. 더 놀라운 건 70m의 백악질 수직 벽이 파도에 계속 부서지고 수많은 관광객이 절벽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는데도 안전 난간 하나 없다는 점이다. 그 흔한 안내판도, 말끔하게 포장된 보도도 없다. 이 나라 공무원은 게으른 걸까. 간이 큰 걸까.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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