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라디오 방송을 마치고 수색역에서 중앙선을 타면 새벽 6시였다. 그 시간에도 앉을 자리가 없어서 한쪽에 선 채로 휴대폰을 꺼냈다. 라디오 앱을 켜고 방송 중 읽지 못한 청취자 문자를 읽는다. ‘새벽 출근을 하며 듣고 있는데 덕분에 힘이 납니다’, ‘제 최애 코너예요’, ‘이번 주말에는 소개해주신 곳으로 꽃구경 다녀올게요.’ 초반에는 지루하다는 평을 받거나 메시지가 몇 통뿐인 날도 있었지만, 댓글 창에는 대체로 반가운 말들이 가득했다. 한아름 선물을 받아가는 기분.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는 사이 열차는 공덕역에 도착하고, 열차를 가득 메우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방금 전까지 누군가 머물던 자리에 앉아 라디오에 귀를 기울인다. “오늘 어떻게 시작하고 계신가요? 오늘 일단 출발!” DJ의 목소리가 들리면 전철이 지하 구간을 빠져나온다. 창밖으로 건물들이 스쳐가는 동안 노래가 몇 곡 더 흘러나오고, 버드나무 사이로 반짝이는 한강이 보일 때에는 게스트 아나운서가 짤막한 뉴스를 전했다. 노란 큰금계국이 한들거리는 철로를 지난 뒤 내일도 놀러 오라는 클로징 멘트가 들리면 역에 내릴 시간이었다.
#2
작년 11월, 라디오에서 하차했다. 개편은 당연한 일이다. 매년 봄가을이면 수많은 프로그램과 코너가 생기고 사라진다. 그러나 개편이 내 일이 되자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열심히 준비하고 웃으며 진행했던 코너가 개편을 피해가기 어려울 정도로 한참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어 괴로웠다. 이런 생각과 기분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 작업실에 늘 틀어두었던 라디오를 치웠다. 그렇게 일 년을 보냈다.
이제 다시 라디오를 꺼내려고 한다.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DJ의 목소리와 여러 프로그램으로 흩어진 PD, 작가님들이 꾸리고 있는 방송이 궁금해서다. 다만 걱정이다. 토도독. 버튼을 돌려 익숙한 주파수에 맞추면 작업실 창가의 빨간 벽돌 건물이 조금씩 뒤로 움직일 것 같다. 꽃이 핀 철도변과 아침의 한강과 건물 숲, 그리고 어두운 지하를 지나 수색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새벽에 가닿을 때까지. 시간이 약이라는 표현은 아무래도 틀린 말인 듯하다.
**각주 정리
1. 제목은 이소라의 노래 ‘신청곡’ 가사에서 가져왔다. “이봐요 디제이, 나를 웃게 해줄 노래를 틀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