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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웃거리는 편집자] 바람 따라 보낸 하루
  • 환경과조경 2025년 2월호

일요일 아침, 단잠을 깨우는 알람 소리가 울린다. 힘겹게 눈을 떠 잠을 깨우는 녀석이 누구인지 확인해 보면 매주 보던 알림이다. “지난주 스크린 타임은 12% 증가하였으며 하루 평균 기록은 4시간 25분입니다.” 울릴 때마다 알람 소리를 꺼두어야지 생각하지만 다시 잠을 청하기 위해 당장 울리는 알람 소리 끄기에만 급급해 설정을 바꾼다는 걸 까먹어 매주 만난다. 메시지를 볼 때마다 조금은 반성하게 된다. 증가만 하는 스크린 타임 기록, 줄어드는 일은 손에 꼽힌다.

 

하루 24시간을 기준으로 8시간을 잠을 자고 8시간을 회사에서 지내니 16시간을 빼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8시간. 8시간 중 절반은 핸드폰을 보고 있다는 소리다. 스마트폰 없이는 못 사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하지만, 계산한 시간을 보니 하루 중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이 얼마 없는 것 같다. 특히 밥 친구로 OTT나 유튜브를 보는 습관이 스크린 타임을 늘리는 데 일조하고 있다.

 

밥 먹으며 보는 몇 가지 유튜브 채널이 있는데, 이 중 업로드되면 바로 찾아가 보는 채널이 있다. 유재석이 진행하는 ‘핑계고’다. 유재석이 게스트들과 함께 떠들어 제끼는(이 채널에서 ‘수다를 떤다’는 단어를 ‘떠들어 제낀다’라고 표현한다) 영상으로, 라디오처럼 즐길 수 있어 밥 먹을 때 잘 챙겨 본다. 

 

배우 황정민이 핑계고에 출현해 채널명을 실수로 ‘풍향고’라고 잘못 말해 시작된 스핀오프 시리즈는 내게 색다른 계획을 세우게 했다. 유재석이 풍향고에 ‘바람 따라 떠나는 여행’이라는 설명을 덧붙이면서 정식으로 풍향고가 만들어졌고 유재석, 황정민, 지석진, 양세찬이 함께 베트남으로 떠났다. 베트남으로 떠나면서 조건을 덧붙였는데, ‘애플리케이션 없이 떠나는 여행’이다. 사전에 비행기 표만 예약하고 숙소, 이동 수단, 환전, 음식점 등은 현지에서 해결하는 것이다. 애플리케이션 없이 베트남에서 고군분투하는 출연진의 모습이 웃기면서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어딜 가든 휴대폰을 안 챙긴 적이 없으니 애플리케이션을 쓰지 않고 여행을 간다는 걸 상상한 적이 없다. 애플리케이션 없이 해외여행은 무리인 것 같아 당일치기로 가까운 곳을 다녀오는 걸로 도전했다. 목적지는 경기도 양평의 어느 대형 카페. 첫 장소만 정하고 다음 장소는 도착하면 고르기로 했다. 출발 전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수도권만 확대되어 있고 명소가 표기된 종이 지도를 구하는 게 힘들었다. 서점에서 파는 국내 여행 책을 뒤져 원하는 지도를 찾았고, 종이 한 장 들고 떠났다. 최대한 경로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더 집중해서 지도와 표지판을 봤다. 무사히 도착한 카페에서 마신 커피는 더 달달했고, 통창으로 본 남한강의 풍경은 시원하게 뻥 뚫린 기분을 느끼게 했다.

 

다음 목적지는 딸기 체험 농장. 처음에는 양평의 대표 명소 두물머리를 가려고 했는데, 카페 오다 본 ‘달달한 딸기도 따고 케이크도 먹고’라는 광고 문구가 생각나 농장으로 가게 됐다. 가지고 온 지도에는 표기되어 있지 않아 기억을 더듬어 왔던 길로 되돌아가며 도착했다. 이미 예약이 다 차 있어서 취소 표가 나오기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조금 고민됐지만 하자고 마음먹었으니 기다리기로 했고, 다행히 자리가 났다. 딸기 따고, 딴 딸기로 케이크도 만드는 꽤나 알찬 체험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기 시작해 근처에 보이는 한정식 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여행을 마무리했다.

 

글로 읽을 땐 큰 탈 없이 다닌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경로 이탈도 많이 하고 목적지 하나 정하는 것도 오래 걸렸다. 카페에서 그냥 집에 갈까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찼지만 이왕 시작한 아날로그를 즐겨 보기로 했다. 어딘가에 앉으면 SNS 게시물을 보는 게 루틴이 되었는데 할 게 없으니 주위를 더 둘러보게 됐다. 특히 동행자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애플리케이션 없이 잘 다녀올 수 있을까 걱정 반, 뭔가 더 재미있을 거 같은 설렘 반으로 바람 따라 떠난 여행은 스스로 쌓아둔 장벽을 무너뜨리게 했다. 뭐든 해낼 수 있는 무모한 자신감을 불어넣어줬다. 새해 버프까지 더해진 자신감은 을사년도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을 갖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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