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1월도 작년의 1월과 다름없는데 무게감에서 확실히 다름을 느낀다. 2022년 초에 있었던 한국조경학회장 선거가 온라인으로 치러졌기에 모든 것을 글로만 준비해서 그런가, 올해는 행동이 필요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한국조경학회 공식 홈페이지 인사말에 ‘다시 도약하는 조경, 조경의 심장이 되겠다’고 적었다. 한국 조경 50주년 기념 행사장을 나오면서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을지 깊은 생각에 빠졌다. 학회는 항상 조경 분야의 핵심적 존재이지 않았던가. 그런데 심장이 되겠다는 것이 뭐 그리 새로운 약속이고 결심인가. 다섯 번의 10년, 한 세기의 중간 지점 등 50년의 의미를 찾자면 끝이 없다. 상징적인 시간을 통과하는 지금, 우리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은 1789년에 취임했다. 환호 속에서 내딘 첫 발이었지만 대립과 갈등은 외화내빈의 극치였다. 특단의 조치로 새 수도 건설을 계획했고, 대통령 관저 기공식은 야심찬 통합의 출발 신호였다. 공사가 늦어져 자신은 입주도 못하고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John Adams)가 첫 주인이 되었으나 수도, 난방, 램프, 방수 등의 문제로 건물은 엉망이었다. 영국과의 전쟁, 남북전쟁을 거치며 몇 차례 훼손도 발생했다. 율리시스 그랜트(Ulysses Grant)와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Roosevelt) 대통령이 대대적 보수 공사를 했으나 물이 차고 벽에 금이 가는 등의 구조적 문제는 계속 노출됐다. 이에 따라 해리 트루먼(Harry Truman) 대통령은 골조만 남기고 해체 수준의 대공사를 시행했다. 아름다운 모습의 백악관과 그 앞뜰은 250여 년이 지나고서야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50년의 시간은 우리를 성숙시켰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어쩔 수 없는 노화를 가져왔다. 몸이 따라오지 못하는 심장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제26대 한국조경학회 회장단은 젊어지는 것을 우선으로 선택했고 사무실도 바꿨다. 몸을 바꿔야 심장도 활기차게 기능을 할 수 있다.
녹색자원부의 필요성을 학회에서 논의한 적 있다. 새로운 시대를 대비해 환경부, 산림청, 국토교통부의 기능을 하나로 집약시킨 행정부가 필요하다는 논리였다. 이미 세계는 방향을 정했고 변속 기어를 올리고 있다. 브렉시트는 EU와 영국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기후변화에 기반한 경제 구조 개편은 이것의 또 다른 양상이다. 빅토리아 시대 이후 얻은 ‘해가 지지 않은 나라’에서 해가 없어졌다. 산업혁명의 중심에 있음으로써 해의 주인이 되었던 영국에 더 이상 해가 뜨지 않게 된 것이다. 해를 끌어내야 했기에 영국은 환경 문제를 거론했지만 미국을 포함한 몇몇 경제 강대국이 외면해버림으로써 다시 해가 뜨는 것은 요원해 보였다. 그러나 삶의 터전을 오염시킨다는 세계의 손가락질에 결국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개발도상국이 아닌 한국도 세계와 약속했고 더디긴 하지만 발을 내딛고 있다.
조경의 세상은 어떠한가. 녹색을 다루는 분야이므로 조경은 예외라고 생각하는가. 2022년 말 조경계 원로와 차 한 잔 마시는 자리가 있었다. 산림청의 가치에 대하여 오랜 세월의 경험을 말해줬다. 도시에서의 쓰임새에 대한 노선배의 혜안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산림청과 함께했던 도시숲 입법화는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출발이었다. 그 과정에서 발견한 조경계의 무원칙, 무지, 무례한모습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어둠의 세상을 봤다.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었던 전쟁이었음을 잊지 말아야한다. 이제라도 반성하지 않으면 그 어둠의 터널은 돌아오지 못할 수직 갱도가 될 수도 있음을 가슴 깊이 새긴다.
코로나19는 세계인에게, 코로나19와 인구 성장 마이너스는 한국인에게 처음으로 안겨진 생소한 장벽이다. 코로나19는 백신과 약제를 개발하면 극복할 수 있지만 인구 절벽에는 특효약이 없다. 신의 한수로 인구가 갑자기 늘어나더라도 최소한 20년 이상 대학과 사회에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학과 업은 지금까지 각자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인구 절벽 앞에 서 있는 지금, 누구 하나의 노력으로는 극복이 안 되기에 지금까지 취한 자세와는 헤어질 결심이 필요하다.
인구가 늘어나던 시대에는 인력을 지속적으로 공급받았기에 문제의 초점은 다음 단계 진출을 위한 경쟁이었다. 이제 자세를 바꾸어야 한다. 공급선을 뚫어야 하고 자원을 찾아야 한다. 국가가 출산율을 높이는 정책을 만드는 동안 업계는 취업 자원을, 대학은 입시 자원을 발견해야 한다. 학회는 학계와 업계의 중간에서 이를 찾는 매개 역할을 하려 한다. 인턴제의 활성화, 초·중·고등학교와 대학 졸업자, 퇴직자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의 운용, 퇴직 교수들의 자원화 등 조경을 사회적 교육 차원으로 바꾼다면 이는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022년 광역단체장들의 공약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이 정원 조성이다. 산림청을 중심으로 정원 조성 사업에 많은 투자가 예상되는 가운데, 정원사 양성을 위한 움직임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공원까지는 몰라도 정원은 모든 이에게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조경의 영역이다. 초등학생부터 퇴직자까지 전 연령대를 아우를 수 있는 도구가 손 안에 있는데 주저할 이유가 없다. 이들에 대한 교육은 조경이라는 세상을 넓힐 수 있는 미래 산업이 될 것이고, 인적 자원을 확보하는 확실한 방안이 될 것이다. 소량 다품종이라는 조경 분야의 특성이 약점이 될 수밖에 없었고 IT나 AI, 가상 공간 등 첨단화가 조경의 입지를 약화시킨 것처럼 보이지만, 정원과의 적절한 접목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조경 산업에 새로운 기회로 작용하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 학회는 이러한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업계와 함께 하는 장을 만들 계획이다.
지난 50년간 해왔던 학회의 사업을 업계와 함께하는 사업으로 문을 열고자 한다. 최종 사용자이며 본체인 업계와 CPU로서 학계가 함께할 수만 있다면 스마트한 조경 세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학자들의 공간인 학회를 업계와 머리를 맞대는 공간으로 열려 한다. 방향은 명확하다. 한국조경학회 홈페이지 인사말을 옮기며 글을 마무리한다. “우리는 멀리 가야 합니다. 빨리 갈 필요는 없습니다. 함께 발굴하고 함께 교육하고 함께 세상을 넓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합시다. 우리의 자산인 훌륭한 두뇌 자원을 하나로 응집해 ‘함께’라는 조경호의 컨트롤 타워가 됨으로써 한국조경학회는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김태경은 서울시립대학교를 졸업하고 1999년부터 강릉원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조경 계획과 설계, 조경 미학 등을 강의하고 있으며 지역 재생의 수단으로 정원의 가치를 인식하고 홍천에서 정원 마을 만들기를 실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