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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륙순환 도시주의] 다시 쌓는 불턱
  • 강준호
  • 환경과조경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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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청산 불턱

 

 

 “시끄럽다! 저리가라!”

삼양 3동에 남아있는 할망(할머니) 불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이씨 삼춘(삼촌의 제주 방언)이 소리쳤다. 그가 애기 해녀였던 시절, 뭘 물어보려 불턱에 찾아가면 할망들에게 시끄럽다고 쫓겨나기 일쑤였다. 우영팟에서 검질매고(김매고) 나온 잡초들을 불턱에 가져와 불을 피워두던 애기 해녀는 이제 노년의 잠수회장이 되었고, 할망 불턱도 옆집에서 창고를 지으며 반쯤 허물어져 더 이상 쓸 수 없게 된 지 오래.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쉬는 사적인 공간이자, 하루의 물질부터 마을의 대소사까지 중요한 일들을 의논하는 공적인 자리였던 불턱은 해녀 공동체의 건축적 상징이다. 하지만 해녀 인구의 고령화와 감소로 인해 이러한 공간들도 사라져가고 있다. 답사 중 스러져가는 탈의장이나 불턱을 볼 때마다, 나는 삼춘들이 떠난 뒤의 바당밭의 미래를 고민하고는 했다. 소멸해가는 것들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내가 선택한 첫 번째 방법은 기록이었다. 기록은 문화의 증거가 된다. 답사를 다니며 측량한 여러 불턱과 잠수탈의장을 이번 글에서 살펴보겠다. 두 번째 방법은 변화다. 앞선 글에서는 바다와 땅을 오가는 영양분을 섬과 바당밭 풍경의 스케일에서 살펴보고 지속가능한 순환을 그려봤다. 깨끗한 물을 끌어와 화학 비료와 육상 양식장 배출수, 축산 폐수 등으로 오염시켜 바다에 방류해왔던 근대적 착취에서 벗어나, 돼지 분뇨를 이용해서 지렁이를 키우고, 광어 양식장에서 나오는 유기물로 해조류를 키워 소라나 전복을 먹이는 통합 다중 영양 양식(Integrated Multi-Trophic Aquaculture)을 상상해봤다. 버려지는 소라 껍데기는 해녀들이 오가는 조간대 길의 재료가 되어 검은 현무암 지대를 수놓으면 그 길에서 해녀 공동체가 다른 이들과 함께 걷는 일도 가능할 것이었다. 이번 글에서는 건축적 스케일에서 삼양 3동 할망 불턱을 다양한 세대가 만나는 공간으로 변화시켜본 과정을 다뤄보겠다.


“또똣ᄒᆞᆫ디 이리로 오라(따뜻한 여기로 와라)”

불턱은 해녀 건축의 원형이다. 불턱은 크게 자연형과 인공형으로 나뉜다. 자연형 불턱은 자연 지형을 이용해 바람을 막아 불을 피워 사용한 형태를 지칭한다. 종달리에 위치한 돌청산 불턱이 대표적 예다.(각주 1) 현무암이 고르게 퍼져 있던 암반 지대가 마치 입을 벌리듯 갑자기 움푹 내려앉으며 바다로 이어지는 돌청산 불턱은 양옆으로 솟은 작은 현무암 절벽이 차가운 바닷바람을 막아주었다. 또한 이 골짜기는 해녀들이 바다로 드나드는 자연스러운 길이 되기도 했다.

 

자연 지형이 바람을 막아주지 못하는 경우 옛날 해녀들은 직접 돌담을 쌓아서 불턱을 만들었다. 이를 인공형 불턱으로 분류한다. 일례로 하도리에 위치한 보시코지 불턱이 있다. 해안도로변에서 마주하는 보시코지 불턱은 성인 허리께 높이의 약 동서 12m, 남북 6m의 직사각형 돌담으로, 그 단아한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담장 주변을 수놓은 문주란과 함께 담 위쪽에 덧발린 백색 모르타르가 눈길을 끄는데, 이는 인근 무두개의 산호모래로 만든 시멘트 모르타르다. 초기에는 오직 돌을 쌓아서 만드는 구조였으나, 제주에 시멘트가 보급되면서 해녀들은 이 모르타르로 돌담 틈새를 메워 바람을 차단하기도 했다. 그마저도 시멘트가 귀했던 초기에는 가장 바람에 많이 노출되고 구조적으로 취약한 위쪽에만 시멘트를 덧발랐다.

 

보시코지 불턱 입구로 들어서면 낮은 중간 담을 두어 내부를 두 개의 공간으로 구분한 구조가 드러나는데, 여기에 해녀 사회의 위계가 반영되어 있다. 서쪽의 높은 지대는 하군 해녀들이, 동쪽 낮은 지대는 상군 해녀들이 사용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보통 물리적으로 높은 자리에 사회적 위치가 높은 사람이 앉는 것과 달리, 낮은 지대에 사회적 위치가 더 높은 상군 해녀들이 앉았다는 것이다. 이유는 불턱에 앉아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소란스러운 풍경이 뒤로 물러나고, 사나운 바람과 파도 소리는 돌담을 거치며 온화해진다. 묵묵한 돌담 위로 하늘은 지나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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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코지 불턱

 

 

환경과조경 440(2024년 12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청산은 성산일출봉과 비슷하게 생긴 바위를 주민들이 일컫는 말이다.


강준호는 존재와 제도가 만든 풍경을 읽는 건축가다. UCLA에서 건축과 미술사를 복수전공한 뒤 하버드 디자인 대학원(GSD)에서 건축학 석사를 마쳤다. 이후 게럿 도허티(Gareth Doherty) 교수의 비평적 조경 디자인 연구소(Critical Landscapes Design Lab)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해안 지역의 기후 변화 인식을 조사했다. 현재 건축가와 정원사로 일하며 조경과 건축을 함께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다. @junho_s_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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