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산책 코스는 동네 아파트 단지였다. 곳곳의 작은 쪽문을 통해 들어서면 산수유 길, 조팝나무 길 같은 산책로가 있었고, 이 길들은 크고 작은 정원과 어린이 놀이터, 연못과 인공 실개천, 광장, 테니스장으로 연결되었다. 꽃 사진 찍는 사람들과 재잘거리는 아이들, 비 오는 날의 개구리 소리, 우비 입힌 강아지와 산책하는 우비 입은 사람. 무해하고 아름다운 풍경이었지만 지난 봄부터 발길을 끊었다.
산수유가 지고 조팝나무 꽃이 하얗게 필 무렵 아파트 단지 외곽에 진회색 울타리가 들어섰다. 누구나 드나들던 쪽문에는 입주자 카드나 비밀번호가 없으면 열리지 않는 문이 설치됐다. 낯선 인기척에 잠 못 이루는 이가 있었던 걸까. 소음, 보안, 그리고 코로나19……,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짐작 가는 원인은 여럿이다. 여전히 경비원이 상주하는 정문과 배달 차량 출입로는 열려 있지만 풍경을 도둑질하는 기분이라 들어갈 수 없다.
닫힌 문 앞에는 손수레를 끄는 할머니들이 서성이곤 했다. 아파트 단지를 가로질러 시장에 다니던 분들인데, 입주자가 지나갈 때 열린 틈으로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나는 이제 먼 곳으로 작업실을 옮긴다. 내가 다른 산책 코스를 만드는 동안, 그 아파트의 문은 계속 잠겨 있을까? 할머니들은 계속 기다릴까? 아니면 장본 것을 끌고 빙돌아 집으로 돌아갈까? 봄이 오면 진회색 울타리 안에 노란 산수유와 하얀 조팝나무 꽃이 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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