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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디자인 오피스] MDL
자연의 표현과 확장
  • 환경과조경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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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물산 조경사업팀

 

 

젊은이의 패기


호기로운 시작

작년 이맘때쯤 PWP(Peter Walker and Partners)의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피터 워커의 생일을 축하하는 사진을 보았다. 나이를 찾아보니 1932년생 91세, 오랜 세월을 버티며 조경 현업에서 여전히 일하고 있는 그와 비교하면 아직 엠디엘은 걸음마를 뗀 수준의 어린아이일 뿐이다. 조경가 정영선의 전시를 보고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살짝 소원해졌던 조경과의 관계에 다시 불꽃이 튄다. 앞으로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도 많다. 회사를 시작했던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펜을, 마우스를, 호미를 든다.


엠디엘은 겁 없는 20대의 패기로 무장한 1인 기업으로 시작했다. 당시 정부의 창업 지원과 1인 기업 열풍이 불면서 하늘을 찌를 듯한 자존감이 생겨났다. 설계안을 가지고 그 누구라도 설득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당당히 조경가 세 글자를 명함에 새기고, 인도 허왕후 기념공원 설계공모(2016)에 출품하면서 조경계에 본격적인 발걸음을 내디뎠다. 조경계 선배들과 경쟁해서 3등의 성적을 거두면서 어깨가 더 올라갔다. 건방지게도 이 정도면 경쟁할 만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지금 돌아보면 민망하지만, 스물다섯 살의 호기로움이 조경가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된 계기를 마련해주었으니 그걸로 부끄러움은 덮을 수 있지 않을까.

 

느슨한 네트워크, 함께라면 두렵지 않아

어린 나이에 겁 없이 회사를 차린 후폭풍일까. 경험 부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인허가, 대관 업무 등 경험과 대처 능력이 필요한 영역에서의 부족함은 쉽게 메꾸기 어려운 부분이다. 호기롭게 회사를 차렸는데 선배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당시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뜻이 있으면 길이 보인다고 했던가. 대학원 시절부터 봐왔던 스튜디오테라의 네트워크 구조에 영감을 받아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이들과 뭉치면 답이 나올 것 같았다. 현재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고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느슨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 조경작업소 이룸(계획), 수수플랜(설계), 드오르(정원), 시대조경(공간), 스튜디오테라(협력), 경남종합조경(시공)이 함께하며 서로의 부족함과 빈틈을 채워 나간다. 따로 또 같이 뭉쳤다 흩어지며 주어진 공간에 다양한 시도를 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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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뜰, 허왕후 기념공원 설계공모 3등작, 2016 Ⓒ엠디엘

 

 

하고 싶은 게 너무나도 많아

조경을 하고 있지만, 설계와 시공으로 업역을 한정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스스로를 자연을 표현하는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하고 세상만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새로운 사업과 기술, 방향에 대해 언제나 고민하고 쉽게 수용하는 자세를 취한다. 늘 조경의 업역이 교육, 계획, 설계, 시공, 재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조경 분야의 확장, 자연을 표현하는 새로운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한다. 2016년 창업진흥원 프로그램으로 식물 재배기 사업을 구상한 적이 있다. 비록 실체화에는 실패했지만, 다양한 분야로의 진출을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조경설계 바깥의 분야로도 세계관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한정된 공간과 재료를 다루는 조경 분야의 한계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엠디엘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일을 도모하는 중이다. 그중 하나는 식물 구독 서비스인 ‘더초록’과 한국판 랜드진(Landezine) 조경 플랫폼 ‘엘에이-베이스(La-base)’다. 신기술 도입에도 적극적이다. 조경 분야에서는 아직 생소한 라이다LiDAR 센서, 360도 카메라를 이용한 맵핑을 통해 대상지를 보는 다양한 방법을 도입하고, AR과 VR을 활용해 설계안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등 신기술의 도입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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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비대면 스타트업 육성 사업으로 한국농업기술진흥원의 투자를 받아 식물 구독 서비스 플랫폼인 더초록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엠디엘

 

 

설계자가 재미있으면 클라이언트도 재미있다

우리가 설계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재미와 즐거움이다. 대상지를 머릿속으로 체험하고 상상하며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는 즐거움은 설계자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경험이 아닐까. 계획안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누가 더 재미있는 공간을 상상하는지 신입부터 소장까지 경쟁한다. 설계안을 그리고 있는 직원 뒤로 가서 꼰대처럼 묻기도 한다. ‘너는 이 공간이 재미있니?’ 계획하는 사람이 공간을 계획하면서 재미를 느낀다면 그 안은 그 누가 봐도 즐겁고 재미있는 공간이 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즐거운 과정에서 즐거운 결과물이 나오고, 이는 프레젠테이션 과정에서 더 강력한 설득력을 갖출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의 설계안은 지금도 즐거움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불나방 정신


수많은 공모, 우리만의 것을 한다.

회사의 시작이 공모이기도 했고, 이름난 설계사무소가 아니다 보니 일을 수주할 수 있는 방법은 공모가 가장 적합했다. 이름을 가리고 어떤 설계안이 가장 대상지에 부합하는지 가려내는 설계공모는 쟁쟁한 선배들과 계급장 떼고 붙을 수 있는 기회이기에, 빛을 보면 환각에 이끌려 불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정말 수많은 공모와 제안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생산 작업이 고되기도 하지만 우리의 즐거운 생각을 대중에게 보여 줄 수 있다는 점만으로 늘 설레고 즐겁다.

