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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디자인과 조경은 하나다
  • 환경과조경 2008년 9월
공공디자인은 모두의 것이다

거리를 점령한 자가 권력을 장악한다고 한다. 거꾸로 보면 아무리 권력을 장악해도 개인 집안까지 차지할 수는 없다는 말도 된다. 공공디자인은 무엇인가? 공공영역을 지배하는 권력과 같은 것인가? 아니면 도시와 나라를 키울 수 있는 국부인가? 혹은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할 수 있는 브랜드인가? 아마도 모두 다 해당될 것이다. (여기에서는 그러한 논의는 잠시 미루자.)
이제 다시보자. 과연 공공디자인이 이 시대 새로운 화두인가? 아니라고 본다. 조경에서는 예부터 이미 해왔던 일이다. 다만 새롭다기보다 되살린 것이다. 공급에서 수요로, 개인에서 전체로, 주관에서 객관으로 다시 나아가자는 이념적 추구이다. 도시라는 우리 모듬살이에서 불편을 해소하고 서로를 위하며 나아가서 개인의 최선이 곧 전체의 최선이 되도록 하자는, 즉 사람관계를 디자인하자는 것이다. 그러한 유토피아는 결코 멀고도 딴 세상이 아니다. 바로 “최선”을 “최적”개념으로 바꾸면 제법 할 만하다. 그런데 이 시대 우리 사회에서 개인의 존엄이 보다 더 중요시되고 있다. 당연하듯이 사익이 공익에 앞서기 일쑤다. 결국 개인의 바람은 최대화되도록 추구하기 마련인 반면 사회의 바람은 최소한도로 유지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우리는 당연히 더불어 사는 데 익숙할 터인데도 불구하고 요즈음 그 양태가 마치 우리 사회가 전혀 하나의 사회가 아닌 듯 보인다. 도시의 대부분, 또 대부분의 도시에서 “치졸”하거나 “폭력”적인 모습이 너무나 팽배해있다. 그 배후는 바로 철저한 상업주의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공디자인이 부각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사실 오늘날 우리 삶은 “공공” 아닌 것이 없을 정도이다. 공공영역의 것은 물론이고, 개인의 것도 바깥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모두 공공적이다. 그러하니 개인의 집도 공공적 얼굴을 가지고, 개인의 정원도 공공적 표정을 짓는다. 조경이든 건축이든 미술이든 하나의 프로젝트가 개념에서 시작해서 재료를 통해 디테일로 완성된다고 보면, 공공디자인이라는 일 역시 여러 일이 섞이고 또한 많기 마련이다.
공공적 모양새는 얼핏 시각적이거나 단편적인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 사회의 이념을 피어나고 가치관이 시험받기 마련이다. 도시의 큰 틀 만들기에서든 거리의 작은 오브제를 만드는 일이든 모두 그 도시의 속사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하니 당연히 조경, 도시, 건축, 미술, 토목 등 여러 부문의 디자인분야가 다함께 참여하고 또 서로 통해야 할 것이다. 당연히 시민 또한 어떠한 방식으로든 여러 경로로 참여해야 할 것이다. 다만 각 부문의 전문성과 그 접근에 차이가 있기 마련이고 또 각 부문의 패러다임과 근본이 조금씩 다를 수 있기에, 공공의 디자인 전체를 만드는 방식에 있어서 각 부문 사이에 전후와 주종이 없을 수 없다.


다시 껴안자


이러할 즈음에서 당연히 조경계의 되돌아보자. 이 계기를 안으로 단결시키고 화합하는 데 선용해야 할 것이다. 조경 내부적 소통의 채널을 강화하고, 이론 정립과 실천적 구사능력을 배양해야 할 것이다. 또한 디자인의 능력과 제도문제도 다시 확인하고, 나아가서 디자인의 어휘발굴은 물론 그 표현과 전달력을 크게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당연히 작품의 완성도와 타이밍을 적확히 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바깥으로 선언적 주장과 행위도 필요하고, 조경의 고유한 전문성이 얼마나 공공디자인의 바탕과 알찬 내용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부각시키는 노력도 들여야 할 것이다. 결코 집단이기주의적 발상이 아니라, 자연을 보호하고 인간을 위하는 가장 원초적인 행위이자 가장 아름다운 작업임을 상기시키자.
공공디자인은 얼핏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조경에서 공공디자인의 사명을 다시금 되새기고 만나보자. 찾아 나서자. 능력은 충분하다. 다만 그 주체인 시민이 소비자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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