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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 같지만, 사실 내게는 들려온다. 그런 감각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각주 1) 자연의 소리를 화폭에 어떻게 옮길지 고민한다는 구순의 노 작가의 말이다. 이는 작가의 예술 세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서울시립미술관은 2024년 12월 12일부터 2025년 2월 9일까지 한국 구상 회화사의 발전에 있어 중추적 역할을 한 박광진 개인전 ‘자연의 속삭임’을 개최했다. 서울시립미술관 소장품과 작가의 대표작 중 117점을 선별해 네 개의 섹션으로 나눠 선보였다. 첫 번째 섹션 ‘탐색: 인물, 정물, 풍경’에서는 한국 구상 미술의 대표 화가 이봉상, 손응성, 박수근 등의 영향을 받으며 여러 소재를 대상으로 예술적 방향성을 모색하는 과정을 다룬다. 두 번째 섹션 ‘풍경의 발견’에서는 작가가 점차 풍경화에 관심을 기울이며 포착한 여러 경관을 살펴본다. 세 번째 섹션 ‘사계의 빛’에서는 작가가 196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까지 그린 한국의 순수 자연을 섬세한 빛의 묘사를 통해 사실적으로 담아낸 풍경화를 선보인다. 네 번째 섹션 ‘자연의 소리’에서는 1990년대 이후 작가가 제주에서 자생하는 억새와 유채를 대상으로 집약되고 응축된 화면을 보여주고자 새로운 구상 미술의 가능성을 여러 측면에서 모색했던 시기의 작품을 볼 수 있다.
탐색: 인물, 정물, 풍경
박광진은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사이 한국 아카데미즘의 영향 아래 다양한 시도와 실험을 통해 예술적 방향성을 모색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의 수채화에 매료된 그는 서울 사범학교에서 이봉상에게 수업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미술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각주 2) 그의 첫 유화 작품인 ‘창경원 입구’(1952)는 이봉상이 사용한 캔버스에 덧그린 것으로, 스승의 색채가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1954년 홍익대학교 미술학부에 진학한 박광진은 비원파 창시자인 화가 손응성에게 사사하며 예술적 정체성이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손응성의 영향을 받아 불상, 자기, 꽃 등과 고궁을 소재로 작품을 그렸다. 그는 손응성의 그림 보조로 박물관에서 사생하던 중 고미술품 전시실을 배경으로 반가사유상과 기마인물형 토기, 청동 정병 등을 묘사한 ‘국보(國寶)’(1952)를 완성했다. 이 작품으로 제6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차지하며 미술계에 등단했다.
박광진은 옛 문화와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장소로 궁궐을 택했고, 이곳에서 사생을 시작했다.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전당포, 담배 가게, 일제강점기부터 수제화 거리로 알려진 염천교 다리 등으로 영역을 넓히며 일상 속에서 자신만의 풍경을 찾았다. 특히 그는 이웃이었던 서양화가 박수근과 교류하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한 인터뷰(각주 3)에서 박수근이 초가집이나 농부를 많이 그릴 때, 자신은 홍익대학교 근방을 사생했다고 설명했다. 이때 그렸던 ‘담배가게’(1956)는 유화를 활용해 홍익대 학생들의 담배를 사기 위해 들렸던 초가집 노점을 담은 졸업 작품이다. 더불어 이 시기에 그는 보문동과 혜화동 등 여러 장소를 다니며 인물과 풍경을 화폭에 담아냈다. ‘보문동 전당포’(1956)는 당시 많은 작가가 물감을 살 돈을 구하기 위해 자주 찾았던 곳으로, 그들의 일상과 생활 감정을 반영했다.
작가의 시선과 재료가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닭장, 토끼장 같은 향토적 소재를 활용하고, 자화상(1964),(각주 4) 여성 좌상 등을 그리며 고전주의, 인상주의, 사실주의 화풍을 시도했다. 고색(古色)을 사용하거나, 건필로 색을 덧바르거나, 붓질의 속도에 변화를 주는 등 여러 기법을 실험했다. 특히 그는 ‘파고다 탑’(1957), ‘해바라기’(1961) 등에서 주변을 생략하고 가까운 대상이나 그 일부에 집중했고, ‘토끼장’(1962)에서는 가축우리의 사각 격자무늬 구도를 사용해 전통적 원근법에서 벗어난 독특한 시선을 선보였다. 이는 이후 작품의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 환경과조경 443호(2025년 3월호) 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전시 제목 ‘자연의 속삭임’은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비롯됐다.
2. 박광진은 서울 사범학교 재학 당시 이봉상 외에도 서양화가 권옥연, 류경채 등의 미술 수업을 수학한 바 있다.
3. 서울시립미술관, 박광진 화백과의 인터뷰, 2024년 10월 31일.
4. 유일한 자화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