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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선을 읽는 시선들
Reading Jung Young Sun and Her Landscape Works
  • 환경과조경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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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3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다원공간에서 ‘정영선이 만든 땅을 읽다’가 개최됐다.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전시 연계 학술행사로 마련된 이 심포지엄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하고 한국조경가협회와 본지가 협력해 진행했다. 행사는 ‘조경가 정영선을 읽다’, ‘정영선의 작업을 읽다’, ‘정영선과의 대화’의 세 개 세션으로 구성됐다. 첫 번째 세션 ‘조경가 정영선을 읽다’에서는 배정한 교수(서울대학교)와 김아연 교수(서울시립대학교)가 정영선에 대한 학술적 비평의 텍스트 두 편을 발제했다. 두 번째 세션 ‘정영선의 작업을 읽다’에는 협업 파트너, 사제지간 등 정영선과 다양하게 관계 맺은 6인의 발제자를 초대했다. 이들은 정영선이 설계한 장소를 조명하며 그의 설계 태도, 철학, 작업에 대해 이야기했다. 마지막 세션 ‘정영선과의 대화’에서는 정영선이 조경진 교수(서울대학교), 배형민 교수(서울시립대학교)와 함께 대담을 나누고, 관객의 질문에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의 발제와 대담을 지면에 글의 형태로 기록한다. 교차하고 비껴가는 여러 시선이 오늘날 조경설계에서 정영선이 갖는 가치를 새롭게 그려주기를 기대하며, 지면에 옮기는 과정에서 세션의 구분을 없앴다. 이번 학술행사를 촉발한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오는 9월 22일까지 진행된다.

진행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디자인 팽선민


태도가 경관이 될 때: 정영선의 조경_배정한

유산의 창조, 정영선이 만든 한국 조경설계의 변곡점_김아연

맥시멈과 미니멈_박승진

협업의 유산을 읽다_전은정

땅을 읽는 법을 배우다_이호영

선유도공원이 건네는 위로_조용준

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과 디올 성수, 미래 세대의 수용_김선미

한국 조경 가치의 시각화, 아모레퍼시픽 본사_백규리

정영선과의 대화: 식물과 땅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_정영선, 조경진, 배형민



정영선을 읽는 시간_글 최영준


2024년 여름, 우리는 정영선의 조경이 일반인에게 하나의 문화적 코드가 된 계절을 통과하고 있다. 일 평균 1,300명의 관람자가 조경이 무엇인지를 알아가고 있고, 공중파 미디어 콘텐츠는 물론 아이들의 채널에서도 땅에 시를 쓰는 할머니가 인기다. 그 인기와 인지의 바탕이 1세대 여성 조경가 정영선이라는 커리어의 특수성과 소탈한 성품에서 기인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대중이 가장 크게 놀란 순간은 아마 그가 설계하거나 기획을 이끈 일의 목록을 마주쳤을 때일 것이다. 많은 이가 일상적으로 방문하던 장소들이 그녀가 살아 숨 쉬는 많은 것을 담아낸 땅들이란 걸 알았을 때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고, 그 장소들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궁금해할 것이라는 생각이 학술행사 ‘정영선이 만든 땅을 읽다’ 기획의 시작점이었다.

 

그가 만든 여러 땅들의 작업은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넓은 스펙트럼에 걸쳐 있다. 전통과 동시대성을 모두 품는 광폭의 시대정신, 국토를 다루는 공공과 기업 및 개인을 포괄하는 클라이언트의 다채로움, 작은 뜰에서 초대형 공원까지 다채로운 규모. 다양한 관련 분야와 협업해 온 두꺼운 포트폴리오는 다채로운 독자의 목소리로 들어볼 가치가 있는 현대 조경의 역사이자 흥미로운 독해의 대상이다.

 

정영선이 만든 땅을 읽는 첫 순서인 ‘조경가 정영선을 읽다’는 지난 50년 동안 조경가의 길을 걸어오며 땅과 관계 맺어 온 그녀의 인생과 지사地史를 관통해 줄 이야기로 시작되는 것이 마땅했다. 전시 도록에도 수록된 배정한 교수(서울대학교)의 글은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이야기와 변곡점이 된 주요 작업 세 작품에 대한 이야기로 정영선을 조망한다. 경관을 대하는 태도가 그의 손으로 만들어 낸 경관이 되었다는 해석은 정영선을 아는 데서 이해하는 단계로 이끌어 준다. 김아연 교수(서울시립대학교)는 직접 조경 작업을 하는 현역 동료로서의 시선과 정영선이 한국 조경 분야에 드리우는 명과 암을 동시에 들려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한국 조경의 여러 변곡점을 짚으며 이어간 그의 발제는 정영선의 조경이 왜 가장 평범한 혁명일 수 있는지 피부에 와 닿도록 설명해준다.

