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현상을 마주할 때 우리는 선택을 한다. 전체적인 구조를 볼 것인가, 작은 디테일을 살필 것인가. 모두를 눈에 담기에 순간은 너무 짧다. 하지만 찰나를 포착하는 사진이라면 어떨까. 안드레아스 거스키(Andreas Gursky)는 거시적 형태와 미시적인 디테일을 동시에 다루는 사진가로 불린다. 관객을 압도하는 그의 거대한 사진은 주로 현대 사회의 장대한 풍경과 인간의 눈으로 포착하기 어려운 자연 현상을 담고 있는데, 사진에 한걸음 가까이 다가서면 사회와 자연의 구조 속에 가려진 미미한 인간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지난 3월 31일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국내 최초로 거스키의 개인전(‘안드레아스 거스키’ 전)이 열렸다. 인류와 문명에 대한 통찰을 담은 거스키의 대표작 40점과 처음 공개되는 두 점의 신작 ‘얼음 위를 걷는 사람(Eisläufer)’과 ‘스트레이프(Streif)’가 전시됐다.
안드레아스 거스키
거스키는 1955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났다. 상업 사진 작가인 아버지와 초상 사진가로 활동한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다양한 사진 기법을 익혔다. 하지만 거스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상업 사진도, 초상 사진도 아니었다. 포토저널리스트를 꿈꾼 그는 1977년 에센에 있는 폴크방슐레에 입학한다. 그곳에서 독일 주관주의 사진 작업의 대가인 오토 슈타이네르트(Otto Steinert)를 만난 그는 사물을 지각하는 법, 포토저널리즘의 시각과 다큐멘터리적 방법론을 배웠다. 1981년에는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에 들어가 독일 현대 사진의 미학과 전통을 확립한 베른트 베허와 힐라 베허(Bernd and Hilla Becher) 부부에게 가르침을 받은 거스키는 ‘유형학적 사진’의 기초를 다졌다.
세상을 꼭 닮은, 세상에 없는 풍경
세상의 수많은 소재 중 거스키의 이목을 잡아끈 것은 산업화의 산물들이었다. 공장, 크루즈 선박, 아마존 물류 센터 내부, 미국 대형 소매점 같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대표하는 사물이나 장면을 유형학적 시선으로 포착해 사진에 담았다. 그의 사진은 세상의 일부를 그대로 옮겨 담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풍경이다. 거스키는 완벽한 수직, 수평 구도를 원했다. 파리 최대 규모의 아파트 건물을 찍은 ‘파리, 몽파르나스’(1993)는 건물 건너편 두 군데 시점에서 촬영한 이미지를 조합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거스키는 소실점을 제거해 모든 창문의 크기가 같아 보이도록 연출했다. 그 결과 거시적이면서도 건물의 내부 디테일과 균일한 격자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개인의 삶을 살필 수 있는 이미지가 탄생했다. 미색과 검은색의 수평선이 반복되는 ‘벨리츠’(2007)는 독일 벨리츠의 유명한 아스파라거스 밭을 촬영한 것이다. 하늘에서 수직으로 땅을 내려다보는 시점은 직선 구조를 부각하고, 관람객의 머리에서 지평선의 존재를 휘발시켜 버린다. 하지만 수평선이 어긋나는 곳을 살피면 아스파라거스 수확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의 존재가 보인다. 그 순간 기하학적 패턴으로 보이던 이미지가 다시 사진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전체와 디테일을 한 번에 담아내는 그의 사진은 관람객과의 거리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매체가 된다.
* 환경과조경 410호(2022년 6월호) 수록본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