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공공사업 기준으로 매년 천여 개에 달하는 건축과 조경 설계공모가 시행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렇게 설계공모를 하는 이유는 공공시설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서다. 한국의 모든 건설 산업을 주관하는 국토교통부는 아예 ‘건축서비스산업 진흥법’이라는 법을 따로 만들어 공모의 목적과 절차를 세세하게 정하고 있다. 하나의 공공시설이 설계공모를 통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사업 기획부터 사전 검토, 설계공모 운영, 심사, 당선작 선정, 계약, 각종 심의와 인증, 시공사 선정, 그리고 설계 의도 구현까지 복잡다단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할 수 없는 중요한 일들이다. 그런데 그 과정 중 하나에 커다란 구멍이 나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업계 대부분은 물론 정부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데 도무지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할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심사의 공정성 문제다.
2024년 대한건축사협회(이하 건축사협회) 공정건축설계공모추진위원회가 실시한 건축사 대상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무려 93.9%가 설계공모의 불공정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물론 낙선한 입장에서 본 물증이 없는 심증에 따른 착각이려니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럼 이건 어떤가.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설계공모에 대한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수집해 오고 있는 설계경기기록원 스코어러의 자료를 분석해 보면 비정상적인 지점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선 조달청 공모전을 보자. 지난 2023년 조달청에서 발주한 공모전 85개 중 36%에 달하는 31개를 상위 네 개 설계사무소가 독점했는데, 설계비로만 따지면 전체 합계 금액의 절반이 넘는다. 이게 얼마나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인가 하면, 비슷한 시기 총괄건축가 제도하에 공모전 운영위원회를 조직해서 상대적으로 공정성에 정성을 기울인 서울시의 27개 공모전에서는 그 어느 사무소도 두 번 이상 당선된 사례가 없다. 조달청뿐만 아니라 특정 지역의 공모전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인구 60만 명이 넘는 모 도시는 설계비 기준으로 공모전의 60%를 한 설계사무소가 독점하고 있다. 오죽하면 시의회 의원이 이를 문제 삼아 언론에 제보까지 했을까. 전국의 지자체에서 발주하는 공모전을 이런 관점으로 조사해 보면, 소위 그 지역의 절대 강자가 없는 지자체를 세는 편이 더 빠르다.
객관적인 데이터만 보아도 이런데, 공모전 심판과 선수로 뛰면서 겪는 현실은 훨씬 더 심각하다. 참가 업체가 심사위원에게 사전 접촉을 시도하는 것쯤은 당연한 관행이 되었고, 오히려 찾아오지 않으면 성의가 없다며 심사위원이 괘씸해 하기도 한다. 심지어 앞서 말한 설문조사에서 11.8%의 응답자가 역으로 심사위원으로부터 금품 요구를 받아본 적이 있다고 했는데, 1,200명 가까이 답한 설문조사에서 이는 적지 않은 숫자다. 제일 곤란한 상황은 지인을 통한 간접적인 사전 접촉이다. 대형 설계사무소일수록 협력 관계로 일하는 작은 설계사무소들이 많은데, 그렇게 네트워크를 넓게 펼쳐놓고 보면 어떤 심사위원이든 학연이나 지연으로 반드시 엮이기 마련이다.
그렇게 한두 단계 꺾여 접점이 파악되면 ‘나를 봐서라도 ○○○ 한번만 만나주면 안 되겠니’ 같은 인정에 호소하는 로비가 펼쳐진다. 사전 접촉을 한 사람이 공모전 참가 당사자가 아니기에 직접 증거가 없기도 하거니와, 인간관계가 걸려 있어 아무리 청렴하고 올곧은 심사위원일지라도 웬만해선 발주 기관에 신고하기가 매우 힘들다. 행여 마음이 독한 심사위원을 만나 사전 접촉 시도가 신고로 이어지더라도 그 업체는 해당 공모전의 심사 대상에서만 제외될 뿐, 추가적인 제재 조치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최근 서울시 건축사회가 사전 접촉을 시도한 건축사사무소에 대해 단순 경고만으로 징계를 마무리해서 고발 당사자를 허탈하게 만든 사건도 있었다. 그나마 잡기 쉽다는 ‘주는 쪽’에 대한 대처가 이 모양인데, ‘받는 쪽’에 대한 감시나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가 없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기에, 이미 뭔가를 받는 시점에서는 양쪽 모두 한배를 탄 운명이기 때문이다. 이런 약점을 이용해서 심사 중 휴식 시간에 로비 금액을 올려달라고 딜을 치는 배짱 좋은 심사위원을 봤다는 목격담도 있다.