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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을 이야기하다 ; 스케이프_시나리오
  • 환경과조경 2007년 2월

용산부지의 귀환
용산미군기지 약 80만평이 공원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온다. 비상금 숨겨놓는다고 책 사이에 껴놓고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나서 몇 년 뒤에 우연히 펼쳐든 책에서 찾게된 몇 만원!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내 돈 내가 찾았는데도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 하물며 우리가 오랜 시간 우리의 사고가 닿지 않던 매우 큰 땅을 돌려받는 것, 그것도 공원의 형태로 돌려받는 상황은 적어도 몇 년 동안은 기분좋아야할 사건이다. 그러므로 이 공원을 조성하는 과정 자체도 기쁘고 축제분위기에서 이뤄져야 함은 당연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축제적인 공원조성의 과정이 너무 경직되거나 공원의 성격을 너무 과하게 규정해서 혹시 있을지 모를 다른 논의나 가능성들을 가로막고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용산미군기지의 공원화 관련 주제를 살펴보면 역사, 문화, 생태, 시민 등 크게 네 가지를 들 수 있다. 이 네 단어들이 용산공원에 용해되어야 할 것임에 대해서는 크게 반대할만한 여지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주제들만이 절대적인 가치로 용산공원에 적용되어야 하는지는 더 두고 볼 여지가 있다.

용산부지의 현황과 가치
필자는 용산미군기지에 방문해본 적이 없다. 아마도 서울시민들 중 용산미군기지의 현황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반포로나 이태원로에서 보이는 투박한 담장과 철조망이 아니면 아마 용산미군기지의 존재에 대해서 모르고 지나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참고할 수 있는 여러 사진들을 통해서 본 용산미군기지 내부의 분위기는 말 그대로 군부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미국의 그저 그런 중소도시의 교외에서 볼 수 있는 경관을 가진 것으로 판단된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이전에는 필자 스스로 용산미군기지를 비무장지대 비슷한 것이라고 착각하고 굉장한 자연환경을 가졌을 것이라고 오해하면서 지냈었다. 이전만 된다면 당장이라도 남산과 한강이 녹색으로 연결되리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미군기지 현재의 모습은 말 그대로 군부대이지 동남부 일부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단한 환경적 가치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고 판단된다. 그렇다면 용산미군기지의 공원으로서 땅의 가치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필자는 3가지 키워드에 주목하고자 한다.

