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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웃거리는 편집자] 연결을 기다리는 모스 부호
  • 환경과조경 2022년 6월

다독가는 아니지만, 책 수집을 좋아한다. 수집하는 책의 종류는 크게 두 가지다. 헌책이거나, 헌책이 될 운명을 기다리고 있는 새 책이다. 헌책은 사장님이 직접 타 주시는 맥심 커피가 어메니티(?)로 나오는 단골 헌책방에서 주로 구매하는데, 이유는 제각각이다. 사장님의 책 광고에 혹하거나, 제목에 끌려서, 아니면 책에 적힌 낙서가 웃겨서 구매했었다. 헌책이 될 예정인 새 책은 주로 시집이나 잡지가 대부분이다. 책장에 나열된 시집의 시적인 제목만 읽어도 뭔가 시인이 된 것 같다. 월별로 정리된 잡지를 보면 그것에 깃든 동업자의 노고를 잘 알기에, 전자책으로 살 수도 있지만 늘 종이 잡지로 본다. 설령 내가 만들지 않았을지라도.

 

수집가라고 했지만, 실상은 나일론 수집가에 가깝다. 안 그런 이들도 있지만, 보통 수집가들은 자신의 물건을 귀하게 여기고 잘 팔지 않는다. 이와 다르게 현실적인 이유로 꾸준히 책을 팔아야만 했다. 나의 작고 소중한 책장은 많은 책을 감당할 만큼 크지 않기 때문이다. 컴퓨터 휴지통 비우듯이 한 번씩 꽉 찬 책장을 비워야 할 때면 그간 안 읽었던 책을 장소와 시간을 불문하고 벼락치기로 허겁지겁 읽었다. 그래서 무슨 책을 읽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벼락치기는 약간의 후유증을 동반하는 것 같다. 매번 이러지 않아야겠다고 결심하지만, 새해에 다짐하는 금연 약속처럼 부질없다.

 

최근 나일론 수집가가 아닌 진짜 수집가의 집에 다녀왔다. 바로 정릉의 최만린미술관이다. 최만린 작가는 한국 추상 조각의 개척자로 불렸으며, 2020년에 타계했다. 미술관은 그가 오랫동안 터전을 잡고 작업실 겸 집으로 썼던 정릉 자택을 개조한 곳이다. 큰 규모를 자랑하는 미술관은 아니라서, 30분이면 모든 공간을 둘러볼 수 있다. 정원의 중앙에 위치한 아담한 연못과 빨간 벽돌로 세운 담을 에워싸고 있는 초록빛의 나무들. 조경에서 자주 쓰이는 언어로 표현하면 위요감이 충분했다. 

 

특히 2층 오픈 아카이브 방이 좋았다. 수집에 대한 최 작가의 세심한 정성을 엿볼 수 있었다. 평생에 걸쳐 최 작가가 수집해온 자료가 한쪽 벽면을 채우고 있었다. 영수증, 설계도, 사진, 잡지 및 신문 기사 등 각종 자료가 가지런하게 파일철로 정리 되어 있었고, 맨 아래 칸에는 최 작가와 관련된 글이 실린 잡지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글이 실린 잡지의 지면에는 일일이 책갈피를 꽂아두었고, 책등에는 해당 지면의 쪽수가 적힌 스티커를 붙여 두었다. 『환경과조경』도 그중 하나였다. 잊고 지냈던 초등학교 동창을 지하철역에서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다행히 열람이 가능해서, 후배 동업자(?)로서 기쁜 마음으로 1990년대의 『환경과조경』을 읽다가 왔다.

 

집에 돌아오면서 문득 잡지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봤다. 흥미로운 것들이 넘쳐나는 시대에서 종이 잡지는 비인기 장르다. 대기업 중고 서점에서는 잡지가 상품성이 없다는 이유로 받아주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왜 잡지를 만들어야 할까?’ ‘종이가 종교도 아니고, 무조건 종이 잡지를 예찬해야만 하는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늘 답을 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넘어가기 일쑤였다. 그런데 진짜 수집가의 집에 다녀오고 나서 약간의 힌트를 얻었다. 물론 디지털 기술이 더 방대하고, 간편하고,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종이를 넘기고, 책갈피를 꽂고, 메모를 하는 것은 기술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다. 수집가의 손때는 다른 이가 짧은 시간 내에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잡지는 살아있는 아카이브이자, 누군가와의 연결을 기다리고 있는 모스 부호일지도 모른다. 일면식 없는 최 작가와 내가 잡지라는 공통분모로 연결됐던 것처럼. 조경의 어제와 오늘을 기록했던 『환경과조경』은 올해 7월 40주년을 맞이한다. 우리의 아카이브가 시간을 넘어 또 다른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는 모스 부호가 되기를 바라며 마친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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