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도 꼬까옷이 필요해
‘좋은 공원’을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수많은 조경인에게 묻고 싶다. 무엇이 좋은 공원을 만드는가? 좋은 공원이 되기 위한 조건에는 무엇이 포함될까? 변화된 사회에 걸맞게 새롭게 단장한 공원이 속속들이 등장하는 가운데 ―물론 필연적이다― 공원은 어떤 ‘꼬까옷’으로 단장해야 할까?(각주 1)
조경사 강의 중 1960년대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지고 제스처가 커진다.(각주 2) 1960년대는 환경, 우주 개발, 세계 정세, 금융, 도시계획 등 온갖 분야에서 새로운 일들이 연달아 일어난 시기였고,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를 만드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하나씩 뽑자면 끝이 없겠지만 환경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던 당시 조경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는 (주로 선진국을 중심으로) 이안 맥하그(Ian McHarg)를 필두로 한 생태적 지역계획 방법론과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의 그리니치 빌리지 마을 보존 운동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에피소드 1. 그리니치 빌리지의 그와 그녀
시민 참여, 장소 만들기, 도시재생, 지역다움 보존 등 재개발의 반대 선상에 놓인 분야의 교과서 격인 제인 제이콥스의 책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The Death and Life of Great American Cities)』(1961)은 제이콥스를 인문 도시계획 분야의 일약 스타로 만들어 주었고, 1960년대 초 그리니치 빌리지를 둘러싼 그(로버트 모세스, 당시 75세)와 그녀(제인 제이콥스, 당시 48세)로 대표되는 ‘도시 개발 대 마을 보존’의 대결이 불거졌다.(각주 3) 사실 제이콥스가 좀 더 중요한 역할을 한 건 1961년 맨해튼 웨스트 빌리지 아파트 개발 사업으로, 실제로 고층 빌딩이 아닌 낮은 층수의 인간적 스케일(human scale)로 건설이 진행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미디어에, 그리고 이후 학계에 한층 더 큰 여파를 낳게 된 건 그리니치 빌리지(Greenich Village), 특히 워싱턴 스퀘어 공원을 가로지르는 로어 맨해튼 고속도로(LOMEX) 계획이었다. 도시에 (현재) 살고 있는 거주민을 우선할 것인가, 아니면 (미래) 도시 발전을 위해 일정 부분 거주민의 희생이 있더라도 교통을 우선할 것인가?(각주 4)
뉴욕시 공원 운영위원장, 로버트 모세스
조경가의 인식 속 로버트 모세스(Robert Moses)의 평판이 바닥을 찍게 된 계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겠다. 하나는 대중교통 등한시, 웨스트사이드 고속도로와 허드슨 브리지 등의 교통 개편, 슬럼을 없애고 커뮤니티를 해체한 대대적인 재개발로 뉴욕시의 구조를 압축적으로 변화시킨 일이다. 다른 하나는 로버트 카로(Robert Caro)의 퓰리처 수상에 빛나는 모세스 전기, 『위대한 브로커(The Power Broker)』(1974)로 인한 것으로, 오늘날 도시계획 관료로서 모세스의 생각과 실천을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데 가장 강력한 계기로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비판에도 불구하고 모세스가 뉴욕의 도시공원과 공공 공간 활성화에 미친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을 테다.
1934년 1월 18일, 뉴욕시 공원국은 “다섯 개로 나뉘어 운영되던 자치구별 공원 운영위원회를 하나로 통합하고, 이에 따라 한 명의 운영위원장이 뉴욕시 전체의 공원을 다루게 되었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한 명의 위원장’은 뉴욕주 공원위원회의 대표이기도 했던 로버트 모세스였다. (뉴욕시 보직을 수락하기 전 모세스는 뉴욕시 자치구별 운영위원회를 하나로 통합할 것을 조건으로 달았다.) 당시 뉴 욕시장이었던 라 과디아(La Guardia)는 진보주의적 입장에서 공학적이고 효율적인 도시 운영(각주 5)의 가능성을 중요하게 보고 있었고, 이에 따라 뉴욕시 대표적 진보주의자였던 모세스가 뉴욕주와 뉴욕시의 공원녹지계획을 모두 진두지휘하게 된 것이다.
이 시기 발행된 뉴욕시 공원국 보도자료를 살펴보면 모세스가 추구한 공간 효율성 증대와 활성화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대중교통보다 자동차를 중시했으며, 도로를 따라 여러 파크웨이를 조성했다. 흔히 ‘벨트 파크웨이(Belt Parkway)’라고 불리는 이 파크웨이들은 반세기 전 옴스테드가 주장한 ‘공원의 연장선이자 도로’로서의 파크웨이가 아니라, 뉴욕시의 여러 자치구를 연결하는 새로운 고속도로 옆 버퍼 공간으로서 녹지대를 의미했다. 즉 도로로서 파크웨이의 의미가 사라지고 효율적이고 편안한 자동차 운행을 위한 장식이자 분리대로서 파크웨이의 기능적 측면이 강조된것이다.
* 환경과조경 442호(2025년 2월호) 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오랜 기간 조경의 장식적 활용에 대해 부정적 견해가 많았다. 다만 ‘장식’의 개념을 새롭게 재정리하자는 의견도 무시할 수 없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 Anita Berrizbeitia, “Design: On the (Continuing) Uses of the Arbitrary”, A Cultural History of Gardens in the Modern Age , John Dixon Hunt, ed., New York: Bloomsbury Publishing, 2016.
2. 은사인 배정한 교수(서울대학교)의 조경 이론 수업도 1969년에 방점을 찍고 있다. 권위자 이름을 빌려 의견에 무게를 실어본다.
3. 이 내용을 바탕으로 다양한 공연도 제작된 바 있다. ‘불도저: 로버트 모세스를 위한 노래’, 모세스의 삶을 바탕으로 한 ‘직선에 미친 사람(Straight Line Crazy)’, 로버트 모세스와 제인 제이콥스의 갈등을 중심으로 한 오페라(!) ‘놀라운 질서(A Marvelous Order)’ 등 이다.
4. 봄, 가을에는 전자로, 여름, 겨울에는 후자로 기울어진다. 기상청에 물어보자.
5. 20세기 초중반 정치적 차원에서 미국 북동부의 진보주의란 효율적이고 과학적인 논리에 따라 도시를 운영하는 것을 의미했다고 볼 수 있다.
신명진은 뉴욕대학교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뒤 서울대학교 대학원 생태조경학과와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석사와 박사를 마친 문어발 도시 연구자다. 현재 예술, 경험, 진정성 등 손에 잡히지 않는 도시의 차원에 관심을 두고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의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도시경관 매거진 『ULC』의 편집진이기도 하며, 종종 갤러리와 미술관을 오가며 온갖 세상만사에 관심을 두고 있다. @jin.everyw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