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모아 ([email protected])
편집위원 회의를 마친 뒤 뒤풀이로 곱창집에 간 적이 있다. 완벽한 내향인인 나는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차라리 임무가 주어졌으면 해서, 곱창 굽기에 일가견이 있다는 남기준 편집장의 손에서 집게라도 뺏고 싶었다. 긴장한 날 가여워한 것인지 누군가 물었다. “김 기자는 왜 기자가 되고 싶었어요?” 숱하게 고쳐 쓴 자기소개서의 지원동기 항목을 읊으면 될 일었지만, 질문자가 내가 늘 ‘글은 이런 사람이 쓰는 거구나’ 생각했던 이수학 소장(아뜰리에나무)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그는 관심사가 넓으며 박학다식하고 수많은 책과 영화를 볼 뿐 아니라 깊이 소화해 자신의 언어로 내놓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함부로 입을 뗐다간 속이 텅 빈 사람이라는 걸 들킬까봐 우물쭈물하는 사이 다 구워진 곱창을 입에 욱여넣는 걸로 상황을 무마했다.
그런 이수학 소장에게서 격주에 한 번씩 편지를 받는다. 아뜰리에나무(이하 나무)에서 발행하는 뉴스레터 ‘나뭇잎’이다. 첫 뉴스레터는 예고도 없이 날아들었는데, “여행지 한켠에서 급하게 휘갈겨 쓴 엽서처럼 또는 하고픈 말 다 묻어두고 주소만 덩그러니 있는 그림엽서처럼 난데없고 하릴없지만 이 작은 소식지로 조경이 맞닿은 일상과 일에 때로 가볍고 어쩌면 느리게 낙하해 볼까 합니다”라는 인사말을 마주하고서는 몽롱해졌다. 편지는 아날로그로 써야 낭만적이라는 생각은 다 편견이었다. 바람에 나뭇잎 부딪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뭇잎’은 조경과 경관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길을 걷다 만난 풍경은 물론 책과 영화 속 경관도 다룬다. 나무의 설계 프로젝트도 소개하는데 좀 독특하다. 설계 철학과 해법을 설명하기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설계와 경관에 어떻게 투영했는지 이야기한다. 나무에게 설계는 “세상과 관계 맺고”, “세상과 얘기하는 방편”이기 때문이다. 이따금 전하는 꽃나무 이야기는 내가 발신자와 같은 계절을 보내고 있다는 걸 실감케 한다. 다이어리의 아무 페이지에 그린 손그림에는 디지털 도면에서는 볼 수 없는 손을 떨며 그린 듯한 선이 있는데, 그 떨림에 고민이 묻어 있는 듯해서 들여다보게 된다.
이러한 것들이 나뭇잎이 ‘뉴스’가 아닌 ‘레터(편지)’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가장 흥미롭게 읽은 편지는 ‘디자인 4제’ 시리즈의 데크 편. 데크라는 단어의 의미가 갑판(16세기)에서 부두나 승강장의 나무로 된 평평한 바닥(19세기)으로 확장되어 “집에 딸린 ‘목재 테라스’가 떨어져 나와 공원이나 정원의 시설물로서 지금과 같은 뜻을 갖게 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일 것”이라 추측하며 데크의 역사와 그 역할에 대해 설명한다. 어릴 적 툇마루에서 평상으로 이어지는 기억 덕분에 데크를 좋아하게 됐다고 고백하는데, 생생하게 묘사한 풍경이 참 인상 깊었다. “한옥의 구조를 흉내 낸 그 집에서 마루는 내부도 외부도 아닌 중간 영역으로 앞뒤가 늘 열려 있어 바람 불면 좋고 비 오면 더 좋았다. 툇마루는 햇빛의 자리다. 종일 내리쬐는 빛은 시간과 계절에 따라 농도를 달리하여 끝없이 하릴없게 만들었다.”
이수학은 데크를 바닥 데크와 뜬 데크로 분류한다. “바닥으로서 데크는 땅의 표면으로 재료의 물성을 통해 영역을 나눈다. …… 지면에서 최소한의 높이 이상으로 떠 있는 데크는 지면에 붙은 데크와 달리 시간과 공간의 차원을 전이한다. …… 눕고 뒹굴다 엎드리고 자다 깨는 데크는 풀밭의 연장이고 무심한 하늘 밑이다.” 이어지는 나무의 데크 목록. 바닥 데크: 평평한 데크(사각데크, 둥근데크), 기울어진 데크(긴데크), 뻗어나간 데크(먼데크, 얹혀펼친데크, 바람자리), 스탠드로 연장된 데크(접힌데크), 뜬 데크: 평평한 데크(둥근데크, 모꼴데크), 기울어진 데크(너른긴데크), 놀이를 위한 데크(놀이데크), 계단이 연장된 데크(물가데크). 하나의 주제를 다양하게 풀어내는 솜씨가 웬만한 무크지 편집자보다 낫다. 이걸 공짜로 봐도 되나 이상한 죄책감이 든다. 조경을 잘 모르는 사람이 관심을 갖게 하는 데는 이런 소식지가 제격이지 않을까 싶다.
이수학은 기록을 다루는 특집에서 말했다. “개개인이 엮어 묶은 작업의 기록이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겠는가. 그저 사적인 사건이고 시간일 뿐이지만, 그 대단찮은 기록이 만든 무수한 접점과 다양한 변경(邊境)이 조경의 외연을 넓히고 사물과 인식 사이에서 끝없이 우리를 흔든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각주 1) 좀 더 많은 사람이 ‘나뭇잎’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각주 정리
1. 이수학, “기록하다”, 『환경과조경』 2024년 7월호, p.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