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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프레시킬스 보고서를 다시 펼치며
  • 환경과조경 2024년 9월

이번 호 표지 그림에서 20여 년 전의 강렬한 기억을 다시 호출한 독자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2001년 12월, 50년 넘게 뉴욕 맨해튼의 욕망과 배설물을 받아낸 거대한 쓰레기 산, 센트럴파크 세 배 면적의 초대형 매립지를 공원으로 전환하는 장기 계획의 밑그림이 발표됐다. 22년이 흐른 지난해 10월, 2036년 완공을 목표로 단계별로 조성되고 있는 ‘프레시킬스 공원’ 중 북부 공원 1단계 구역의 문이 열렸다.

 

세상의 모든 게 변할 것만 같았던 21세기의 새벽, 전 세계 조경계는 두 가지 이유로 프레시킬스 쓰레기 매립지 공원화(Fresh Kills: Landfill to Park) 설계공모에 열광했다. 무엇보다도 프레시킬스 공모전은 도시 곳곳에 버려진 광대한 규모의 탈산업 부지(post-industrial sites)를 경관으로 치유해 재생시키는 설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을 담론의 영역에서 실천의 장으로 이동시킨 결정적 계기였다. 이 공모전이 조경가들에게 끼친 다른 하나의 영향은 당선작 ‘라이프스케이프(Lifescape)’의 실험적 설계 태도와 방법이다. 매립된 쓰레기, 야생 동물 서식지, 식생 천이, 수문 체계 등 서로 충돌하는 이질적 조건을 다이어그램으로 조정하고 완결적 마스터플랜 대신 과정 중심적 단계별 계획(phasing)으로 설계를 조율해 나간 필드 오퍼레이션스FO의 방식은 이제 하나의 교본으로 자리 잡았다. 20년 넘게 흐른 지금, 프레시킬스 공원은 또 다른 세 번째 이유로 조경가들의 주목을 초대한다.

 

인류세(Anthropocene)와 기후 위기를 맞은 도시에서 공원의 역할이 무엇인지, 공원과 도시 재야생화(rewilding)의 함수 관계를 질문하게 한다. “도시의 경계선은 한자리에 오랫동안 머무르지 않는다”(어니스트 로슨). 1790년 3만 3천 명이던 뉴욕시의 인구는 1900년 348만 명으로 급증했다.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던 맨해튼의 습지와 원지형은 완전히 사라졌다. 맨해튼의 욕망을 마주 보고 있는 스태튼 아일랜드는 수천 년 전 빙하가 녹은 물이 자갈과 모래를 퇴적시키면서 형성됐다. 이 섬 동부의 높은 모래 언덕은 빗물을 프레시킬스의 낮은 습지대로 흘려보냈다. 프레시킬스는 네덜란드에서 온 초기 정착민들이 ‘신선한 개울’이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빙하 토양, 독특한 배수 패턴, 특별한 미기후가 결합된 프레시킬스에는 비정상에 가까울 정도로 풍부한 생태적 다양성이 만들어졌고 철새들의 목적지가 되었다. 뉴욕의 탐욕은 이 거대한 미개발지를 허락하지 않았다. 저돌적인 성장주의 도시계획가 로버트 모지스는 1940년대까지 손상되지 않고 남은 생태학적 보물창고 프레시킬스에 맨해튼의 쓰레기를 채우기로 결정했다.

 

1948년 쓰레기 매립이 시작됐다. 1955년이 되자 이미 프레시킬스는 세계에서 가장 큰 매립지로 바뀌었다. 매일 쓰레기 3만 톤이 폐기됐고, 평평한 염수 습지는 높이 70미터의 쓰레기 산맥으로 변했다. 『어반 정글』(매일경제신문사, 2023)의 저자 벤 윌슨은 “프레시킬스는 도시가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악몽 같은 유적이 되었다”고 일갈한다. “도시는 맹렬한 식욕으로 자연을 삼키고 오염과 폐기물을 배설해서 강과 습지를 오염시키고 자연 서식지를 독성 매립지로 바꾼다.”


2001년 3월 마지막 폐기물을 실은 바지선이 도착했다. 공원화 설계공모 당선작이 발표된 12월 프레시킬스의 문이 닫힐 예정이었지만, 비극적인 9‧11 테러로 붕괴된 세계무역센터의 잔해를 받아내느라 2002년 3월에야 폐쇄됐다. 장기간의 공원 설계와 조성이 진행되는 동안 이미 프레시킬스는 새로운 변화를 겪으며 놀라운 잠재력을 드러내고 있다. 50년 넘는 세월을 거치며 매립지로 쓰였지만 매립 가능한 최대 면적은 프레시킬스 전체의 45퍼센트였다. 비옥한 습지 생태계는 사라졌지만, 역설적이게도 매립지 운영은 나머지 55%의 땅을 도시 개발로부터 피해 가게 했다. 살아남은 습지, 간석지, 초원, 삼림 지대와 함께 유독성 쓰레기 더미 위에는 새로운 생태계가 등장하고 있다. 지하 깊은 곳에서는 미생물들이 반세기 동안 쌓인 쓰레기를 메탄으로 바꾼다. 지하의 가스와 침출수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추출되어 인근 지역의 전력원으로 쓰인다. 1억 5천만 톤의 쓰레기가 지표면 아래에서 서서히 분해되는 동안 악명 높은 쓰레기 산은 새로 정착하는 야생 생물의 안식처로, 뉴욕 시민을 환대하는 공원으로 계속 변해갈 것이다.

 

지난 20여 년간 프레시킬스에 새로 덮인 풀밭에는 새로운 미생물, 식물, 곤충, 조류, 포유동물이 거주하기 시작했다. 새 개척자들에 의해 복구되고 있는 프레시킬스는 생물 다양성이 풍부하고 역동적인 자연의 과정이 살아 있는 땅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러한 재야생화는 완전한 방치의 결과가 아니다. 랜드스케이프가 아닌 ‘라이프스케이프’를 목표로 한 혁신적 조경설계, 마스터플랜이 아니라 과정적 계획으로 만들어가는 설계가 재야생화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다음 일은 인간의 설계와 조절 범위를 벗어난다. 앞으로 오랜 세월 동안 광대한 프레시킬스는 공원의 새 거주자인 비인간 생명체들에 의해 복구되어갈 것이다. 벤 윌슨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작업은 대부분 인간이 아니라 자연이 할 것이다.” 도시 재야생화의 거대한 실험실인 프레시킬스는 인류세의 공원이 지향해야 할 좌표를 제시해준다.

 

이번 호에 담은 북부 공원 1단계 구역은 프레시킬스 공원 전체 면적 2,315에이커의 1/100에 못 미치는 21에이커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재야생화된 매립지의 생태적, 문화적, 경관적 잠재력을 어렵지 않게 엿볼 수 있다. 기사와 함께 프레시킬스 공원화 계획 보고서를 구해 일독해보시기를 권한다. 보고서의 첫 문장을 옮긴다. “라이프스케이프는 장소이자 과정이다(Lifescape is both a place and a proc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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