 

두 번째 세션 ‘정영선의 작업을 읽다’에는 정영선이 만든 땅의 너른 스펙트럼을 담아줄 다채로운 성격의 발제자를 초대하고, 각자 한 장소에 대한 감상과 비평을 담아줄 것을 부탁했다. 다각도의 시선으로 작업을 읽기 위해, 정영선의 작업과 서로 다른 관계성을 갖는 세 그룹을 설정했다. 첫 그룹으로 조경설계 서안(이하 서안)이란 조경 작업의 울타리에서 정영선과 함께 협업하고 사제 및 조력 관계를 맺었던 박승진 소장(디자인 스튜디오 loci), 전은정 소장(조경포레)을 초청했다. 서안의 굵직한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와 근거리에서 정영선과 직접 상호 작용하며 배우고 호흡했던 조경 유산에 대해 들려준다.

 

다음으론 1세대 조경가인 정영선의 작업을 관찰하고 경험하며 성장했고 현재 자신의 작업을 가장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는 동시대 조경가 이호영 소장(HLD)과 조용준 소장(CA조경기술사사무소)을 섭외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정영선의 조경이 그들에게 끼친 영향력과 자극,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시도한 경험을 듣고 싶었다. 이호영 소장은 서안에서 실무를 시작했으나, 정영선과 직접적인 협업의 기회가 적었기에 ‘어깨너머 스스로 배운’ 정영선 조경에 대한 연구 기록과 그것이 본인의 작업에 어떻게 투영되었는지를 들려준다. 직접적 접점이 없었던 조용준 소장은 ‘원거리에서 관찰한’ 정영선의 조경을 선유도공원 평면의 모사를 통해 탐독한다.

 

세 번째 그룹에는 다음 세대라 할 수 있는 상대적으로 최근에 조경에 입문한 이들이자 조경계에서 각자의 미디어를 통해 대중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김선미 부장(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과 백규리 매니저(현대엔지니어링 건축조경팀)를 초대했다. ‘다음 세대의 해석과 수용’이라 이름 붙인 이 그룹이 정영선이 만든 땅의 공동 생산자나 후속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로서 어떻게 정영선의 조경을 받아들이고, 어떠한 태도와 호흡으로 청자에게 전달하는지를 담는 것도 의미있다고 보았다. 정영선이 작업을 통해 제시한 지속가능성과 한국성에 대한 정신과 그 해석을두 사람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다.

 

마지막 순서는 이번 전시의 작가인 정영선과의 직접 대화를 나누는 ‘정영선과의 대화’로 구성했다. 대화의 시작을 열고, 작가에게 주요한 질문을 던질 대담자로서 정영선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조경진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와 대학원에서 사제관계이기도 했던 배형민 교수(서울시립대학교)를 섭외했다. 최종 순서로 객석에서 질문을 받고 대답을 듣는 시간은 필자가 진행하며 마무리했다.

 

정영선의 작업과 다양한 접점을 갖는 여러 세대의 후배 조경가와 이론가의 생각을 하나로 엮는 이 기획은 정영선의 조경이 텍스트로서 얼마나 다양한 독해가 가능한지에 대한 기획이었다. 모두가 그의 작업과 삶으로부터 선한 영향력을 받았고, 그에 대한 유의미한 반추와 정리, 해석과 기록을 들려주었다. 학술행사가 끝나고 며칠 뒤,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많은 조경인에게 텍스트가 된 정영선의 조경이 있었는데, 과연 조경가 정영선에게 텍스트는 무엇이었을까. 교과 과정도 미완이었을 1세대에게는 무엇이 기초가 되는 텍스트이자 레퍼런스였을까. 아마도 그것은 ‘우리 산천의 자연, (그녀가 정원이라 칭하는) 국토 경관’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할아버지의 과수원이 펼쳐져 있던 들판과 뒷산, 국토의 원형이 남아있던 개발 시대 이전 한국 땅의 본 모양새는 그가 땅에 작업을 하는 영감의 원천이자 근간이 되는 텍스트가 되어주었을 것이다. 참고할 정보와 이미지가 홍수인 시대, 원 경관의 흔적이 자본의 지우개로 소실되는 시대를 사는 우리 세대에게 조경가 정영선이 만든 땅의 고유성은 우리의 시각과 태도를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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