 

잠실한강공원 자연형 물놀이장 설계공모

잠실한강공원 자연형 물놀이장 설계공모는 엠디엘 설계안의 방향성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단순하고 명료한 공간이 주는 묵직함, 한강에 필요한 스케일과 공간감에 대해 고민했다. 자연과 인공의 레이어가 공존하는 환경의 조성에 관해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고자 했다. 기술사사무소 이수, 스튜디오테라와 함께 큰 이견 없이 협업을 진행하며 앞으로 더 발전시킬 수 있는설계안의 높은 가능성을 보았다.

 

여울공원 전시온실(식물원) 건립사업 설계공모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디자인 원칙을 바탕으로 제이와이아키텍츠(JYA-RCHITECTS) 건축사사무소, 요앞 건축사사무소와 협업했다. 공간의 구조가 자연스러운 대류를 발생시키고 그에 따른 온도와 습도가 형성되는 것을 계획의 방향성으로 잡았다. 공간적 흐름에 따라 만들어지는 환경에 맞춰 식생대를 조성한 온실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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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블루, 블루 그라운드(Grand Blue, Blue Ground), 잠실한강공원 자연형 물놀이장 설계공모 2등작, 2020 Ⓒ엠디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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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공원 전시온실(식물원) 건립사업 설계공모 출품작, 2023 새로운 유형의 지속가능한 온실을 조성하고자 했다. Ⓒ엠디엘

 

 

동부간선도로 지하차도 상부공간 기획 디자인 공모

동부간선도로 지하화 공간 상부 공원에 서울 아레나 파크를 제안했다. 크고 작은 공간, 운동, 놀이, 문화, 정원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수용하는 아레나들이 모여 공원을 형성하는 코딩에 의한 공원 조성 해법을 제시하고자 했다. 2등에 그쳤지만 그 가능성을 타 공원에도 적용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직원들과 함께 계획하면서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우리의 프로젝트


청량리 4구역 가로공원

청량리 4구역 기부채납 공원 중 가로공원 부분의 제안 공모 당선으로 작업한 작품이다. 청량리에 새롭게 조성되는 랜드마크인 65층 주상복합아파트의 앞마당 같은 공간으로, 하루의 일조량이 낮은 대상지 특성을 설계안에 녹여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처음에 제안한 캐노피 워크와 일부 시설이 BF 심의로 인해 삭제됐고 인허가 과정도 순탄치 않았지만 곧 개방을 앞두고 있다.

 

공간와디즈

크라우드 펀딩의 대표 주자인 와디즈의 첫 오프라인 스토어 외부 공간 설계를 맡아 진행했다. 성수동의 옛 건물 마당 공간을 법정 주차 공간, 다양하게 교류하는 커뮤니케이션 장소, 활동적 체험형 행사가 가능한 공간으로 풀어냈다. 현재는 누적 방문객 30만 명이 넘는 성수동의 핫플레이스로, 제품 및 콘텐츠 홍보 행사, 팝업의 성지가 됐다.

 

영도 마리노 오토캠핑장

차를 타고 지나가면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으로 유명한 부산항대교. 그 교각 하부의 유휴 공간을 활용해 도시와 바다의 경관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캠핑장을 조성했다. 초기의 원형 순환 동선과 캠프 사이트에 변화가 있어 아쉽지만 부산 시민은 물론 인근 지역 주민에게 한번쯤 가봐야 하는 캠핑장으로 소개되고 있어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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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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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 산책로와 쿨데삭을 활용해 가용 공간을 최대한 확보한 영도 마리노 오토캠핑장 Ⓒ부산시 영도구청

 

부경대학교 백경광장

부경대학교는 숲과 보행로, 차량 통행로로 이용되던 학교의 유휴 공간을 보행 전용 광장 겸 휴식과 소통, 지역 축제를 위한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다. 넓은 광장을 원하는 학교의 의지와 소나무 숲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절충해 설계안을 만들었다.

 

봉래산 헬기장 실외정원

우리가 설계한 프로젝트 중 최초로 상을 받은 공간이다. 부산 영도구의 봉래산 헬기장을 정원화하는 프로젝트로, 영도구 천혜의 바다 경관과 봉래산의 숲 경관을 아울러 경험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 산지라는 공간적 특성 때문에 계획에 어려움을 겪던 직원들이 데크 상세도를 그리며 김수희의 ‘멍에’를 하루 종일 틀었던 즐거운 기억이 남아 있다.


성장과 확장

엠디엘은 이제 10년 차를 바라보고 있다. 하다가 망하면 취업한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했던 회사지만 이제는 망하거나 약해지면 안 되는 이유가 가득하다. 피터 워커를 보면 아직 우리에게는 60년에 가까운 시간이 남아 있거나 무한한 시간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 기간 동안 어떻게 성장하고 확장하며 세계관을 구축해 나갈지 궁금해진다. 자연을 표현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으니 땅을 벗어나 우주의 공간으로 자연을 확장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연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도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기대를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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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스튜디오 드오르와 함께 조성한 동대문구 매력정원 Ⓒ엠디엘

 

 

엠디엘(MDL)은 조경을 포함한 세상만사에 관심을 둔 젊은 친구들이 모인 집단이다. 설계자가 계획하는 과정이 즐거우면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도 즐거운 마음으로 이용한다고 믿는다. 자연 앞에서 겸손과 존중의 자세를 유지하고 하나하나 배워 나가며, 우리에게 주어진 공간에선 유행이나 시대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혁신적인 것을 산출하고 도입하며 자연을 표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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