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폴리, 연결된 세계의 집 짓기 _배형민
순환 자원 _편집부
숨쉬는 폴리 _조남호
이코한옥 _어셈블+BC 아키텍츠+아틀리에 루마
옻칠 집 _이토 도요
에어 폴리 _바래
광주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조형물을 마주치게 된다. 이 용도를 알 수 없는 작은 건축물은 쓰임새를 다한 뒤 방치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쩌면 이곳에서 내가 모르는 이벤트가 펼쳐질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심기도 한다. 무표정한 도시의 평범한 일상 공간에 새로운 이야기를 입히는 이것의 정체는 ‘광주폴리’다.
폴리는 서양의 정원에 짓던 장식용 건축물에서 유래했다. 본래도 비를 피하거나 잠깐 휴식하며 머무르는 정도로 쓰이는 실용성이 없는 공간이었지만, 건축가 베르나르 추미(Bernard Tschumi)가 라빌레트 공원에서 색다른 시도를 하며 폴리는 새로운 역할을 갖게 된다. 추미는 라빌레트 공원 전역에 120m 간격으로 35개의 폴리를 배치했다. 기능과는 무관한 다양한 형태의 폴리는 자율적인 오브제로 배치되어 기존 건축의 형식을 해체했다. 이후 폴리는 실용적이지 않아도 문화·예술적 특성을 지닌 공공 시설물이라는 의미를 획득했고, 세계 곳곳의 도시와 공원에 폴리가 세워지기 시작했다.
광주폴리는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일환으로 시작된 프로젝트다. 광주폴리 Ⅰ은 역사적 복원을 주제로, 낙후된 도심에 활력을 불어넣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2년 뒤, 광주폴리 Ⅱ는 광주비엔날레에서 독자적으로 추진하는 도시재생 프로젝트로 바뀌었다. 광주폴리는 공공 공간이 가진 공간·정치적 질서를 탐구했고(2013), 새로운 대중성을 만들고자 ‘맛과 멋’이라는 보편적인 개념에 집중했으며(2017), ‘광주다움’을 주제로 광주 톨게이트를 탈바꿈시켰다(2020).
광주 전역에 설치된 30여 개의 폴리는 회색 도시에 다양한 색과 활기를 입힐 것이라 기대됐다. 하지만 쓸모가 불분명한 폴리가 갖는 단점도 있다. 아무도 폴리가 지닌 잠재력을 발굴하려 들지 않으면 폴리는 그저 덩그러니 선 조형물에 불과하게 된다. 방치되어 낡아가는 폴리는 안전문제를 일으키기도 했고 시민 사회와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박양우 대표이사(광주비엔날레)는 “광주폴리는 그간 홍보와 활용 측면보다는 만들어가는 과정에 집중해왔다. 그 결과 국제적 주목을 받았고 해외에서 폴리를 보러 찾아오는 사람은 많은 반면, 광주 시민에게는 인지도가 낮은 편이다. 폴리의 활용도를 높이고 지역 시민이 찾는 명소로 만들기 위해, 제5차 광주폴리의 주제를 정하는 데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 답을 찾고자 배형민 감독(제5차 광주폴리,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은 도시 속 폴리의 역할이 무엇인지 골몰했다. 그는 “누정은 과거 한국의 커뮤니티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예술에 대해 논했고 사회에 대해 깊이 토론했다”며 광주폴리가 한국 전통 건축물인 누정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새로운 형태의 누정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오가야 할까. 광주폴리는 그 주제로 문명사적 과제인 기후변화를 제시했다. “광주폴리의 쓰임과 기후변화라는 맥락에서 ‘순환’이라는 주제를 떠올렸다. 에너지 절약 차원의 수동적인 제스처가 아니라 자원 차원에서 시작해 건축을 짓는 일 자체에서 순환의 원리를 모색했다.”
순환폴리에서 가장 눈을 끈 건 폴리 조성을 넘어 R&D를 함께 진행했다는 점이다. 디자인, 재료, 공법, 시민 활동을 창조적인 순환 과정으로 구현하는 이번 프로젝트에는 재료를 연구하고 개발하는 과정이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했다. 광주와 호남 지역을 기반으로 다양한 영역의 연구자, 장인, 기업의 협업 시스템을 구축했다. 전문가뿐 아니라 시민을 대상으로 한 워크숍도 진행했다. 배형민은 “광주폴리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프로젝트다. 건축과 공예, 디자인의 미래를 제시했고 시대의 과제에 부응했다는 측면에서 굉장히 자랑스럽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의 여정은 광주비엔날레가 펼친 도록 두 권에 담겨 있다. 『자원과 과정』, 『사람과 장소』라는 제목에서 순환폴리가 중요하게 여긴 가치가 무엇인지 읽어낼 수 있다. 그 지난한 발걸음을 모두 담을 순 없지만 도록 내용의 일부를 요약해 소개한다.
진행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디자인 팽선민 자료제공 광주비엔날레재단
주최 광주광역시
주관 광주비엔날레재단
총감독 배형민(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건축생산 큐레이터 윤정원(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도시 큐레이터 강동영(건축사사무소 라움 대표), 이영미(집합도시 대표)
공예·디자인 큐레이터 차정욱(아넥스 공동대표)
시민프로그램 큐레이터 이혜원(대진대학교 미술만화게임학부 교수)
미디어 큐레이터 김그린(아넥스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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