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82년생 김조경] 김현정
중요한 건 한계를 정하지 않는 마음
  • 환경과조경 2023년 04월

[크기변환]현 1.jpg

 

1 인터뷰 요청 연락을 받은 시점은 육아휴직 후 회사로 복귀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복귀 첫날 간단한 프로그램 단축키가 생각나지 않아 적응 시간이 꽤 걸릴 줄 알았는데 역시나 오산이었다.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지금, 한 달 하고 보름 정도가 지났는데 그 사이 기본 및 실시설계와 관련된 다양한 업무를 진행했다.

공간 디자인을 하고, 법적 사항을 확인하고, 보고 자료를 만들고, 디테일을 고민하고, 도면을 작성하고, 공사비를 산출하고, 회의에 참석하고……. 어릴 적 배운 자전거에 몸이 반사적으로 반응하듯 자연스럽게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다만 똑같은 페달을 밟아도 장소에 따라 새로운 경험이 되듯, 매번 반복적인 설계 과정이어도 대상지에 따라 흥미로움은 언제나 변한다.

간혹 금요일에 끝내지 못한 고민들의 답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에 생각이 나기도 한다. 지난 주말엔 한 프로젝트에서 고민하던 포장재 색상을 주말에 놀러간 장소에서 영감을 얻고 결정하기도 했다.

 

2 아이들이 쓰는 말 중에 가장 모호한 답변이 ‘그냥’이다. 정말 어쩌다 하게 됐다. 쳇바퀴 돌 듯 정해진 틀에 맞춘 일상에 현기증을 느낀 고등학생의 패기였을지도 모른다. 그땐 그랬다. 그냥 해보고 싶다는 그런 얄팍한 마음 정도. 재미있을 것 같고, 유망해 보이고, 무엇보다 ‘자유분방한 정신’이 느껴졌다고 할까. 사람이든 물건이든 장소든 먹고 사는 ‘업’이든, 마음을 빼앗기는 데는 비단 논리적인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순간의 비이성적 결심이 한참 지나고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현재의 합리적 나를 만드는 데 일조하는 초현실적 상황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면 어쩌다 조경학이었을까. 한때 두루뭉술하게 국어 교사나 광고 기획자를 꿈꾸던 문과생은 수능 참사라는 핑계로 공대까지 기웃거리게 된다. 조경학과는 공과대, 농업생명과학대, 미술대, 자연과학대 등 소속이 참 다양하다. 공대 중 가장 공대답지 않아 보이고 몽글몽글 글 쓰듯 ‘대지 위에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조경이라는 학문에 이끌렸던 건 운명이었을까. 적분도 공부하지 않은 문과생이 대학 수학과 대학 물리학을 기호 암기하듯 패스하고 그렇게 조경가가 되는 첫걸음을 내디뎠다.

지극히 개인적인 과거사를 공유하는 것은 조경이라는 학문과 실무를 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한 자신의 한계를 정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이 명확할 때 가장 큰 장애물은 스스로 자신 없는 단정 지음뿐이다.

 

[크기변환]현 3.jpg
설계가는 자신의 디자인에 대해 타인의 비평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겸허함과 동시에 내면적 나르시시즘도 필요하다. 좋은 나르시시스트 설계가가 되기 위해 일상에서 노출되는 모든 것에 눈과 귀를 열어놓고 항상 배우고자 한다. 그것이 반면교사이든 타산지석이든 상관없이 늘.

 

 

환경과조경 420(2023년 4월호수록본 일부 

 

김현정은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는 오래된 광고 카피처럼 설계의 품격은 리얼리티에 기반한 섬세한 고민들로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동아대학교에서 조경학을 전공하고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에서 다년간 기초 실무를 쌓았다. 서른이 훌쩍 넘어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 진학해 만학도 생활을 즐기고 다시 설계로 복귀했다. 현재는 HEA 일원으로 지내고 있다.

월간 환경과조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