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금 기자가 아니라 금 주사나 금 선생이 될 뻔했다. 취업 준비 시절 지인은 섬마을 시골 분교 국어 선생님 관상이라며 내게 선생님을 권유했다. 고향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넘치는 아버지는 내게 백수의 삶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안정적인 삶이 보장되는 면사무소 주사가 되기를 원하셨다. 모두 훌륭한 직업들이지만, 이상하게도 끌리지 않았다. 시골의 감성을 너무나도 좋아하지만, 각종 놀거리와 볼거리가 넘쳐나는 서울의 삶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말은 제주로 가고, 사람은 서울로 가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속담을 핑계 삼아 서울의 삶을 계속 영위하고 싶었다.
이러한 내가 기자가 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인터뷰’ 때문이었다. 아는 선배의 권유로 웹진의 대학생 에디터로 잠깐 일하며 인터뷰 기사를 써볼 수 있었다. 당시 지금처럼 힙하지 않았던 한 동네의 카페들을 팝업 스토어로 활용한 전시에 참가한 예술가를 인터뷰하는 꼭지를 맡았다. 내밀 명함조차도 없는 초보였지만 열심히 그들을 인터뷰했다. 밥값이나 벌려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어느 순간 그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참 즐거웠다. 버려진 철사로 만든 설치물로 환경 보호 메시지를 전달하는 설치미술가, 명상과 숨소리에서 영감을 얻는 화가, 문 닫은 동네 공장의 문을 추상화처럼 담아낸 사진가 등 다양한 예술가들의 철학과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의 서사도 흥미로웠지만, 세상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와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한 노력과 열정이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그 울림이 기자란 일을 선택한 계기 중 하나가 됐다. 마치 숲에서 오랫동안 헤매다 마침내 길을 안내하는 북극성을 발견한 기분이라고 할까.
기자가 된 이후에도 그 시절을 떠올리며 새로운 북극성을 찾는 마음으로 인터뷰집을 꾸준히 모아왔다. 그중 좋아하는 책을 한 권 꼽자면 바로 『일하는 예술가들』(2018)이다. 소설가 강석경이 장욱진, 김중업 등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추구했던 근현대 예술가의 철학과 작업을 섬세한 언어로 풀어 낸 인터뷰집이다. 잠언집이라 해도 좋을 만큼 밑줄 치고 싶은 예술가들의 답변이 많지만, 그보다 인터뷰를 소설처럼 풀어낸 방식이 더 흥미로웠다.
정확히는 소설처럼 인물의 삶과 서사를 해체했다고 할까. 등장하는 예술가들의 삶에 대해서 말하지만, 오롯이 그 사람 자체에만 집중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삶에 작든 크든 영향을 주었던 주변인들을 소설의 등장인물처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복선을 활용해 서사를 구성했다. 또한 인터뷰란 장르의 특성을 놓치지 않고 자기만의 해석을 더해 한층 더 입체적으로 인물을 바라볼 수 있게 했다. 가령 단순한 도상에 오롯이 집중하며 그림을 그렸던 장욱진의 미학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생략의 예술가로 자주 얘기 된다. …… 춤은 언어의 생략이고, 시는 산문의 생략이며, 소설은 인생의 생략이다. 그림은 마음의 생략이라고나 할까.”
문득 세심한 언어로 탁월한 해석을 내놓았던 작가에게 열다섯 명의 예술가를 만난 후의 소회를 묻고 싶었다. 이제는 하나의 역사가 된 거장들의 작업과 철학을 육성으로 들으며 무엇을 느꼈는지 궁금했다고 할까. 그 답변을 서문에서 어렴풋하게 들을 수 있었다. “물은 깊은 밤에도 저 혼자, 혼자 흘러내리며 자신을 정화시킨다. 끊임없이 흐르면서 맑음, 자기본질을 지키는 물의 속성을 닮고 싶다. 예술가란 바로 세상의 가치에 안주하지 않고 물처럼 쉼 없이 자신을 씻으며 길을 찾아가는 사람이 아닐까.”
이번 호 특집(16쪽)은 이처럼 건축과 조경 분야에서 ‘일하는 예술가’들을 모아 공모의 문제점을 진단하며 공모의 본질에 대해서 살펴봤다. 이를 통해 잠시나마 공모의 본질과 공모의 미래 방향에 대해서 가늠해 볼 수 있었다. 탈도 많고, 문제도 많고,숙제도 많다는 걸 다시금 실감했다. 사실 이러한 상황을 야기하는 문제를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으로 도외시하거나, 남들도 다 한다는 이유로 도의를 저버린 수단을 강구하고, 세상의 불의에 적당히 타협하면서 지낼 수도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렇게 세상은 조금씩 더 어두워진다. 그래서 이번 특집이 어긋나버린 공모의 문제를 직시하고, 좋은 공모, 나아가 좋은 공간을 만들 수 있는 목적지로 가는 작은 길잡이가 되길 바라본다. 어두울 때 가장 빛나는 북극성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