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시네마 스케이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낯선 강박과 가짜가 주는 황홀한 미적 체험
  • 환경과조경 2014년 7월

GRAND2.jpg

 

오래전에 본 웨스 앤더슨Wes Anderson 감독의 ‘로얄 테넌바움The Royal Tenenbaums’은 내 취향의 영화가 아니었다. 빨간 추리닝을 단체로 입은 이상한 가족과 욕실에서 생활하는 은둔형 캐릭터로 짙은 아이라인을 한 기네스 펠트로 정도만 기억에 남았다. 기이한 강박이 낯설었다. 작년에 ‘문라이즈 킹덤Moonrise Kingdom’을 본 후 같은 감독의 전작들을 찾아보고 나서야 드디어 그의 독특한 스타일이 주는 낯섦을 즐기게 되었다. 올해 개봉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The Grand Budapest Hotel’은 매력적인 시공간, 이야기구조, 상상을 초월한 캐스팅과 함께 그가 줄곧 추구해온 독특한 형식미가 극대화된 영화다. 한때 번성했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소유하게 된 벨 보이의 모험담을 그리고 있는데,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이야기 전개보다 형식적인 면에 더 집중한다는 점이다. 가상의 시간과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모험담은 다소 허술하고 황당하기까지 하지만,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공간의 구조·형태·색감, 공간을 보는 방식, 이야기와 공간의 관계는 매우 정교하다. 인공적인 호텔의 내·외부 모습과는 달리 배경도시의 경관은 극사실적이다. 촬영지인 독일 동부의 드레스덴Dresden과 괴를리츠Görlitz는 중세의 건물이나 고풍스러운 골목길이 그대로 남아 있는 도시여서 영화 속 배경인 1930년대의 분위기가 생생히 전달된다.

영화 속 공간의 매력 포인트는 자로 정확히 잰 듯한 질서와 공간에 대한 강박이다. 인물은 항상 정중앙에 있거나 양쪽으로 정확히 대비되어 배치되고 그 가운데 그림이나 창문, 그것도 아니면 아무 의미 없는 사람이라도 세워놓고 좌우 대칭 구조를 만들고 있다. 엘리베이터, 화장실이 없는 작은 옥탑방, 케이블카, 교도소, 호텔 스태프룸, 기차 객실, 공중전화 박스처럼 폐쇄감을 주는 작은 공간이 자주 등장한다. 사건을 해결하는 중요한 소품 중 하나도 정육면체의 상자다. 리본을 풀면 단숨에 해체되는 분홍색 케이크 상자는 마치 공간을 축소한 모형 같이 보인다(호텔의 외장도 같은 분홍색이다). 시간 속의 시간, 공간 속의 공간 개념은 영화 후반부에 주인공들이 크고 작은 케이크 상자들이 쌓인 작은 트럭 안으로 떨어지며 다시 반복된다. 이러한 질서와 강박이 주는 형식미는 자칫 무거울 수 있는데, 빠른 카메라 움직임, 경쾌한 음악, 반복적인 사선의 움직임, 화려한 색감, 유쾌한 회화적 은유 등으로 그 무게를 덜어낸다.

주인공이 집착하는 과다한 향수, 와인, 나이든 여자에 대한 취향과 시도 때도 없이 시를 낭독하는 모습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제복에 대한 애정 역시 두드러지는데, 호텔 제복, 죄수복, 사제복, 군복, 킬러복(누가봐도 킬러스러운 복장과 표정)으로 집단과 소속을 표현한다. 그러나 제복을 입은 사람들은 대체로 엉뚱하고 우스워서 제복이라는 틀을 스스로 조롱하는 것처럼 보인다.

‘설국열차’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틸다 스윈튼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분장으로 짧은 출연이지만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런 소소하고 세밀한 디테일들이 전체적인 형식미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고, 한겨레 영화평론 전문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전공으로 삼아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지만, 극장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그것이 주는 감동과 함께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텍스트라 믿고 있다.

월간 환경과조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