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부터 격월 연재한 유영수 교수(인천대학교 도시건축학과)의 ‘제도가 만든 도시’를 이번 호로 끝맺는다. 저자는 “도시는 인류가 만든 가장 복잡하고도 복합적이며 수많은 사람이 물리적으로나 비물리적으로 밀도 높게 개입한 공간적 장치”이므로, “결국 도시의 모습, 즉 도시 공간의 형태와 거기서 일어나는 공간적 현상은 사람에 의한 의식적 행위와 집합적 질서로 만들어진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그의 기획은 ‘제도’라는 도시의 “일반해가 우리 도시의 보편적인 모습에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417호) 조회하고 비평하는 긴 여정이었다.
연재의 첫 글은 ‘도시의 제도는 정당한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한다. 도시를 구성하는 “제도는 우리 사회가 합의한 가치 체계와 질서를 작동시키는 공간적 장치를 만”든다는 점에서 그것이 공공에게 이익을 가져올 때 정당성을 보장받는다. 하지만 “도시 제도는 특정 공간과 시간 속에서 절대적이기보다는 ‘사회적으로’ 정당하며, 종종 사회의 지배적 가치에만 예속된 도구가 되기 쉽다”(417호).
이러한 문제의식은 “제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적 측면에서 제도의 형식과 실행 방식이 가지는 한계를 우리 도시의 여러 사례를 통해 짚어보”는, 즉 ‘도시의 제도는 효율적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도시 제도를 통해 보편적 가치를 제시하고 사회적 동의를 얻기 위해 애쓰는 것 이상으로 “적절한 설계 기준과 다양한 규제의 방식 자체를 개발하는 노력”이 필요하며, “유연한 허용을 합리적으로 허용하고 그러한 허용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419호).
우리는 도시에서 제도가 결정하는 공간의 ‘크기’에 묶여 살아간다. 저자는 “제도가 규정하는 크기 제한의 의미를 곱씹”으면서 그 크기―특히 면적과 높이―를 넘어서고자 하는 도시의 열망을 살피고, 작은 도시 조직과 형태에 더 가혹한 제도의 불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한다(421호). 그는 ‘크기’의 쟁점을 인구 감소에 따른 축소도시 문제와도 연결한다. “감소한 인구에 맞춰 도시의 크기를 적정한 수준으로” 줄여야 하지만, “성장과 달리 축소에는 상당한 저항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점은 도시를 줄이더라도 “도시의 삶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게 하는 것, 즉 “자율주행, AI 로봇 등 발전하고 있는 여러 가지 새로운 기술을 비롯해 도시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양한 방법을 찾는 것”이다(423호).
연재는 제도가 규정하는 ‘도시의 비움’을 되묻는다. 도시의 제도는 밀집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됐다고도 볼 수 있다. “산업화와 도시 인구의 급격한 증가가 야기한 정주 환경의 악화는 밀집은 죄악이라는 생각을 낳았고, 이를 해소하는 것이 곧 도시계획과 제도의 소명이었다.” 따라서 도시의 제도는 “‘채움’을 억제하고 ‘비움’을 강제하는 방향성을 가지며, 채움과 비움의 양과 크기에 대해 비율, 최대‧최소의 기준을 제시한다.” 대표적인 예로 우리에게 익숙한 건폐율과 용적률을 들 수 있다. 저자는 제도에 따른 비움의 긍정적 측면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제도가 만든 나쁜 비움”을 우려한다. 총량만을 고려해 “비움의 배분”에 관여하지 못하는 제도, “비움의 위치와 형태”를 다루지 않는 제도, “비움의 획일성과 평면적 비움”의 한계를 지적한다(425호).
도시의 “다양성은 도시가 사회와 개인에게 제공하는 ‘기회의 폭’”이자 “도시의 번영을 가져오는 ‘도시적’ 자원”이다. “제도가 도시 공간의 다양성에 어떻게 관여하는가”라는 저자의 탐색은 다양성과 통일성의 켤레 관계에 관한 논의로 확장된다. 우리는 통일성을 다양성의 반대 극단에 있는 가치라고 여기곤 한다. 그러나 저자가 다양한 논거를 들어 예증하듯, “두 속성은 오히려 양립해야만 서로를 강화하고 드러내는 역설적 관계”를 맺는다. 도시의 제도는 “다양성은 통일성을 배경으로 부각”되고 “다양성을 구성하는 통일성”도 있다(427호)는 점을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마치 생명체처럼 도시도 삶과 죽음을 겪는다. “도시 공간 요소가 새로 태어나고 쓰이다 낡고 죽는 생로병사, 혹은 신진대사는 …… 도시의 긴 역사에서 끊임없이 일어난다.” 저자는 보도블럭 교체부터 재건축, 재개발에 이르는 폭넓은 사례를 들어 도시의 제도와 엮인 ‘도시 공간의 생로병사’를 살핀다(429호). 도시의 ‘시간’과 관련한 의제는 여덟 달 뒤의 글인 ‘도시의 역사, 문화유산’(437호)과 교집합을 갖는다. 그는 경직된 제도에 의해 “문화유산[이] ‘과거’에 박제되고 주변의 ‘현재’ 도시 공간의 필요와 충돌”하는 난맥을 짚는다. 복원의 원형과 시점, 규제 일변도의 역사경관 문제 등에 관한 논의를 통해 저자는 제도적 방법의 다양성이 도시의 역사적 품격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를 제시한다.
도시를 둘러싼 제도의 핵심은 ‘소유’로 수렴된다. 자본주의 체제의 “도시 공간은 …… 어느 한 조각도 ‘소유’의 밖에 있지 않다”는 점에서 소유와 재산권은 도시의 제도에서 매우 견고하게 작동한다. 물론 도시의 다양한 제도는 헌법상의 “‘공공복리’를 근거로 재산권을 제한할 수 있는 정당성을 가지며 …… 공간의 소유에 배타적으로 보장되는 사용‧수익‧처분의 권리 모두에 촘촘하게 개입”하지만, 결국 도시 개발의 이익 문제와 얽힌다. 소유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결국 도시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일까. 저자의 말처럼 “소유가 독점하는 배타적 권리의 선은 사회적 합의의 결과로 인정해야 하지만, 그래도 항상 질문은 필요하다”(431호).
도시의 자연을 만드는 것도 결국 도시의 제도다. “도시 안에서 자연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들은 자연의 여러 가치[가] 효과적으로 달성되도록 유도하고 있을까?” 저자는 획일적인 양적 공급이나 면적 확보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일상 도시 공간의 작은 자연” 혹은 “도시 내 작은 자연의 조각에 대한 개별적 디자인”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433호).
도시에서 기능의 위치와 배열은 도시 공간의 구조를 형성한다. 저자는 우리 도시의 기능과 구조를 강력하게 규정하는 용도 지역(zoning)과 획지의 허점을 짚으며 “더 유연하고 역동적이거나 더 높은 혼합을 위한 계획적 수법”(435호)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12회에 걸친 ‘제도가 만든 도시’를 맺으며 저자는 “‘일반해’로서 제도의 실행 방식”이 낳은 “획일적이고 부자연스러운 결과”를 되짚는다. 그리고 “양적 기준 위주의 운용에서 비롯된” 난맥을 넘어설 수 있는 “정성적 가치의 제도화”, “집합적 중재와 거버넌스”, “전문가의 역할과 전문가에 대한 사회적 신뢰”라는 과제를 던진다(439호). 도시 공간의 현재를 낳은 제도와 그 이면을 탐사한 유영수 교수의 긴 여정에 깊이 감사드린다.
큰따옴표 안의 구절과 문장은 모두 연재 글에서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