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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과 식물 ; 꽃, 나무, 사람 그리고 행복한 게임
  • 환경과조경 2008년 5월

제1장 포기
보랏빛 분홍의 도드라진 꽃잎과 그 속에 그려진 정교한 무늬, 깊은 숲에서 일찍 피었다 사라지는 짧은 생애, 나아가 씨앗을 퍼뜨리는 일종의 지략까지, 얼레지 꽃은 스타로서 모든 것을 갖춘 식물이었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많은 재배가들 혹은 개인적 수집가들이 얼레지 꽃을 가까이서 두고 보기 위한 노력들을 했으나 불행히도 얼레지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얼레지는 습하고 그늘진 음지에서, 부식질이 잘 발달한 토양조건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드는 건조하고 딱딱한 토양조건에서 얼레지는 그 화려한 자태를 만들어낼 수 없었던 것이다.

제2장 당혹
식물의 역사는 탈출의 역사이다. 그들은 언제나 새로운 세계를 동경하고 영역확장의 꿈을 꾼다. 이것은 개척 역사의 다른 해석방식이다. 자운영은 가축의 사료를 생산할 목적으로 들여와 울타리 속에 가두어 재배했던 식물이었다. 그러나 자운영은 이내 자연의 너른 들판을 향해 뛰쳐나와 사람의 목적과 무관한 자신의 의지를 실현할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자운영은 이제 우리나라 어지간한 곳에서 자신의 성공담을 풀어놓음으로서 그것을 들여온 사람들에게는 이러저런 원성을 흘린다. 유채 역시 한때 재배식물이었으나 울타리를 벗어나 자유를 찾아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제3장 편애
사람의 식물에 대한 애정은 어느 정도 고약한 면이 있다. 자연인 식물이 마치 인간의 진귀한 보물과 같아서 흔한 것보다는 희소적인 것에 더 많은 흥미를 갖는다. 자원과 잡초의 경계는 희소성에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사람이 오롯이 자연을 감상하고 자연을 곁에 두고자 하는 마음이기 보다는 식물 역시 사람의 개인적인 소장품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요즘 들어 민들레, 냉이꽃, 광대수염, 개불알풀, 꽃다지, 꽃말이, 봄맞이꽃, 양지꽃, 이처럼 너무 흔해서 사람들에게 별스런 주목을 받지 못했던 식물들, 사람들이 흔히 야생의 자연에게나 잘 어울린다고 제쳐 두었던 이들 식물들이 하나 둘 꽃시장에서 혹은 식물원에서 서서히 자신들의 구분된 공간을 제공받고 있으니, 사랑은 역시 움직이는 것이다.

제4장 체념
사람과 식물의 역사에서 때로 식물이 주도권을 쥐고 있기도 하다. 양귀비꽃은 그 화려한 색감과 소담스런 자태로 아름다움의 대명사가 되었다. 당대 최고의 미인이 꽃 이름을 땄는지, 꽃이 미인의 이름을 땄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그 둘의 공통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어 욕망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제5장 유혹
인류는 태어나면서부터 식물에게 유혹당해 왔다. 지상에 인간이 탄생했을 때 식물들은 이미 지금과 같은 발전을 이룩한 상태였다. 풍성한 초록의 몸체와 아름다운 꽃, 탐스런 열매, 식물이 이룩한 낙원에서 인류는 행복했다. 특히 꽃이 만들어내는 향은 대부분이 휘발성 테르펜계 물질로 이는 동물의 중추신경을 자극해 흥분을 시키거나 진정시키는 효과를 가진다.

제6장 승리
인간은 식물의 길들이기에서 가끔 완전한 승리를 취하기도 한다. 튤립 제배의 역사는 인간의 식물지배 역사에서 완전한 승리처럼 보인다. 물론 가끔 튤립의 반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럴수록 사람은 이 꽃은 점령하기 위해 더 많은 갖은 노력을 했다. 튤립은 이제 정확하게 학명을 말하는 것이 별의미가 없을 정도로 많은 원예품종들이 만들어져 있지만 원종은 Tulipa gesneriana로 백합목 백합과 튤립파속 알뿌리식물이다. 꽃잎은 두툼하게 부풀어 오르기도 하고 가늘게 갈라져 하늘거리기도 한다. 색상은 선명한 노랑에서부터 욕망의 붉음에서 검은색에 이르기까지 아주 단순하거나 혹은 다양한 얼룩무늬를 가진다. 그러면서 특이하게도 튤립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이미지에서 거의 고정되어 있다. 튤립 꽃송이가 그려내는 미끈한 곡선이라든지, 단순한 색상은 세계적으로 통일되어 있다. 누구나 튤립은 쉽게 그릴 수 있으며 어떻게 그려도 그 꽃은 튤립이 되는 것이다.

제7장 타협
생강나무의 노란 꽃은 가장 먼저 숲의 봄을 알린다. 물론 생강나무 꽃이 필 때쯤이면 신갈나무며 졸참나무, 서어나무, 오리나무, 버드나무의 꽃이 만개했을 테지만, 사람들에게 꽃은 여전 아름다운 꽃잎을 가진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생강나무의 노란 꽃만이 봄의 전령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강나무가 탐난다고 하지만 이 꽃은 사람 주위에서 살아가기를 꺼린다. 그것은 얼레지와 같다. 결국 사람들은 생강나무의 노란 꽃 대신에 산수유나무의 노란 꽃으로 도시의 봄을 장식한다. 그것은 일종의 체념이자 타협이라 볼 수 있겠다.


글·사진 _ 차윤정 Cha, Yoon Jung(농학박사, 산림생태학자)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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