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시대 일본 도시는 ‘진보한’ 근대 도시로의 도약을 목표로 하는 도시부흥계획을 구상했다. 간토 대지진 이후 도쿄의 재건 사업을 이끈 고토 신페이(後藤新平), 오사카 시장을 역임하며 오사카를 오늘날의 상업 도시로 키운 세키 하지메(關一), 유럽 각지를 돌며 근대 도시계획의 법제와 정책을 공부해 자국의 도시계획 제도를 수립한 이케다 히로시(池田宏) 등은 근대 도시를 실천한 대표적인 테크노크라트 1세대 주역이다.
도쿄 역사 설계로 잘 알려진 건축가 다쓰노 긴고(辰野金吾)와 오사카에서 주로 활동한 가타오카 야스시片岡安 등은 붉은 벽돌과 흰 화강암을 결합한 영국풍 건축물을 일본에 소개했다. 조경 분야의 주역으로는 혼다 세이로쿠本多靜六(1866~1952)를 꼽을 수 있는데, 그는 경제학과 임학을 기반으로 국토 전반의 녹지 경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대표적 공원 전문가다.
혼다 세이로쿠(이하 혼다 박사)는 일본 최초의 근대 도시공원인 도쿄 히비야 공원(日比谷公園, 1903년 개장)을 설계하고 국립공원을 지정하는 등 조경학과 임학에 큰 기틀을 마련했다. 도쿄제국대학 교수 시절, 일본 전역에 수많은 도시공원을 조성해 ‘공원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꾸준한 연구와 글쓰기를 통한 자기 계발, 안정된 자산 관리와 퇴직 후 사회 환원 등 인생을 성실하고 계획적으로 운영해서, 일반인에게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삶을 실천한 자산가이자 처세에 모범이 되는 인물로 더 유명하다.1
혼다 박사를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그의 이력에 한반도에서 활동한 사실이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서울 남산의 ‘경성부 남산공원 설계안’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 경성부가 서울 남산을 대공원으로 만들 계획을 세웠고, 혼다 박사에게 구체적인 안을 요청했다. 그는 1916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제자 다무라 쓰요시(田村剛)와 함께 남산을 현장 조사하고 1917년 3월 ‘경성부 남산공원 설계안’2을 발표했다.
혼다 박사의 남산공원 설계안에는 남산이 공원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 몇 가지 주요 방향이 제시되어 있다. 첫째, 산림 황폐로 훼손된 남산을 사방공사 등으로 안정화한 후 식재 등의 조경 설비를 적절히 진행할 것, 둘째, 공원 도로와 시설을 남산의 환경 조건에 맞게 배치해 고유한 남산의 풍경을 십분 이용할 수 있어야 할 것, 셋째, 남산공원에 도입할 시설에 맞는 운영 방법을 취해 공원 관리에 힘쓸 것 등이다.
* 환경과조경 411호(2022년 7월호) 수록본 일부
참고문헌
京城府, 『京城府南山公園設計案』, 1917.
서울역사편찬원, 『국역 경성부사 제3권』, 2014.
渋谷克美, “国ソウル「南山公園」と本多静六-公園設計にみる本多静六の国際感覚”, 『本多静六 通信』 17, 2008, pp.5~9.
손용훈·서영애, “1917년 경성부 남산공원설계안의 삼림공원 개념에 관한 연구”, 『한국전통조경학회지』 30(4), 2012, pp.23~31.
그림 출처
그림 1. newscast.jp/
그림 2~3. 京城府, 1917, 京城府南山公園設計案.
박희성은 대구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한중 문인정원과 자연미의 관계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역사 연구자들과 학제간 연구를 수행하면서 근현대 조경으로 연구의 범위를 확장했다. 대표 저서로 『원림, 경계없는 자연』이 있으며, 최근에는 도시 공원과 근대 정원 아카이빙, 세계유산 제도와 운영에 관한 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