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모던스케이프] 동물원의 탄생
  • 환경과조경 2022년 9월
animal 01.jpg
리젠트 공원의 런던 동물원, 1835년(출처: 위키피디아)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 우영우 덕분에 난데없이 고래가 세간에 소환됐다. 센 강에 흘러들어왔다가 고향과 영원히 이별한 벨루가 소식과 인간에게 끝까지 길들지 않고 고향인 제주 앞바다로 방류된 남방큰돌고래 태산이가 최근 죽음을 맞이했다는 얘기까지, 이러저러한 고래들의 사연을 접하면서 인간이 동물을 대하는 이기적인 태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개나 고양이처럼 오랫동안 인간과 함께 살면서 가축으로 진화한 동물도 있지만, 대부분 동물은 야생에 있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그러나 인간은 애완이든 식용이든 동물을 끊임없이 곁에 두려 했는데, 이런 욕망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공간이 ‘정원’이고 ‘동물원(zoological garden)’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유囿라고 하여 금수를 키우는 곳을 아예 구별했다. 앵무새와 원앙 등 진귀한 새를 기르는 것은 물론이고 거위나 사슴, 학 등을 곁에 두기도 했다. 학은 고고한 생김새와 긴 수명 때문에 예부터 신선과 함께 사는 동물이라 여겼고 속세를 떠난 은자隱者들이 특별히 사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의 옛 기록에서도 선비들이 학을 애완용으로 정원에서 길렀다는 사실이 종종 확인된다.

 

유럽으로 가면 그 양상이 좀 더 야만적이고 노골적이다. 우선 동물 수집은 동아시아와 마찬가지로 이른 시기부터 확인되는데, 이집트의 아시리아제국을 시작으로 바빌로니아, 그리스, 로마 등 고대 사회에서부터 있었다고 알려진다. 로마제국은 알렉산더 대왕이나 네로 황제는 물론 귀족들까지도 진귀한 동물을 모았으며, 트라야누스 황제는 약 1만 1천여 마리의 동물을 수집했다. 8세기 프랑크 왕국의 카를 대제도 거대한 동물원을 소유하고 있었고, 13세기 영국의 헨리 1세도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레데릭 2세로부터 받은 표범 한 마리를 사자와 낙타 등과 함께 우드스톡에 있는 자신의 궁에 동물원을 만들어 관상했다. 우드스톡의 동물원은 이후에 런던탑을 거쳐 19세기 리젠트 공원에 조성된 런던 동물원으로 이어진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이 동물을 수집하는 일은 정치와 권력의 힘이 작동되는 인류의 도시 문명사와 궤를 같이할 만큼 오래된 일이다. 과거에는 동물원이 왕권과 부를 상징하며 조공이나 전리품으로 획득한 동물을 정원에 모아 두고 보고 즐기는 데 쓰였다면, 제국주의가 팽배해진 19세기에 이르면 아프리카는 물론 남미 등 식민 국가의 동물을 무작위로 포획해 동물원을 채우게 됨에 따라 동물원에는 식민지 정복에 대한 상징이 두텁게 드리우기 시작한다.

 

animal 03.jpg
창경궁 동물원을 찾은 구경꾼들의 모습(출처: 창덕궁, 창경원 사진첩, 1910, 서울역사아카이브 소장)

 

근대적 시각으로 보면, 동물원은 자연을 정복한 인간의 우월감이 드러나는 공간이며 미개한 동물과는 다른 문명화된 인간의 존재를 찬양하는 공간이었다. 또 세상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과 탐구심이 빛나는 장소이기도 했다. 한편, 동물원은 동물 분류와 서술 방식의 발전을 견인했을 뿐만 아니라 동물의 해부학적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동물 보존 박물관을 만드는 계기 또한 마련했다. 세계의 유명한 자연사박물관들도 이러한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동물원은 방문객에게 자극적이고 직관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것으로 진화했고 대중을 위한 공공의 오락 장소로 발전했다. 과거의 계획 공원에는 대부분 동물원이 설계됐고, 동물원은 점차 도시 근대화를 상징하는 하나의 시설로 자리매김했다.

 

환경과조경 413(2022년 9월호수록본 일부

 

참고문헌

김정은, “일제강점기 창경원의 이미지와 유원지 문화”, 『한국조경학회지』 43(6), 2015, pp.1~15.

김해경 외, “전통조경요소로써 도입된 학(鶴)과 원림문화”, 『한국전통조경학회지』 30(3), 2012, pp.57~67.

니겔 로스펠스, 『동물원의 탄생』, 이한중 역, 지호, 2003.

서태정, “대한제국기 일제의 동물원 설립과 그 성격”, 『한국근대사연구』 68, 2015, pp.7~42.

오창영, 『韓國動物園八十年史(昌慶苑編)』, 서울특별시, 1993.

우동선, “창경원과 우에노 공원, 그리고 메이지의 공간 지배”, 『궁궐의 눈물, 백 년의 침묵』, 효형출판, 2009, pp.202~237.

한국전통조경학회 편, 『동양조경문화사』, 문운당, 2011.


박희성은 대구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한중 문인정원과 자연미의 관계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역사 연구자들과 학제간 연구를 수행하면서 근현대 조경으로 연구의 범위를 확장했다. 대표 저서로 『원림, 경계없는 자연』이 있으며, 최근에는 도시 공원과 근대 정원 아카이빙, 세계유산 제도와 운영에 관한 일을 하고 있다.

월간 환경과조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