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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작은 디테일부터
  • 환경과조경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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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황을 구가하던 한국 조경이 항로를 잃은 배처럼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건설 경기의 침체로 건축과 조경 분야가 위축되었고, 자구책을 마련하며 이겨나가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역부족이다. 대부분의 조경가가 내뱉는 말은 “그저 버텨야죠” 일색이다. 설상가상으로 업역 다툼도 한층 치열해졌고, 우후죽순처럼 발전을 거듭하는 중국 조경은 우리를 더욱 움츠러들게 한다. 이 시점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조경이 외적으로 풍성함을 누렸던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아파트 분양 자율화에 있었다. 거주보다는 부동산 투자의 방편이었던 아파트 건설열풍에 편승해서 한국 조경은 디자인의 질적 향상 보다는 겉으로 보이는 조야한 화려함에만 치중해 왔다.

조경의 가치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한눈에 보이는 큰 그림보다 세심하게 들여다보아야 하는 작은 디자인 디테일부터 고민하고 노력했어야 한다. 아주 작은 눈짓이나 입가의 미소가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듯, 공간의 섬세한 디테일이 공간의 이미지를 높여준다. 갑자기 폭증한 일감, 적은 설계비, 까다로운 발주처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는 독창적인 디자인과 디테일 개발을 소홀히 하고 기성품으로 조경 설계의 내용을 채웠다. 새로운 공간에 적합한 새로운 디테일을 고민하지 않고 가장 일반적인 디테일을 그대로 적용하면서 편하게 넘어가곤 했다. 건축, 도시, 토목 분야와 차별화된다고 우리 스스로 자부하는 식재 설계 디테일 도면도 누구나 쉽게 베껴서 할 수 있는 수준의 디자인으로 마무리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조경가가 다른 분야의 전문가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무기를 녹이 슬 때까지 방치한 것이다. 새로운 재료, 공법, 가공 기술 등에 대한 다양한 연구 개발을 진행하기는커녕 설계 물량의 양적 풍성함에 취해서 전문적인 디자인과 기술 개발을 등한시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제 조경의 회복을 위한 전기를 마련할 시점이다. 조경만이 해낼 수 있는 디자인 디테일을 발굴하고, 결과물을 모니터링하고, 부족한 점을 냉철히 직시해야 한다. 후속 프로젝트에서 보다 높은 수준의 디자인 디테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토론과 논의 또한 활성화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과 노력이 장기적으로 조경 디자인의 새로운 영역과 정체성을 만들어줄 것이다. 그러할 때 조경가는 도시의 일부분만을 디자인하는 전문가를 넘어서 도시의 가치를 높이고 정체성을 바꾸는 전문가로, 도시를 재생시키는 전문가로 대우받으며 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눈을 크게 뜨고 새로운 시장을 바라보되 우리가 간과하며 지나쳤던 작은 디테일부터 새롭게 주목한다면 조경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1983년부터 조경 디자인을 시작했으니 어느새 30년이 훌쩍 넘었다. 열악하기 짝이 없는 기반에서 시작했지만 그 덕분에 작은 디테일 디자인부터 세부 시공까지 하나하나 경험하며 일할 수 있었다. 기성품이 없어서 의자, 퍼골라, 휴지통, 안내판, 지주목, 미끄럼틀, 그네, 조합놀이대, 수경시설 등 모든 것을 직접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밑거름이 되어 지금까지 다양한 재료를 바탕으로 섬세한 디테일을 고려하게 되었다. 물론 이런 경험을 내세우고자 함이 아니다. 한국 조경의 다음 세대에게 다양한 디자인과 새로운 디테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젊은 조경가들이 한국 조경의 희망이다. 국내외에서 다양한 교육과 실천을 통해 새로운 디자인과 디테일을 경험하며 고민해 온 신진 조경가 그룹이 이제 한국 조경의 새로운 좌표를 제시하고 조경의 영역을 확장시켜 나가리라 믿는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과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익숙한 그들이 한국 조경의 다음 패러다임을 열어줄 것을 기대한다. 작은 디테일 디자인부터 도시의 비전을 계획하는 일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그들이 감당할 것이다. 건축과 대화하며 도시를 다시 살리고 바꾸어 나갈 것이다. 단순히 보기만 좋은 도시가 아니라 활력 있고 생기 있는 도시를 만드는 그런 조경가가 되어야 한다. 환경의 질뿐만 아니라 도시의 경제와 문화를 살리고 시민의 참여를 유도하는 그런 디자인을 선도해야 한다.

새로운 장을 열어갈 젊은 조경가들에게 한 가지 당부할 것이 있다. 조경가는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웬 뜬금없는 사랑 타령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랑의 다른 이름은 관심과 애착이기도 하다. 조경가는 땅을 사랑하고, 식물을 사랑하고, 환경을 사랑해야 한다. 주어진 일을 사랑하고 일을 통해 만나는 사람과 그 지역을 사랑하며 디자인한다면, 그 디자인은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전하게 되고 그 사랑으로 도시는 아름답게 될 것이다.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듯, “사랑은 모든 허물과 죄를 덮는다.” 사랑 가득한 도시를 만들어갈 그들의 미래를 기대한다.

 

 

최신현은 우대기술단 조경사업부를 거쳐 2003년 씨토포스를 설립했다. 북서울꿈의숲, 대구 두류공원, 고령 대가야 역사테마파크, 진주 만경지구 남가람 문화거리, 아양교 조형물, 대구 동구청앞 광장, 무안 회산 백련지 등 다양한 층위의 작품을 설계하였으며, 서서울호수공원으로 미국조경가협회상(ASLA Professional Awards)을 수상했다. 동탄2신도시 워터프론트, 신월정수장 부지공원화, 의정부 역전근린공원(캠프 홀링워터), 충북 음성 혁신도시 등 다수의 설계공모에서 당선되었고, 영남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다. 현재 한국조경사회 수석부회장, 서울시 공공조경가그룹 위원, 서울시 건축심의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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