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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폴리 Ⅴ, 순환폴리] 순환폴리, 연결된 세계의 집짓기
  • 배형민
  • 환경과조경 2024년 12월

기후변화의 시대, 건축의 역할은 무엇인가? 시민과 함께 기후위기를 풀어가는 건축은 어떤 모습일까? 2022년 봄에서 2024년 가을까지, 2년 6개월 동안 제5차 광주폴리의 총감독으로 제기한 질문들이다. ‘순환폴리’의 기치를 내걸며 구현된 네 개 프로젝트는 그 해답을 ‘순환경제’에서 찾았다. 자원의 탐사와 발굴, 연구 개발, 디자인, 공법, 시민 활동 모두 창조적이고 실험적인 순환 과정으로 구현됐다.

 

지금 세계 곳곳의 크고 작은 기관, 기업, 정부, 연구자, 디자이너가 모든 분야에서 순환의 세계를 향해 매진하고 있다. 건설과 재료 산업의 경우 탈시멘트, 탈플라스틱 아젠다를 중심으로 순환 자원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다만, 대부분이 실험실의 성과로 한정되어 있다. 순환폴리가 특별한 것은 친환경 자원, 재활용 건축에 대한 탐색이 연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용되는 도시 공간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일상 건축 환경을 이루는 새로운 자재와 공법의 성능을 모니터링해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기획이며 순환의 건축이 실용적이고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난 200년간 선형적인 경제 사회 체제가 지배했다. 에너지, 쓰레기,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대량 생산이 소비를 거쳐 대량 폐기로 직행한다. 환경에 대한 악영향과 관계없이 우리의 의식주는 이윤의 논리로 결정되었다. 환경 파괴와 탄소 배출의 피해를 사회 전체가 떠안았던 시대의 논리다. 그 결과 지구적 스케일에서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고 기후변화라는 문명사적 위기를 직면하고 있다. 지역 농수산업의 부산물이 쓰레기로 버려지고 있는 동안, 같은 재료를 확보하기 위해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수입하고 산수가 파괴된다.

 

이런 생산-소비-폐기의 경로가 방대한 산업 체제로 고착되어 “신진대사의 균열”이라는 현대 문명의 위기를 초래했다. 견고하게 굳어진 산업들이 바뀌어야 하기에 순환 체제로의 전환은 연구와 실험, 탐색과 시행착오를 거칠 수밖에 없다. 기후변화의 시대에는 사물을 만드는 방법, 사물에 대한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전환의 과정은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모든 것을 버려야 하는 것도 아니다. 화석 연료에서 벗어나 재생 에너지로 전환하듯이 집을 짓는 방식, 도시 공간을 만드는 방식을 바꿔 나가야 한다.

 

지역의 협업 순환

이런 순환폴리의 정신에 따라 다양한 배경의 건축팀을 선정했다. 영국의 어셈블(Assemble), 벨기에의 BC 아키텍츠(Architects), 남프랑스의 아틀리에 루마(Atelier Luma)로 구성된 팀, 일본의 이토 도요Ito Toyo, 그리고 한국팀은 전진홍과 최윤희가 이끄는 바래, 조남호가 이끄는 솔토지빈건축사사무소, 모두 네 개 팀을 선정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재료와 구법에 실험적인 자세로 접근하는 건축가들이다.

 

어셈블, BC, 아틀리에 루마는 참여형 디자인, 순환 시공, 재활용 자재, 지역 생태 자원의 연구를 선도하는 유럽의 젊은 조직이다. 광주 구도심의 폐가를 리노베이션해 동네의 쉼터, 친환경 사회적 기업의 사무 공간 ‘이코한옥(Eco Hannok)’을 만들었다. 이토 도요는 순환폴리에 참여하는 가장 원로이자 널리 존경받는 세계적인 건축가다. 긴 시간 건축의 공공적 가치를 실천해온 이토 도요는 옻칠을 구조재로 활용하는 초유의 과감한 프로젝트를 구현했다. 바래는 한국에서 가장 실험적인 작업을 하는 건축팀이다. 소품, 가구, 대형 실내 공간을 풍선 구조로 구현해온 바래는 해조류 바이오 플라스틱으로 ‘에어 폴리(Air Folly)’를 만들었다. 25년간 목조를 현대 건축으로 탐구해온 조남호는 기존의 야외 공연장을 더 편하게 쓸 수 있도록 야외무대와 다용도 문화 공간, ‘숨쉬는 폴리’를 만들었다.


이미 산업화된 목재이든 새로 개발한 옻칠 판, 미역 바이오 플라스틱, 생석회 벽돌 등이든 순환폴리에 사용된 모든 재료는 근대 산업과 생산 체계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숨쉬는 폴리의 실내에만 사용한 장성 편백나무는 왜 구조 부재로 사용하지 못했는가? 미역 채취 과정에서 쓰레기가 되는 미역 줄기는 훌륭한 건축 원료인데 왜 널리 쓰이지 않는가? 남해 일대에서 넘쳐나는 굴 껍데기로 만든 벽돌이 왜 시멘트 벽돌보다 열 배 비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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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폴리 둘레길 현황과 안내 사인 설치 위치(이음건축 진행) 광주폴리 둘레길의 목표는 광주폴리가 시민들에게 인식되고 사랑받게 하는 것이다. 폴리를 활용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폴리와 폴리 사이 도시 공간에서 시민 활동이 일어나게 하고자 했다. 물리적 개입은 최소화하면서 기존의 폴리와 새로운 순환폴리를 프로그램의 거점으로 만들었다.

