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이집트 정원
History of Landscape Architecture with 100 Scenes: The Egypt Gardens
  • 환경과조경 2016년 2월

IGYPT01.jpg

베니 하산 3호 무덤의 내실 남쪽 벽에 그려진 벽화. 묘주의 가족뿐만 아니라 전 식솔이 등장한다. 아래에서 셋째 줄에 두 명의 정원사가 그려져 있으며 그들의 머리 위에 각각 ‘정원사 네테르네히트’, ‘정원사 네페르호텝’이라고 직책과 이름이 쓰여 있다. ©Universitätsbibliothek Heidelberg

 

 

#72

인류 최초의 정원사들


마리 루이제 고트하인Marie Luise Gothein(1863~1931)이라는 여성이 있었다. 약 백 년 전, 1914년에 『정원예술사Gartenkunst』라는 책을 내놓은 독일 여성이다. 2권으로 구성된 방대한 책으로서 고대 이집트부터 책이 출판된 1910년경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데, 아직도 이 책을 능가하는 정원 역사서는 없는 것으로 안다. 일찌감치 영어로도 번역되었다. 고트하인 여사는 교양 시민층에서 태어나 탄탄한 기초 교육을 받고 학문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었으나 여성은 대학 입학이 불가한 시대였으므로 독학으로 석학의 경지에 올랐다. 그녀는 런던의 대영도서관을 자신의 대학으로 여겼다고 한다. 『정원예술사』 책을 내놓기 전에 영국 시인들에 대한 평서를 여럿 발표하고 번역서도 냈다. 그러다가 정원 열병에 걸렸던 것 같다. 처음에는 풍경화식 정원을 연구하기 위해 영국 전체를 여행했다가 차츰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지중해 일대를 돌아다녔고 결국 이집트 정원사까지 탐구했다. 그리고 10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위의 책을 완성했다.1 위키피디아는 물론 참고 서적도 변변치 않았던 시대였다. 아마도 영국과 독일의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정원 서적과 도판을 모조리 읽고 분석하지 않았나 싶다. 말년에는 중국, 일본, 인도 등을 여행하다가 인도 문화에 심취하여 『인도 정원』이라는 책도 냈다. 1931년 세상을 떠나기 직전,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100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원고를 쓰는 내게 고트하인 여사의 『정원예술사』는 매우 소중한 참고서다. 물론 백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은 연구가 많이 진행되었으므로 미진한 부분이 없진 않지만, 그런데도 읽을 때마다 그녀의 맑은 지성과 뛰어난 통찰력에 새삼스럽게 놀라곤 한다. 다른 서적을 읽다가 고트하인 여사의 책에서 그대로 베낀 내용을 발견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는 사이 고트하인 여사는 내게 몹시 존경스러운 인물이 되었다. 이번 달, 이집트 정원에 대한 원고를 쓸 요량으로 그녀의 『정원예술사』 이집트 편을 다시 들춰보았다. 읽던 중 문득 솔깃한 대목을 만났다. 이집트 중부의 베니 하산Beni Hasan이라는 동네에서 발견된 벽화에 대한 설명이었다. “정사각형의 화단들이 나란히 배치된 곳이 바로 채소밭이다. 채소밭 옆에 원형의 연못이 있는데 그 주변에 식물 덩굴을 그려 넣어 연못이 정원에 속함을 알렸다. 남자 둘이 부지런히 물을 길어다가 채소밭에 붓고 있다. 이들은 정원사로서 충분히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그들의 이름이 떡하니 쓰여 있을 뿐 아니라 무덤 주인에게 제물을 바치는 장면에서 또 한 번 등장하기 때문이다. 어깨에 장대를 메고 자기들이 기른 채소를 바구니가 미어지게 담아서 나르는 장면이다. 이 정원사들의 이름은 ‘네테르네히트Neternecht’와 네페르호텝‘Neferhotep’이었다.”

 

