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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빌리온의 도시적 역할
  • 김정은, 김모아
  • 환경과조경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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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빌리온의 가능성을 다양한 시각에서 논의하기 위해 건축, 미술, 조경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공동 저술한 『파빌리온, 도시에 감정을 채우다』

 

 

지난해 12월 파빌리온을 주제로 책 한 권이 출간되었다. 대안적인 건축 활동을 모색하는 학자, 건축가, 큐레이터가 모인 연구 모임인 파레르곤parergon 포럼이 기획한 『파빌리온, 도시에 감정을 채우다』 (송하엽, 최춘웅, 김영민, 소현수, 정다영, 조수진, 함성호, 조현정, 이수연, 김희정, 최장원 지음)가 그것. 도시의 결핍을 채우고 매개자의 역할을 하는 작고 약한 장소, 파빌리온의 가능성을 다양한 시각에서 논의하기 위해 건축, 미술, 조경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이 책이 탄생했다. 디자인 전문 출판사인 홍시커뮤니케이션의 조용범 편집자는, 파빌리온은 단순히 건물이나 구조물이 아니라 여러 영역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화 콘텐츠라고 보았다며 이 책의 출간 배경을 전했다. 책의 출판은 그 안에 담긴 주제의 사회적 중요성을 반영하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여전히 우리 도시 곳곳에서는 파빌리온이 만들어지고 있고, 이러한 현상과 관심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란 점이다. 지난 7월 11일, 홍시 사옥에 몇몇 저자들이 다시 모였다. 책 기획 단계의 고민부터 파빌리온에 대한 서로의 생각, 최근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여러 파빌리온 작업에 대한 이야기도 오고갔다. 그날의 흥미로운 대화를 지상誌上으로 중계한다.


왜 지금 파빌리온인가?

김영민: 오늘 좌담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이 책을 왜 썼을까’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되었다. 오늘날 파빌리온이 사회에서 보편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인가? 아니면 저자들의 주관적인 관심일 뿐인가? 서펜타인 파빌리온이나 국립현대미술관의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등 오늘날 건축계나 조경계, 문화계에서 보여주는 파빌리온에 대한 관심은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 이 책을 기획했던 분들이 그 배경을 이야기해주면 좋겠다.

 

송하엽: 국내에서도 광주폴리나 국립현대미술관의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DDP의 꿈주머니, 그리고 대학생건축과연합회UAUS의 전시 등 일련의 파빌리온 작업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최근 젊은 건축가들이 작은 규모의 작업을 도시에서 많이 진행한다. 대중 역시 예전처럼 큰 건물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시점에 파빌리온이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생각했다. 크게 보면 영역의 파괴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조각과 건축, 건축과 인프라스트럭처, 인프라스트럭처와 조경 등 파빌리온은 여러 분야에 걸쳐 있다. 그래서 쉽게 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가 된 것 같다.

 

정다영: 파빌리온이라는 현상이나 결과물은 있는데 이것을 작동하게 하는 역사적인 배경은 부각되지 않았다. 과거와의 연결점을 찾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파빌리온을 현대적인 문화 콘텐츠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이것에 기원이 있고 역사적인 흐름이 있다는 것을 지금 시점에서 한 번쯤 되짚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또 파빌리온이 단순히 서양의 문화가 아니라 정자, 아파트 모델하우스처럼 우리 문화와도 연결될 수 있음을 이 책에서 선명하게 드러내고 싶었다.


김영민: 최근 파빌리온을 매체로 한 문화 행사나 관련 이슈를 자주 접하게 된다. 서펜타인 파빌리온이나 MoMA PS1처럼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과연 파빌리온이 핫이슈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일까? 사실 파빌리온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고, 엑스포도 어떻게 보면 파빌리온의 집합체다. 그런데 지금 이 시점 건축, 문화 예술계의 전문가가 아닌 일반 대중들에게 파빌리온은 어떠한 의미일까?


최춘웅: 사실 이 책을 쓰기 시작할 때도 파빌리온이 핫한 이슈인지는 잘 모르겠더라. (웃음) 하지만 경기가 안 좋을수록 파빌리온이 주목받는 것 같기는 하다. 한동안 파빌리온에 대한 관심이 뜸했는데 다시 핫해질 것 같다.


정다영: 2012년 김찬중 건축가와 ‘아트폴리 큐브릭’ 전시를 진행했다. 그때만 해도 파빌리온이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우는 데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과연 일반인들이 잘 이해할까’하는 걱정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런 의문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여름 파빌 리온은 언제쯤 설치하냐’는 문의도 들어온다. 파빌리온이 핫한 이슈인지는 조금 더 두고 봐야 알겠지만, 분석해야 할 대상의 반열에는 올랐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파빌리온인가?

김영민: 책을 기획할 당시 대상을 무엇으로 부를 것인지 논의를 했었다. 폴리인지, 파빌리온인지, 아니면 가건물인지 등. 이 책의 여러저자들 역시 각자 생각하는 파빌리온의 정체가 다른 것 같다. 초기에는 파빌리온의 주요 키워드를 가변성이나 임시성으로 잡았다. 그런데 막상 책 속에 등장하는 파빌리온의 예시 중 상당수가 가변적이거나 일시적이지 않다. 18세기 영국의 풍경화식 정원의 파빌리온, 라빌레트 공원의 폴리, 한국의 정자는 임시 건축물이 아니다. 바르셀로나 파빌리온1도 결국 영구적 건축물이 되었다. 그렇다면 어떠한 속성이 파빌리온을 규정하는 것일까?


