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 호주, 미국의 다섯 개 회사에서 일한 이력이 있다. 현재 근무지인 필드 오퍼레이션스에 입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특정 회사를 대변하기보다 BIM을 사용한 지난 7년간의 개인 경험을 토대로 글을 작성한다. 기록 루틴에는 여러 단계가 있다. 미시적 단계부터 시작하자면, 실무에 몸담은 지 13년 차가 되니 어느 시점에 프로그램 충돌이 일어나도 업무에 큰 지장이 없을 정도로 저장하는 게 몸에 뱄다. 갑자기 사무실 전기가 나가거나 프로그램이 꺼지면, 그 순간을 기지개를 펴고 동료와 담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정도다. 분명히 20분 이내에 나도 모르게 저장을 했을 테니까.
그 다음 단계는 날짜가 바뀔 때 파일을 새로 저장하는 것이다. 특히 프로젝트 초반에는 라이노를 통해 수많은 디자인 아이디어를 테스트해 보고 지우기를 반복하는데, 과거에 버린 옵션이 다시 거론되고 되살아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일단 보존해 놓는다. 디자인이 최종 확정되면 그동안 보존해 두었던 수많은 라이노 파일들을 정리한다.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는 파일은 과감하게 지우려고 노력한다. 프로젝트 폴더를 간결하게 유지하는 동시에 서버의 메모리 용량도 줄이기 위함이다. 중요 설계 단계를 마칠 때는 납품한 파일과 도면집을 모두 모아서 특별히 지정된 폴더에 아카이브해 둔다. 프로젝트로서 작업물을 기념하기 위함인데, 유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경우 “우리가 전에 어떻게 했었지?”하고 참고할 때 자주 찾는 폴더가 되기도 한다.
2 래빗을 이용한 3D 모델링과 도면 작업, 삽화 렌더링에 대부분의 업무 시간을 할애하다 보니 기록물의 종류가 래빗과 루미온에 치중되는 편이다. 래빗이라는 소프트웨어에 전반적인 3D 모델뿐 아니라 디테일, 도면집, 수량 산출, 협력사 3D 모델이 모두 내재되다 보니 래빗 파일만 주기적으로 백업해도 프로젝트의 핵심 디자인 정보를 보존하는 효과가 있다. 설계 세부 자료나 도면집을 보고 싶을 때 래빗 파일을 통해 열람할 수 있다.
필드 오퍼레이션스를 비롯한 많은 조경 회사가 루미온이라는 렌더링 프로그램을 쓴다. 루미온에 익숙해지면서 많은 사람이 실사에 가까운 삽화를 빠르게 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포토샵에 대한 의존도를 비약적으로 낮췄다. 루미온 파일만 있으면 수십 장의 삽화를 수십 분 내에 재생산할 수 있다.
이처럼 도면집과 삽화를 빠르게 재생산할 수 있게 하는 핵심 파일, 즉 래빗과 루미온을 중점적으로 아카이브한다. 라이노, 프레젠테이션, 보고서 등의 문서도 있는데, 이것들은 보통 작업했던 폴더 내에 그대로 남겨 보존한다.
* 환경과조경 435호(2024년 7월호) 수록본 일부
이홍인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의 오피스박김, 호주의 맥그리거 콕샐(McGregor Coxall)과 하셀(Hassell), 미국의 하트 하워튼(Hart Howerton)에서 경력을 쌓은 뒤 필드 오퍼레이션스(Field Operations) 뉴욕 오피스에 입사해 BIM 전문가로서 래빗을 실무에 도입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테크놀로지를 빠르게 접하고 이를 통해 어떻게 실무 효율과 완성도를 올릴 수 있을지 탐구하는 것이 삶의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