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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희의 식물이야기(12)
  • 환경과조경 2011년 5월

사람과 같이한 식물의 긴 역사 5

신이라 불리던 나무들
도시에 떠도는 잡귀들이 너무 많다. 억울하게 생매장된 수천만 가축들의 울음이 들리는 듯하고, 아침마다 황사가 하늘을 우울하게 뒤덮고 있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방사능까지 원혼이 되어 떠돌고 있다. 봄이 오는 걸음도 유래 없이 느렸다.
바로 코앞에서 일본 원전 사고가 벌어졌음에도 우리는 짐짓 의연한데 머나먼 유럽은 지금 야단법석이다. 원자력을 아예 포기하라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원자력 기반의 에너지 로비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쉽게 성사될 것 같지는 않지만 원자력이 세상을 포기될 때까지 시위행렬이 그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한국처럼 원자력 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장차 어떻게 해야 할지 답답하다. 점진적인 감소 방안과 대체 에너지 도입에 대한 정책이 곧 발표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어본다.
아무리 개인적으로 방독면을 준비하고 채소를 베란다에서 길러 먹고, 집안에 식물을 들여놓는다고 하더라도 이는 마치 맨 손으로 다가오는 백발을 막으려 하는 것만큼이나 헛된 몸짓일 것이다. 일단 방출되고 나면 사방에서 다양한 경로를 통해 보이지 않게 침입하는 방사능을 막을 도리는 없다.
산이나 들에 가라앉는 방사성 물질이 토양과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토양이 식물을 오염시키고 식물이 동물을 오염시키고 이들이 다시 사람을 오염시킨다. 농경지에서는 지표에 방사선 물질이 흡착되었다고 해도 땅을 갈면 토양 속의 미네랄 성분과 섞여 버리므로 식물에 흡수되지 않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숲이 오히려 문제가 된다. 숲 속의 토양은 유기물 함량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방사성 물질이 미네랄과 섞이지 못하고 표토에 함유되어 있다가 어떤 방식으로든지 인체에 도달하게 되어있다. 그 뿐 아니라 침엽수가 말썽이다. 셀 수 없이 많은 잎들이 달려 있으므로 일단 방사능을 거르는 필터 기능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언젠가는 이 잎들이 땅에 떨어지게 되어 있다. 그것도 여러 해에 걸쳐 오염된 잎이 땅에 떨어지므로 사고 후 몇 년이 지나면 토양의 오염도가 오히려 높아진다고 한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당시 이미 다 겪은 일이다. 방사능 사고는 한 번 일이 벌어지면 수습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마치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잡귀처럼. 그렇다고 귀신을 쫓는다는 복숭아나무 가지로 때려서 쫓아낼 수 있는 것들도 아니지 않는가. 혹시 도시에 떠돌고 있는 저 우울한 기운들을 바로 잡아 줄 식물은 없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지금껏 오랜 세월 사람을 지켜왔던 식물의 신들이 원자력 문제에 대해서도 어떤 복안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
는 일이고, 아니면 거꾸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언젠가 먼 과거에 짜인 각본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본다. 물론 식물의 힘을 너무 과대 평가하는 것이라고 웃을지 모른다. 과연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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