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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큐브
서울혁신파크를 누비는 이동형 파빌리온
  • 환경과조경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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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페스토의 ‘모바일 키친 스테이션’ ⓒ노경

 

도시계획

서울시는 하나의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은평구 녹번동의 구 질병관리본부 부지에 새로운 사회적 가치 창출과 혁신의 허브 역할을 할 ‘서울혁신파크’를 조성하는 것이다. 조성 과정에서 다양한 혁신 기업과 단체를 집적·육성해 창업을 활성화하고자 했다. 다양한 분야의 융복합을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부가 가치와 일자리 창출 메커니즘을 구축하는 동시에 서울 서북권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거점 시설을 도입하는 것이 계획의 주요 골자였다.

초기의 서울혁신파크 조성 계획1은 신도시 개발에 필적할 만했고, 이는 과거의 개발 계획2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결국 서울시는 2013년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이것이 지금도 진행 중인 ‘서울혁신파크 조성 기본계획’이다. 당시의 여건을 고려해 무리한 개발은 피했지만, 여전히 사람보다는 부동산 개발이 중심이 된 도시계획이었다.


개발이 아닌 재생

이러한 과정 속에서 ‘서울혁신파크 야외공간 활성화사업’의 총괄 지휘자로 박찬국(아트디렉터)이 선정됐고, 사람과 사람의 삶을 연결해 생성되는 활동을 기반으로 지역을 바꾸어가도록 계획의 방향을 잡았다. 기존의 주변 환경을 유지하되 버려진 공간을 사람들의 다양한 활동을 촉발할 수 있는 행위를 담을 수 있는 장소로 바꿔 나가기 시작했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던 테니스장에는 누구나 쉽게 어울려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전봇대 집이 기획되었고, 그 주변에는 간단하지만 획기적인 삶을 시도할 수 있는 1인 주거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이 이동형 파빌리온, 즉 모바일 큐브들은 혁신파크의 곳곳을 누비며 활기를 불어넣을 것이다. 이를 빠르게 조성할 수 있도록 린스 타트업lean startup—아이디어를 빠르게 시제품으로 제조한 뒤 시장 반응을 살펴 다음 제품 개선에 반영하는 전략—을 기획하기도 했다.


사람의 연결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디자이너는 일을 마무리한 후 다른 이에게 사용권을 넘기고 나와 외부인이 되어버린다. 이런 점을 극복하기 위해 작가들은 자신이 맡은 파빌리온 디자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혁신파크 야외공간 활성화사업에 참여했다. 파빌리온을 디자인하기에 앞서, 활성화사업 진행자와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워크숍을 진행했다. 이 같은 워크숍, 포럼 등 사람에게 열려있는 프로세스가 프로젝트의 기본 틀을 이뤘으며, 이는 창의적인 파빌리온 디자인 발상에도 도움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혁신파크에 입주해있던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청년일자리허브, 서울크리에이티브, 마을공동체지원센터, 인생이모작지원센터를 비롯한 여러 입주 기업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미래 운영 방향을 끊임없이 고려했다.


모바일 큐브

파빌리온은 임시적이라기보다는 부속적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가볍고 즐거운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도록 독립적인 구조물로 지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 점에 주목하여 모바일 큐브의 목표를 자립으로 설정했다. 도시의 에너지 그리드로부터 자립할 수 있는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삶의 형태를 제안했다. 서울혁신파크에는 총 27개의 파빌리온이 조성되었다. 파빌리온의 디자인에는 건축, 조경, 제품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가 참여했는데, 그 중 6개의 이동형 파빌리온을 소개한다.


서울시립대학교의 김영민 교수는 ‘차도농 라운지(차가운 도시 농부 라운지)’를 기획했다. 도시 농업을 사랑하는 이 시대의 차가운 도시 농부를 위한 트렌디한 공간이다. 필요에 따라 전면부를 개방할 수 있어 공간 안팎의 경계가 허물어졌고, 라운지의 거울 천장과 장난감 디스펜서dispenser 사이에는 조명이 설치되었다. 이 공간은 희귀한 종자를 모아서 나눠주고, 주민들이 직접 생산한 잉여 종자를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된다. 도시 농업의 기본이 되는 씨앗을 통해 주민이 소통하는 공간 조성을 시도한 파빌리온이다.

매니페스토Manifesto Architecture의 디자이너 박여진과 손진원은 냉장 시설 없이도 식품을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을 활용한 사계절 글램핑 부엌 ‘모바일 키친 스테이션’을 기획했다. 먹는다는 것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적인 일이지만 필수 불가결한 행위이기도 하다. 어디든 위치할 수 있는 모바일 키친의 특성을 살려 먹는 행위에 대한 새로운 모색을 꾀했다. 이 파빌리온은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고 식사의 질을 높이는 동시에 ‘함께 먹는 행위’를 적극적으로 돕는다. 가구와 생활 시설물은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기성 가구의 부품을 이용해 제작됐는데, 이는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여건에 맞게 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단순한 큐브 형태의 외관을 살리는 동시에, 지붕의 중앙을 V 형태로 내려 경사면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 이는 미관상의 이유로 태양광 패널 설치를 기피하는 건축의 훌륭한 대안이 된다.



안지용은 홍익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미시간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뉴욕과 서울에서 매니페스토 건축사사무소(Manifesto Architecture)와 매니페스토 디자인 랩(Manifesto Design Lab)을 운영하고 있다. 숟가락에서 도시까지, 그 사이에 담긴 제품, 가구, 공간, 건축, 서비스 등의 다양한 융합 디자인으로 보다 좋은 세상을 디자인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뉴욕과 덴버, 샬럿, 홍콩, 서울, 성남, 세종 등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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