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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을 이야기하다 ; 세상에서 가장 거친 숲으로 들어가는 길고 긴 여정
  • 환경과조경 2007년 2월

‘그 용이 「증보 문헌 비고」에 따르면 백제 기루왕 때에 오늘의 용산구의 앞 한강에 나타나 하늘로 올랐고, 「동국 여지 승람」에는 양화 나루 동쪽 언덕 곧 오늘에는 행정 구역으로 마포구에 속하는 절두산이 용두봉 곧 용머리 산으로 나와 있다. 인왕산의 한 줄기가 남쪽으로 뻗으면서 만리동의 만리 고개를 거쳐 원효로까지 내려와 서쪽으로 고개를 홱 비튼 것이 용처럼 생겼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의 용산구는 우리 조상들의 민간 신안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용을 데려다 그의 허리와 목덜미에 마을을 일군 셈이다.’ 한국의 발견 서울, ‘군사시설을 가슴에 안은 땅 - 용산구’, 뿌리깊은 나무, 여덟째판 둘째쇄 1992, 194쪽.

신화의 땅을 꿈꾸다
하늘과 땅과 바다가 하나의 기운으로 순환하던 그 때, 용은 하늘에서 인왕산 자락으로 내려와 만초천을 따라 한강으로 들어갔다가 멀리 서해까지 다녀왔을 것이다. 그 때 용산의 낮은 구릉과 넓고 황량한 벌판은 용을 품어 안은 대지의 형상이었으리라. 그러나 지난 백여 년의 시간 동안 용산에는 총과 칼과 대포가 똬리를 틀고 앉아 있었다. 이제 우리의 기억 속에 용은 없다.

식민 의식이 만들어 낸 백여 년의 점령지를 둘러싼 철조망이 그러했고, 자본의 논리에 따른 개발의 광풍 어디에도 용의 거처를 마련해 줄 신화가 숨 쉬는 땅은 없었다. 그 땅이 다시 돌아온다. 형체를 알 수 없는 지형과 적의敵意를 숨긴 막사 건물로 뒤덮인 얼룩진 땅으로 돌아온다. 하늘을 수직으로 자르는 빗돌에 둘러싸여, 초지와 모래벌, 숲으로 가득했던 기억도 없이, 고립무원의 섬처럼 돌아온다. 그리고 기억의 잔해를 지우려는 반 고고학자들과 강성한 공화국주의자들, 개발론자를 등에 엎은 식민주의자들과 만나고 있다. 권력이 그들의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서울에 대한 꿈의 전부인가.

서울시 전체를 놓고 용산을 보다
80만평의 크기와 그 범위 안의 것이 아니라 서울시 전체에 대한 ‘입장’과 ‘미래’ 속에 용산을 놓는다. 아직도 떨쳐버리지 못한 개발의 망령은 미사여구 속에 녹아 ‘뉴타운’과 ‘섬처럼 고립된 공원’ 그리고 그 면적에 상응하는 높이의 상승 속에서 흔적과 기억을 말소한 채 누군가의 전시회 제목처럼 ‘카달로그’ 도시를 꿈꾼다. 하여 용산 미군기지의 진정한 문제는 부지 내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부지 외부의 조건에 대한 이해와 해결 그리고 우리의 의식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푸른 심장이란 아메바
605.4㎢의 서울에 2.6㎢의 푸른 심장의 아메바_거친 숲을 놓기로 한다.

남북을 가로지르는 푸른 숲을 잇다
이 아메바는 북으로 남산을 타고 인왕산을 거쳐 북악산과 북한산까지 닿고, 남으로는 동작대교를 건너 국립묘지의 뒷산을 지나 관악산으로 이어진다. 나무가 자라는 긴 시간, 나무만큼의 높이가 주는 스카이라인, 관악산에서 북한산까지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이어지는 푸른 숲 길. 그것은 끝없는 개발 욕망뿐 아니라 지금의 서울이 지향하는 모든 가치를 전복시키는 반명제(anti-thesis)이면서 새로운 서울의 전범이 된다. 거기에는 숲 이외에 아무 것도 없다.

동작대교를 인도교로 바꾸다
서울시 전체 지도를 놓고 산과 강을 그리고 다리를 잇는다. 녹지축의 상징적 연결을 넘어 푸른 숲과 더불어 살아가는 도시와 만나고 자연과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지금까지 진행된 개발의 속도와 차량 중심의 개발에 대한 전복적인 대안으로 동작대교를 인도교로 바꾼다. 북한산에서 관악산까지 푸른 길을 걸어서 가는 이 느리고 긴 산책 속에서 드러나는 서울의 모습을 보며 시간과 공간에 대한 현재 우리의 시선을 바꾸리라.

하늘과 땅이 비로소 만나다
기존의 건물과 지형을 그대로 놓아둔 채 모든 포장을 걷어낸다. 모든 구조물을 그대로 둔다. 전쟁을 위해서만 존재했던 점령지의 오랜 생채기가 그대로 드러난다. 땅의 모든 것이 회복되는 일정한 시간, 하늘과 땅이 바로 만나 씨앗이 날아들고, 물이 고이고, 바람이 휩쓸도록 내버려 둔다.

모든 길을 띄우다
부지를 가로지르는 모든 길을 지상에서 띄운다. 사람길과 찻길은 높이를 달리한다. 인간의 체취는 담지 않기로 한다. 옛길의 자취는 조금씩 풀숲에 가려지고 허물어진 벽은 부지불식간에 우리를 막아선다. 이 지상에서 떨어진 거리만큼 객관적인 시선으로 용산을 바라본다. 길은 외부로 뻗어 나간다.

나무를 심다
그리고 조금씩 지워나간다. 나무를 심는다. 나무가 자라듯, 안쪽부터 바깥으로 아주 천천히 제거한다. 제거된 자리에 다시 나무를 심는다. 공간의 느린 흐름 속에 기억은 천천히 순화된다. 더불어 오염된 땅과 그 속도 조금씩 정화되고, 어느 시점에서 그 기억은 각인되리라. 지워지지 않으리라. 그 지점과 시점에 구조체를 그대로 놓아둔다. 환기(喚起)한다. 무장된 땅에 대한 정신적 무장해제의 긴 시간, 그것은 평화와 통일을 상징한다. 모든 전쟁에 대한 반대와 우리 안의 호전주의에 대한 경각심을 동시에 담는다.

새로운 도시를 시작하다
거친 숲으로 들어가는 이 길고 긴 여정, 차와 구조물을 위한 도시가 아니라 사람과 나무를 위한 도시, 하늘을 가린 욕망이 아니라 땅으로 스며들어 하늘을 우러르는 자연과 인간의 축적을 가진 도시, 무기체를 뒤덮은 스모그의 뿌연 대기가 아니라 푸른 빛을 머금은 신화를 다시 꿈꿀 수 있는 도시를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혹시 모른다. 천둥이 심한 어느 날 빗 속을 유영하는 푸른 비늘의 그를 보게 될지도.


이수학 Lee, Soo Hag
아뜰리에 나무 소장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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