첫 번째 키워드는 ‘대규모, bigness’이다(그림1). 80만평이 넘는 대규모 유용지가 서울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이를 설레게 하고도 남음이다. 개발론자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돈덩이 터전으로 보일 것이고, 환경론자의 입장에서는 서울의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는 새로운 허파로 볼 것이다. 정치적 도구로도 이용될 가능성도 십분 있으며, 올해 있을 대선 공약의 대상으로 거론될 확률이 매우 높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다양한 관심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이 땅이 이러한 큰 이슈들을 담을만한 넉넉한 규모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땅이 넓기 때문에 포용할 수 있는 담론의 크기도 드넓을 것으로 기대한다.
두 번째 키워드는 ‘입지, location’이다(그림2). 이 거대한 땅이 서울의 중심인 사대문과 바로 근접하고 있다. 남산과 한강을 잇는 징검다리 역할의 입지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같은 규모의 땅이 서울외곽에 입지하는 것과의 가치와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규모와 입지 두가지 면모를 가지고도 용산미군기지는 서울의 도시구조와 이미지를 변화시킬 막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다.
이 두가지 키워드 외에 미군기지 자체의 가치라고 할 수는 없지만 대상지가 인접하고 있는 다양한 ‘컨텍스트, context’가 세 번째 키워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그림3). 남산과 한강등 의 자연 환경을 비롯해서, 서울역, 용산역을 포함한 경부선 등의 교통인프라, 용산전자상가, 얼마 전에 신문에 개발소식이 들려온 국제업무단지 예정지, 전쟁기념관, 국립중앙박물관과 이태원특구 등 다양한 상업, 문화시설들이 산재해 있다. 용산공원의 등장으로 이러한 컨텍스트가 미군기지 주변에 산재하고 있다는 개념에서 용산공원을 중심으로 연계되어 있다는 개념으로의 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 도시공원의 이해
용산공원의 가능성을 논하기 앞서 현대 도시공원에 대한 이해를 선행할 필요를 느낀다. 도시공원은 비교적 근대적인 도시현상이다. 그 모양새가 자연을 닮았지만 엄밀히 얘기하면 공원의 고향은 도시이다. 지난 150여 년 동안 조성된 대규모 도시공원은 크게 세 가지의 조성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그 첫 번째는 개인과 공공에게 삶의 질에 대한 만족감 및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상적인 도시구조에 일조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자연과 문화를 연결하는 예술적인 작품으로서 존재하는 것이었다. 공원조성 당시 패러다임이 공원에 반영되는 것이라고 가정하면, 100년 전과 지금은 너무나도 다른 상황과 조건(자동차, 대량운송, 일일생활권, 관광의 광역화, 쇼핑몰, 고속도로, 텔레비전, 핸드폰, 인터넷 등등)에서 우리는 생활하고 있으며, 100년 전의 공원조성 개념과 현재의 것이 동일한 공원의 스테레오타입을 도출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점점 다양하게 진화된 공원의 형태, 기능과 프로그램은 도시의 변화에 대응하여 새로운 상상의 대상으로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도시공원의 새로운 개념이나 형태는 라빌렛공원이 조성된 시점인 1980년대 이후 약 20여년의 기간동안 몇몇 실험적 설계경기 및 작품을 통해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공원을 묻는 질문에 90%이상의 대답을 점유할 것으로 기대되는 것이 맨하탄에 위치한 센트럴파크이다. 조경가라는 직업의 시조 격 되는 옴스테드의 역작이며 공원의 대명사인 센트럴파크는 공원의 범주 그 자체이며, 타 공원평가의 판단기준이 된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용산공원도 센트럴파크처럼 조성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것이다. 센트럴파크가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된 데에는 당시 상황의 요구가 있었다. 혹시 ‘갱오브뉴욕’이라는 영화를 기억하는가? 184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영화적 픽션을 내포하고 있기는 하지만 센트럴파크가 조성되기 시작한 1850년대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지금이야 고급주택가를 배경으로 목가적인 풍경을 자랑하고 있기는 하지만 당시의 맨하탄은 그렇게 정돈된 이미지는 아니었다. 옴스테드 역시 센트럴파크의 당위성을 도시와의 대조에서 찾고 있었다. 도시는 악이고, 그 반대되는 선의 이미지는 자연의 모습을 담은 공원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센트럴파크는 주중에 험란한 도시생활에 지친 노동자 계층들이 주말의 충전을 기약하는 교회당과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조성 당시의 설계안이 150여년이 지난 지금도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센트럴파크의 위상 앞에서 공원의 형태에 대한 새로운 시도는 무의미해보이기까지 하다. 그야말로 공원설계의 매뉴얼이 되어버린 신화와 같은 공원. 센트럴파크는 지금도 뉴요커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공원이지만 센트럴파크의 성공이 그 조성방식과 외형적인 면에서도 모든 공원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지원해 해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즉 비슷하게 따라 한다고 해서 모든 공원이 센트럴파크가 될 수는 없는 법이니까 말이다. 센트럴파크의 성공은 시대가 요구하는 사항을 파악하고 주도적으로 이끌어내었던 옴스테드라는 조경가의 탁월한 안목과 공원을 품고 있는 도시와의 상승작용이 그 배경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옴스테드식의 공원철학(도시와 공원의 이분법)이 우리 시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판단 하에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공원은 어떠한 의미와 형태를 가질 수 있을까?

시민의 욕구와 공원개념의 확장
필자는 어떠한 공간이 공원으로 불리기 위한 조건으로 1. 열린 접근성 (불특정 다수의 접근이 허용되는 오픈스페이스) 2. 프로그램적 공공성 (내재된 프로그램이 공익을 위한 것일 것) 3. 비영리성 (혹시 이 공간을 통해서 발생하는 수익이 있다면 비영리적으로만 사용될 것) 4. 생태적 건강성 등을 생각한다. 여가시간을 할애하는 장소로 이마트, 백화점, 코엑스몰, 대형서점 등의 쇼핑몰이 급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공간들이 상업기능 본래의 역할에 첨부하여 많은 어메니티 시설을 도입하여 과거 공원이 했던 역할을 대신 해내는 듯한 인상을 갖게끔 한다. 아무나 공짜로 들어갈 수 있고, 구매행위 외에도 많은 공공적인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지만, 오픈스페이스와 비영리성이라는 항목에서 공원의 범주에 포함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주목할 점은 과거에 공원에서 해소되었던 휴게와 레크리에이션의 기능이 많은 부분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으로 이전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과장되게 표현하면 굳이 공원을 찾지 않아도 공원욕구를 충족시키는 데에 큰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이도 하다. 공원기능의 독점을 민간상업기능에게 나눠주고 있는 현대 도시공원의 생존을 위한 돌파구는 무엇인가? 이러한 점에서 용산미군기지를 배경으로 한 공원의 개념의 확장, 특히 프로그램적 확장에 대해서 논의해볼만하다.


정욱주 Jeong, Wook Ju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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