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길에서는 (남)산이 보인다(각주 1)
조경과 도시를 키워드로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 관한 연구를 하다 보면 몇 번이고 마주치게 되는 남산 혹은 남산공원. 서울시 공원 홈페이지는 남산을 “서울의 중심부에 위치한 서울의 상징”이라고 소개한다. 실제로 서울 시민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게 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남산과 얽힌 기억 한두 가지는 있기 마련이다. 물론 남산-공원에 쌓인 복잡한 역사적 켜와 정치·사회적 맥락으로 인해 화자의 연령대, 시기, 취향에 따라 남산의 경험은 크게 갈리게 된다. 남산을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선조의 발자취로 볼 것인가? 한양도성이라는 걸출한 문화유산이 그 형태를 뽐내는 유산의 위치로 볼 것인가? 대도시 서울 속 자연의 재현으로 볼 수도 있는가? 김종성 건축가가 설계한 힐튼호텔부터 케이블카와 말 많고 탈도 많은 남산돈까스까지, 20세기 중후반 서울의 대중문화 속에 새겨진 장소 기억으로 볼 것인가? 그도 아니면 바라보는 곳, 즉 대상으로서 남산에 무게를 더 둘 것인가?
에피소드 1. 만화의 집
일상에서 남산을 어떤 공간으로 인지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를 훌쩍 졸업하고 난 뒤 신도시로 이사 갔음에도 ‘일부러’ 남산을 오고 갔기 때문. 2000년대 초반의 여름 주말, 연신 ‘더워’와 ‘왜 이렇게 먼 거야’를 중얼거리며 경사진 좁은 보행로를 걸어 올랐다. 언덕이라면 질색팔색 하는 중학생이 자발적으로 남산을 오른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기 마련. 현재는 문을 닫은 ‘만화의 집’이 그 이유였다.
서울에서 만화 좀 봤다는 20세기 소년, 소녀라면 열에 일고여덟은 ‘서울애니메이션센터’를 들어보지 않았을까. 최근 몇 년간 재건축으로 인해 회현역 근처로 자리를 옮겨 운영했지만, 원래 서울애니메이션센터는 현재 남산예장공원이라고 알려진 곳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사실 담론화가 부족할 뿐 이 부지의 역사도 한 굴곡한다. 1950년대 KBS 사옥으로 완공됐다가 1970년대 중반부터는 국토통일원 청사, 1980년대에는 안기부, 1999년(Y2K!)부터 서울경제진흥원이 운영하는 서울애니메이션센터의 자리로 유지되고 있다. 그 이전에는 통감부 자리였고, 일제강점기 중반부터 한동안은 과학관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남산의 유구한 역사와 비슷한 결을 지닌 부지다.
그렇다면 왜 만화의 집에 가야 했는가? 답은 간단하다. 온종일 무료로 (당시만 하더라도) 국내에서 손꼽히는 만화책 컬렉션을 볼 수 있는 시영 만화방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동네 만화방보다 깨끗하고 만화책 관리도 잘 되어 있어서 이쪽 계열 학생들이 시내 곳곳에서 모여드는 핫플이기도 했다. 다만 다들 만화책 읽기 바빠서 사랑방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
* 환경과조경 440호(2024년 12월호) 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2024년 10월에 출간된 건축가이자 조경가이며 도시경관기록자로도 잘 알려진 김인수의 책에서 따온 소제목이다. 김인수, 『서울의 골목길에서는 산이 보인다: 오래된 골목길에서 바라본 서울, 그 30여 년의 기록』, 목수책방, 2024.
신명진은 뉴욕대학교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뒤 서울대학교 대학원 생태조경학과와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석사와 박사를 마친 문어발 도시 연구자다. 현재 예술, 경험, 진정성 등 손에 잡히지 않는 도시의 차원에 관심을 두고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의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도시경관 매거진 『ULC』의 편집진이기도 하며, 종종 갤러리와 미술관을 오가며 온갖 세상만사에 관심을 두고 있다. @jin.everyw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