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망가진 걸까? 많은 이가 지금은 없어진 턴키 제도가 많은 것을 망쳐놓았다고 입을 모은다. 건설사의 막강한 자금력을 이용해 수십 억의 돈이 공모전 영업비로 들어가던 시절,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들을 다들 한두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심사 당일 새벽 어느 집에 불이 켜지나 지켜보다가 심사위원 당첨이 확인되면 동선을 따라다니며 무슨 첩보 작전 수행하듯 밀착 로비를 했다는 둥, 최고급 노트북에 피티 영상을 띄워서 보여주고는 마치 실수인 듯 연구실에 노트북을 그대로 놓고 나왔다는 둥. 건설사의 그런 일을 도맡아 했던 인력들이 턴키가 없어지자 대형 설계사무소로 자리를 옮겼고, 그간에 만든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예전 건설사에서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사무실을 다니며 업계 이면의 규칙을 배운 직원들이 독립해서 똑같은 방식으로 로비를 일삼았고, 또 민간 경기 악화로 설계공모 전체가 과열되면서 사전 접촉 정도는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금액대 낮은 공모전으로까지 번져 지금과 같은 진흙탕이 되었다는 분석이다. 물론 그 한편에는 심사를 업으로 삼는 교수들이 마치 하늘이 준 특권인 양 특정 안을 밀어주는 대가로 한몫 챙기는 것을 당연시해 온 분위기가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어떤 방법이 있을까. 근본적으로 설계공모와 관련된 불공정 행위에 대해 제대로 된 감시 시스템과 처벌 규정이 없는 것이 문제다. 건축사협회는 자체적인 윤리 규정을 통해 건축사에 대한 징계가 가능하기는 하지만, 태생적으로 협회의 주 목적이 회원의 권익 보호이기에 앞서든 사례처럼 실질적으로는 작동하지 않는다. 더구나 심사위원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교수에게는 건축사 윤리 규정과 같은 통제 수단이 없다. 그나마 2023년 ‘건축 설계공모 운영지침’ 개정으로 심사 행위가 청탁금지법의 공무수행사인, 즉 민간인이라도 공무원에 준하는 법의 처벌이 가능한 행위에 해당된다는 규정이 신설되었지만, 별다른 감시나 적발 수단이 없는 현실을 고려하면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바꿔 말하면 제대로 된 처벌이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현재의 법 체계를 대대적으로 손을 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현실적으로 가능하고 또 시급한 방법 중 하나는 가능한 한 많은 공모전에 능력 있는 건축 전문가를 심사위원으로 위촉하게 만드는 일이다. 종종 심사위원의 전문성과 공정성이 늘 같이 가는 건 아니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는데, 맞는 말이긴 하지만 적어도 그 반대, 즉 전문성이 없고 공정하기만 한 심사위원보다는 더 나은 심사를 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전문성이 부족하다면 공정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좋은 안을 선택하는 데 별 도움이 안 되는 것은 매한가지다. 무엇보다 공정성은 세평이나 소문 빼고는 객관적으로 증명할 방법이 없지만, 적어도 전문성은 몇 가지 측정할 객관적 기준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심사위원의 자질을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아직 공표되지 않아 구체적으로 밝히긴 어렵지만, 현재 모 기관이 전문성을 갖춘 심사위원 후보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위한 기초 자료 수집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물론 이 데이터베이스가 곧바로 심사위원 선정으로 연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이런 시도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처음이고, 공청회나 관련 단체의 의견 수렴을 거쳐 몇 가지 추가적 보완을 거친다면 검증된 심사위원 풀을 만드는 초석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어떤 계기로 2024년 설계공모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위촉 횟수가 7회 이상인 225명의 심사위원 면면을 조사한 적이 있다. 그들이 그해 설계공모의 약 4분의 1을 심사했는데, 그중 60%에 달하는 심사위원의 건축 작품이나 설계 관련 논문, 전문 분야 등을 공개된 매체나 데이터로는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데이터베이스가 제대로 구축된다면 이런 일은 점차 줄어들 것이고, 심사위원 위촉에 대한 최소한의 객관적 근거가 마련될 것이라 기대한다.
