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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가의 기록법] 과정의 기록, 재가공의 기록
기록 생활
  • 환경과조경 2024년 7월

1 일정한 기록 습관을 갖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어린 시절 의무적으로 썼던 일기에는 흥미가 생기지 않았고, 중고등학교 시절 동창에게 보여주던 야한 소설은 관심을 받는 소소한 즐거움을 주었지만 성에 대한 호기심이 줄어들자 오래가지 않았다. 파란만장했던 이십 대에는 순간순간 북받치는 감정을 쏟아내기 위해 심경을 기록한 일기 형식의 글부터 여러 표현에 공들인 시까지 다양한 형식으로 생각과 감정을 적었다. 하지만 자취방을 자주 옮기면서 이러한 기록물을 챙길 여유는 없었다. 대학 시절에는 트레이싱지에 설계안과 도면을 그려 청사진을 만들고, 포토샵으로 졸업 작품 패널을 제작하면서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의 변화를 온몸으로 실감하며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아카이빙 노마드(nomad)’로 살았다.

 

유학 직전, A3 파일철에 보관해온 드로잉들을 스캔해 데이터로 정리하는 것을 시작으로, 회사 서버에 흩어져 있던 수많은 설계 흔적을 모아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이렇게 디지털 아카이빙 생활이 시작됐다. 7년 동안의 프로젝트 폴더 속 먼지 쌓인 데이터를 다시 정리하면서 내 설계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부유하던 생각의 조각들이 관계를 맺기 시작했고, 하나의 흐름이 만들어지는 것을 경험했다. 기록은 갈 길 잃은 설계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이 되었고, 이를 계기로 나는 기록 정착민이 됐다.

 

유학길에 오르면서 많은 양의 데이터를 한번에 정리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프로젝트가 끝나거나 어떤 사건이 완료되면 그때그때 바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0년 남짓한 기록 생활 속에서 두 번의 외장하드 고장으로 인해 기록물을 삼중으로 저장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1. 개인적인 프로젝트나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데스크톱 메인 드라이브와 외장하드(P)를 함께 사용하며, 작업된 파일을 두 공간에 동일하게 저장한다.

2. 매년 말, 작업을 완료한 폴더 속 불필요한 파일을 지워 용량을 가볍게 한 뒤 보관용 외장하드(S)에 저장한다.

3. 데스크톱 메인 드라이브(바탕화면)에서 자료를 지우고, 외장하드(P)에는 남겨둔다.

 

세 개의 저장 공간(데스크톱, 외장하드 P, 외장하드 S)을 활용하며, 컴퓨터 또는 외장하드 고장에 대 비해 모든 파일을 항상 두 공간에 저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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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더 정리법

 

 

2 설계 결과물은 완결된 텍스트, 설계안, 이미지로 구성된다. 그런데 최종 설계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고의 전환이 일어나고 미완성의 드로잉이 생겨난다. 이러한 부산물은 최종 결과물만큼이나 중요하며, 이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보관하는 것은 설계의 질을 높이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가능성을 탐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따라서 나의 기록물은 결과물과 함께 과정에서 생겨난 부산물을 모두 포함한다.

 

초기에 트레이싱지에 그린 아이디어 스케치, 2D와 3D로 만든 여러 대안, 프로젝트의 특성에 맞춰 다양한 표현 방식을 시도한 이미지, 스케일을 확인하기 위한 모형 사진, 시공 과정의 사진, 준공 뒤 계절과 날씨의 변화에 따라 바뀌는 풍경을 찍은 사진 등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준공 뒤 모니터링까지 모든 것을 기록한다.


 

환경과조경 435(2024년 7월호수록본 일부

 

조용준은 서울시립대학교와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조경을 공부했다. CA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으로 새로운 광화문광장 기본 및 실시설계를 이끌고, 워커힐 더글라스정원 기본 및 실시설계, 이스탄불 하천 회복 프로젝트, 종로구 통합청사 설계공모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개인 자격으로 즉흥적 기획, 전시하지 않는 그래픽 작업 등을 즐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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