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과 조형
설계를 얼마나 드러나게 할 것인가 혹은 얼마나 드러나게 하고 싶은가에 대한 입장은 설계자마다 미묘하면서도 확연하게 다르다. “자연스럽게 해주세요”라는 말은 조경가가 가장 많이 요청받는 표현이다. 결코 쉽게 정의될 수 없는 자연, 자연주의라는 단어가 동시대의 흐름 속에 묘하게 자리 잡은 모습도 보인다. 물론 모든 설계가는 프로젝트의 성격과 본인 앞에 놓인 상황에 따라 자연스러움의 농도를 달리 할 것이다. 그럼에도 조경을 대하는 근간의 입장이 꽤나 확고함을 인지한 순간이 적지 않다. 하물며 자연스러운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마치 본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 자연스러운 자연의 모습을 구축하는 방식에 대한 선호가 적지 않다. 나 역시 의도적으로 그러한 설계를 하는 경우가 꽤나 있다. 다만 공간을 방문한 사람에게 이곳이 누군가의 의도로 만들어진 공간이라는 점을 인지시킬 수 있는 방식을 조금 더 선호하는 것 같다.
조경 공간에서 설계가의 의도와 개입을 표현하는 효과적 수단 중 하나는 조형이다. 내게 조형은 직선이냐 곡선이냐 비정형이냐를 가르지 않고 포괄하는 것이다. 본연의 자연에서는 보기 어려운 디자인적 조형을 사용하는 것은 천연의 자연과 조경의 작업을 차별화하는 데 효용이 크다. 식물이라는 가장 든든한 소재를 등에 업고 있음을 잘 알고 있고 식물 자체로 조형을 빚어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식물과 조합해 사용하는 의도적 조형은 조경가의 손길이 닿았음을 알리는 좋은 무기가 될 수 있다. 그 조형은 돌이나 콘크리트, 목재, 철 등 다른 소재와 만나 각 공간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중 철은 꽤 목소리를 잘 내는 소재다.
대비의 소재
철은 차갑고 단단하며 이지적이다. 조경이라는 분야가 지닌 전반적 심상을 떠올릴 때나 조경이 다루는 식물이라는 소재를 함께 고려했을 때, 철은 많은 측면에서 조경이 내포한 이미지의 대척점에 서 있는 듯하다. 돌이라는 소재가 철과 어느 정도 유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 같지만, 철이 조금 더 먼 지점에서 본연의 특성을 발현하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철은 자연 소재이지만 우리가 보통 떠올리는 모습이 되려면 일련의 가공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지점에서 철의 고유한 특성이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태생적으로는 자연물이지만 자연스럽다는 표현과는 거리를 두고 있는 소재인 것이다. 그렇기에 조형과 연계해 설계 의도를 효과적으로 드러내주는 소재다.
이러한 속성 때문에 철은 특히 식물과 함께 사용했을 때 가장 즉각적인 대비의 효과를 자아낸다. 바람이 일어 나뭇잎과 가지가 서서히 흔들릴 때에도 철재 요소들은 그 곁에 굳건히 서 있다. 손가락 틈으로 빠져나가면서 느껴지는 식물 특유의 부드럽고 포근한 질감과 달리, 만지지 않더라도 알고 있는 철재의 차가운 표면은 이미 반대의 지점에 위치한다. 식물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감상과 낭만을 선사하지만, 철로 만든 무언가는 고정된 상과 함께 프로젝트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명료하게 전달한다. 병치와 대비를 통해 한 장면의 조화를 구상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철재는 그 구상을 가장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소재 중 하나다.
* 환경과조경 433호(2024년 5월호) 수록본 일부
강한솔은 현대 도시를 만들어가는 건축, 조경, 도시재생, 문화 기획에 기반을 둔 디자이너 그룹 얼라이브어스(ALIVEUS)의 조경가다. 대규모 어바니즘부터 중소 규모 공간에 이르기까지 조경 디자인 실무에 대한 폭넓은 경험을 해왔다. 도시 공간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바탕으로 큰 아젠다와 세심한 디테일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