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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식물에게] 식물의 가치를 만드는 법
  • 환경과조경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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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 관목·지피·초화 실시설계 스케치 관목·지피·초화는 해마다 생육 상태가 좋은 수종이 달라져서 농장을 돌아다니며 수종을 바꾸는 경우가 많다. 광화문광장의 관목·지피·초화도 농장 답사 후 대폭 수정되어 식재됐다.

 

 

직립형 느티나무를 찾아서

광화문광장 공사가 한창이었을 때 CA조경기술사사무소(이하 CA조경)는 설계 의도 구현이라는 용역으로 공사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조용준 소장은 수목 답사에 참여하지 못할 때마다 팀원 중 한 명을 번갈아 답사를 보냈고, 나 역시 팀원으로서 서울시 공무원, 공사 감리 담당자, 식재 공사 담당자와 함께 지방 곳곳을 돌아다녔다. 2021년 12월 23일, 충청북도로 답사를 갔다. 광화문광장 설계 도서를 작성할 때에도 수목 농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시공 단계에서 수목 농장을 방문한 건 처음이었고 전문가들이 나무를 선별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먼저 서울시 공무원이 도면과 자재수급현황표를 보고 오늘 선별해야 할 나무의 수종과 규격을 파악했다. 그 다음 식재 공사 담당자가 농장주에게 전화를 걸어 방문 허락을 받고 해당 농장을 찾아갔다. 농장에서 괜찮은 나무를 발견하면 둘레를 재서 규격을 확인하고 설계사에게 설계 의도에 적합한 나무인지 확인했다. 특별한 이견이 없으면 나무를 끈으로 묶어 다른 현장에 팔리지 않도록 표시를 해놓았다.

 

이때 전문가들이 좋은 나무를 판별하는 기준은 나무의 수형이었다. 농장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수형이 아름다운 나무를 발견하면 모두가 “이 나무 참 잘생겼다”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이 나무가 광화문광장에 식재될 만한 나무인가”라는 물음에는 조금씩 의견이 달랐다. 서울시 공무원은 공기에 차질이 없게 수급 일정을 맞출 수 있는 나무가, 공사감리 담당자는 수피에 상처가 없고 옹이가 없는 깨끗한 나무가, 식재공사 담당자는 규격에 맞는 나무가 좋은 나무라고 판단하는 것 같았다. 그럼 나는 어떤 것을 기준으로 좋은 나무를 선별해야 했을까.

 

그 답을 2022년 2월 15일 전라북도로 답사 갔던 날 찾았다. 조용준 소장은 내게 직립형 느티나무를 찾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잎이 높은 지점에서부터 나고 수관 폭이 좁은 느티나무를 구해오는 것이 요구 사항이었다. 수목 답사에 참여했던 다른 관계자는 그런 나무는 없다며 차라리 다른 수종으로 변경하라고 말했지만, 조용준 소장은 직립형 느티나무를 본 적이 있다고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그가 직립형 느티나무를 고집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광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그늘을 제공해 주기 위해 느티나무여야 하고, 멀리서도 광화문이 보여야 하기 때문에 직립형이어야 한다. 직립형 느티나무는 식재 담당자의 수소문 끝에 발견됐고, 지금은 해치마당과 광화문광장을 잇는 화강석 스탠드 일대에 식재되어 있다.

 

좋은 나무란 무엇이며 좋은 나무를 고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광화문광장 프로젝트를 통해 내가 배운 교훈은 단순하다. 수형이 아름다우면서도 설계가의 의도를 구현해낼 수 있는 나무가 좋은 나무이며, 좋은 나무를 찾기 위해서는 발품을 많이 파는 수밖에 없다. 직립형 느티나무는 없다고 말렸던 관계자의 말에 더 이상 발품을 팔지 않았다면, 광화문광장 설계 의도를 구현할 수 있는 좋은 나무를 찾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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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 화강석 스탠드를 따라 식재된 직립형 느티나무

 

환경과조경 430(2024년 2월호수록본 일부

 

 

김수린은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과 조경을 복수전공하고,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18년 CA조경기술사사무소에 입사해 새로운 광화문광장 기본 및 실시설계, 디지코 KT 기본 및 실시설계 등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해 실무를 익혔다. 2022년 LH 작가정원으로 정원설계 활동을 시작했고, 2023년 순천만국가정원에 LH 공공정원을 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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