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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A] 전통과 이용
  • 환경과조경 2014년 7월

“전통은 고정되어 있는 것인가, 전통의 본질은 무엇인가에 대한 원론적 논의부터, 전통의 현대적 계승, 재현, 모사, 모방, 변용 등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정답 없는 문제지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그래도 끊임없이 진행된 전통에 관한 논의 덕분에 이제는 직설적으로 외형만 본떠 만드는 것이 전통의 계승이라는 목소리들은 수그러들었지만, 문제는 여전하다는 것이다. 바로 지난달에 완공된 조경 공간 내에도 외형만을 빌려다 설계하고 시공한 정자며 방지며 원도며 담장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눈에 보이는 고정적인 형태주의 위주의 전통만이 아니라 그 이면에 숨어있는 눈에 안 보이는 질서와 고유의 세계관의 발견이 보다 기름진 전통 계승과 창조의 텃밭 역할을 할 수 있을 것”1이라는 인식은 활자 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전통 전문가들은 답답하단다. 돌을 눕히거나 세워서 쌓는 들여쌓기 양식은 일본의 조경 양식인데 마치 우리의 전통 양식인 양 전통 공간 내에도 무분별하게 도입되고 있고, 방지 내에 원도를 배치하고는 분수를 설치하는 경우는 또 어느 나라 스타일이냐며 한탄한다. 자신 있게 복원할 수 없다면 유적지는 차라리 그대로 두고, 제대로 모방하지 않을 바에야 후손들 혼동하지 않게 전통 요소를 도입하지 말란다. 실무자들도 답답하단다. 어디 우리나라 상황이 글줄이나 읊어대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예산이며, 시간이 여유 있는 줄 아냐고 한다. 무엇보다 발주처나 이용자들이 전통 요소의 도입을 선호하는데, 어쩌란 말이냐고 한다.

전통 관련 논의는 진부하고, 전통은 여전히 그 일부분 혹은 한두 가지 요소만이 도입되고 있고, 현실은 너무도 견고해 보이지만, ‘그래도’ 전통은 방학숙제처럼 마냥 미뤄둘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현대 조경 공간에 전통을 도입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대상지 전체가 아예 조성의 목적을 전통 정원의 재현에 두고 있는 경우다. 희원이나 해외에 조성되고 있는 한국 전통 정원이 이에 해당한다. 두 번째는 전체 대상지 중 타 공간과 확연히 구분되는 특정 공간만을 전통 정원으로 꾸미는 경우다. 여의도공원 내의 한국전통의 숲, 일산호수공원 내의 전통 정원, 경주 안압지의 축조 양식을 도입한 분당 중앙공원 내의 분당호 주변 등이 그 예가 된다. 마지막으로는 특별한 공간 분할 장치 없이 타 공간과 혼재된 곳에 전통 조경의 일부 요소가 도입된 경우다. 선유도공원의 선유정을 비롯, 무수히 많은 사례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진부한 여전한 답답한, 전통”이란 제목으로 썼던 글2의 앞부분이다. 공원이나 아파트 외부 공간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던 ‘전통 코스프레’ 공간을 보며 느꼈던 답답함이 글의 출발점이었다. 그러나 이번 호에 실린 두 곳의 전통 정원은 그와는 거리가 멀다. 타슈켄트 서울공원은 말할 것도 없고, 율수원 역시 본격적인 전통 양식의 한옥 정원을 목표로 했다. 단, 율수원은 생활 공간으로서의 현대 한옥 정원에 초점을 맞추었다.

안계동 대표(동심원조경)를 인터뷰하기에 앞서, ‘정원 문화 심포지엄’에서 율수원 소개를 접했다. 처음에는 어디서 본 듯한 전통 요소의 짜깁기 공간인가 싶었다. 사진 속에는 일본풍이 아닌가 싶은 공간도 보였다. 그런데 ‘생활과 이용’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면서 흥미가 가기 시작했다. 그동안 전통 양식의 공간을 접할 때마다, 왜 ‘문화재, 보전, 복원, 재현, 계승, 교육, 볼거리, 장식적 공간’ 따위만을 떠올렸을까? 그러고 보니 전통 양식의 정원이 실제 이용하기에는 어떠한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이용을 전제로 새로 만들어진 개인 한옥 정원을 접한 것도 율수원이 처음이었다. 몇 년 사이 한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제법 뜨거워졌는데도 말이다.

율수원의 경우, 사모정과 방지가 있는 후정 부분에 일본풍의 첨경물이 놓여 있고, 잔디밭 주변에는 제법 화려한 초화류도 심겨 있다. 가든 파티를 할 수 있는 평상도 있다. 일본풍 첨경물은 공사가 모두 끝난 후 안주인이 설치한 것이고, 잔디밭이나 평상은 정원으로서의 이용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목욕채 뒤뜰에는 포장재로 맷돌도 깔려있다. 엄격한 전통 양식과는 거리가 먼 부분이다.

반면, 후정의 연못은 클라이언트의 희망에 따라 서석지를 적극적으로 참고해서, 연못의 깊이와 돌 쌓는 방식, 돌의 크기 등을 결정했다. 원래 연못 주변에 안전을 고려해서 녹지대를 두르는 방안을 검토했는데, 최종적으로 녹지대를 없애고 흙 마당에서 돌경계가 곧바로 맞닿는 전통 양식을 따랐다. 식물 수종을 비롯해서, 공간 구성까지 전통 양식을 기본적으로 따르되 현대적 쓰임을 고려해서 약간의 변형을 가한 것이다.

“이곳과 똑같은 모습의 한옥 정원은 어디에도 없다.” 안계동 대표의 이 말을 듣는 순간, 어디서 본 듯한 전통 요소들의 집합장이 아닌가 했던 의심이, 실은 나의 답답한 고정관념에서 나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사토 마당과 사모정, 방지, 원도, 화계가 있다고 해서, 즉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가 같다고 해서 공간이 같은 것은 당연히 아닐 테니 말이다. 전통을 꼭 재현이나 계승의 차원에서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한옥의 장점을 취하려는 노력이 지속되고 있는 것처럼, 현대적인 한옥 정원의 매력을 탐구하는 노력도 필요해 보인다. 만약 지금 전통을 열쇳말로 글을 쓴다면, ‘지금 여기의 한옥’도 한 챕터 정도는 포함되지 않을까. 이용을 전제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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