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공원은 실험이다
세계적 화학 회사 듀퐁(DuPont)의 어느 랩에서 한 실수가 나일론이라는 혁신으로 이어졌다는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는 ‘실험 중에 일어난 의도치 않은 기적’의 대명사가 됐다.(각주 1) 요즘이야 실험 노트를 꼼꼼하게 적는 게 일반화되었다고 하지만, 이렇게 시스템이 정착하기까지 오만 가지 실수들이 존재했을 테고 그중 어떤 것들이 의도 밖의 성공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이런 혁신의 전제는 체계도, 천재성도 아닌, 수많은 실험의 반복(iteration)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시공간적 한계와 예산의 조건으로 도시공원 혹은 도시 공간에서 다양한 실험이 쉴 새 없이 이어지기란 어렵다. 준공까지 많은 자원이 요구되는 도시계획과 조경 분야의 특성상 일정한 수준의 성공이 보장되지 않으면 실험대에 오르기조차 쉽지 않다.
동시에 조경은 필연적으로 과정 중심적이다. 조경의 주요 요소―교목, 관목, 지표면의 생물, 수공간, 시설, 그 안의 사람들―가 서로 연계되는 과정을 통해 조성된다는 설계 이론적 차원의 과정 중심성만을 말하는 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접근 가능한 공간을 직접 분석하고, 설계하고, 조성하고, 재조성하는 책임을 지고 있기에 매 순간 목적과 이용의 변화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즉 실험을 표방하고 작업을 하기는 쉽지 않지만 사실 거의 모든 단계가 아주 조심스러운 공간적 실험이기도 하다. 달리 말하자면, 1980년대부터 이어진 도시공원 조성 과정은 국가 주도로 진행된 ‘도시 오픈스페이스 실험’ 그 자체다.
에피소드 1. 땅, 불, 바람, 물, 마음
공해와 싸우고 자연을 살리는 다섯 가지 힘이 모여 나오는 캡틴 플래닛.(각주 2) 얼마 전 영등포구에서 진행한 수변 공공 디자인 해커톤 ‘소셜 픽션, 수변 픽션’ 시민 참여 프로그램의 퍼실리테이터를 맡아 수변 문화와 도시 경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도시 경관, 공공 설치, 커뮤니티 디자인, 문화 프로그램, 미디어 아트의 다섯 분과(시민 참여를 표방한 팀플이다)가 수변 문화를 실험하고 확장하는 다양한 주제를 다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공공성’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이번에 다룬 다섯 가지 주제만으로도 이렇게 의견이 팽팽하게 갈리는데, 실제 공공 문화를 이루고 있는 수십, 수백의 얽히고설킨 요소들을 어떻게 같이 굴러가게 만들 것인가. 최소 다섯 가지 초능력이 모여야 캡틴 플래닛이 튀어나온다. 지구를 지키고 자연을 살리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 하는 건가 싶다. 적어도 이렇게 다섯 개 분과가 모여서 서로 의견을 교환한 뒤 박수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캡틴 플래닛’이 나와서 뭔가를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팀플, 진심으로 히어로를 찾게 되는 순간이다.
* 환경과조경 437호(2024년 9월호) 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해당 실수가 처음 벌어진 것은 아니라고 한다. 다만 이 실수를 혁신으로 인지한 것이 듀퐁의 기지.
2. 생소한 단어의 나열이라면 꼭 구글링을 해보길 권한다. ‘출동! 지구특공대(Captain Planet and the Planeteers)’는 1990년대 제작 방영된 미국 애니메이션으로, 한국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꾸준히 방영됐다. 다섯 대륙에서 모인 다섯 주인공이 공해 빌런들과 전투를 벌이다가 각자가 지닌 초능력 반지를 통해 슈퍼 히어로 캡틴 플래닛을 불러낸다는 설정. 몇 년 전부터 배우이자 환경운동가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회사를 중심으로 실사 영화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는데, 구체적인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