최춘웅: 그 모든 것들이 동일하게 규정된다기보다, 조경 설치물, 공공 미술 작품 등이 어떠한 속성을 공유하기는 하는데 우선 파빌리온을 맨 앞에 내세우자고 했던 것 같다.


송하엽: 사실 폴리와 파빌리온의 차이가 모호하다.


최춘웅: 파빌리온이 의례나 프로그램이 어느 정도 설정되어 있는, 역사적으로는 천막에서 유래된 일시성이 강한 구조물이라면, 폴리는 말 그대로 아무런 실제적 목적이 없는 놀이를 위한 조경 시설물에 가까운 것 같다.


김영민: 폴리가 가변성이 조금 더 크다고 보지만, 가변적이지 않은 정자는 오히려 폴리의 개념에 가까운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가 파빌리온과 폴리의 개념을 명확하게 구분해서 쓰지는 않는다.


송하엽: 이 책에서는 가건물인 판자촌과 모델하우스까지 다루고 있으니 파빌리온의 범주를 상당히 넓게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누정이 일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서양사나 동양사의 관점에서 파빌리온을 처음부터 끝까지 쭉 보려고 했는데, 목차의 흐름을 잡기가 어려웠다. 용어terminology를 유형화하기가 쉽지 않더라.


김영민: 파빌리온을 구체적인 물리적 대상으로 정의내리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물리적인 실체라기보다는 관계, 상대적인 것인가 하는 생각도 했다. 예를 들면, 역사서에 등장하는 파빌리온이 일시적이진 않지만 영구적인 건물에 비해서는 일시적이다. 파빌리온이란 애매한 개념인 것 같다.


최춘웅: 과연 파빌리온의 개념이 애매한지 모르겠다. 파빌리온은 건축물이 아니라 가설건축물이나 조경설치물의 영역에 있다. 법적으로도 지을 때 받는 허가가 건축과 다르다.


김영민: 조경 분야에서도 정자는 벤치와 같은 시설물로 분류된다.


최춘웅: 그러다보니 더 자유롭기도 하다.


김영민: 18세기 영국 정원의 파빌리온은 무대 장치라는 개념이다. 파고다나 그로토 같은 것을 풍경 안에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일종의 디바이스로 보는 것이다.


최춘웅: 그런 경우는 폴리가 아닐까. 한국 정원의 정자를 파빌리온이라고 번역하기 시작하면서 영국 정원의 파빌리온과 혼동되기 시작한 것 같다.


김영민: 고려시대 이규보의 ‘사륜정기四輪亭記’라는 글에 보면 바퀴달린 정자가 나온다. 좋은 경치를 찾아다니는 이동하는 정자다.


최춘웅: 이 책의 출발선에서 생각했던 파빌리온과 가장 비슷한 개념 같다.


정다영: 파빌리온을 이야기하다보면 매개, 경계, 확장이라는 개념과 계속 맞물린다. 사실 이 책을 내기 위해 다양한 필자가 모여 논의를 했다기보다, 오히려 다양한 필자들을 통해서만 파빌리온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얼마 전 MAXXI의 피포 초라 선임 큐레이터가 미술관에서 열린 강연에서 건축이 미술관 안에 들어올 수 있었던 계기가 파빌리온이라고 이야기했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파빌리온이나 폴리는 정의되는 어떤 것이라기보다는, 연결시켜주고 이야기를 만들어주는 미디어 같다. 그 미디어의 속성이 무엇 인지를 봐야 할 것 같다. 최근 많은 제도권 내 미술관이 그런 식으로 건축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미술계에서 파빌리온을 어떻게 진화시킬 것인가는 조금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이는 대공간을 만들어내는 미술관 건축 자체의 역사와도 관련되고, 자본의 문제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거대한 스케일을 조율할 수 있는 환경 조건이 갖춰지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최춘웅: 스펙터클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논의는 사실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하지만 아직 그러한 시대가 끝났다고 보긴 어렵지 않은가. 버블이 십년 주기를 가지듯이 파빌리온 작업도 경기를 타는 것 같다.


정다영: 어쨌든 파빌리온 프로젝트의 경우는 미술관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 내 생각에 건축가는 실내 공간에서 설치 작업을 선보이는 것 보다 야외에서 제대로 된 파빌리온을 짓는 것이 훨씬 더 직능의 장점을 표출한다. 그런 작업들이 제대로 된 조건에서 제대로 실현될 수 있는 판을 만들어주는 게 미술관의 역할인 것 같다.


송하엽: 국립현대미술관 마당은 마치 파빌리온을 위해서 지어진 마당처럼 보인다.


정다영: 서울관 마당에 박석이 깔려 있는데 이것이 재미있다. 미술관 자체가 역사적인 사이트에 자리 잡고 있고, 근처에는 경복궁과 청와대도 있다. 그리고 바닥에는 정교한, 소위 의례적인 그리드가 배경처럼 깔려 있다. 그런데 그것을 매년 여름마다 뒤집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내년쯤에는 그리드가 있는 지반을 일종의 랜드스케이프처럼 활용하는 작업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동료들과 나눴다.

 
 
김영민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송하엽 중앙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정다영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최춘웅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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