 

나무는 친환경 재료라는 일반적 인식이 있지만 한국은 거의 모든 구조 목재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탄소 중립 정책이 강화되면서 목재를 점점 많이 써야하는 상황에서 숨쉬는 폴리는 목재의 미래. 한국의 산림 정책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순환의 건축을 이루기 위해서 산업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디자인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묻는다. 순환폴리는 정답을 제공하기보다 질문을 던지며 담론을 생산한다. 결과만큼 과정이 중요하기에 과정의 기록에 정성을 쏟았다.


과정의 핵심은 언제나 협업이다. 개인적인 역량이 아무리 탁월하더라도 순환경제로의 이행은 여러 분야가 함께 해야 한다. 이토 도요가 ‘옻칠 집’의 건축가로 나서지만 이토 사무실의 디자인팀은 물론 도키 겐지(Toki Kenji) 교수 (미야기대학)가 리드하는 옻칠 장인, 도쿄예술대학 교수이자 일본 에이럽(Arup) 디렉터인 가나다 미쓰히로(Kanada Mitsuhiro)의 구조 컨설팅의 역할은 필수적이었다.


이코한옥의 어셈블, BC, 아틀리에 루마는 각기 디자이너, 과학자, 엔지니어들이 포진된 다학제 융합 조직이다. 여기에 건축생산 큐레이터 윤정원 교수(서울시립대학교), 순환 건설 전문가 김형기 교수(조선대학교), 그리고 재료 수급, 가공, 제작을 하는 여러 회사, 시공 현장에 새로운 자재를 구현하는 장인들의 열정적인 조력이 없었다면 이코한옥은 구현될 수 없었다.


숨쉬는 폴리는 조남호와 솔토지빈 사무실은 물론 한국의 독보적인 목조 건축 컨설턴트인 수피아건축과 환경 디자인 컨설턴트인 이병호 박사가 협력했다. 바래는 해조류 바이오 플라스틱 연구자와 생산 기업들과 긴밀하게 협업하여 에어 폴리를 구현했다. 이러한 협업 체계 속에서 전문성을 가진 큐레이터진이 다양한 역할을 했다.


순환폴리: 커뮤니티의 누정

폴리라는 말은 서구에서 ‘바보 같은 짓’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18세기 이후 정원에 세워진 장식적인 구조물을 뜻하게 되었다. 20세기로 이어지는 서양의 전통에서는 건축의 독자적인 가치를 확인하는 작은 파빌리온으로 인식되어 왔다. 기능이 없는 구조물을 애써 지어 어리석다는 뜻보다는 기능이 없기에 오히려 가치 있는 건축의 예술성을 강조해왔던 것이 건축의 폴리다. 하지만 기후위기의 상황에서 예술성이 실험적인 건축의 명분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총감독으로서 일관된 입장이었다.


순환폴리는 서양 폴리의 유산보다는 한국의 전통에서 영감을 얻었다. 우리는 서양의 폴리와 유사하지만 아주 다른 문화 양식을 갖고 있다. 바로 한국의 누정(樓亭)이다. 누정 역시 정원의 작은 건축물이고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기 위한 장소다. 하지만 서양의 폴리가 귀족의 폐쇄적인 공간 속에서 보기 위한 대상이었다면 한국의 누정은 사용되는 커뮤니티의 공간이었다. 순환폴리는 조형물이 아니라 커뮤니티의 활동을 담는 공간이다. 작은 도심의 건축이지만 특별한 공간이며 민주 사회의 의제를 논하는 장소다.


모든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건축은 홀로 동떨어진 세계가 아니다. 건물이 사용하는 에너지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른 형태로 바뀌어 세상 속에 존재한다. 건축이 수용하는 사람의 활동도 마찬가지다. 순환폴리는 기후변화와 환경을 주제로 하는 시민 프로그램을 운영하지만 언제든 다른 활동을 수용할 수 있다. 새로 구현되는 순환폴리들은 아시아문화전당 주위의 기존 폴리와 연결하여 시민들의 활동으로 연결된 광주폴리 둘레길을 조성한다. 이렇게 순환폴리는 시간을 두고 시민들을 연결시키는 역할을 한다. “어느 사람이든 그 자체로 외딴 섬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한 부분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여는 존 던(John Donne)의 말이다. 모든 생명체와 사물이 연결되어 있듯이 집도 외딴 섬이 아니다. 기후변화의 시대에 순환폴리는 우리 모두 의식주의 고리로 엮인 공동체임을 확인한다.


배형민은 건축역사가이자 비평가이며 큐레이터다. 생각과 글, 이미지 공간, 설치 등을 엮어 대중과 소통하고 다양한 사람과 협업하는 전시 기획의 재미에 푹 빠져있다. 2008년, 2014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의 큐레이터로 참여해 2014년에는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총감독, 광주디자인 비엔날레 수석 큐레이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협력 감독, 삼성미술관 플라토 초대 큐레이터 등 전시 현장에서 활동해왔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환경대학원에서 학·석사, MIT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다. 『한국건축개념사전』을 공동 저술·편집했고, 『포트폴리오와 다이어그램(The Portfolio and the Diagram)』, 『감각의 단면』, 『아모레퍼시픽의 건축』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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