제도를 개선하는 또 다른 방법 중 하나는 정보의 공개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다. ‘건축 설계공모 운영지침’은 2014년 첫 제정 이후 지속적으로 설계공모와 관련된 정보를 더 많이 공개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어 왔다. 투명성이야말로 공정성의 바탕이라고 본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점이 부족하다. 요즘 들어 소위 ‘손을 타는’ 공모전들은 운영위원회 단계부터 작업을 시작한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공정하게 운영된 공모전은 설계공모 지침서에 운영위원의 명단을 공개하지만, 아직도 대다수의 공모전은 그렇지 않다. 사소하게 보이는 이런 정보도 숨기고 싶어 하는 쪽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심사 과정의 중계도 마찬가지다. 현행 지침에 따라 실시간 공개는 의무지만 그 취지가 무색하게 제출된 공모안을 보여주지는 않고 심사위원의 표정만 내내 보여주거나 민감한 부분에서는 음소거를 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 하루빨리 지침이 개정되어 명확하게 각각의 안을 식별할 수 있게 중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심사가 끝나면 심사평은 물론 실명이 명기된 표결 용지와 입상작의 투시도, 평면도와 같은 기본 도면까지 지정된 홈페이지에 공개되어야 한다. 현재 지침에는 심사위원의 실명 공개 의무도 없고 입상작은 막연히 이미지만 공개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 데다 공개하지 않을 때의 처벌 조항이 전무해서 건축행정시스템 세움터 기준으로 결과가 미등록 상태인 공모전이 전체의 30%에 육박한다. 발주처 입장에서는 공개했을 경우 발생할 민원이 피곤해서 그랬으리라 짐작이 되지만, 이런 투명하지 못한 행정이 불공정의 가능성을 키우는 씨앗이 되기에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
한편으로는 심사위원 비공개를 주장하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이런 주장에 힘입어 2023년 지침 개정부터 설계비 20억 원 이상의 설계공모는 심사위원을 공모안 제출 이후에 공개할 수 있게 되었다. 심사위원 비공개 주장의 핵심은 비공개 기간을 최대한 늘려 심사위원과 참가자가 접촉할 기회를 차단하자는 것이다. 극도로 혼탁한 현재의 설계공모 판을 생각하면 언뜻 설득력 있게 들리지만 이것 또한 맹점이 있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심사위원의 정보가 비공개의 망을 뚫고 새어나갈 염려도 그중 하나지만, 더 큰 문제는 전문성 있는 심사위원의 비율 자체가 지나치게 낮은 현실에서 참가자로부터 그래도 괜찮은 공모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는다는 점이다. 당장 각각의 설계공모를 누가 봐도 공정한 절차에 따라 운영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능력 있는 설계자를 공모전으로 끌어들여 결과적으로 더 나은 공공시설을 만들어내는 것이 더 궁극적인 목표인 것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도 정보를 숨기는 방향으로 가면 누군가는 결국 시스템의 허점을 찾아낼 것이고, 이는 또 다른 불공정과 불평등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당장은 어렵고 돌아가더라도 가능한 모든 정보를 공개하기 시작하면 그토록 요원해 보이던 자정 작용이 서서히 작동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미리 나눠준 안도 제대로 안 보고 와서 토론을 기피하거나 하던 말과 관계없는 엉뚱한 안을 찍는 이상한 심사위원의 수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심사위원의 권리는 근본적으로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다. 국민이 낸 세금을 어떻게 쓸지 결정하는 일이고, 결국 그 선택의 결과는 공적 자원이 국민 생활에 기여하는 방식과 정도를 결정짓는다. 설계공모 심사에 임한 심사위원은 소신을 갖고 양심에 따라 자신의 전문적 견해를 솔직하게 드러내야 한다. 평가의 근거를 밝히고 당선작으로 지지하는 안을 표명하는 것은 위임받은 권리를 행사하는 자로서 당연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사실 촘촘한 인적 네트워크로 엮여 있는 건축과 조경계에서 이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참가자가 누구인지 알 수밖에 없는 발표 심사인 경우 그 괴로움은 더 심하다. 물론 요즘 들어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블라인드 발표가 널리 퍼지면 상황이 좀 나아지긴 하겠지만, 그 이전에 심사라는 일 자체를 무겁게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인간관계를 중요하게 따지는 사람들에게는 별로 적합한 일이 아닌 것이다. 또 한 가지 덧붙이면, 다른 심사위원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을 꺼려서는 안 된다. 건축 설계공모 운영지침에서는 심사 시 ‘충분한 토론’을 강조하고 있는데, 여기서 토론이란 토의와는 달리 자신의 주장을 가지고 상대를 설득하는 매우 적극적인 행위를 말한다. 즉 누군가에 의해 설득을 당한다는 것은 그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그럴 경우 집단 지성을 통해 더욱 올바른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커진다. 목소리 큰 사람이 심사에 들어가면 분위기에 휩쓸린다고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걱정이 앞서는 사람은 스스로 심사위원의 자질이 있는지 먼저 돌아보아야 할 일이다.
한국의 설계공모는 개수에 비해 능력 있는 심사위원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주장도 있다. 몇 가지 알려진 사실을 근거로 얼추 따져보기만 해도 꽤 수긍이 가는 주장이다. 심사위원의 자질 문제와 함께 공모전 제도 전반에 대해서도 같이 고민해 보아야 할 이유다. 어수선한 나라 사정으로 뭐가 됐든 추진 동력이 부족한 지금, 쉽지 않은 일이긴하다. 그러나 그 전에 이미 보유하고 있는 괜찮은 심사위원들이 제대로 활용되고 있는지도 따져보아야 한다. 그들을 적절한 설계공모 심사장으로 가능한 한 많이 보내는 일은 제도를 갈아엎는 일보다 훨씬 쉬운 편에 속한다. 그래서 정말 누구든 도전해 보고 싶은 설계공모의 수를 늘리는 것, 그것이 당장 한국 공공시설의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수단이라 믿는다. 원래 설계공모라는 제도의 취지가 바로 그것 아니었는가.
이승환은 서울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아뜰리에17과 해안건축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2009년 런던으로 이주해 메트로폴리탄대학교에서 MA(Master of Arts) 과정을 마치고 다양한 경험을 쌓은 뒤 2014년 귀국해 파트너 전보림과 함께 개소했다. 건축 설계를 하면서 동시에 글쓰기를 통한 현실 개선과 건축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그래도 건축』, 『건축가 아빠가 들려주는 건축 이야기』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