연재하는 동안 왕, 귀족, 영웅이나 유명 인사의 정원 이야기를 전하는 데 다소 지쳐있었던 것 같다. 이때 나타난 두명의 정원사는 마치 첫눈처럼 신선했다. 이들이 과연 누구였을까. 어느 시대에 살았을까. 어떻게 살다 갔을까. 고트하인 여사는 더 이상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으나 나는 이들의 삶에 대해 좀 더 자세한 것을 알고 싶었다. 각주를 찾아보니 퍼시 뉴베리Percy Newberry라는 이집트 학자가 1893년에 베니 하산에서 발굴된 석묘에 대해 쓴 책들이 있는 데 그중 1권의 삽도 27번부터 참고했다고 적혀 있었다. 검색해 본 결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도서관에서 그의 책을 2012년에 스캔하여 디지털 아카이브에서 제공하고 있었다. 퍼시 뉴베리는 베니 하산 지방의 발굴 책임을 맡았던 자였다. 여기서 중왕국 시대의 석묘 39점이 발굴되었는데 그 결과에 대해 집필한 것이 위의 책이다. 39개의 무덤 중에서 3호 무덤 벽화에 우리의 두 정원사가 등장한다. 3호 무덤은 아메넴헤트 1세(기원전 1991~1962)의 시대를 살았던 어느 왕족의 무덤이었다.2 그러니 우리의 두 정원사는 지금으로부터 약 4천 년 전에 활약했다는 결론이 얻어진다. 그들의 이름이 알려지게 된 것은 무덤주가 가족 구성원뿐만 아니라 모든 식솔을 벽화에 등장시키고 각각 머리 위에 직분과 이름을 써넣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정원사’라는 뜻의 상형문자는 라고 쓴다. 오른쪽의 문자는 갈대 두 개인데 음성 부호로서 알파벳 y를 대신한다. 왼쪽의 것은 장대에 매단 채소 바구니나 물동이인 듯하다. 아니면 트렐리스에 주렁주렁 열린 포도송이를 뜻하는 것일까. 우리의 두 정원사에 대한 흔적은 여기서 더 이상 추적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발굴된 무덤 중에서 정원사의 것은 없다. 물론 앞으로 발굴될 수도 있다. 당시 정원사들이 노예였는지 자유인이었는지 역시 알 수 없다. 자유인이었다고 해도 높은 석묘 건축비를 감당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디에 묻혔을까. 해결되지 않은 질문을 그대로 두고 일단은 단락을 넘기는 수밖에 없다. 정원에 대한 문헌 기록은 모형이나 그림보다 적어도 천 년 정도 앞선다. 고왕국 제4왕조 첫째 왕인 스네페루 Sneferu(기원전 2600~2576년경)대에 이집트 북쪽을 통치했던 총독은 ―이름이 확실치 않다― 비록 정원 모형이나 그림은 남기지 않았지만 기록을 통해 “1헥타르가 넘는 정원과 450헥타르의 포도밭”의 소유자였음을 자랑했다.3 고대 이집트에서 포도는 생활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식물이었다. 열매를 먹고 포도주를 만들어 마시며 신전에 바치고 제사에 올리는 중요한 열매였다. 늦어도 고왕국 초기부터 이미 포도밭을 만들어 가꾼 것으로 알려져 있다.4 본래 레반트 지역에서 건너왔을 터이나 곧 이집트 전역에서 재배되었다. 포도밭을 가꾸는 장면을 가장 먼저 묘사한 것도 이집트였다. 고왕국의 4~5대 왕조 사이(기원전 2600~2500년경)에 이미 ‘포도의 일대기’를 그려 포도가 무르익어 와인이 되는 과정을 묘사했다.5 이렇게 포도를 가꾸고 익혀서 열매를 수확하거나 포도주를 만드는 것 역시 정원사의 일이었다. 덩굴 식물이므로 트렐리스를 만들어주면 줄기들이 서로 얽혀 녹색 지붕을 이루는 포도나무는 정원의 중요한 요소이기도 했다.

가족들이 포도 덩굴 아래 앉아 연못을 바라보는 여유로운 풍경도 볼 수 있으며 정원사들이 짬짬이 포도 덩굴 아래서 땀을 식히는 모습도 그려졌다. 포도주는 고급 품목으로서 왕실, 신전과 고관의 전용물이었다. 궁전이나 신전에 대규모의 포도밭을 조성하여 전문적으로 생산했다. 당시 궁전이나 신전 정원의 반은 포도밭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6 물론 최대 효과를 노려 관수하고 관리했다. 이를 위해 사방으로 물길을 내고 약 2.5m 간격의 격자로 점토 벽돌 기둥을 세웠으며 이 기둥에 대고 포도나무를 심었다. 기둥의 크기는 가로·세로 약 1.3m, 높이는 2~2.2m 정도로 수확하기에 적절한 높이였다. 기둥을 이렇게 넓게 만든 것은 포도나무 주변의 온도를 최대한 일정하게 유지하여 한 해에 여러 번 수확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이다. 사시사철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던 이집트의 포도밭은 알키노오스의 정원을 연상시킨다. 그리스에서는 꿈에 그리는 이상향으로 묘사되지만 이집트에서는 현실이었다.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 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비롯 총 네 권의 정원·식물 책을 펴냈고, 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월간 환경과조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