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계획을 세우는 기간이 3번 있다는 속설이 있다. 신정, 구정 그리고 새 학기. 신정은 1이라는 숫자가 말해주듯 새로운 한 해가 시작하는 날로 앞으로의 1년을 어떻게 보낼지 계획을 세울 수 있고, 구정은 음력 1월 1일이니 어찌 보면 진짜 새해가 시작되는 날이라고 할 수 있다. 설 연휴 동안 게으름을 피운 며칠은 없던 셈 치며 마음을 다잡는다. 그리고 학기가 시작하는 3월,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는 날이니 학생들은 이때야말로 제대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할 수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새해 카운트다운을 한 뒤 메모장을 열어 올해 목표를 적어 내려갔다.
출근길 엘리베이터가 층마다 서는 걸 보니 주변 학교들이 개학했다. 2월까지만 해도 1층까지 바로 내려왔는데, 자기 몸보다 큰 가방을 멘 학생부터 교복을 입은 학생까지 동행자가 많아졌다. 책가방을 멘 지가 까마득해 개학은 잊은 존재였는데, 등교하는 학생들을 보니 나에게도 새 학기 바람이 불어온다. 1월 1일에 정한 목표를 더 열심히 실행할 수 있는 힘이 생긴 듯하다.
계획은 참 얄미운 마법사(?) 같다. “갓생(신을 의미하는 ‘갓(god)’과 삶을 의미하는 ‘생(生)’을 조합한 단어로 부지런한 삶을 뜻한다)을 살려면 어서 계획을 세워야지”라고 속삭이며 수첩을 열게 만들어놓고 정작 실행하려면 왜 꾸준하게 하지 못하게 막는 거냐고. 결국 지우지 못한 리스트를 보며 나를 채찍질할 게 뻔한데.
올해는 마법사의 꼬임에 넘어가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여러 방식을 찾아봤다. 새로 발견한 방식은 ‘만다라트 기법’으로, 세계적 야구 선수 오타니 쇼헤이가 자신의 만다라트 표를 공개한 후 유명해졌다. 만다라트(mandalart)는 본질의 깨달음(manda)+성취(la)+기술(art)의 합성어로 목적을 달성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가장 큰 목표를 세우고 이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을 확산해 나가는 형태다. 작성법은 9칸의 사각형을 가로 3개, 세로 3개로 배치해 아홉개를 만든다. 중앙의 가장 큰 사각형에는 핵심이자 최종 목표를 적는다. 그 주변에 세부 목표 8개를 적는데, 다음으로 뻗어나가는 칸에는 구체적인 실천 과제를 쓰면 된다. 목표를 이뤄나가기 위해 필요한 사항을 쉽게 정리해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오타니가 작성한 만다라트 표를 보면 왜 성공했는지 알 수 있다(오타니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 간략히 설명하자면, 오타니는 투수와 타자를 동시에 겸한다. 세계적 축구 선수 리오넬 메시가 축구 경기에 나와 전반전에 미친 듯 골을 넣고, 후반전에는 골키퍼로 나와 모든 공을 다 막아내는 것보다 더 대단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각주 1)). 오타니의 세부 목표 중 이것도 목표가 될 수 있구나라며 신기해했던 게 있다. 바로 ‘운’이다. 운을 가지기 위해 세부 사항으로 쓰레기 줍기, 물건 소중히 쓰기, 긍정적 사고, 책 읽기, 심판을 대하는 태도 등을 적었다. 운칠기삼(일의 성패는 70%의 운과 30%의 재주 혹은 노력에 좌우된다는 뜻이다)이란 단어가 있듯 이 세상일에는 노력과 함께 운도 보태져야 한다. 오타니는 자서전(각주 2)에서 “쓰레기를 줍는 일은 지나간 사람이 떨어트린 행운을 줍는 일이다”라며 성공엔 실력뿐 아니라 운이 더해져야 하고, 운을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타고난 재능뿐 아니라 피땀이 담긴 훈련과 연습 그리고 자신이 만든 운까지 더해져 지금의 오타니가 탄생한 것이 아닐까.
오타니처럼 8가지 목표와 그에 대한 56가지 세부 사항을 세우는 건 나를 압박하는 것 같아서 반을 나눠서(정확한 반은 아니지만) 4가지 핵심 목표와 그에 대한 16가지 세부 사항을 적었다. 나의 만다라트 표 정중앙에 적은 목표는 ‘반복되는 일상 벗어나기’다. 직장인들에겐 3, 6, 9 법칙이 있는데, 3개월, 6개월, 9개월 혹은 3년, 6년, 9년마다 직장 생활에 위기가 찾아온다는 의미다. 3년 차가 된 요즘 매일 똑같은 일상에 노잼 시기가 찾아온 듯하다. 그래서 소소하지만 색다른 이벤트를 만들어 현생(현재의 생활)을 번아웃 없이 잘 살아보자는 의미로 목표를 정했다.
2024년 1분기가 지나고 있는 지금까지의 달성정도를 보면 나쁘지 않다. 구체적이면서 세부적인 실행 방법까지 적어서 그런지 잘 진행 중이다. 꽤 많은 세부 사항을 지울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을 안고 오늘도 운동 센터로 퇴근한다.
**각주 정리
1. 권윤택, “한국 야구에서 ‘오타니 쇼헤이’같은 선수가 나올 수 없는 이유 (Part-1)”, 「더케이경제」 2024년 1월 22일.
2. 오타니 쇼헤이,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오타니 쇼헤이의 120가지 사고(不可能を可能にする大谷翔平の120の思考)』, 피아(ぴあ),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